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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3 02:32
헤어지고 싶어 하는 정대만 ㅂㄱㅅㄷ

송태섭 오랜만에 형이 자기 보러 미국 온다고 해서 ㄹㅇ 개빡세게 그루밍했단 말임 아끼는 향수 칙칙하고 점심 사먹을 돈도 빠듯한 유학생 형편에 새 옷도 사서 입고, 평소에 투명인간 취급하고 살던 룸메한테 뇌물 먹여서 데이트 코스도 싹 뽑아냄. 형 행복하게 해줄 만반의 준비가 된 쪼푸(특 17ncm 근육질)인데
오느라 고생했다고 뭐 좀 먹으러 가자는 말도 마다하고 공항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들어가더니 하는 말이 이거였음 좋겠음...

네가 날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서..

내?가?정대만을 안 사랑한다니 이게 무슨?소린가?싶고?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고.. 그럼 형이랑 일주일 보내려고 두 달 치 알바비 턴 놈은 송태섭 아니고 김태섭인가..?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잠깐 벙졌지만 당연히 그냥 물러설 송태섭이 아니지..

내가 형을 안 사랑한다니 좀 황당하긴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고 억울해하거나 화내진 않음. 본인이 애인 등지고 미국에 와 있는 거니까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부족할 거고 항상 내가 밑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거 같음.. 화낼 입장 아니라고 생각해서 무조건 달래기부터 들어갈 듯.
이미 상처 받은 사람 입으로 뭐가 서운했는지 말하게 하는 것도 미안하고, 자기가 이 관계에 관심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봐 짐작 가는 이유 하나씩 대기 시작함

이번 주에 전화가 좀 적었죠.. 그래서 그래요? 미안해요, 이번 주에 갑자기 출전이 많아져서.. 형한테 말해줬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었어요. 다음부턴 형한테 제일 먼저 말할게 응..? 이제 다시 전처럼 통화할 수 있어요. 더 많이 할게요..

하고 이유 한 세 개쯤 대보는데 정답이 아닌가.. 좀처럼 대만이 표정이 안 풀림. 그래서 여기 앉혀놓고 이럴 게 아니라 어디 제대로 된 실내로 데리고 들어가야겠다.. 생각하면서 짐 들어주려고 손 뻗었다가 흠칫 놀라서 다시 거둘 듯.
실은 2주 전 경기에서 부상을 입었거든. 재활까지 필요한 부상은 아니지만 그대로 계속 출전하면 심각해질 수도 있는 문제라 당분간은 쉬고 있었음. 연락 자주 못한 것도 당연히 출전이 잦아져서가 아니라 병원 들락거릴 일이 많아져서였음. 그래서 무거운 거 드는 일은 하면 안 됨.
근데 그걸 어쩐지 매서운 눈으로 보던 정대만이 송태섭 오른손을 아플 정도로 세게 잡아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김. 그리고 소매 확 올림. 손목에는 붕대가 감겨있었음. 추궁하는 듯한 눈에 살짝 떨리는 다른 쪽 손을 뒤로 감추면서,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함

아, 이거.. 별 거 아니에요. 요리하다 살짝 베인 건데 같이 사는 녀석이 오버를 해서..

하고 정대만 눈치 살피는데,
진짜 송태섭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두 사람 인연이 악연이던 시절에도 못 본 상처받은 표정 하고 있을 것 같음.

꽤 오래 누적된 상처였음. 송태섭이 생각하는 사랑은 '힘든 건 나 혼자만 알고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좋은 것만 주기'인데, 정대만은 오히려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의연한 척 하고 내달라는 대로 내줌. 관심 없으니까 다정하게 군다<<의 표본같은 사람임. 챙겨주고 도와주는 것, 사람들이 다정하다고 말하는 정대만의 행동은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주장 노릇을 해온 탓에 생긴 버릇이자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임. 정작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힘든 티 내고 기대는 정대만이라서.. 사랑하면 믿고 기대는 거라고 생각한단 말임. 그리고 정대만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식으로 마음을 줘본 사람이 송태섭이었음.
근데 가뜩이나 송태섭은 힘든 거 내색하는 타입도 아닌데다, 자꾸 정대만한테 일정 캐묻고 누구누구 조심해라 늦게까지 있지 말고 들어오고 술은 웬만하면 마시지 말고.... 이러니까 자기한테 기대지도 않고 자기를 믿지도 않는 것 같아서.. 전에 한 번 당신 못 믿는 거 아니고 당신 주변을 못 믿는 거다 설명했는데 정대만 지가 좋아하는 거 아니면 관심 없는 놈이라 도대체 누가 나한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고 솔직히 나 못 믿는데 핑계 대는 것 같고ㅠ 정대만 타고난 외모+매력+그 '관심 없으니까 상냥함'<<성질 때문에 주변에 남자여자 안 가리고 이상한 맘 품은 인간들 들끓고 있는데도ㅎ..

