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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6 21:19
태섭이는 원래 고향인 바다 쪽 땅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대만이가 추격해올까봐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음. 늑대 새끼를 배서 그런지 제 몸집의 반만큼 부풀어오른 배가 땅에 질질 끌리고 벌써부터 숨이 차서 헉헉거렸지만 태섭인 묵묵히 숲을 걸었음. 대만이 무리의 영역인 숲을 벗어나자 큰 강이 나타났음. 백년은 산 나무 세 그루를 길게 늘어놓은 길이 만큼 큰 폭을 가진 강은 숲을 품은 협곡의 젖줄이었음. 폭이 긴 강임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이는 물살을 보던 태섭이 침을 꼴깍 삼켰음. 짠 맛이 나는 물에 잠겨버린 가족들이 생각난 탓이었음. 태섭은 발치까지 물살이 튀어 축축하게 젖은 발을 털며 고민했음. 강을 따라 내려가볼까 했지만 그러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음. 돌아가느냐, 건너느냐. 둘 중 하나. 등 뒤의 숲을 흘긋 쳐다본 태섭은 곧 결정을 내렸음. 세찬 물살이 튀는 강가에 풍덩 하고 무언가 빠지는 소리가 났음. 그리고 강가는 여느 때처럼 조용해졌음.

세차게 흐르는 강물 위로 동그란 머리통이 솟아올랐음. 태섭이는 허겁지겁 숨을 들이마시며 뭍을 향해 발을 뻗었음. 몇 번의 헛발짓 끝에 태섭이는 물 위로 상체를 드러내는데 성공했음. 태섭이는 숨과 함께 들이마신 물들을 켁켁 뱉어내며 땅으로 올라왔음. 강을 건너면서 죽을 고비를 세 번 정도 넘긴 것 같은데 용케도 살아 올라왔음. 태섭이는 혹시 몰라 아랫배를 쓰다듬었지만 다행히 태동이 있었음. 가쁜 숨을 고른 태섭이는 떠나온 숲을 돌아보지 않고 강 건너 숲을 향해 발을 내딛었음. 미련을 가지고 싶지도 않았고 가져서도 안돼, 태섭이는 축축 쳐지는 몸을 이를 악물고 끌어 걸었음.
태섭이는 오늘 하루 만에 숲을 지나고 싶었지만 몸이 여의치않았음. 강을 건넌 것만으로도 이미 모든 체력을 소진해버린 태섭이는 결국 해가 지자마자 은신처를 찾아 헤맸음. 다행히 드러난 나무 뿌리와 땅 사이의 공간을 발견했음. 태섭이는 비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몸을 뉘였음. 뭐라도 먹어야했지만 지금은 손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음. 태섭이 파르르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눕자 뱃 속의 아이가 둥글게 움직이는게 느꺼젔음. 너도 피곤하니? 태섭이 슬슬 배를 쓰다듬자 새끼가 응답하듯 태섭이의 뱃가죽 위로 보일 정도로 발길질을 해댔음. 누구 닮았는지 성격하고는. 투덜거리던 태섭이는 저도 모르게 대만이를 떠올렸음. 굴에 있을 적에는 배에서 새끼가 발길질을 하면 대만이 코로 태섭의 배를 꾹 누르곤 했음. 그러면 신기하게도 거센 태동이 멈췄음. 아직 뱃속에 있으면서도 누가 이 무리의 알파인지 안다는듯한 행동에 태섭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 대만이는 그런 태섭이가 귀엽다는듯 킬킬 웃곤 했음. 멍하니 옛 기억에 잠겨 있던 태섭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았음. 송태섭은 정대만의 반려가 아니니까. 그건 곧 태섭과 태섭이 낳을 새끼가 가질 위치가 살얼음보다 약하단 소리였음. 태섭은 자신이 씨받이 코요테이기 때문에 무리 내에서 받아야 했던 멸시와 처우를 잊지 못했음. 제 자식마저 그런 꼴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허파가 뒤집히는 기분이었음. 대만이가 제 자식이라고 나선다면 저보단 처지가 낫겠지. 하지만 대만은 곧 무리에 복귀할거고 알파 자리를 찾은 대만을 향해 수많은 늑대들이 짝이 되고자 할 것이었음. 그 때 본 그 늑대처럼.
