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중국연예
- 중화연예
https://hygall.com/576218946
view 8194
2023.12.11 22:16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의원으로 활동할 때처럼 옅은 미소를 띤 채, 이연화는 차를 따라 눈앞의 청년에게 권했다. 마주앉은 남자, 추영인은 과하게 쩔쩔매며 그 잔을 받았다. 찻잔을 드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연화는 그 반응이 자신과 마주앉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차를 정자로 가져다줄 때 석수가 보인 표정 때문인지 의아해하며 상대를 응시했다. 추영인이 마른 입술을 핥고는 다소 두서없이 입을 열었다.
"저...이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먼저 사고문의 인정을 받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문주께는 사고문이 가족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래서...그래서 무작정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음, 확실히 예상 밖의 일이긴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체질이 바뀐 지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이연화가 가볍게 받았다. 딱히 불쾌감을 담지는 않은 말이었지만, 단정한 얼굴의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압니다. 문주께 무례하고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감히 저를 진지하게 받아주실 거라 생각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제 마음을 한번 보이지도 않고 접기에는 너무...너무."
"너무?"
이연화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어미를 받자, 추영인의 낯빛이 점점 벌게졌다. 상서의 사촌이자 조정의 하급 관리라던 청년은, 곧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말했다. 귀를 잔뜩 기울여야 들릴 만큼 조그만 소리였다.
"너무...생각이 나서."
어찌나 긴장했던지, 상대의 몸에서 미처 제어하지 못한 체취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이연화는 내심 눈썹을 까딱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양인일 때 맡던 양인의 냄새와, 음인이 된 후 맡는 양인의 냄새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아직 낯선 느낌을 추스르며, 이연화는 상대를 조금 딱하게 여기는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제가 천기산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끔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명해준 은인에게 마음을 갖곤 하지요.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 공자의 경우도-."
"아, 아니에요.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상황이 그래서가 아니라, 이 문주 때문에-."
"저 때문에요?"
"아뇨, 아, 탓하려는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단지 그때 저희를 보호해 주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있던 다른 무사님들께도 비슷한 마음을 가져야 했겠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이 문주는 좀, 많이 달랐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다른 친구들이요?"
이연화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추영인이 합 소리를 냈다. 청년은 자꾸 실수하는 입을 꼬매버리고 싶은 사람처럼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푹 한숨을 쉬었다. 마지못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예...사실 그곳에 함께 참석했던 제 친우들도, 돌아오면서 문주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사실 저처럼 마음을 가진 이들도 있었는데, 차마 움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호에 이름을 떨친 영웅이시지 않습니까. 비록 문주 자리를 내려놓으셨다 해도 그 업적은 여전하니, 감히 범인이 그 격에 미칠 수는 없지요. 그리고...말씀하셨다시피 음인이 되신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들어, 바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도 했고요."
"하지만 추 공자는 이렇게 오셨군요."
이연화가 담백하게 말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추영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손끝이 소매를 구기듯이 잡았다.
"예...도리에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압니다만,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저는 그리 특출하게 잘난 부분이 없는 사람이에요.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훨씬 대단하신 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 같아...그냥, 그냥 제 이름과 마음이라도 먼저 전하고 싶었습니다."
추영인이 가볍게 더듬거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흐음. 이연화는 말없이 그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방금 추영인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이곳까지 오는 여정길에 적비성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졌다. 그렇다면, 정말 내 체취가 이상하긴 한가 보네. 금원맹주에게만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이 패가 어떻게 적용될지 생각하며, 이연화는 짐짓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훨씬 대단하신 분들이 몰려들다니요. 제가 이런저런 일들을 하긴 했지만, 지금은 강호를 떠난 퇴물에 가까운 데다 나이도 적지 않은 남성체 음인인걸요. 추 공자가 특별히 솔직하고 순수한 분이다 보니 이렇게 마음을 표하러 오신 거겠지요."
"아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주제를 모르고 앞뒤를 가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장담하건대, 문주께서 원하신다면 어떤 양인이든 선택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를 위해 뭐든 바칠 사람들도 많을 테고요."
