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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이 하도 바빠서 운동회에 와달란 부탁도 못 해볼 뻔 했음. 하지만 이제는 된다! 학생수가 매우 적은 수인학교는 보호자와 지인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해야 운동회 구색을 갖출 수 있었음. 한 다리 건너 알 만한 고만고만한 지인들을 초대해 교류하는 건 수인의 사회화라는 교육목표에도 부합했지. 미조구치는 간만에 아몬과 뜨밤을 보내고 온기 가득한 침대에 불끄고 누워 누구를 초대할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눔.
사실 아몬은 운동회 일정이 공지된지 2주나 지났는데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 다 털어놓는 미조구치가 그런 큰 소식은 얘기 안 했다는데 좀 많이 당황했음. 당연히 못 올 줄 알아서 아예 부탁하는 것조차 포기했다는 여우에게 아몬은 그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것 밖엔 해줄 수 없었어.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운동회 날을 최고의 하루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함.
“마츠모토도 초대하면 어때?”
“치.. 연애한다고 문자 보내도 무시하고 답장도 엄청 성의없구.”
아몬도 츠지무라를 통해 그렇다고는 들었음. 학교 다니느라 바쁜 와중에 소라와 꽤 진지하게 사귄다던가. 이 집에서 지낼 때도 보통성격은 아니었던 소라는 마츠모토를 꽉 휘어잡았다는 모양이야. 소라는 마츠모토가 미조구치와 친하다는 사실을 질투했음. 그래서 미조구치랑 너무 다정하게 연락하지 말라던가 야한 얘기 금지라던가 하는 규칙을 잔뜩 만들었다고 해. 미조구치도 소라가 난리를 쳐서 연락이 뜸해졌단 건 알고 있었음.
“하여간 소라 녀석, 남의 신경 긁는 데는 최고야!”
...라고 불평하는 여우구치는 필시 아몬이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야한 얘기를 하면 서러워서 죽는다 할 것임.
아무튼 마츠모토에게 초대장을 보냈음. 곧 문자가 읽음으로 바뀌고... 그대로 5분이 흐름. 같이 지켜보던 아몬은 소라를 동반해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라고 조언함. 미조구치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민에 빠지겠다. 소라가 오는 것도 짜증나고 안 오는 것도 찜찜한데... 결국 아몬의 조언을 따라 폰을 두들기는 미조구치.
[오오! 재밌겠다. 꼭 갈게.]
어이없게도 마츠모토만 초대했을 때는 5분이나 읽씹하더니 소라도 오라고 하니까 즉답임. 아니 마츠모토는 내 친구이기도 한데 왜 소라에게 다 뺏긴 거 같지?! 미조구치 빡쳐서 귀랑 꼬리 꺼내고 탈탈탈탈 털 듯. 아몬은 조용히 리모컨 집어들고 공청기 세기 올리겠다.
야마토와 노보루도 초대함. 원래 이토칸에 죽치는 양아치들 다 부르겠다는 거 아몬이 뜯어말림. 그들에게 악감정은 없으나 경찰과 양아치가 함께 운동회라니 이 무슨 해괴한 그림이야. 게다가 수인보다 사회화 덜 된 양아치들이 떼로 몰려가면 학교 측에서도 난감할 거고, 애초에 두세 명 쯤 초대하라는 뜻이지 패거리를 불러오라는 뜻은 절대 아닐 것임. 노보루는 금방 문자를 확인했고
[와, 좋네. 지금 야마토에게 알리면 동네 바보들에게 소문이 나서 모두 따라오고 싶어할 것 같으니까 비밀로 하고 있을게.]
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아몬과 동일한 견해의 답장을 보내왔음.
[주먹밥 싸갈까? 아몬 상도 오실테니 4인분이면 돼?]
아몬은 자기 여우 먹일 음식은 하나하나 손수 만들 예정이지만 일단 6인분치 주먹밥을 가져오라고는 했음. 그집 어머님 손맛이 맛있으니까.
그렇게해서 운동회까지 대략 30일 카운트다운이 시작됨. 그 사이 미조구치는 눈물 젖은 콩 다이어트로 입적스펙을 가뿐히 통과했고 건강식 위주로 식사를 증량했지. 적절한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츠지무라의 신신당부에 주말마다 트레킹도 다님. 앞으로 남은 큰 이벤트가 운동회와 입적이라니 미조구치 정말 살맛 나겠다ㅋㅋ
같이 데이트를 나가도 도시에서 돌아다녔지 자연으로 데리고 나오지는 못했던 아몬. 어느 날 야산에서 알고 싶지 않았던 미조구치의 놀라운 능력..을 목도하겠다. 미조구치는 여우폼으로 풀숲을 헤집고 다니며 여우점핑을 해댔는데 첨에 아몬은 그게 다 너무 신나서 뛰는건 줄만 알았음. 점핑은 기분좋을 때 하는 행동이니까. 근데 그게 아니었어.
“요스케, 어서 뱉어!”
“퉤.”
