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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0 14:22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결과적으로, 이연화의 예상은 대충 들어맞았다. 엿새 이후, 절반 이상의 후보들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평온하고 빠르게 귀가하지 않았다. 엿새 동안, 백천원 사람들은 매우 고통받았다. 그 안에는 물론 방다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천원을 들고 나는 새들의 수가 종전의 다섯 배는 늘어난 듯했다. 말인즉슨, 그들이 감시하고 확인해야 할 서신의 수도 다섯 배로 늘어났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그 내용도 절반 정도는 모두 비슷했다. 비록 예의바르고 정갈한 글자로 오고 가는 소식이었으나, 방다병은 실제로 후보들과 그 가족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떤 느낌일지 눈에 선하다고 생각했다.
-이차저차 하여, 이 문주가 본인에게서 후사를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설령 네게 대를 이을 의무가 없다 쳐도 그건 곤란하다. 당장 돌아와라!
-하지만...하지만 이 사람은 이상이라고요!
-아무리 사고문주고 당대의 영웅이라 해도, 반려가 될 음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얼른 돌아와!
-싫습니다!
-이놈이 돌았나?
-부모님이 직접 이 사람을 못 보셔서 그래요!
-볼 필요도 없어! 내가 아이도 못 갖는 음인한테 홀리라고 네놈을 거기 보낸 줄 아느냐!
-후사가 정 걱정이면 후처를 둬도 되잖아요!(석수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편지를 북북 찢어버리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미쳤느냐? 백천원이랑 척질 일 있어? 아무리 이름뿐인 문주라 해도 그 사람들이 그 꼴을 두고 보겠다! 그리고 네가 어려서 그렇지, 예전 이상이가 얼마나 거침없는 사람이었는지 알아? 나중에 맞고 살기 싫으면 빨리 튀어와!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면 호적에서 파버릴 테다!
-싫어요! 제 혼사니까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이 정신 나간 놈이!
유치하나 맹렬한 아수라장은 단지 편지 속에서만 벌어지지 않았다. 가문의 의지와 달리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그 몸종들이 문제 제출에 필요한 패를 들고 도망치기까지 한 탓이었다. 방다병은 그 선택을 십분 이해했다. 결국 그들의 최대 고용주는 도련님이나 아가씨가 아닌, 집에서 떡 버티고 있는 주인 마님이었다. 후보들이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수색한들, 이미 멀리 달아나버린 이들을 찾기란 요원했다.
하여,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당연하게도 이연화를 찾아와 붙들고 읍소하는 것이었다. 방다병은 세상 건조하고 심드렁한 얼굴로, 이연화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처럼 간청하는 이들을 지켜보았다. 언뜻 보면 여러 사람들이 그저 각자 하고픈 말을 정신없이 늘어놓고 있었지만, 조금만 유심히 관찰하면 그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며칠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부모님을 꼭 설득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한을 늘려달라 형.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백천원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는 사실을 역설하며, 이 기한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강변했다. 누군가는 뻔뻔하게도, 가문의 답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조금만 더 말미를 달라 했다(하지만 방다병은 그들 모두가 답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서신들을 눈알 빠지게 검수했으니까!).
"패를 새로 발급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분명 잘 간수하였는데, 도둑이 훔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둘째, 난 억울하다 형. 나는 남아있고자 결정하여 집안에 확실히 통보했는데, 내 몸종이 감히 주인을 배신하고 도둑질을 했다. 이런 부득이한 상황은 내 잘못이 아니니, 나무 패를 새로 발급해주는 것이 옳다! 역시 방다병은 별 감흥 없는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애초부터, 잘 간수했다면 도둑질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내심 고개를 젓던 청년의 눈으로, 마지막 무리가 무릎을 꿇은 광경이 들어왔다.
"정 안 된다면 제자로라도 받아 주십시오! 무인으로서 늘 문주를 흠모해 왔습니다."