아마 정식으로 반려를 맞이한다 해도 대만인 자신과 새끼를 책임지려 할 것임. 하지만 정식으로 반려를 맞이하고 그 사이에서 새끼를 본다면 자신과 제 새끼는 점점 그저 귀찮은 의무로 전락할 게 뻔했음. 원한 적 없는 아이였지만 그렇다고 죽이려들거나 오리알보다 못한 신세가 되길 바라진 않았음.
그리고 대만이와의 아이니까. 태섭이는 아주 오래전 자신이 첫 사냥의 때를 떠올렸음. 보통 첫 사냥은 아버지나 손위형제와 함께 하는게 보편적이었지만 태섭이는 첫 사냥을 나서기도 전에 두 가족을 잃어버렸음. 여동생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카오루상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워 태섭이는 무작정 숲을 헤매기 시작했음. 기력이 없어진 카오루상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 태섭이의 첫 사냥의 시작이었음. 하지만 가르침도 없이 나선 첫 사냥이 잘 될리가 없었음. 태섭이는 계속 사냥에 실패했고 점점 깊숙한 숲으로 들어가고 말았음. 몇 번의 실패 끝에 태섭이는 작은 다람쥐 한 마리를 잡는데 성공했음. 의기양양해진 태섭이 멧새를 물고 돌아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쿵쿵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났음. 태섭이 체급으로는 어림도 없는, 엄니가 두툼한 맷돼지였음. 태섭이는 잔뜩 쫄아 있으면서도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멧돼지와 대치했음. 그냥 지나가길 바랬지만 낯선 코요테가 숲을 헤집은게 마음에 들지 않은지 멧돼지는 태섭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음. 태섭이는 벌벌 떠는 몸을 곤두세우며 멧돼지의 급소를 노려 달려들 준비를 했음. 태섭이 뒷다리에 힘을 주며 뛰어오르기 직전, 어디선가 어린 늑대 하나가 나타나 멧돼지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었음. 이 숲을 군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체급의 멧돼지는 그 어린 늑대의 기습에 비명횡사하고 말았음. 태섭이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쓰러진 멧돼지와 늑대를 보았음. 또다른 포식자가 나타났으니 당장 도망가야했지만 태섭이는 방금의 광경에 압도되어 멍하니 보기만 할 뿐이었음. 태섭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확실히 멧돼지의 숨통을 끊으려 머리를 흔들어대던 늑대가 고개를 들었음.
"못 보던 녀석이네?"
피칠갑을 한 포식자가 하는 말인데도 태섭이는 이상하게 겁이 나지않았음.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섭이의 모습에 어린 늑대가 입가의 피를 훔치며 태섭이에게 다가왔음.
"혹시 내가 네 사냥감 뺏은거야?"
태섭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음. 태섭이의 체구를 확인한 늑대가 고개를 갸웃거렀음.
"아직 사냥하기엔 너무 이르지않아?"
코요테가 늑대보다 작긴 하지만 그런 코요테 중에서도 체구가 좀 더 작은 태섭이었기에 태섭이의 입이 불룩 튀어나왔음.
"안 작은데."
태섭이의 부루퉁한 어투를 눈치챘는지 못했는지 어린 늑대는 태섭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태섭이가 잡은 다람쥐를 발견했음.
"성공한거야? 실력이 대단한데?"
첫 사냥을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건 처음이라 귀가 홧홧해질 정도로 부끄러워하던 태섭이의 모습에 어린 늑대가 다른 좋은 사냥감이 있다며 숲을 안내해줬음. 태섭이는 그 어린 늑대에게 사냥을 배우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며 하루를 보냈음. 해가 지고 서로 헤어지고 나서야 태섭이는 만약 형이 있었다면 이랬겠지 라는 생각에 씁쓸해했음. 그 날 이후로 다시 그 자리에 가봤지만 다시 어린 늑대를 그 숲에서 볼 순 없었음. 다른 영역인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래도 무리가 영역을 옮긴 것 같다고 했음. 그렇게 신기루같던 하루를 몇 백번 되새기던 태섭이가 다시 그 어린 늑대를 본 건 어두컴컴한 굴 속이었음.
태섭이는 완전히 대만이를 미워하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했음. 태섭이는 씨받이였고 대만이는 씨내리인 관계, 온전히 미움만 있어야 할 관계였지만 태섭이는 어린 시절처럼 제 마음을 쥐어주고 말았음. 그래도 변해버린 모습에 미움이 있긴 했지만 점차 알던 모습으로 돌아가니 그 미움도 옅어져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음. 온전히 사랑만 남아버렸는데, 그렇기에 태섭이는 더 대만이 곁에 남을 수 없었음. 대만이가 다른 늑대 반려를 맞이하고 새끼를 보고...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자신이 없었음.
