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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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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못 및 날조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대만은 외동아들이었다. 아버지의 형제들이 모두 아이를 늦게 가진 바람에 몇 년간 정씨 집안의 하나 밖에 없는 금지옥엽 손주로 자라기까지 했다. 조부모를 비롯한 가족 친지들 모두 하나 뿐인 손주이자, '아들'인 대만을 사랑하고 아꼈다.

부모의 장점만을 쏙 빼닮아 잘생긴 외모도 사랑받는데 한몫했다. 조그만 게 영특하기까지 해, 자신을 사랑해 주는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구니 둘째 손주가 태어난 다음에도 대만은 여전히 어여쁘고 귀하게 자랐다. 어릴 때는 공부도 곧잘 했었다. 가지고 싶은 건 모두 가질 수 있었고, 모두가 대만의 기분을 맞춰주니 인상 한 번 쓸 일 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자기중심적으로 자랐다. 저를 예뻐해 주고 아껴줄 만한 사람에게는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비슷한 입장의 사람에게는 다소 이기적으로 굴었다. 크게 주는 것 없어도 호감을 살 만한 외모와 대부분에게 살가웠던 성격 탓에 미움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취미로 시작했던 농구에 진심이 되면서 학업 성적은 점점 떨어졌지만, 누구도 그의 탓을 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거나, 운동을 그만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새 농구화가 필요하지 않냐, 농구공을 사주랴 물어왔다. 운동복은 브랜드 별로, 색깔 별로 항상 옷장을 가득 채웠다.

한 없이 순탄하게, 주인공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무릎 부상으로 인한 절망이 대만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나름대로 바르고 올곧게 살아온 인생이 난생처음 탈선했다.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와 갈등이 생겼다. 아버지는 일이 워낙 바빠 육아는 모두 어머니에게 맡겨 두었으므로, 그의 탈선마저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그때 대만은 살며 처음으로 친척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청소년에게는 긴 좌절과 후회의 시간을 거쳐, 약간의 자기연민을 곁들여 대만은 비로소 전보다 겸손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건방져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일생을 겸손하게 살았던 한 남자가 보였다. 사실은 하나도 건방지지 않고, 약한 내면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이 태섭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남자들끼리 치고받는 거야 일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그에게 행했던 행위들은 유독 대만에게 부채감을 안겨주었다. 작정하고 못된 행동만 골라 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태섭에게 신경 쓰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제 실수를 일상처럼 넘겨주고, 흔히 있는 실수처럼 지나쳐 주어서.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도 대만은 방황의 시간을 내내 돌이키고 후회했다. 진로로 고민하고, 진학할 대학이 결정된 다음도 마찬가지였다. 후회의 시간을 둘러보면 한 구석에는 송태섭이 있었다. 겸손하고 약한 내면을 가진 그 애는, 또 언제나 저보다 훨씬 강했다. 훨씬 더 배포가 큰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가고 나서도 틈만 나면 북산고를 찾았고 태섭에게도 제법 자주 연락했다. 농구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있었지만, 농담 따먹기도 자주 했다. 선배는 여자 친구 없어요? 대학 가면 다들 미팅하고 그런다던데. 언젠가 그런 말에는 괜히 짜증을 낸 적도 있다. 없다, 왜! 미팅 같은 거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농구를 열심히 할 때야. 그런 쓸데없는 핑계를 덧붙여가면서.

너는 요즘 이한나랑 어떠냐? 물어보면 태섭은 이리저리 말을 돌렸다. 쑥스러워서 그래? 하고 물어보면 그런 거 아니에요. 퉁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3학년 중순쯤 태섭은 아무렇지 않게 소식을 전했다. 한나한테 차였어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날은 괜히 기분이 좋아 연습경기에서 대만은 혼자 무려 40점이 넘는 득점을 했다.

태섭의 미국 유학이 결정됐을 때, 대만은 누구보다 태섭을 축하해주었다. 그게 진심이었으니까. 그런데 애써 공항까지 배웅을 다녀오고 집에 돌아와서는 눈물을 쏟았다.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덮쳐왔다. 공항에서 다양한 송태섭의 얼굴을 떠올리며 울고 난 다음에 깨달았다. 시발, 나 송태섭 좋아하잖아. 꽤 케케묵은 감정을 그제야 정의했다.