셋째, 그게 안 된다면 이렇게라도 형. 방다병은 대놓고 눈을 굴리며 고개를 돌렸다. 제자는 아무나 되는 줄 아나? 적어도 어릴 때에 이상이를 만나본 경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아니면 함께 오래 여행했다든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든가, 등을 맡기고 싸웠다든가, 서로 목숨을 구해줬다든가. 방다병은 자격 없는 형탐 지원자들을 바라보는 불피백석처럼 후보자들을 훑어보았다.
이연화는 난처하면서도 예의바른 표정을 지은 채 꽤 오래도록 그들의 말을 들어주다, 이내 가볍게 한 손을 들었다. 어지럽게 날아다니던 목소리들이 잠시 멎었다. 이연화는 아주 안타까운 얼굴로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자, 여러분. 진정하시지요. 소생을 좋게 보아주신 점은 감사하나, 설득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귀가하시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저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강호인일 뿐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가정에 갈등과 불화를 일으켜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일은 바라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저는 제자를 받을 만큼 대단한 사람도 못 됩니다. 그러니 부디 일어나시지요."
"하지만-지금 가면 또 언제 뵐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이연화를 왜 또 만나야 해? 방다병이 뜨악한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이연화가 엷고 자비로운 미소와 함께 건넸다.
"제가 잘 아는 보도사 스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만날 사람은 어디서든 만나게 되어 있다고요."
"하지만...."
일단의 사람들이 우물거리며 서로를 보았다. 금방 물러서지 않을 분위기에, 이연화가 순간 잔기침을 두어 번 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소매로 입을 가린 모습이 퍽 유약해 보였다. 순간적인 눈짓을 놓치지 않고, 방다병은 얼른 다가가 이연화를 부축했다. 이연화가 자연스레 그 팔을 잡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해독은 다 되었는데, 아직 후유증으로 가끔 한기가 들어...."
"이제 돌아가 주십시오.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을 붙들고 다그칠 만큼 예를 모르는 분들은 아니겠지요."
방다병이 일단의 무리와 이연화 사이로 몸을 끼워넣으며 말했다. 후보들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주춤거렸지만, 결국 한숨 또는 약간의 눈물과 함께 발길을 돌렸다. 누군가는 하필 이런 시점에 그런 사실을 터뜨린 윤청언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저주하기도 했다. 이연화는 계속 기침이 나오는 척하며 방다병과 함께 백천원 안으로 들어왔다. 남의 눈이 닿지 않는 내원 정자에 다다라서야, 이연화는 가짜 기침을 멈추고 털썩 앉았다.
"와, 정신이 없네...."
이연화가 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방다병이 흥 소리를 내며 이연화를 바라보았다.
"쌤통이다, 늙은 여우. 이제 네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지 알겠어?"
"앞날도 창창한 어린애들인데, 왜 한참 나이도 많은 나한테 이러는 거야. 오히려 어려서 저렇게 맹목적인 건가?"
이연화가 참 모를 일이라는 듯이 이야기하며 팔짱을 끼었다. 방다병은 훅 치미는 억하심정을 애써 가라앉히며 눈을 잠시 감았다. 함께 여행할 때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이연화는 똑똑한 것에 비해 때로 놀라울 만큼 무지하게 굴었다. 자기비하 속에 떠돌았던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런가? 이상이 시절에도 접근하는 사람들은 많았을 텐데. 방다병이 괜히 억울한 눈동자로 쏘아보는 가운데, 이연화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저대로 한 달쯤 내버려두면 잊겠지." 방다병이 푹 한숨을 쉬었다. 시무룩하게 돌아간 자들을 향해 일말의 연민이 느껴졌다.
"넌 진짜 못된 늙은 여우야. 알아?"
"이렇게들 난리일 줄 몰랐지. 내가 좀 이상하다는 조언을 듣긴 했지만...어쨌든 저들은 가문을 등에 업은 사람들이잖아. 멋대로 결정하기 좋은 입장은 아니라, 웬만해선 얌전히들 돌아갈 줄 알았더니. 아이고, 지친다."