아몬은 자랑스럽게 쥐를 물고 달려온 여우구치에게 식겁했고 빨리 놔 주라고 재촉했음. 근처 편의점에서 칫솔과 치약까지 새로 사다주며 양치도 시킴. 미조구치는 자신의 끝내주는 사냥실력보다 쥐에 꽂힌 아몬이 서운했지. 다음엔 아몬이 안 보는데서 잡아야겠다고 생각함.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간 아몬은 키스에 미온적이 되었고ㅋㅋㅋㅋㅋ 미조구치는 큰 충격을 받고는 쥐 사냥은 그냥 하지 말아야겠다고 아예 생각을 고쳐먹음.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코타로 상도 유난이야. 숲에 사는 쥐들은 다 깨끗한데.’
미조구치를 배려하느라 참고 살아서 그렇지 아몬은 엄청나게 깔끔한 성격임. 아무리 사랑으로 감싸안아도 쥐는 못 참았던 사연이었다ㅠㅋㅋ 사냥을 하지 않겠다고 미조구치가 약속을 했음에도 아몬은 자신의 여우를 믿지 않았음. 한입거리 사이즈로 빠르게 움직이는 생물을 여우구치가 욕심내지 않으리라고 절대 믿을 수 없었던 거. 결국 아몬은 트레킹 횟수 줄이고 운동은 따로 시키겠지.
사무직으로 바꿨어도, 아니 오히려 사무직이기 때문에 아몬은 운동에 소홀해지지 않게 고강도 트레이닝을 유지했음. 운동하는 아몬이 멋있었던 미조구치는 마침 자기도 운동을 해야 하니까 아몬을 선생님 삼아 PT를 시작함. 근데 아몬이 다른 건 다 봐줘도 운동할 때는 호랑이 선생님이 되는 것임. 불쌍한 미조구치..ㅋㅋ 딱딱한 얼굴로 건조하게 카운트 세는 아몬이 넘 무섭고 쫄리겠다ㅋㅋㅠㅠ 짐승의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시키는 건 곧잘 해냈지만 칭찬은 야박하지 운동은 힘들지.. 날이 갈수록 미조구치는 점점 아몬이랑 운동하기 싫어짐. 미조구치는 그만두고 싶다고 변덕을 부렸고 아몬은 원래 하기로 약속한 만큼(한달)은 해야 한다며 강경하게 반대했음.
하루는 미조구치가 막 다리가 후들거리고 죽을 거 같다고 했는데 아몬이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냉정하게 말함.
“엄살피우지 말고 계속 해.”
시키는 건 끝까지 했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단 생각이 든 미조구치 운동 끝나고 집에 가면서 아몬이랑 한마디도 안 함. 그리고 그날 밤 장식장 밑에서 잤지. 아몬은 각방을 써버리는 미조구치에게 당황했지만 이미 좁은 틈으로 기어들어가버린 애를 뭐 털가죽 잡아 끄집어낼 수도 없고.. 그냥 방법이 없음. 못말림. 다음날 몹시 시위중인 여우구치가 일부러 유부초밥을 더 와구와구 챱챱 먹자 아몬은 백기를 들었어.
“알았어. PT는 그만두고 트레킹 가자.”
그래... 운동이야 자기에게 맞는 걸 필요한 만큼 하면 되지 PT가 대수냐... 싫다는 거 굳이 억지로 시키지 말자. 사실 아몬은 미조구치에게서 운동의 가능성을 보고 계발시켜주려는 의도도 조금은 있었는데 요즘 미조구치는 자신의 특장점을 찾는데 흥미가 식은 거 같더라고. 그냥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우로 사는데 만족하는 중. 아몬도 미조구치가 꽃밭에서 호빗처럼 소박하게 사는 게 훨씬 맘 편하고 좋더라.
시간은 흘러흘러 운동회 당일. 순한맛이어도 한달 가까이 아몬의 트레이닝을 따라왔기 때문에 미조구치는 꽤 건강을 되찾았음. 마츠모토소라는 좀 일찍 도착해서 아몬미조구치를 기다리고 있었어. 서로 각자의 학교 다니느라 왕래가 뜸했던지라 미조구치 멀리서 반갑게 손 흔들었지. 그리고 소라보다 자기가 날씬한 거에 엄청 으쓱해함. 소라는 있는 힘껏 미조구치를 견제하다가 우연히 아몬과 눈이 마주쳤는데 아직도 소라에겐 아몬이 지옥의 저승사자 쯤으로 보여서 히이익- 마츠모토 뒤에 숨어버림.
야마토노보루도 주먹밥 잔뜩 싸가지고 학교에 도착함. 그때 쯤엔 미조구치도 행사준비로 바빠서 아몬이 서로를 소개시켜줘야 했어. 처음 보는 사이라 어색할 법도 한데 마츠모토는 첫만남부터 여우구치의 털을 빗겨준 그 친화력으로 야마토와 어울렸음.
“그건 뭐야? 고소한 냄새가 나네.”
마츠모토는 야마토가 가져온 두툼한 빅사이즈 쇼핑백 두개를 가리키며 물었음.
“못 들었냐? 주먹밥이잖아. 6인분.”
“6인분?”
