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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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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못 및 날조 주의







태섭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 민박집에 며칠 머물기로 했다. 짐을 풀고 잠시 바다 근처를 걸었다. 어딜 가도 바닷가 근처라 익숙한 풍경인데도,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이 동네는 꽤 시끄럽고 활기차다. 태섭은 잠시 이 동네에 어울릴 법한 빨간 머리의 친동생 같은 후배를 떠올렸다. 피식 웃다가 금세 생각의 꼭지가 바뀐다.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근처에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물론 미국에서는 그런 곳에서 살긴 했었지만, 국내는 또 다르니까. 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자연 친화적인 곳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제법 부모 같은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해 태섭은 또 실소를 지었다.

여기에도 농구 코트가 있을까. 다행히 조금 걸으니 꽤 큰 학교가 보였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한곳에 모여있는 듯했다. 그런 이유로 커다란 것 같은 체육관에는 꽤 그럴싸한 농구 코트가 있었다. 태섭은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들과 간단히, 경기나 훈련이 아닌 놀이 같은 농구를 한바탕하고 체육관을 나섰다.

임신 후 제대로 뛴 것은 처음이었다. 땀이 나니 기분이 제법 개운하다. 속의 울렁거림마저 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는 길을, 되돌아 걸었다. 민박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다. 내내 울렁였던 속이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한결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가자 다시 속이 울렁대기 시작했고 하나 더 사 올 걸 후회했지만, 되돌아가기엔 귀찮았다.

어차피 두어 달 머무를 곳에서 한곳에만 정착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마을을 돌며 민박집을 전전할 생각이었다. 가급적 임신한 것을 아무에게도 들키거나 알리지 않고 고향에 갈 때까지 무사히 그러기를 바랐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첫날 저녁부터 태섭은 민박집 주인 어르신에게 임신한 것을 들켜버렸다. 밥상 앞에서 헛구역질을 한 바람에. 감추려면 감출 수도 있었지만, 그냥 말해버렸다. 어차피 저보다 훨씬 오래 산 어르신 앞에서 감추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이 아빠가 없다는 말에 어르신은 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대번에 욕을 하고야 만다. 세상천지 핏줄을 모른 척하는 그런 놈은 아주 나쁜 놈이니, 잊어버리라고. 태섭은 그게 아니라고 얘기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러게요, 나빴죠. 맞장구를 치면서 임신하고 처음으로 대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했다.

임신한 어린 총각이 3통 7반 민박집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좁은 골목에 소문처럼 금방 퍼졌다. 어르신과 비슷한 인상의 여러 어르신이 매일 각기 다른 음식을 가지고 나타났다. 입덧 때문에 헛구역질해도, 감사하지만 못 먹을 것 같다고 거절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주름진 얼굴이 다음엔 다른 것을 가져오겠다며 활기차게 웃는다. 먹는 것뿐이 아니다. 내가 첫째를 가졌을 땐, 우리 며느리가, 우리 딸이, 무수히 많은 임신 경험담이 쏟아졌다.

아기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더니, 아직 어린 스물다섯의 임신한 청년을 위해 골목 하나가 들썩였다. 무릇 작은 마을의 인심이란 그런 것이다. 어르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가며 태섭을 챙겼다.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그것도 익숙해지니 나름 괜찮았다. 마치 강백호와 강백호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모든 가족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물론 진짜로 강백호와 그 가족은 아니지만.

민박집 어르신의 가정사를 모두 듣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르신은 태섭을 마치 손주 대하듯 해주셨다. 태섭의 입덧은 일주일이 지나자, 어르신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조금 먹는 정도로 호전되었다. 특히 민박집 어르신이 직접 끓여주시는 어죽은 한 그릇을 훌훌 먹을 정도였다.