이연화가 중얼거리며 괜히 허리를 두드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다병이 품을 뒤졌다. 작은 꾸러미를 내밀자, 이연화의 눈이 둥그레졌다. 남자는 소년처럼 빛나는 얼굴로 얼른 꾸러미를 받아 풀었다. 그 안에는 사탕 몇 조각이 가지런히 들어가 있었다. 얼른 하나를 입에 넣은 이연화가 음, 소리를 내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미간이 조금 전과는 다른 이유로 좁혀졌다.
"방소보, 내가 여러모로 네 덕에 산다."
이연화가 신음처럼 이야기했다. 방다병은 그 말에 그만 픽 웃어버렸다. 이연화의 옆에 나란히 앉으며, 방다병이 독기 없이 타박했다.
"사탕이라면 얼마든지 갖다줄 수 있으니까 몸조심이나 해."
"걱정 마, 아직까지 별일 없었잖아. 그리고, 오늘 저 사람들까지 다 돌아가면 이제 스물 정도밖에 안 남아. 두 번째 질문에서 성대경과 뱀, 여우를 남겨야겠지. 며칠 동안 추린 후보가 다섯이었으니, 일단 그들을 포함시켜서 최종 인선을 짜 보자고."
방다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물 중, 그들이 뱀과 여우로 의심하는 자는 총 다섯 명이었다. 후보들이 속한 가문의 근황, 개인의 조건, 첫날과 연회 자리에서 보여주었던 태도, 첩자들이 보고한 정보 등에 근거한 추론이었다. 그 안에는 술병 소란을 일으켰던 구소양과 서호천, 다른 후보들을 염려하는 듯한 얘기를 꺼냈던 사씨 가주 사인백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둘은 거대한 의방을 운영하여 부를 축적한 종씨 집안의 삼남 종려명과, 무기를 제조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금을 모은 경씨 집안의 오남 경설형이었다. 이연화가 두 번째 사탕을 한쪽 볼에 넣고 먹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성대경이 떠나지 않은 걸 보면, 내 말을 믿지 않았거나 믿더라도 일을 진행하겠다는 얘긴데. 남윤에는 불임을 임신시키는 비술도 있나?"
"제발 그런 말 좀 태연하게 하지 말아줄래...."
방다병이 고통스럽게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이연화는 종종 본인에게 닥칠 고난을 너무나 남의 일처럼 서술하곤 했다. 이연화가 사탕을 다른쪽 볼로 옮기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해본 말이야." 태평한 꼴을 곁눈으로 흘겨보다, 방다병은 이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보다, 그 다섯과 성대경만 최종 후보로 선발할 순 없어. 저쪽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첩자를 경계한다는 것쯤은 알겠지. 의심할 구석이 있는 자들만 남긴다면 이쪽의 의도를 의심할 수도 있으니, 눈속임용 후보를 서넛 더 끼우는 게 좋을 것 같아."
"음. 강호인과 일반인을 적절히 섞어두면 의심을 덜 받겠지. 구소양과 서호천, 사인백에 아비, 성대경까지 다섯이 강호인이야. 종려명과 경설형은 아니고. 그럼 나머지 둘은, 그래. 저 멀리서 왔다던 매남상단의 공자 하나와...."
중얼거리며 마지막 후보를 생각하던 이연화의 얼굴로 잠깐의 망설임이 스쳤다. 적당한 사람이 떠오르기는 했으나, 그 사람을 마지막까지 남기자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연화를 응시하던 방다병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얼굴이야?"
"그 사람을 끼우는 게 맞나 싶네. 불필요한 도움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 때문에 죽을 뻔한 사람이라."
"누군데?"
"추 공자."
