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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5 01:19
보고싶다..

명헌이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지도자 코스 밟으면서 기왕 공부하는 김에 미국 건너가 대학원 다니는데, 그냥 거리상 같이 살만한 위치라고 갑자기 동거하는 우성명헌.
실상은 정우성도 자기 집에서 차로 구단까지 한 시간이고 이명헌도 얹혀사는 그 집에서 대학까지 가려면 한 시간 반 차로 가야 하는데, 심지어 방향도 반대인데.
알아서 가겠다고 해도 시간이 허용하는 한 자꾸만 이명헌 대학까지 태워다주고 반대방향인 구단까지 두 시간 반 장거리 운전하는 정우성....근데 둘이 안 사귐. 그냥 평범한 룸메이트 겸 선후배임.

그런 거 보고 싶어. 원정 경기 있거나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에서 밤 새우는 때 아니고선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저녁 먹는 두 사람.
호화찬란한 맨션의 삐까뻔쩍 저녁 테이블 위에 겨우 배달 중국 음식 상자 서너개 올려놓고, 쪼끔 불어서 소스가 뻑뻑해진 누들 젓가락으로 돌돌 말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파트너 얘기하는 거.

-내일은 자고 올거지?

이명헌 당연하다는 듯 묻는데 정우성 고개 갸웃함. 내일?

-어디서? 왜요? 나 내일 뭐 있어요?
-진심이야?

이명헌 질렸다는 듯 고개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핸드폰 일정관리 어플 열어 혹시나 자기가 뭐 착각했나 다시 확인하는데, 하지만 이명헌은 그런 실수를 안 해.

-맞잖아, 내일. 제시 생일.
-아, 어. 헐? 그래요? 와오. 오. 이상하다, 걔도 아무 말 없었는데.

몰랐는데...머리 긁적이던 정우성 금방 베시시 웃으면서 귀엽게도 하는 말.

-형은 근데 그런 걸 어떻게 다 외워요?
-보통은 여자친구 생일 정돈 외우고 살지, 우성아.
-그런가? 난 그런 거 잘 못 외우겠던데...

그러면서 미간 찌푸리는 걔가 이명헌이랑 동거 시작한 후 첫 생일날 자정 지나자마자 달려와 건네준 생일 선물, 손목에 차고 있는 묵직한 명품 시계 문득 내려다보다 갑자기 한숨 터지는 이명헌.

-좀 외워, 쉽지 않더라도 의식해서 외우면 되잖아. 그 정돈 해야 관계가 이어져.
-으, 모르겠어요...귀찮고...어려운데. 근데요, 그럼 역으로 이 정도도 못하겠는 관계는, 끊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니까요. 한숨 푹 내쉰 정우성 입술 삐죽거리면서 하는 소리가 가관임.

-여태까지 내가 사귄 모든 여자애들, 사실 난 한번도 사랑한 적 없을지도 몰라.
-...참 자랑이다.

쥐어짜낸 이명헌 목소리 약간 긁혀서 쇳소리 나는데 정우성 그거 좋다고 마냥 헤실헤실 웃고 앉았음.
이러는 사이에도 면은 계속 불기만 하는데,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닌데.

-아무튼 제대로 챙겨. 지금 헤어질 건 아니잖아. 내일은 안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있을게.
-상황봐서요. 적당히 할게요.

저녁은 형이랑 같이 집에서 먹고 싶단 말예요오, 하고 말꼬리를 길게 늘려가며 웃는 정우성 앞에 두고 잠깐 눈 감았다 뜨는 이명헌.

-나도 내일 외박할거야, 제이미네 집에서.

하는 말에 갑자기 귀엽게 애교 잔뜩 실린 눈웃음 짓고 있던 얼굴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