청년이 열띠게 말했다. 이연화는 그 말을 곰곰이 뜯어보며 팔짱을 끼었다. 추영인이 꺼낸 말의 반절 정도만 사실이라도, 자신이 이곳으로 오면서 품었던 발상을 실행하기에는 충분했다. 오히려 저 말이 전부 사실이면 곤란한데. 과히 귀찮아질지도 모른단 말이야. 생각에 빠진 이연화가 손끝을 가볍게 문지르자, 그 모양새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추영인이 축 가라앉았다. 청년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하지만, 물론 문주께서...음인의 혼사에 관심이 있으셔야겠지요. 아직 그러기 어려우시다는 걸 이해합니다. 오랜 세월을 양인으로 살아오신 분인데, 갑자기 양인이 혼담을 제안했다니 불쾌하셨겠지요. 재차 죄송합니다."
"음? 아니요,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좀 놀랐을 뿐이죠."
이연화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고개를 숙였던 추영인이 퍼뜩 눈을 들었다. 그 얼굴로 일말의 안도감이 번졌다. "감사합니다, 이 문주. 정말 관대하시군요." 청년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한쪽 입가를 살짝 올려 미소한 이연화가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찻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이연화는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그리고...혼사에 아주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네?"
추영인의 눈과 입이 커졌다. 그와 함께, 근처의 수풀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기에 흘려버릴 수도 있었지만, 고수의 청각은 그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그편을 힐끔 보았다가, 이연화는 그만 작은 기침을 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수풀 너머로 익숙한 머리통이 사라지고 있었다. 인기척은 곧 잠잠해졌으나, 이연화는 내심 한숨을 참으며 가볍게 미간을 짚었다. 추영인이 걱정스레 불렀다.
"이 문주?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해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후유증이 있어요. 가끔 한기가 들더군요."
이연화가 다소 허약한 미소를 지은 채 건넸다. 추영인이 허둥지둥 자신의 두루마기를 벗어주려 했다. "그럼, 그럼 이거라도 걸치십시오." 수풀에서 약하게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숨은 자의 심기가 썩 불편한 모양이었다). 이연화가 예의바르게 웃으며 한 손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증상이에요." 추영인이 다소 아쉬운 얼굴로 옷을 도로 입었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휘둥그레져 있었다.
"아까, 아까 혼사에 아주 관심이 없지 않으시다고...."
"아. 물론 제게 일어난 일이 아주 갑작스럽기는 합니다만, 모든 사람에겐 적합한 반려를 원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간에 알려졌다시피, 제 건강과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해 십 년 동안 제대로 바랄 수 없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이제 저를 오래도록 괴롭히던 독이 사라졌으니,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다만 그 대상이 전처럼 음인은 아니게 된 거지요. 한편으로 당혹스러우나, 이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언젠가는 받아들여야겠지요."
이연화가 성실하고도 능청스럽게 줄줄 이야기했다. 마지막 말과 함께 하늘을 아련히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러웠다. 추영인의 눈이 점점 반짝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리에서 튕겨 일어나고픈 사람처럼 양손으로 정자의 탁자를 짚었다.
"그럼, 혹시-."
"아, 죄송합니다. 추 공자의 혼담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공자를 잘 모르고, 제가 바라는 반려의 모습도 아직은 잘 모릅니다. 단지 제가 혼사에 어느 정도 마음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죠. 공자가 좋게 봐준 것은 고마우나, 섣불리 응할 수는 없겠습니다."
이연화가 미안한 미소와 함께 선을 그었다. 추영인은 조금 어두워졌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좌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청년은 희망을 얻은 사람처럼 반갑게 고개를 숙였다.
"그 말씀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냥 제 마음을 솔직히 말씀드린 것인데, 감사받을 일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사실 저 같은 필부를 이렇게 만나주실 줄도 몰랐습니다. 이미 과분한 대접을 해주셨어요. 다음에...다음에 또 만나주신다면 정말 기쁘겠지만, 설령 아니더라도 이건...이건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영인이 떨리는 손을 품에 넣어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서는 연꽃 모양을 한 옥패가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귀한 옥이었다. 이연화가 슬쩍 무안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추 공자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제가 직접 물건을 받으면 분명 말이 돌 겁니다."