이연화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방다병은 순간 입에 잘못 들어온 벌레를 씹어버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사적으로 반대하고 싶었으나 딱히 그럴 만한 근거가 떠오르지 않아, 방다병은 결국 못마땅한 한숨을 쉬고는 중얼거렸다. 어쩐지 이연화의 체질이 바뀐 이후, 하루에도 몇십 번씩 한숨을 쉬는 듯했다.
"상관없지 않겠어? 그 공자는 그냥 마지막까지 남았다는 사실에 감격할 것 같은데."
"그것도 좀 미묘하단 말이지."
이연화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보았다. 방다병 역시 해를 힐끗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은 후보들을 찾아야 할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그들은 엿새 전 식사했던 장소에서 차를 마시며 이연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문제를 듣기 위해서였다.
방다병의 말대로, 추영인은 그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꿈결 같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자리를 지키던 참이었다. 방다병은 그편으로 뚱한 시선을 던지며, 이연화의 근처에 호위 무사처럼 섰다. 수풀에 숨어 보았을 때부터 참 거슬리는 청년이었다. 이 공개 구혼이 시작되기도 전, 가장 용감하게 먼저 문을 두드린 사람이라서일까? 아니,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었다. 오늘 제자로 받아달라며 떼를 쓴 사람들이 부렸던 것과 같은! 방다병이 눈썹을 팍 찌푸렸다. 구혼이라니, 제정신이야? 이연화의 반려는, 이연화의 반려가 되는 사람은...청년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뻗어가기 전, 이연화가 차분하게 말했다.
"크고 작은 소동이 있었음에도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랄 것이 있겠습니까. 혼사는 양쪽의 저울추가 맞아야 벌어지는 일, 문주의 조건과 자신의 조건이 적합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남은 것이지요."
사인백이 점잖게 말했다. 이연화가 빙그레 웃으며 차를 따랐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후보들이 등을 바로 폈다. 이연화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덕은 무엇인가?"
후보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연화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었다.
"첫 번째 과제와 달리, 이번 문제에는 제가 정해둔 답이 있습니다."
일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호천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그 하나의 답을 맞추지 못하면 모두 탈락할 수도 있는 것입니까?"
"답이 하나는 아닙니다. 세상에 참으로 여러 덕이 있을진대, 어찌 한 가지만 고수할 수 있겠습니까? 개중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도 감히 말할 수 없겠지요. 다만 제가 미리 적어둔 여러 단어들이 있을 뿐입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서로 가치관이 맞는 일은 매우 중요하니, 그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마지막 후보로 택할 예정입니다."
말하면서, 이연화는 자신의 품에 손을 넣어 작은 지통 하나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연꽃 문양이 새겨진 작은 나무통이었다. 적비성을 제외한 후보들의 얼굴로 긴장이 흘렀다. 방다병은 그 나무통을 유독 오래 쳐다보는 후보들을 재빨리 기억해 두었다.
"가치관이란 평소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이니, 그리 오래 시간을 드릴 필요는 없으리라 봅니다. 내일 같은 시간까지, 첫 번째 과제와 동일한 절차를 거쳐 제출해주시면...."
이연화의 말이 흐려졌다. 찻잔을 내려놓고, 남자는 잠시 고개를 돌려 입을 가린 채 기침을 했다. 어깨가 몇 차례 들썩였다. 왜 또 연기하는 거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방다병은 순간 숨을 삼켰다. 입을 가렸던 소맷자락으로 아주 약한 핏기가 비치고 있었다.
"이연화!"
방다병이 놀라 외치며 그 옆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머릿속이 희게 변하면서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 감각이 최고조로 곤두섰다. 과거에 참 많이도 보았던 광경이지만 죽어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휘둥그레진 눈이 바로 찻잔을 향했다. 방다병이 독이라고 외치기 전, 이연화가 강한 시선을 보내며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잠자코 있으라는 지시였다. 방다병이 멈칫하는 사이, 후보들 중 하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일어났다.
