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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2 22:39
정대만 처음 편의점에서 양호열 마주쳤을 때 답지않게 부끄러워 했을거 같음. 그야 어찌보면 당연함 콘돔을 사러 왔는데 고등학교 후배를 마주친 거니까. 얼굴 새빨개져선 말도 더듬거리며 야, 양, 양호열아. 이거 누구한테 말하면 안된다. 그, 니, 니가 보긴 했지만, 미, 믿는다? 하는 정대만이 기가 차는 양호열이었음.

'...콘돔 사러온 주제에 말이 많네.'

정도로 생각했던거 같음 그때는. 대만군 그렇게 안 봤는데 여자 후리고 다니는데 일가견이 있나보네. 정도로도 생각했던거 같음. 하긴 그 반반한 얼굴에 여자가 안 꼬이는게 이상하지.

정대만의 성적인 모습이라니...이상한건 자신의 기분이었음.
나는 정대만의 성적인 모습을 상상해본적이 있던가?
아까처럼 그 새빨개진 얼굴로 엎드려서 울어대는...


그날 양호열은 담배 네 개피를 연달아 피우고 집에 들어감.


그리고 자신의 지레짐작이 틀렸음을 곧 알게되는 양호열이겠지.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에 들어온 대학가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말 속에 섞여 들리는 정대만의 이름. 너 까였냐? 시발 정대만 걔 더럽게 까다롭더라. 한번 먹고 싶은데 아무나 안 받아주나봐. 너도 아무나냐? 병신아 시끄러. 그새끼 요즘 체대놈들이랑 자고 다니는데 난 깜냥 안돼. 


남자랑 잔다고? 

그럼 그때 사갔던 콘돔은...

좀 어지러워서 그자식들 계산을 어떻게 해줬는지도 모르겠음.
머릿속에 자꾸만 떠돌아다니는, 체대생이랑 자는 정대만.

대만군. 콘돔을 직접 샀어요?

왜?

당신이 어디가 부족해서?

콘돔 사오라고 하는 새끼들이랑 자? 


"이거 계산좀 해줘."

이제는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었음. 초박형 콘돔을 계산대에 우르르 쏟으며 머쓱하게 웃는 정대만의 저 얼굴이, 왜 이렇게 꼴받는지 정말 모르겠는 양호열. 그때 정대만에 대해 떠드는 놈들이 다녀간 이후로 양호열이 피웠던 담배는, 아마도...

"나 속 쓰려."

"...뭐?"

"속 쓰리다고. 당신 때문에. 담배 많이 피웠어."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나 이제 대만군한테 콘돔 안 팔아."

"야, 양호열아. 너...너 갑자기 왜 이래? 무섭게."

"그 새끼 앞에서도 말 더듬어요? 무서워서? 아니면 흥분해서?"


벌벌 떠는, 
육식 동물을 두려워하는 초식 동물.
그 새끼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콘돔."

"...무, 뭐?"

"콘돔 써볼 생각 없어요?"




당신 눈 앞에 있는 남자랑.






호열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