"아무에게도 드렸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걸 구했다는 건 가족들도 모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할 테니, 이 문주의 이름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날 구명해주신 데에 대한 감사라고 여겨 주십시오."
추영인이 간절히 말했다. 아니, 수풀 속에서 보는 사람들은 알 텐데. 이연화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물론 말하지는 못했다. 수풀에서 감지되는 적의가 하도 강해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추영인이 자신처럼 무림인이었다면, 이미 칼을 꺼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터였다.
수풀 안의 사정이 어찌 됐든, 청년이 쉽게 물러날 듯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 이연화는 결국 옥패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추영인의 얼굴이 밝아진 것과 동시에, 수풀이 부산스레 부스럭거렸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조금 더 컸기에, 추영인이 고개를 돌리려 했다. 곤란한 상황을 막기 위해, 이연화는 얼른 옥패를 받으며 실수인 척 추영인의 손끝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 자신보다는 방다병에 더 가까운 나이의 청년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보기에 영 편한 광경은 아니었다). 상대의 체취가 순간적으로 강해졌다. 이연화의 눈살이 잠깐 찌푸려졌다가 펴졌다.
"그럼...이 문주, 감사합니다. 오늘 보여주신 친절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 추영인은 조금 미덥잖은 발걸음으로 정자를 떠났다. 어깨너머를 몇 번씩 돌아보는 모습이, 가기가 퍽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연화는 고아한 미소와 함께 서 있다가, 공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불량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너희!" 말썽 부리는 아이들의 뒷덜미를 잡듯이 부르며, 이연화가 수풀을 확 헤쳤다. 그 뒤에는 놀랍지 않게도 방다병과, 조금 놀랍게도 적비성이 있었다. 방다병은 조금 민망해할 정도의 상식이 있었지만, 적비성은 오히려 이연화를 노려보던 참이었다. 이연화가 그들을 삿대질하며 불평했다.
"너희 말이야, 내가 저 청년하고 잠깐 단둘이서 얘기한다고 분명 말했잖아. 남의 말을 엿듣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넌 아직 바뀐 형질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잖아. 너한테 마음이 있다는 놈하고 단둘이 남겼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된 것뿐이야. 네가 익숙해지기 전까진 내가 잘 살피겠다고 어머니랑 약속했단 말이야."
방다병이 시선을 돌리며 뚱하게 투덜거렸다. 이연화가 혀를 차며 손등으로 그 어깨를 탁 때렸다.
"무슨 일이 생기긴 뭘 생겨, 추 공자가 무림에 발가락이라도 담근 사람처럼 보여? 그리고 너, 네 손으로 낫게 한 스승이 서생 하나 감당하지 못할 게 걱정됐다고? 대체 얼마나 신뢰가 없는 거야."
"네가 한 헛소리. 설명해라."
적비성이 딱딱거렸다. 이연화가 뻔뻔하게 돌아보았다.
"내가 무슨 헛소리를 했어?"
"네가 음인으로서의 혼사에 마음이 있다고? 무슨 마음에도 없는 소리냐."
"왜 내가 혼사에 마음이 없다고 그래? 마음이 있어서 방이라도 써 붙일까 생각 중인데."
"하하하, 참 재밌다."
방다병이 전혀 재미있지 않은 얼굴로 비꼬았다. 하지만 이연화는 자신의 말을 정정하지 않은 채 방다병을 빤히 바라보았다. 방다병의 얼굴로 점점 불안감이 번졌다. 청년이 벼락을 경계하는 사람처럼 불렀다.
"이연화?"
"추 공자 말 들었잖아. 어차피 몰려들 거라며? 그럼 최대한 잘 이용하는 게 낫지."
"잘 이용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럼 정말, 너와 혼인할 양인을 모집한다는 방이라도 쓸 참이야?"
방다병이 따지듯 물었다. 이연화가 피식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안될 거 있어?"
"뭐어?"