"문주, 괜찮으십니까? 제가 잠시 보아 드릴까요?"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결과적으로, 이연화의 예상은 대충 들어맞았다. 엿새 이후, 절반 이상의 후보들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평온하고 빠르게 귀가하지 않았다. 엿새 동안, 백천원 사람들은 매우 고통받았다. 그 안에는 물론 방다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천원을 들고 나는 새들의 수가 종전의 다섯 배는 늘어난 듯했다. 말인즉슨, 그들이 감시하고 확인해야 할 서신의 수도 다섯 배로 늘어났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그 내용도 절반 정도는 모두 비슷했다. 비록 예의바르고 정갈한 글자로 오고 가는 소식이었으나, 방다병은 실제로 후보들과 그 가족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떤 느낌일지 눈에 선하다고 생각했다.
-이차저차 하여, 이 문주가 본인에게서 후사를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설령 네게 대를 이을 의무가 없다 쳐도 그건 곤란하다. 당장 돌아와라!
-하지만...하지만 이 사람은 이상이라고요!
-아무리 사고문주고 당대의 영웅이라 해도, 반려가 될 음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얼른 돌아와!
-싫습니다!
-이놈이 돌았나?
-부모님이 직접 이 사람을 못 보셔서 그래요!
-볼 필요도 없어! 내가 아이도 못 갖는 음인한테 홀리라고 네놈을 거기 보낸 줄 아느냐!
-후사가 정 걱정이면 후처를 둬도 되잖아요!(석수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편지를 북북 찢어버리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미쳤느냐? 백천원이랑 척질 일 있어? 아무리 이름뿐인 문주라 해도 그 사람들이 그 꼴을 두고 보겠다! 그리고 네가 어려서 그렇지, 예전 이상이가 얼마나 거침없는 사람이었는지 알아? 나중에 맞고 살기 싫으면 빨리 튀어와!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면 호적에서 파버릴 테다!
-싫어요! 제 혼사니까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이 정신 나간 놈이!
유치하나 맹렬한 아수라장은 단지 편지 속에서만 벌어지지 않았다. 가문의 의지와 달리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그 몸종들이 문제 제출에 필요한 패를 들고 도망치기까지 한 탓이었다. 방다병은 그 선택을 십분 이해했다. 결국 그들의 최대 고용주는 도련님이나 아가씨가 아닌, 집에서 떡 버티고 있는 주인 마님이었다. 후보들이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수색한들, 이미 멀리 달아나버린 이들을 찾기란 요원했다.
하여,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당연하게도 이연화를 찾아와 붙들고 읍소하는 것이었다. 방다병은 세상 건조하고 심드렁한 얼굴로, 이연화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처럼 간청하는 이들을 지켜보았다. 언뜻 보면 여러 사람들이 그저 각자 하고픈 말을 정신없이 늘어놓고 있었지만, 조금만 유심히 관찰하면 그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며칠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부모님을 꼭 설득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한을 늘려달라 형.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백천원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는 사실을 역설하며, 이 기한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강변했다. 누군가는 뻔뻔하게도, 가문의 답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조금만 더 말미를 달라 했다(하지만 방다병은 그들 모두가 답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서신들을 눈알 빠지게 검수했으니까!).
"패를 새로 발급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분명 잘 간수하였는데, 도둑이 훔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둘째, 난 억울하다 형. 나는 남아있고자 결정하여 집안에 확실히 통보했는데, 내 몸종이 감히 주인을 배신하고 도둑질을 했다. 이런 부득이한 상황은 내 잘못이 아니니, 나무 패를 새로 발급해주는 것이 옳다! 역시 방다병은 별 감흥 없는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애초부터, 잘 간수했다면 도둑질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내심 고개를 젓던 청년의 눈으로, 마지막 무리가 무릎을 꿇은 광경이 들어왔다.
"정 안 된다면 제자로라도 받아 주십시오! 무인으로서 늘 문주를 흠모해 왔습니다."