송태섭 손목 부상 입은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 송태섭 부상 입었단 소문이 한인 유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정우성 귀에 들어갔고, 그게 이명헌 귀로, 그리고 마침내 정대만 귀에 들어온 거였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비참했지. 난 너랑 아무 사이도 아닌 이명헌보다도 네 얘기를 늦게 듣는구나.
심지어 송태섭이 다친 걸 숨긴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음. 유학 생활 첫 해에 입은 어깨 부상, 그건 정말 선수생명을 논해야 할 만큼-대만이가 고1 때 입은 무릎 부상 같은-심각한 건이었단 말임. 그때도 정대만은 보다 못한 강백호에게 사정을 전해들어야 했음. 만만쓰는 알아야 할 것 같다고.
이번에 미국까지 온 건.. 물론 헤어지자는 말은 얼굴 보고 해야한다고 생각해서긴 하지만, 직접 만나면 다쳤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음. 전화로 해봐야 큰 도움을 못 주는 게 사실이니까(그래도 말해줬으면 좋겠다 싶지만), 어쩌면 직접 만나면 말해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근데 애리조나 8월의 푹푹 찌는 날씨에 긴소매 옷을 입고 온 송태섭을 보고 기어코 정대만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진 거였으면 좋겠다

태섭아. 나는 너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그래서 나름 많이, 노력했던 것 같은데, 별로 그런 사람이 못 되나봐.

뚝뚝 끊어지는 말의 사이사이마다 울음 소리, 울음을 겨우 삼키는 소리들이 스며들었음. 송태섭은... 정대만이 다 죽이고 저도 죽어버리고 싶단 표정으로 농구부에 쳐들어온 그날 이후로 정대만이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음. 그리고 그 사건은 송태섭 인생에서 아버지가 죽고 형이 죽은 일 다음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음. 정대만은 항상 그랬어, 송태섭에게 그런 영향력을 가졌지.. 그러니까 태섭이가 다리에 아예 힘이 풀려 정대만 앞에 무릎 꿇은 자세가 된 것도 아주 놀랄 일은 아님.
송태섭은 정대만 앞에 무릎을 꿇고, 양 손을 잡아다 제 뺨에 대고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야말로 주절거리기 시작했음. 어떻게든, 뭐든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한테, 이.. 지옥같은 유학 생활에서, 힘이 되는 거라곤 형 하나밖에 없어.. 형이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야...그런 게 아니라, 나는, 형.. 내 문제예요. 내가, ..몰랐어.. 형이 그렇게 생각하는 줄..

하다가 송태섭도 울컥 울음 올라오는데 습관처럼 억지로 삼킬 듯. 근데.. 울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았는지 대만이가 팔 뻗어서 안아줌. 그러면 그제야 울 것 같다. 상처줘서 미안하다고, 그러려던 거 아니었다고, 좋아해서 그랬다고..

그렇게 진짜 겨우겨우 오해 풀고.. 첫 날 데이트는 당연히 완전히 말아먹고 바로 잡아둔 숙소로 갈 듯. 대만이 옷도 안 갈아입고 태섭이 의자에 앉혀놓고는 붕대부터 풀어봄. 그리고 뭉친 주변 근육 풀어준다고 송태섭이 죽고 못사는 그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팔뚝 윗쪽부터 부상 입은 부분 바로 아래까지 살살 주물러줄 듯.
근데 이게.. 오랜만에 만난 형한테 이런 거 시키는 게 미안한 것도 미안한 건데, 좀, 시발.. 설 것 같아서....

진짜 별 거 아닌데, 그냥 파스나 좀 붙이면 돼요.

했다가 눈물 글썽거리면서 째려보는 눈에 합죽이 될 듯. 그러곤 긴 여행에 지쳤는지 혼자 픽 잠들어버린 연상 때문에 밤새 뜬 눈으로 애국가나 불렀다고 함.. 그리고 사실.. 두 번째는 진짜로 눈물이 난 건 아니고 송태섭이 지 눈물에 약한 거 안 똑똑한 연상이 꾀부린 거라나...

태대적으로 제일 말도 안 되는 이별 사유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왔네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