그 무렵, 팬티에 피가 묻어나왔다. 자고 일어난 태섭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르신에게 사실을 알렸다. 어쩌냐고 걱정하기에 괜찮을 거라고 되려 격려를 해드렸다. 병원에 가겠다고 나서니 언제 연락을 했는지 이장님이 민박집 골목 바깥에 트럭을 주차했다.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읍내에 있는 작은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유산기가 있으니, 당분간은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다는 진단을 받았다. 자주 보던 어르신들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의사가 같이 온 이장님에게 당부했다. 덜컹거리는 트럭은 안 돼요. 태섭은 산부인과 원장님 남편의 세단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그 후 일주일은 민박집 밖을 나가질 못했다. 어르신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태섭은 거의 황송해 죽을 뻔했다.- 병원에서 이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였다. 몸이 근질거리기도 했지만, 잡생각이 들어 더는 안 될 것 같았다. 어르신은 그런 태섭을 걱정했고 의사 선생님이 너무 누워만 있는 것도 안 좋대요- 했더니 이내 수긍했다.

유산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난 후, 태섭은 덜컥 겁이 났다.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낳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아이는 제 가족이었으니까. 그래서 가급적 누워있으라는 말에,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이부자리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가 졸리면 잠을 잤다. 방송이 나오지 않는 시간대에는 민박집에 뒹구는 아무거나 가져다 읽었다. 어르신이 오래전부터 갖고 계신 듯한 뜨개질 책은 이틀 만에 안에 있는 활자를 모두 읽었다. 신문을 매일 보니, 살면서는 필요하더라도 농구를 하면서는 필요 없었던 상식이 쌓였다.

농구공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방 안에서 농구공을 튀길 수도 없고 점프하며 몸을 움직이기에도 찝찝했다. 그래도 몸이 굳는 건 싫어서 남는 시간엔 공 없이 드리블 연습 같은 걸 하기도 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자연히 감상에 빠지는 시간도 있었다. 그 중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쓸데없는 생각은 당연히 정대만에 대한 생각이었다.

어떤 때는 임신을 알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이별한 순간을 후회하기도 했다. 조금 더 생각이 깊어지면 사귀게 된 것과 그가 엮인 여러 과거를 곱씹었다. 어느 새벽에는 너무 보고 싶어서, 조용히 나가 구멍가게 바깥에 놓인 공중전화 앞을 한없이 서성이기도 했다. 딱 한 번,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무심결에 전화를 걸었다가 여보세요, 하는 대만의 목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기도 했다.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다. 태섭은 아이를 혼자 키우겠다는 다짐만 몇 번이고 반복했다. 너무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었던, 첫사랑의 존재를 잊는 것은 쉽지 않아서 그럴 뿐이라고. 지금도 정대만을 사랑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썼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내 몸이 무거워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기도 했고,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애써 참아내기도 했다.

그래서 의사의 이제 괜찮다는 말에, 어르신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받으며 바깥을 다녔다. 돌아다니다 만난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에 들어가 전구를 갈아드리거나, 고장 난 집기 같은 걸 고쳐드리기도 하고. 또 다른 어르신의 하나뿐인 어린 손자가 푸는 덧셈 뺄셈을 봐 주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는 바다낚시로 잡은 생선을 그물에서 고르는 일을 돕거나 생선 손질하는 것을 도왔다. 품삯으로는 그 중 생김새가 가장 예쁜 생선 몇 마리를 받거나 간혹 현금을 받을 때도 있었다.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하고, 동네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를 정신 없이 보냈다. 잠자리에 누우면 무엇을 생각할 겨를 없이 잠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마을에서 머문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태섭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적었다. 2주 전엔가 잘 지낸다고 자동응답기에 음성을 남긴 적이 있었다. 제주도로 다시 거취를 옮기기 전에 어머니에게 임신한 것을 말하고 싶었다. 썼다 지웠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사흘 만에야 적은 편지는 또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야 우표를 붙여 우체부의 손에 쥐어졌다.

태섭의 어머니 향희가 민박집에 도착한 것은 편지를 보낸 지 딱 2주일이 됐을 때였다. 태섭이 느지막이 일어나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아직도 납작한 배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 낯익은 주근깨의 얼굴이 캐리어를 끌고 민박집 입구로 들어섰다.

..어머니. 태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이 마주친 향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 같았다. 네 마음대로 이러면 어떡하니.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태섭은 주춤대며 툇마루에서 내려갔다. 얼굴이 많이 까칠하구나. 향희는 조심스러워하는 태섭에게로 다가가 그를 꼭 안아 주었다. 괜찮아.