셋째, 그게 안 된다면 이렇게라도 형. 방다병은 대놓고 눈을 굴리며 고개를 돌렸다. 제자는 아무나 되는 줄 아나? 적어도 어릴 때에 이상이를 만나본 경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아니면 함께 오래 여행했다든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든가, 등을 맡기고 싸웠다든가, 서로 목숨을 구해줬다든가. 방다병은 자격 없는 형탐 지원자들을 바라보는 불피백석처럼 후보자들을 훑어보았다.
이연화는 난처하면서도 예의바른 표정을 지은 채 꽤 오래도록 그들의 말을 들어주다, 이내 가볍게 한 손을 들었다. 어지럽게 날아다니던 목소리들이 잠시 멎었다. 이연화는 아주 안타까운 얼굴로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자, 여러분. 진정하시지요. 소생을 좋게 보아주신 점은 감사하나, 설득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귀가하시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저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강호인일 뿐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가정에 갈등과 불화를 일으켜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일은 바라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저는 제자를 받을 만큼 대단한 사람도 못 됩니다. 그러니 부디 일어나시지요."
"하지만-지금 가면 또 언제 뵐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이연화를 왜 또 만나야 해? 방다병이 뜨악한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이연화가 엷고 자비로운 미소와 함께 건넸다.
"제가 잘 아는 보도사 스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만날 사람은 어디서든 만나게 되어 있다고요."
"하지만...."
일단의 사람들이 우물거리며 서로를 보았다. 금방 물러서지 않을 분위기에, 이연화가 순간 잔기침을 두어 번 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소매로 입을 가린 모습이 퍽 유약해 보였다. 순간적인 눈짓을 놓치지 않고, 방다병은 얼른 다가가 이연화를 부축했다. 이연화가 자연스레 그 팔을 잡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해독은 다 되었는데, 아직 후유증으로 가끔 한기가 들어...."
"이제 돌아가 주십시오.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을 붙들고 다그칠 만큼 예를 모르는 분들은 아니겠지요."
방다병이 일단의 무리와 이연화 사이로 몸을 끼워넣으며 말했다. 후보들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주춤거렸지만, 결국 한숨 또는 약간의 눈물과 함께 발길을 돌렸다. 누군가는 하필 이런 시점에 그런 사실을 터뜨린 윤청언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저주하기도 했다. 이연화는 계속 기침이 나오는 척하며 방다병과 함께 백천원 안으로 들어왔다. 남의 눈이 닿지 않는 내원 정자에 다다라서야, 이연화는 가짜 기침을 멈추고 털썩 앉았다.
"와, 정신이 없네...."
이연화가 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방다병이 흥 소리를 내며 이연화를 바라보았다.
"쌤통이다, 늙은 여우. 이제 네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지 알겠어?"
"앞날도 창창한 어린애들인데, 왜 한참 나이도 많은 나한테 이러는 거야. 오히려 어려서 저렇게 맹목적인 건가?"
이연화가 참 모를 일이라는 듯이 이야기하며 팔짱을 끼었다. 방다병은 훅 치미는 억하심정을 애써 가라앉히며 눈을 잠시 감았다. 함께 여행할 때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이연화는 똑똑한 것에 비해 때로 놀라울 만큼 무지하게 굴었다. 자기비하 속에 떠돌았던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런가? 이상이 시절에도 접근하는 사람들은 많았을 텐데. 방다병이 괜히 억울한 눈동자로 쏘아보는 가운데, 이연화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저대로 한 달쯤 내버려두면 잊겠지." 방다병이 푹 한숨을 쉬었다. 시무룩하게 돌아간 자들을 향해 일말의 연민이 느껴졌다.
"넌 진짜 못된 늙은 여우야. 알아?"
"이렇게들 난리일 줄 몰랐지. 내가 좀 이상하다는 조언을 듣긴 했지만...어쨌든 저들은 가문을 등에 업은 사람들이잖아. 멋대로 결정하기 좋은 입장은 아니라, 웬만해선 얌전히들 돌아갈 줄 알았더니. 아이고, 지친다."