비자로 태섭이 잠시 귀국했을 때, 대만은 태섭에게 제 마음을 고백했다. 얼빠진 송태섭이 네?? 저를요?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물었다. 어, 그래. 너, 너! 송태섭 너 인마. 며칠 후 다시 출국한 태섭은 대만에게 끝내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한 번도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적 없는 남자의 불꽃이 일었다.

매주 태섭에게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뭘 써야 하지 펜만 물고 있다가, 중학교 때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고백을 받은 여자애와 교환 일기를 썼었던 기억이 있다. 몇 번인가 주고받기는 했는데, 농구부 연습으로 대만에게서 번번이 일기가 돌아오지 않자 결국 차였었다. 그때 그 애가 일기에 뭘 썼었더라. 아주 평범한 일상들이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널 좋아해. 닭살돋는 스티커와 함께 세상에서 제일 좋다든가, 그런 말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대만은 일단 서툴지라도 제 일상을 적어나갔다. 한 장을 빼곡하게 채운 다음 마지막에는 널 좋아한다는 말을 꾹꾹 눌러썼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귀국 전 한참을 졸라 태섭에게 받은 기숙사 번호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처음에는 꼬부랑거리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그냥 끊기 일쑤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등이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

영어영문과에 다니는 애를 수소문해 인사말과 전화를 바꿔 달라는 말을 영어로 적어달라고 하고, 그걸 다시 한국어 발음대로 적어 반복해서 외웠다. 더듬더듬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대만은 드디어 태섭과 통화 연결이 됐다. 기숙사 전화로는 길어야 10분 정도밖에는 통화하지 못했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나면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몇 번인가 좋아한다, 사귀자는 말을 조르듯 하긴 했는데 태섭은 한 번도 대답을 들려준 적이 없다. 대부분 이제 들어가야 한다고 전화를 끊거나 못 들은 척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잠깐의 침묵이 있더니 며칠 후 방학하면 한국에 들어가는데 그때 만나요. 라는 말을 했다. 그날 밤, 대만은 밤새 잠을 설쳤다. 하루를 천년처럼 열흘을 보냈다.

그즈음, 태섭에게서 처음으로 편지에 대한 답장이 왔다. 편지에는 입국 일자와 가서 연락하겠다는 말이 간결히 적혀있었다. 대만은 편지에 적힌 태섭이 입국한다는 날짜에 맞춰 공항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오는 비행기 시간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몸이 달아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지난달 아버지에게 받은 차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입국장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오전 11시쯤, 선글라스를 쓴 태섭이 카트를 밀며 나왔다. 대만은 대번에 태섭에게로 향해 카트를 붙들었다.


'..뭐예요? 여긴 어쩐 일이에요?'
'너 온다고 했잖아.'
'몇시인지는 말 안 했잖아요.'
'그냥.. 기다렸지.'
'언제부터요?'
'공항 도착했을 때가 7시였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냥 기다렸다구요?'
'..응.'
'비행기 시간 좀 알아보고 나오지.'
'그런 거 할 줄 몰라.'
'아니, 그 많은 친구는 다 어디에다 두고. 그런 거 잘하는 친구가 한 명은 있을 텐데.'
'..만났으니까 됐잖아.'
'내가 밤에 왔으면 어쩔뻔 했어요.'
'상관없어. 밤이든 새벽이든 기다렸을 테니까.'


그 말에 태섭은 잠시 얼굴을 붉히고 헛기침했다. 길게 한숨을 내쉰다. 함께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제야 대만의 진심을 깨달았다는 듯, 태섭은 귀국 전 대만에게 사귀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조금은 애매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나도 선배가 좋아요, 같은 간지러운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태섭이 출국하고 나니 불안해졌다. 좋아한다고 한 적이 없으니 사귄다는 말을 무르는 건 쉽지 않을까? 선배가 하도 몰아붙여서 대충 대답한 거라고 하면 어쩌지?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리고 공항에서 내내 손을 잡고 있었고 마지막엔 포옹과 함께 짧게 입도 맞췄는데도. 공항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길, 문득 불안해진 대만은 입술을 잘근댔다.