그러니 이게 최선이야. 태섭의 우울함을 느꼈는지 태동이 점차 잦아들었음. 태섭이 미안한 마음에 배를 살살 문지르며 눈을 감았음.
피곤함에 찌들어 잠을 자긴 했지만 낯선 공간에 홀몸도 아니다 보니 태섭이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음. 피곤해서 팔다리가 무겁고 아랫배는 살짝 뭉치기까지 한 것 같았음. 하지만 태섭이는 대충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섰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질 때까지 태섭이는 걷고 또 걸었음. 대만이네 숲을 벗어나 강을 건너고 또 다른 숲 두 개를 지나자 만신창이가 된 태섭의 앞에 나타난 건 거대한 산이었음. 산을 보자 양가감정이 들었음. 이쯤되면 쫓아오는 걸 포기하지않았을까와 이 산을 넘으면 확실히 떨어질 수 있겠다 였음. 태섭이는 개울물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음. 어쩌면 그 무리에선 제가 사라진 걸 기뻐할지도 몰랐음. 대만이는 확실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고 무리는 알파 자리까지 돌려줄 의향이 있었음. 한평생 짝 하나만 보고 사는 늑대들이니 멀쩡한 짝을 맺을 수 있는 늑대에게 씨받이와 그 새끼가 딸린 걸 탐탁치않게 여길게 뻔했음. 그러니 굳이 저를 추격할 필요성은 없었음. 코요테와 그 사이에서 난 새끼보다 늑대 짝에게서 본 새끼가 더 무리가 원하는 것일테니. 대만이도 그렇지 않을까. 알파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데 저같은 씨받이 귀찮기만 하고... 태섭이는 다정했던 대만이의 모습을 애써 머리 속에서 지웠음. 도저히 자신과 대만이 같은 마음일거란 생각이 들지않았음. 태섭이 음울한 눈으로 산을 올려다보았음. 제 마음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라도 이 산을 넘어야 할 것 같았음. 제 마음은 전부 여기에 두고 가는거다. 태섭은 그렇게 되뇌이며 산을 올랐음.
태섭이는 나흘을 꼬박 걸어 산을 넘었음. 다행히 포식자는 없었지만 몸이 한계에 도달한 탓이었음. 태섭이는 무거운 몸을 끌고 간신히 산을 넘었음. 산을 내려갈 때쯤에는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되었음. 다행히 산 너머에는 숲이 있었음. 태섭이는 곧바로 숲에 들어가 은신처를 찾았음. 다른 무리나 포식자가 있는지 살피는게 먼저였지만 지금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힘들었음. 태섭이는 빈 굴 하나를 찾아냈고 이틀을 내리 잠들었음. 눈을 떴을 땐 다행히 살아있었음. 태섭이는 허기진 배가 걱정이 되어 바로 사냥에 나섰음. 몸이 무거워 사냥엔 번번히 실패했지만 산을 넘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다지 화가 나거나 슬프진않았음. 태섭이는 작은 숲쥐굴을 찾아내어 사냥에 성공했음. 통통한 쥐 서너마리를 먹고나니 허기가 좀 가셔 드디어 숲을 둘러볼 힘이 생겼음. 태섭이는 조심스레 숲을 탐색했음. 반나절을 탐색한 태섭이는 이렇다 할 큰 포식자를 만나지 않았음. 하지만 숲은 넓고 태섭이는 발이 느려져 확신할 수는 없었음. 일단 몸을 풀 때까지는 그 굴에서 지내야겠다고 생각하던 태섭은 낯선 발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음. 체급이 꽤 나가는 발소리에 태섭이 경계 태세로 바꾸며 소리의 주인을 찾아 눈을 바삐 움직였음. 얼마 안 가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음. 태섭이와 비슷한 체구의 코요테였음. 태섭이는 날을 세우며 낯선 코요테를 경계했음. 숲에서 나타난 코요테는 태섭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며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음. 하지만 얼마 안 가 코요테의 분위기가 누그러졌음. 귀가 살포시 올라오고 꼬리가 살랑거리기 시작했지만 새끼를 품느라 예민함이 짙어져있던 테섭이의 눈에는 그게 잘 보이지 않았음. 하지만 달라진 분위기는 눈치챈 태섭이가 일단 후퇴를 선택했음. 코요테에게서 눈을 떼지않은 채 뒷걸음질을 치던 태섭은 자신의 굴로 뛰어갔음. 다행히 코요테는 쫓아오지않았음. 굴로 돌아온 태섭은 지친 몸을 바닥에 털썩 뉘였음. 다시 떠나야 하나. 이제 떠나기도 힘든데. 심란한 마음으로 밤을 보낸 태섭이는 아침이 밝자마자 다시 숲을 조심스레 살폈음. 