이연화가 중얼거리며 괜히 허리를 두드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다병이 품을 뒤졌다. 작은 꾸러미를 내밀자, 이연화의 눈이 둥그레졌다. 남자는 소년처럼 빛나는 얼굴로 얼른 꾸러미를 받아 풀었다. 그 안에는 사탕 몇 조각이 가지런히 들어가 있었다. 얼른 하나를 입에 넣은 이연화가 음, 소리를 내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미간이 조금 전과는 다른 이유로 좁혀졌다.
"방소보, 내가 여러모로 네 덕에 산다."
이연화가 신음처럼 이야기했다. 방다병은 그 말에 그만 픽 웃어버렸다. 이연화의 옆에 나란히 앉으며, 방다병이 독기 없이 타박했다.
"사탕이라면 얼마든지 갖다줄 수 있으니까 몸조심이나 해."
"걱정 마, 아직까지 별일 없었잖아. 그리고, 오늘 저 사람들까지 다 돌아가면 이제 스물 정도밖에 안 남아. 두 번째 질문에서 성대경과 뱀, 여우를 남겨야겠지. 며칠 동안 추린 후보가 다섯이었으니, 일단 그들을 포함시켜서 최종 인선을 짜 보자고."
방다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물 중, 그들이 뱀과 여우로 의심하는 자는 총 다섯 명이었다. 후보들이 속한 가문의 근황, 개인의 조건, 첫날과 연회 자리에서 보여주었던 태도, 첩자들이 보고한 정보 등에 근거한 추론이었다. 그 안에는 술병 소란을 일으켰던 구소양과 서호천, 다른 후보들을 염려하는 듯한 얘기를 꺼냈던 사씨 가주 사인백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둘은 거대한 의방을 운영하여 부를 축적한 종씨 집안의 삼남 종려명과, 무기를 제조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금을 모은 경씨 집안의 오남 경설형이었다. 이연화가 두 번째 사탕을 한쪽 볼에 넣고 먹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성대경이 떠나지 않은 걸 보면, 내 말을 믿지 않았거나 믿더라도 일을 진행하겠다는 얘긴데. 남윤에는 불임을 임신시키는 비술도 있나?"
"제발 그런 말 좀 태연하게 하지 말아줄래...."
방다병이 고통스럽게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이연화는 종종 본인에게 닥칠 고난을 너무나 남의 일처럼 서술하곤 했다. 이연화가 사탕을 다른쪽 볼로 옮기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해본 말이야." 태평한 꼴을 곁눈으로 흘겨보다, 방다병은 이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보다, 그 다섯과 성대경만 최종 후보로 선발할 순 없어. 저쪽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첩자를 경계한다는 것쯤은 알겠지. 의심할 구석이 있는 자들만 남긴다면 이쪽의 의도를 의심할 수도 있으니, 눈속임용 후보를 서넛 더 끼우는 게 좋을 것 같아."
"음. 강호인과 일반인을 적절히 섞어두면 의심을 덜 받겠지. 구소양과 서호천, 사인백에 아비, 성대경까지 다섯이 강호인이야. 종려명과 경설형은 아니고. 그럼 나머지 둘은, 그래. 저 멀리서 왔다던 매남상단의 공자 하나와...."
중얼거리며 마지막 후보를 생각하던 이연화의 얼굴로 잠깐의 망설임이 스쳤다. 적당한 사람이 떠오르기는 했으나, 그 사람을 마지막까지 남기자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연화를 응시하던 방다병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얼굴이야?"
"그 사람을 끼우는 게 맞나 싶네. 불필요한 도움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 때문에 죽을 뻔한 사람이라."
"누군데?"
"추 공자."