아니 누가 봐도 전교생인분인데요? 이걸 어떻게 다 먹어. 융통성 있는 마츠모토는 분명 제대로 된 점심밥이 없는 수인도 있을 거라고 예상하곤 이거 되게 맛있어 보이는데 다른 애들도 나눠줘도 되냐고 미리 허락받아둠. 서로 알아서 말문 잘트는 모범생 마츠모토와 양아치 야마토.
운동회 입장식은 동물폼으로 진행했음. 마츠모토는 열을 지어 입장하는 토끼, 여우, 개, 고양이, 표범(!), 사자(!!)를 흥미로워 하며 동영상으로 찍었음. 여우구치는 입장하다가 마츠모토의 카메라를 보고 빵끗 웃었어. 그걸 좋다고 줌하는 마츠모토 옆에서 소라는 보란듯이 소주질을 하고 싶었지만 아몬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넘 눈치가 보여서 실패함. 그리고 수인들이 단체로 학교 다니고 축제 같은 것도 하고 그러니까 소라도 뭔가 엄청 학교 다니고 싶어짐.
초보반, 우등반 그대로 팀전을 하면 우등반이 너무 유리해. 그래서 랜덤으로 팀을 나누기로 함. 이때도 아몬의 인기란... 안 그래도 미조구치의 남편이라고 소문 다 나서 멋있는 주인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보니 약간 인상이 무섭기는 하지만 얼마나 멋있게요. 저런 얼굴로 수인을 예뻐라 한다니 수인계의 유니콘 같은 보호자임. 같은 팀이 안 된 수인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아몬미조구치를 쳐다봄. 같은 팀이 된 수인들은 막 몰려와서 벌써 게임 다 이긴 것처럼 좋아했지. 미조구치는 아몬 근처에 몰려 대놓고 좋아하는 애들이랑 그 옆 쯤에서 소심하게 헤헤 웃는 애들한테 조금만 더 떨어지라고 이 악물고 웃겠다.
첫번째 순서는 율동이었음. 이건 팀전이랑 무관하게 그냥 재미로 하는 거긴 한데 그래도 작고 귀여운 토끼수인 팀이랑 아야미야를 필두로 한 여우수인 팀이 승부욕을 불사르고 있는 중. 토끼팀이 먼저 퍼포먼스를 했는데 생각보다 넘 귀여워서 마츠모토 바로 영상 찍음. 노보루도 귀엽다고 카메라 들고 좋아하는데 야마토는 쌈질밖에 모르는 양아치라 무슨 그저그런 야구경기 보듯이 점심용 주먹밥 벌써 까먹고 있음. 그리고 아몬은 그냥 수인학교 분위기는 이렇구나 웃으면서 구경중.
토끼팀 퍼포먼스가 끝나고 여우팀이 쫙 무대로 올라감. 이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여우수인들의 군무는 겁나겁나겁나 개야했음. 의상도 섹시하고 음악도 그렇고 하여간 너무 야한 춤인데ㅋㅋ 화이트 래스컬즈에서 비슷한 춤 많이 보고 산 야마토노보루는 생각보다 과감하네 하고 놀라는 정도인데 마츠모토는 얼굴이 시뻘개짐ㅋㅋㅋㅋㅋㅋㅋㅋ 영상 찍는 손도 엄청 떨림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운동회에 초대된 보호자와 지인들 다 마츠모토랑 비슷한 반응ㅋㅋㅋㅋ 아몬 조차 좀 놀라서 눈 커다래진 채 구경했는데 보다 보니까 적응도 되고 즈그 여우가 넘 섹시해서 그냥 즐감모드가 되어버림. 그래도 중간중간 수위가 좀 세다 싶으면 옆사람 눈치 살짝 볼 듯.
두번째 순서는 줄다리기였음. 이건 보호자랑 지인들 다 참여하는 게임임. 미조구치는 자신만만했어. 아몬이 있는데 질 자신이 없었던 거지. 그런데 웬걸 아몬은 자신이 끼면 상대편에 너무 불리할 것 같다고 빠지겠다고 했음. 미조구치는 좀 실망했지만 그래도 야마토가 참가하겠다고 나서서 다시 자신감 회복하겠다. 줄을 당기기 시작하면서 힘껏 힘을 준 수인들 머리 위로 귀가 뿅뿅 튀어나옴. 너무 진풍경이라 마츠모토 이것도 영상으로 남김.
양팀이 한번씩 이겨서 1:1인 상황. 상대팀에서 갑자기 전략회의에 들어감. 거기엔 마루오도 있었는데 무식하게 당기기만 하면 야마토가 있는 팀이 무조건 이길거기 때문에 고효율로 힘을 낼 수 있는 물리적 원리를 이용해야 한다고 쟈근 목소리로 뭐라뭐라 알려주는 중임. 마루오네 팀은 밧줄을 가운데 두고 교차로 서서 줄을 겨드랑이에 바짝 낀 채 당겼음. 결과는 미조구치네 팀 완패.
아몬은 승리의 주역인 마루오를 유심히 바라봄. 즉석에서 저런 작전을 생각해 낸다고? 게다가 이상하게 낯이 익었음.
“마츠모토. 방금 찍은 영상 나에게도 보내줘.”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