태섭이 출국하고 약 15시간 후, 처음 태섭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대만은 다짜고짜 우리 진짜 사귀는 거지? 거짓말 아니지? 추궁하듯 닦달하며 이어지는 질문들에 태섭이 볼멘소리를 냈다. 아니, 속고만 살았나. 진짜라니까요. 난 예전부터 선배 좋아했었다구요! 선배야말로 장난이면 가만 안 둬. 예전부터? 너 고3 때까진 이한나 좋아했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디테일한 건 중요하지 않아요. 현재가 중요하다구요. 그래, 이제 와서 닭이 먼저니 달걀이 먼저니 따질 마음은 없었다. 대만은 황송하게 태섭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는 생각보다 순탄했다.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으나, 서로 워낙 바빴기에 국내에 있었어도 만나는 시간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했는지도 모르고. 두 사람 다 제대로 연애라 부를만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서툴고 조심스러웠으니까.

대만이 주말을 이용해 미국으로 태섭을 보러 간 것이 3번, 태섭이 방학으로 귀국한 것이 1번. 스킨십 진도와 횟수가 딱 만난 횟수의 두 배를 넘겼을 때부터 어색하던 관계는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늘 붙어 다니던 고등학생 때처럼 장난을 자주 쳤고, 서로를 타박하기도 했다. 전과 다른 것은 서로를 향한 애정이 무척이나 잘 느껴졌다는 것이다. 가끔은 삐진 척을 하기도 했고, 서로를 위한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유치한 사랑놀음에 닭살 돋아 스스로 욕을 내뱉기도 했다.

사귀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넘었을 때쯤 마음은 더 깊어졌으나, 그에 따른 부속품처럼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만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감추는 태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만을 토로하면 태섭은 그랬다. 선배 걱정할까 봐 그랬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알려주고, 너에게 일어난 일을 말해달라고 하면 태섭은 알았다고 했다. 언제나 대답만 알았다고.

모든 사람이 저처럼 감정을 다 드러내는 것은 아니니, 처음에는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저는 태섭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보여주었는데. 행동을 비교하고,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마음이 나만큼 크지 않은 건지 불안했다. 애정 표현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비교했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너는 왜 못 해줘.

대만은 지금껏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가족들은 가만히 있어도 저를 사랑하고 아껴줬다. 방황하며 불량한 짓을 하기 전까지는, 제법 인기도 있었다. 아니, 불량하던 때에도 저를 따르는 사람은 늘 있었다. 많은 애정과 관심 속에서 자랐다.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은 언제나 저에게 넘치는 애정을 주었다.

그런데 애인이 된 송태섭은 달랐다. 애정은 대만이 조르고 갈구해야 못 이기는척 해주었고,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편지나 통화를 하며 매 순간 매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대만이었고 태섭은 적절한 반응만 할 뿐이었다. 제 이야기는 도통 하지 않아 물어보면 저야 맨날 똑같죠, 가끔 어떤 루틴으로 훈련(연습)했다는 것이 그나마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차라리 고등학교 때, 주장으로써 대만의 컨디션을 묻고 궁금해했을 적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았던 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가 훨씬 더, 주장이 느끼는 고충이나 시시콜콜한 고민 같은 것을 들을 수 있던 때였다. 너는 힘든 거 없어? 컨디션은 괜찮아? 물어보면 약한 소리를 하기보단 다 그렇죠. 선배랑 똑같아요. 전 아픈데 없이 늘 건강해요. 건강 체질이거든요. 그런 대답만 했다.

요즘은 헛구역질 안 해? 긴장하고 스트레스받으면 가끔 하잖아. 말하고 싶은 것을 대만은 꾹 참았다. 태섭이 혼자 꽁꽁 감추어두려 애썼던 치부는, 들추지 않았다. 그것도 나중에 얘기해주겠지. 긴장하면 속이 울렁거려요. 목구멍으로 공기가 역행해요. 요새도 똑같아요. 아니면 요새는 구역질 안 해요. 그런 말을 언젠가는 해줄 거라고 믿었다. 우린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연인이었으니까.