사뭇 다정한 속삭임에 태섭은 눈을 감았다. 다정한 손길이 태섭의 등을 어루만졌다. 태섭의 감은 눈 사이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럽게 우는 태섭에게 무뚝뚝하지만 다정하게, 향희가 덧붙였다. 아기는 우리가, 건강히 잘 키우자. 모자는 끌어안고 잠시 흐느꼈다.

향희가 가져온 캐리어 안에는 태섭이 어릴 적 입었었다던 배냇저고리가 있었다.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냐며 놀라자, 모든 엄마는 다 그런 거라고 장롱 안에 준섭이 것도, 아라 것도 있다고 했다. 그다지 부풀지 않은 배에 괜히 배냇저고리를 대보았다. 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태섭이 웃었다. 원래 첫째는 배가 늦게 부풀더라. 향희가 태섭과 닮은 웃음을 짓고, 판판한 태섭의 배를 살짝 쓸어내렸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임신 후 호르몬의 영향일까. 태섭은 향희에게 쉬지 않고 조잘댔다. 그 동안 마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빠짐없이 말했다. 향희는 조용히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감사해서 어쩌냐고 이 은혜는 아마 전부 갚지 못할 거라고 했다.

4시쯤 집으로 돌아온 어르신에게, 향희가 버선발로 나가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은 태섭에게 그랬듯 그의 어머니 또한 마치 며느리를 대하듯 살갑게 대해주셨다.

민박 마지막 날, 인사를 드리는 데만도 한나절이었다. 평소 자주 보던 어르신들이 모두 모여 한 마디씩 태섭에게 덕담과 함께 선물을 건넸다. 민박집 어르신도 읍내에 나가서 직접 사 오셨다고 태섭에게 쇼핑백을 내밀었다. 읍내에서 은행에 다니는 골목에서 가장 젊은, 향희보다도 나이가 많은 어머니가 덧붙였다. 처음으로 직접 사서 주시는 거라고.

받는 것이 너무 많아 한사코 거절해도 자꾸만 쥐여주시는 통에 향희와 태섭은 캐리어 외에도 두 손 가득 짐을 들었다. 골목을 나서자, 이장님이 불러주신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끝까지 도움을 받아 황송하게 택시 뒷좌석에 올라타고 나서야, 향희는 참았던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정 많은 동네 분은 떠나는 택시의 뒤통수에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태섭도 창문을 내다보며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택시 안에서 열어본 민박집 주인 어르신이 건넨 종이가방 안에는 포장된 상자 외에도 봉투가 두 개 들어 있었다. 하나는 꽤 두둑했는데 열어보니 지폐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의아해하며 다른 봉투를 열었더니, 그 안에는 어르신이 서툰 솜씨로 삐뚤빼뚤하게 적은 글씨가 있었다. 봉투 안에 든 돈은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태섭이 건넨 민박집 숙박비라고 했다. 아기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 테니 보태라고, 건강히 낳아서 잘 키우라고. 태섭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유람선을 타고 도착한 제주도에서, 태섭은 향희가 이끄는 어느 빈집에 도착했다. 사람이 살지 않을 뿐이지 가구나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곳이었다. 태섭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향희가 웃었다. 외삼촌이 예전에 서울로 거취를 옮기면서 사둔 별장이라고 했다. 당분간 써도 된대. 향희의 바로 손위 형제인 외삼촌 가족과는 꽤 사이가 좋았다.

담이 낮고 단층으로 된, 전형적인 제주도 가정집이었다. 그래도 꽤 현대식으로 꾸며진 집은 제법 넓어 방도 세 칸이나 되었다. 아라도 다음 달에 올 거야. 향희가 덧붙였다. 아라는 서울에서 전문대를 나와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했다. 지금은 커피의 성지로 유명한 지역에서 커피 유학 중이었다. 예전부터 야무졌던 아라는 곧 커피로 큰돈을 벌 것이라고 자부했다.