이연화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방다병은 순간 입에 잘못 들어온 벌레를 씹어버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사적으로 반대하고 싶었으나 딱히 그럴 만한 근거가 떠오르지 않아, 방다병은 결국 못마땅한 한숨을 쉬고는 중얼거렸다. 어쩐지 이연화의 체질이 바뀐 이후, 하루에도 몇십 번씩 한숨을 쉬는 듯했다.
"상관없지 않겠어? 그 공자는 그냥 마지막까지 남았다는 사실에 감격할 것 같은데."
"그것도 좀 미묘하단 말이지."
이연화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보았다. 방다병 역시 해를 힐끗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은 후보들을 찾아야 할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그들은 엿새 전 식사했던 장소에서 차를 마시며 이연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문제를 듣기 위해서였다.
방다병의 말대로, 추영인은 그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꿈결 같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자리를 지키던 참이었다. 방다병은 그편으로 뚱한 시선을 던지며, 이연화의 근처에 호위 무사처럼 섰다. 수풀에 숨어 보았을 때부터 참 거슬리는 청년이었다. 이 공개 구혼이 시작되기도 전, 가장 용감하게 먼저 문을 두드린 사람이라서일까? 아니,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었다. 오늘 제자로 받아달라며 떼를 쓴 사람들이 부렸던 것과 같은! 방다병이 눈썹을 팍 찌푸렸다. 구혼이라니, 제정신이야? 이연화의 반려는, 이연화의 반려가 되는 사람은...청년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뻗어가기 전, 이연화가 차분하게 말했다.
"크고 작은 소동이 있었음에도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랄 것이 있겠습니까. 혼사는 양쪽의 저울추가 맞아야 벌어지는 일, 문주의 조건과 자신의 조건이 적합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남은 것이지요."
사인백이 점잖게 말했다. 이연화가 빙그레 웃으며 차를 따랐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후보들이 등을 바로 폈다. 이연화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덕은 무엇인가?"
후보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연화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었다.
"첫 번째 과제와 달리, 이번 문제에는 제가 정해둔 답이 있습니다."
일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호천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그 하나의 답을 맞추지 못하면 모두 탈락할 수도 있는 것입니까?"
"답이 하나는 아닙니다. 세상에 참으로 여러 덕이 있을진대, 어찌 한 가지만 고수할 수 있겠습니까? 개중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도 감히 말할 수 없겠지요. 다만 제가 미리 적어둔 여러 단어들이 있을 뿐입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서로 가치관이 맞는 일은 매우 중요하니, 그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마지막 후보로 택할 예정입니다."
말하면서, 이연화는 자신의 품에 손을 넣어 작은 지통 하나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연꽃 문양이 새겨진 작은 나무통이었다. 적비성을 제외한 후보들의 얼굴로 긴장이 흘렀다. 방다병은 그 나무통을 유독 오래 쳐다보는 후보들을 재빨리 기억해 두었다.
"가치관이란 평소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이니, 그리 오래 시간을 드릴 필요는 없으리라 봅니다. 내일 같은 시간까지, 첫 번째 과제와 동일한 절차를 거쳐 제출해주시면...."
이연화의 말이 흐려졌다. 찻잔을 내려놓고, 남자는 잠시 고개를 돌려 입을 가린 채 기침을 했다. 어깨가 몇 차례 들썩였다. 왜 또 연기하는 거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방다병은 순간 숨을 삼켰다. 입을 가렸던 소맷자락으로 아주 약한 핏기가 비치고 있었다.
"이연화!"
방다병이 놀라 외치며 그 옆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머릿속이 희게 변하면서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 감각이 최고조로 곤두섰다. 과거에 참 많이도 보았던 광경이지만 죽어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휘둥그레진 눈이 바로 찻잔을 향했다. 방다병이 독이라고 외치기 전, 이연화가 강한 시선을 보내며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잠자코 있으라는 지시였다. 방다병이 멈칫하는 사이, 후보들 중 하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일어났다.
"문주, 괜찮으십니까? 제가 잠시 보아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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