방다병이 빽 소리를 쳤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의원으로 활동할 때처럼 옅은 미소를 띤 채, 이연화는 차를 따라 눈앞의 청년에게 권했다. 마주앉은 남자, 추영인은 과하게 쩔쩔매며 그 잔을 받았다. 찻잔을 드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연화는 그 반응이 자신과 마주앉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차를 정자로 가져다줄 때 석수가 보인 표정 때문인지 의아해하며 상대를 응시했다. 추영인이 마른 입술을 핥고는 다소 두서없이 입을 열었다.
"저...이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먼저 사고문의 인정을 받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문주께는 사고문이 가족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래서...그래서 무작정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음, 확실히 예상 밖의 일이긴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체질이 바뀐 지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이연화가 가볍게 받았다. 딱히 불쾌감을 담지는 않은 말이었지만, 단정한 얼굴의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압니다. 문주께 무례하고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감히 저를 진지하게 받아주실 거라 생각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제 마음을 한번 보이지도 않고 접기에는 너무...너무."
"너무?"
이연화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어미를 받자, 추영인의 낯빛이 점점 벌게졌다. 상서의 사촌이자 조정의 하급 관리라던 청년은, 곧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말했다. 귀를 잔뜩 기울여야 들릴 만큼 조그만 소리였다.
"너무...생각이 나서."
어찌나 긴장했던지, 상대의 몸에서 미처 제어하지 못한 체취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이연화는 내심 눈썹을 까딱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양인일 때 맡던 양인의 냄새와, 음인이 된 후 맡는 양인의 냄새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아직 낯선 느낌을 추스르며, 이연화는 상대를 조금 딱하게 여기는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제가 천기산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끔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명해준 은인에게 마음을 갖곤 하지요.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 공자의 경우도-."
"아, 아니에요.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상황이 그래서가 아니라, 이 문주 때문에-."
"저 때문에요?"
"아뇨, 아, 탓하려는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단지 그때 저희를 보호해 주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있던 다른 무사님들께도 비슷한 마음을 가져야 했겠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이 문주는 좀, 많이 달랐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다른 친구들이요?"
이연화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추영인이 합 소리를 냈다. 청년은 자꾸 실수하는 입을 꼬매버리고 싶은 사람처럼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푹 한숨을 쉬었다. 마지못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예...사실 그곳에 함께 참석했던 제 친우들도, 돌아오면서 문주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사실 저처럼 마음을 가진 이들도 있었는데, 차마 움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호에 이름을 떨친 영웅이시지 않습니까. 비록 문주 자리를 내려놓으셨다 해도 그 업적은 여전하니, 감히 범인이 그 격에 미칠 수는 없지요. 그리고...말씀하셨다시피 음인이 되신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들어, 바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도 했고요."
"하지만 추 공자는 이렇게 오셨군요."
이연화가 담백하게 말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추영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손끝이 소매를 구기듯이 잡았다.
"예...도리에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압니다만,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저는 그리 특출하게 잘난 부분이 없는 사람이에요.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훨씬 대단하신 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 같아...그냥, 그냥 제 이름과 마음이라도 먼저 전하고 싶었습니다."
추영인이 가볍게 더듬거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흐음. 이연화는 말없이 그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방금 추영인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이곳까지 오는 여정길에 적비성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졌다. 그렇다면, 정말 내 체취가 이상하긴 한가 보네. 금원맹주에게만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이 패가 어떻게 적용될지 생각하며, 이연화는 짐짓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훨씬 대단하신 분들이 몰려들다니요. 제가 이런저런 일들을 하긴 했지만, 지금은 강호를 떠난 퇴물에 가까운 데다 나이도 적지 않은 남성체 음인인걸요. 추 공자가 특별히 솔직하고 순수한 분이다 보니 이렇게 마음을 표하러 오신 거겠지요."
"아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주제를 모르고 앞뒤를 가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장담하건대, 문주께서 원하신다면 어떤 양인이든 선택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를 위해 뭐든 바칠 사람들도 많을 테고요."