그래도 가끔 저에게만 보여주는 표정과 말투, 행동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만은 태섭의 애정을 더욱더 갈구했다. 생각해 보면 그건 친했던 사이에도 어느 정도는 받을 수 있었던 거니까. 욕심이 생겼고, 불안은 증폭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하얀 거짓말이든, 사소한 표현이라도 해줬으면 했다. 나만 가질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급기야는 송태섭과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서태웅이나 강백호 뿐 아니었다. 특히 백호는 지금 태섭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그 둘은 어쨌거나 송태섭 보다 동생이었고, 저에게도 후배이자 동생 같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정우성은 다르다. 그는 태섭과 나이가 같았고 듣기로는 생각보다 대화가 잘 된다고 했다. 농구에 대한 이야기나 고민도 자주 나눈다고 했다.

나도 그거 해줄 수 있는데.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렇게 시작된 감정은 불안과 섞여 질투가 되었다. 그다지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는데 둘은 꽤 자주 만났다. 태섭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선 그 정도면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만이 생각하기에 정우성은 송태섭에게, 무엇이든 감정이 있어 보였다.

전통의 농구 명문 고등학교를 나온 슈퍼에이스는 두 사람의 화제에 꽤 자주 올랐다.


'근데 걔는 왜 그렇게 널 보러 자주 가?'
'한국말이 그리우니까요.'
'넌 안 가잖아.'
'나는 이런 성격이고, 걔는 그런 성격이니까.'


그런 성격? 걔가 어떤 성격인데? 네가 왜 걔의 성격을 알아? 지금 두둔하는 거야?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괜한 소리나 했다. 태섭이 미국에 간 후로 한 147번쯤 했었던.


'나도 미국 유학 가고 싶다.'
'음.'
'왜? 내가 가면 싫어?'


맨송맨송한 반응에 괜히 심술이 올라온다.


'선배 오늘 유독 말꼬리 잡는 느낌인데요?'
'말꼬리라니.'
'..그럼 됐어요. 넘어가요.'
'어딜 넘어가?'
'왜 그래요? 기분 나쁜 일 있었어요?'


제 서운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하는 태섭이 야속했다.


'예전에는 내가 미국 유학 가고 싶다고 하면 빨리 오라고 그랬잖아, 너.'
'그거야..'
'마음이 전 같지 않아? 애정이 식었어?'


그래서 자꾸만 유치하게 굴었다. 그냥 정우성 같은 애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형밖에 없어요. 형이 최고예요, 사랑해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성격이라는 것은 알지만, 비슷한 말 한마디면 대만은 충분했다. 연애는 유치한 거잖아. 나를 눈치채줘, 달래줘. 저도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으면서.


'아, 뭐래요. 왜 사사건건 그렇게 엮어요?'
'그럼 어떻게 엮어? 달리 뭐라고 엮어야 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작게 한숨 소리가 들렸다. 대만은 그것마저 지적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나랑 대화하면서 한숨이 나와?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꼭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되잖아요. 선배가 미국으로 유학 오면 나는 당연히 좋지만, 나 때문에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태섭은 레파토리대로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름대로 체득한 일종의 듣기 좋은 말이었다. 나는 당연히 좋지만, 나 때문에 무리는 하지 말라는. 대만은 이제 그런 말도 짜증 나고 싫었다.


'그럼 나도 서태웅이처럼 농구 유학이나 알아볼까. 아니면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이라도.'
'..좋아요.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대만은 그냥 태섭이 제 말에는 무조건 좋다고 해줬으면 했다. 부정적인 건 듣고 싶지 않았다. 마치 저에게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서. 억지를 부리는 걸 알기에, 무조건 좋다고만 해줘. 라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대만은 태섭의 애정만을 갈구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질투했다. 특히 한 사람에게,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졌다.










(혹시나해서) 삼각관계 없음
봐줘서 고마워!


슬램덩크
대만태섭 미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