굴 근처만 그 코요테의 영역이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았음. 하지만 태섭의 바람과 다르게 그 코요테는 어제 본 곳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마주쳤음. 태섭이 절망감을 애써 감추며 코요테를 경계했음. 하지만 코요테는 어제보다 훨씬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며 태섭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음. 태섭이는 그런 코요테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몸을 깊숙히 파고든 피곤함에 공격하지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경계를 낮췄음. 태섭이 슬쩍 움직이자 코요테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붙었고 태섭이 이를 드러내자 귀가 축 쳐지면서도 굳이 따라붙진않았음. 그런 태도에 태섭은 점점 안심했음.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자 태섭이는 그 코요테가 왜 그러는지 눈치를 챘음. 이건 일종의 구애였음. 저만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든가 또래 코요테인 자신을 적극적으로 쫓아내지 않는다든가 제 배를 불만스럽게 노려본다든가...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음. 태섭인 그런 코요테가 부담스러웠음. 하지만 태섭이 제 마음을 눈치챈듯하자 코요테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왔음. 태섭에게 배를 보여주기도 하고 괜찮은 사냥감을 물어오기도 했음. 태섭이는 그럴수록 코요테를 피하고 싶었지만 행여나 구애를 거절했다고 싸움을 걸어오거나 제 새끼를 공격할까 싶어 태섭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유지했음. 구애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밀어내는 것도 아닌 상태를 유지하며 태섭은 아슬아슬하게 뱃속의 새끼를 지켜냈음.
그러나 그런 태섭의 태도는 코요테를 자극할 뿐이었음. 태섭이 태도를 확실하게 하지않자 코요테는 태섭이 제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새끼를 밴 상태라서 제 구애에 응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코요테는 점점 태섭의 부푼 배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음. 코요테는 태섭의 배를 깨물려고 이를 드러내기도 하고 으르렁거리기도 하며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음. 태섭은 그럴 때마다 코요테를 내쫓았지만 내심 겁에 질려있었음. 이러다 저 코요테가 내 새끼를 죽이려 들면 어떡하지? 하지만 몸이 너무 무거워진 상태라 이제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었음. 또 숲을 떠났다가 저 코요테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도 몰랐고. 태섭은 살얼음판을 딛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음.
결국 얼마 안 가 코요테가 선을 넘고 말았음.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던 코요테는 이를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태섭의 배를 깨물었음. 놀란 태섭이 코요테의 머리를 후려치고 으르렁거렸음. 사납게 짖는 태섭의 모습에 코요테는 좀 놀란듯 했음. 코요테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태섭과 태섭의 배를 번갈아보다 자리를 떴음. 태섭인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음. 이대로 가다간 새끼를 낳자마자 저 코요테에게 물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음. 태섭이는 새끼를 낳자마자 이 숲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은신처에 틀어박혔음.