청년이 열띠게 말했다. 이연화는 그 말을 곰곰이 뜯어보며 팔짱을 끼었다. 추영인이 꺼낸 말의 반절 정도만 사실이라도, 자신이 이곳으로 오면서 품었던 발상을 실행하기에는 충분했다. 오히려 저 말이 전부 사실이면 곤란한데. 과히 귀찮아질지도 모른단 말이야. 생각에 빠진 이연화가 손끝을 가볍게 문지르자, 그 모양새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추영인이 축 가라앉았다. 청년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하지만, 물론 문주께서...음인의 혼사에 관심이 있으셔야겠지요. 아직 그러기 어려우시다는 걸 이해합니다. 오랜 세월을 양인으로 살아오신 분인데, 갑자기 양인이 혼담을 제안했다니 불쾌하셨겠지요. 재차 죄송합니다."
"음? 아니요,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좀 놀랐을 뿐이죠."
이연화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고개를 숙였던 추영인이 퍼뜩 눈을 들었다. 그 얼굴로 일말의 안도감이 번졌다. "감사합니다, 이 문주. 정말 관대하시군요." 청년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한쪽 입가를 살짝 올려 미소한 이연화가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찻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이연화는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그리고...혼사에 아주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네?"
추영인의 눈과 입이 커졌다. 그와 함께, 근처의 수풀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기에 흘려버릴 수도 있었지만, 고수의 청각은 그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그편을 힐끔 보았다가, 이연화는 그만 작은 기침을 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수풀 너머로 익숙한 머리통이 사라지고 있었다. 인기척은 곧 잠잠해졌으나, 이연화는 내심 한숨을 참으며 가볍게 미간을 짚었다. 추영인이 걱정스레 불렀다.
"이 문주?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해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후유증이 있어요. 가끔 한기가 들더군요."
이연화가 다소 허약한 미소를 지은 채 건넸다. 추영인이 허둥지둥 자신의 두루마기를 벗어주려 했다. "그럼, 그럼 이거라도 걸치십시오." 수풀에서 약하게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숨은 자의 심기가 썩 불편한 모양이었다). 이연화가 예의바르게 웃으며 한 손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증상이에요." 추영인이 다소 아쉬운 얼굴로 옷을 도로 입었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휘둥그레져 있었다.
"아까, 아까 혼사에 아주 관심이 없지 않으시다고...."
"아. 물론 제게 일어난 일이 아주 갑작스럽기는 합니다만, 모든 사람에겐 적합한 반려를 원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간에 알려졌다시피, 제 건강과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해 십 년 동안 제대로 바랄 수 없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이제 저를 오래도록 괴롭히던 독이 사라졌으니,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다만 그 대상이 전처럼 음인은 아니게 된 거지요. 한편으로 당혹스러우나, 이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언젠가는 받아들여야겠지요."
이연화가 성실하고도 능청스럽게 줄줄 이야기했다. 마지막 말과 함께 하늘을 아련히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러웠다. 추영인의 눈이 점점 반짝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리에서 튕겨 일어나고픈 사람처럼 양손으로 정자의 탁자를 짚었다.
"그럼, 혹시-."
"아, 죄송합니다. 추 공자의 혼담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공자를 잘 모르고, 제가 바라는 반려의 모습도 아직은 잘 모릅니다. 단지 제가 혼사에 어느 정도 마음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죠. 공자가 좋게 봐준 것은 고마우나, 섣불리 응할 수는 없겠습니다."
이연화가 미안한 미소와 함께 선을 그었다. 추영인은 조금 어두워졌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좌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청년은 희망을 얻은 사람처럼 반갑게 고개를 숙였다.
"그 말씀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냥 제 마음을 솔직히 말씀드린 것인데, 감사받을 일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사실 저 같은 필부를 이렇게 만나주실 줄도 몰랐습니다. 이미 과분한 대접을 해주셨어요. 다음에...다음에 또 만나주신다면 정말 기쁘겠지만, 설령 아니더라도 이건...이건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영인이 떨리는 손을 품에 넣어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서는 연꽃 모양을 한 옥패가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귀한 옥이었다. 이연화가 슬쩍 무안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추 공자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제가 직접 물건을 받으면 분명 말이 돌 겁니다."