태섭이의 불안을 새끼도 느낀건지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수가 터졌음. 태섭이는 차라리 잘 됐다는 심정으로 배를 핥으며 학학거렸음. 하지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계속 신경을 써서 그런지 산통만 이어질 뿐 새끼가 나오질 않았음. 태섭인 땀에 푹 절어 끙끙 앓느라 제정신이 아니었음. 하지만 자신은 혼자였고 이 아픔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상황이었음. 입을 열면 앓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아 태섭인 입술을 깨물어 참았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을 만큼 버거운 고통이라 태섭이의 잇새로 가쁜 숨소리와 함께 구슬픈 소리가 흘러나왔음. 이렇게 아플 때면 바닷가의 가족들이 그립곤 했음. 대만이의 굴에 끌려 들어갔을 때도 종종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그리운 건 다름아닌 대만이었음. 영영 보지않겠다 떠나온게 누구인데 이제와 보고파 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고 염치없었지만 태섭인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대만이가 필요했음. 하지만 태섭이가 선택한 곳은 대만이가 있던 숲을 지나 강을 건너고 숲 세개에 산을 넘어야 있는 곳이었음. 보고싶다 울어도 그 울음이 닿을 리 없는 거리였음. 태섭이는 대만이가 핥아주던 혀와 부드럽게 매만져주던 손길을 떠올리며 아픔을 참아냈음.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더 고통받은 태섭이는 간신히 새끼 두 마리를 낳는디 성공했음. 양수와 태섭이의 피에 젖어 낑낑 울음을 터뜨리는 새끼들을 보자 태섭이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음. 하지만 태섭이는 부지런하게 새끼들을 닦았고 본능적으로 젖을 물려주었음. 새끼들은 뱃속에서 잘 먹지 못한 것 때문인지 허겁지겁 젖을 마셔댔음. 배부른 새끼들이 첫 잠에 들고나서야 태섭이도 기절하듯 수마에 잠길 수 있었음. 하지만 태섭이는 얼마 안 가 다시 눈을 떴음. 은신처 밖에서 들리는 수상쩍은 발소리가 태섭의 예민한 귀를 깨운 것이었음. 태섭인 천근만근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새끼들을 은신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은신처 밖으로 나갔음. 아니나다를까 그 코요테가 태섭이 은신처 주위를 맴돌고 있었음. 방금 막 새끼를 낳아 예민함이 하늘을 찌를듯 날카로워진 태섭이는 코요테를 보자마자 으르렁거렸음. 그러자 코요테는 상처 받은듯 끙끙거리며 태섭이 주위를 맴돌았음. 하지만 태섭이는 코요테가 새끼들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불안해했음. 그 때야 재 배에 있었으니 그나마 나았지 배 밖으로 나온 시점에서 저 코요테가 제 새끼들을 물어죽인데도 하등 이상할게 없었음. 결국 불안해하던 태섭이는 도통 자리를 뜨지 않는 코요테를 향해 달려들었음. 코요테는 처음에는 깽 하고 놀랐다가 곧 이를 드러내며 태섭이에게 맞서 싸웠음. 마침 뱃속도 비었겠다 이제 제 차례다 싶은 욕심이 드러난 것이었음. 태섭이의 몸은 이전보다 가벼워지긴 했지만 출산으로 인해 몸이 많이 축나 건장한 코요테를 제압하기엔 역부족이었음. 몇 번 피가 흩뿌려지길 반복하던 두 코요테 중 먼저 바닥에 짓눌린 건 태섭이었음. 코요테는 태섭의 목을 짓누르며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흔들었음. 태섭이는 잡힌 주제에 기도 죽지 않고 연신 이를 드러내며 몸을 움찔거렸음. 포기하지 않고 반항하는 태섭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코요테가 태섭의 어깨를 물었음. 태섭이 비명을 지르자 그제야 만족했는지 어깨를 타고 등이며 허리를 와그작 물어대기 시작했음. 기어이 태섭의 아랫도리를 파고드는 축축한 주둥이에 태섭이 사납게 짖으며 코요테를 떨쳐내려 몸을 비틀었음. 하지만 코요테는 가소롭다는듯 컹컹 웃어댔음.
그 때 어디선가 늑대의 하울링 소리가 들렸음. 낯선 하울링에 코요테가 고개를 치켜들었음. 하지만 태섭이는 저 하울링 소리를 알고 있었음. 태섭이는 마지막 힘을 짜내 하울링을 시작했음. 갑자기 태섭이가 공명하듯 하울링을 하자 코요테가 당황했음. 저 울음은 분명 늑대인데. 어리둥절해하던 코요테는 태섭이 무언가 착각했다고 여기며 다시 태섭을 탐하기 시작했음. 태섭이는 반항하며 끊임없이 하울링을 했음. 코요테는 오랜시간 기다려온 태섭의 몸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었음. 그래서 제게 다가오는 사나운 발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음.
코요테가 흉측하게 부푼 제 아랫도리를 태섭의 아래 근처에 꾹꾹 눌러댔음. 그 감각에 소름끼치게 싫어 태섭이 악을 쓰며 반항해댔음. 태섭이 코요테의 얼굴을 할퀴자 코요테의 인내심이 다 닳았는지 날카로운 이빨이 태섭이 목덜미를 파고 들었음. 태섭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숲 한 켠에 울려퍼졌음. 태섭이 고통스러워하자 입을 다시며 코요테가 자리를 잡았음. 그러나 코요테가 그토록 바라던 짝짓기는 이루어지지 못했음.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나 산을 건너온 늑대가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었음.






대만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