"아무에게도 드렸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걸 구했다는 건 가족들도 모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할 테니, 이 문주의 이름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날 구명해주신 데에 대한 감사라고 여겨 주십시오."
추영인이 간절히 말했다. 아니, 수풀 속에서 보는 사람들은 알 텐데. 이연화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물론 말하지는 못했다. 수풀에서 감지되는 적의가 하도 강해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추영인이 자신처럼 무림인이었다면, 이미 칼을 꺼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터였다.
수풀 안의 사정이 어찌 됐든, 청년이 쉽게 물러날 듯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 이연화는 결국 옥패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추영인의 얼굴이 밝아진 것과 동시에, 수풀이 부산스레 부스럭거렸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조금 더 컸기에, 추영인이 고개를 돌리려 했다. 곤란한 상황을 막기 위해, 이연화는 얼른 옥패를 받으며 실수인 척 추영인의 손끝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 자신보다는 방다병에 더 가까운 나이의 청년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보기에 영 편한 광경은 아니었다). 상대의 체취가 순간적으로 강해졌다. 이연화의 눈살이 잠깐 찌푸려졌다가 펴졌다.
"그럼...이 문주, 감사합니다. 오늘 보여주신 친절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 추영인은 조금 미덥잖은 발걸음으로 정자를 떠났다. 어깨너머를 몇 번씩 돌아보는 모습이, 가기가 퍽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연화는 고아한 미소와 함께 서 있다가, 공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불량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너희!" 말썽 부리는 아이들의 뒷덜미를 잡듯이 부르며, 이연화가 수풀을 확 헤쳤다. 그 뒤에는 놀랍지 않게도 방다병과, 조금 놀랍게도 적비성이 있었다. 방다병은 조금 민망해할 정도의 상식이 있었지만, 적비성은 오히려 이연화를 노려보던 참이었다. 이연화가 그들을 삿대질하며 불평했다.
"너희 말이야, 내가 저 청년하고 잠깐 단둘이서 얘기한다고 분명 말했잖아. 남의 말을 엿듣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넌 아직 바뀐 형질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잖아. 너한테 마음이 있다는 놈하고 단둘이 남겼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된 것뿐이야. 네가 익숙해지기 전까진 내가 잘 살피겠다고 어머니랑 약속했단 말이야."
방다병이 시선을 돌리며 뚱하게 투덜거렸다. 이연화가 혀를 차며 손등으로 그 어깨를 탁 때렸다.
"무슨 일이 생기긴 뭘 생겨, 추 공자가 무림에 발가락이라도 담근 사람처럼 보여? 그리고 너, 네 손으로 낫게 한 스승이 서생 하나 감당하지 못할 게 걱정됐다고? 대체 얼마나 신뢰가 없는 거야."
"네가 한 헛소리. 설명해라."
적비성이 딱딱거렸다. 이연화가 뻔뻔하게 돌아보았다.
"내가 무슨 헛소리를 했어?"
"네가 음인으로서의 혼사에 마음이 있다고? 무슨 마음에도 없는 소리냐."
"왜 내가 혼사에 마음이 없다고 그래? 마음이 있어서 방이라도 써 붙일까 생각 중인데."
"하하하, 참 재밌다."
방다병이 전혀 재미있지 않은 얼굴로 비꼬았다. 하지만 이연화는 자신의 말을 정정하지 않은 채 방다병을 빤히 바라보았다. 방다병의 얼굴로 점점 불안감이 번졌다. 청년이 벼락을 경계하는 사람처럼 불렀다.
"이연화?"
"추 공자 말 들었잖아. 어차피 몰려들 거라며? 그럼 최대한 잘 이용하는 게 낫지."
"잘 이용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럼 정말, 너와 혼인할 양인을 모집한다는 방이라도 쓸 참이야?"
방다병이 따지듯 물었다. 이연화가 피식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안될 거 있어?"
"뭐어?"
방다병이 빽 소리를 쳤다.
https://hygall.com/576218946
[Code: f83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