태섭은 최근까지 입덧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음식은 꽤 먹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먹고 자랐던 어머니의 음식을 먹다 보니 점점 먹는 양이 늘었다. 못 먹는 것이나 구역질은 점점 줄었다. 임신 중후기쯤 접어들었을 때는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공기는 기본으로 먹었다. 잘 먹으니,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왔다. 향희는 그런 태섭을 보고 먹덧이 온 것 같다고 했다. 힘들게 증량할 게 아니라 임신하는 게 답이었나. 태섭은 시답잖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열흘이 지나지 않아 태섭은 일을 구했다. 젊고 몸이 건강한 데다,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기도 했다. 한때 유산기가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새로 다닌 산부인과에서도 전혀 걱정이 없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농구 붐이 일기 시작해, 제주도에도 뒤늦게 농구 바람이 불었다. 그 덕에 태섭은 평일은 낮부터 어린이 농구 교실에 다녔고, 주말에는 농구 교실의 몇몇 아이들에게 영어 과외를 했다. 영어 과외 또한 방송 매체 같은 것에 재외교포 연예인이 등장하면서부터 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유행처럼 시작되었다. 태섭에게는 매우 잘된 일이었다.

임신 후기에 들어서 몸이 꽤 무거워졌어도 일은 계속했다. 보는 사람이 답답할 만큼 배가 많이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태섭이 워낙 아이들을 잘 가르쳤기에 학부모들이 계속해서 배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태섭이 가르치면서부터 농구 교실에는 학생이 점점 늘어났고, 영어 과외도 희망자가 늘어 어느 부잣집에서 노는 집 하나를 개조해, 제법 모습을 갖춘 교실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향희도 일을 다녔고, 아라 또한 새로 지어진 꽤 큰 커피숍에서 일했다. 각자 돈을 버니 생활에 제법 여유가 있었다. 태섭은 농구 교실도 괜찮았지만, 영어 과외로 얻는 수입이 꽤 쏠쏠했다. 통장에 차곡차곡 돈이 쌓였다. 은행에서 대출 조금 받고, 아라와 돈을 모으면 제법 괜찮은 평수의 가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섭은 아라와 이야기해 차근히 커피숍을 차릴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이상 없이 아기는 태섭의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병원에서 모든 장기가 다 생기고, 태어나기 적정한 몸무게가 되는 날을 계산해 수술 날짜를 잡았다. 태섭의 생일을 한 달 정도 남기고 큰 어려움 없이 아기가 태어났다. 체구는 조금 작지만 건강한 여자 아기는 태섭과 많이 닮았다.

나이도 젊고 워낙 건강한 데다 운동선수였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이틀이 지날 때까지 태섭은 침대를 지켜야만 했다. 수술 부위도 아팠지만, 온몸이 다 아팠다. 온몸의 뼈를 모두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첫째인 준섭만 자연분만으로 낳고, 나머지 두 아이는 수술로 낳은 향희가 태섭에게 위로 아닌 위로 같은 말을 했다.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애 낳는데 예외는 없다고.

수술 후 사흘이 지나서부터 태섭은 제법 씩씩하게 수유하러 다녔다. 신생아실의 간호사들에게 아기를 안는 법, 젖병을 물리는 법을 배웠다. 아기는 태섭의 엄지손톱보다도 작은 입술을 움직여, 힘 있게 젖병을 빨았다. 수유가 끝나고 나면 아기의 몸이 뜨끈하게 젖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온몸의 힘을 다 써가며 먹는 게 제법 신기했다.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퇴원 후에는 가까운 친척 어르신이 집으로 와 산후조리를 도와주셨다. 제주도에서 생산된 미역과 생선, 육류로 매 끼니 갖은 종류의 미역국을 다 먹었다. 아무리 맛있고 좋아해도 내내 한 가지 음식만 먹지는 못했던 태섭은 미역국이 전혀 물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이름을 짓기까지 아기는 태명으로 불렸다. 태명은 본래 태섭이 농구공이라 지었다가, 민박집 어르신의 타박을 듣고 다슬기에서 따 '슬기'라 지었다. 태섭과 향희를 따라 뒤늦게 제주도로 온 아라가 언젠가 자신의 꿈에서 태섭이 빛깔 좋고 예쁜 모양의 복숭아를 먹음직스럽게 먹었다고 했다. 그게 태몽이었나. 엄마, 나 그때 엄마 졸라서 복숭아 사 먹었잖아용. 기억나? 향희가 눈동자를 굴렸다. 그래, 기억나.

아라는 그래서 복숭아에서 따 아기를 '숭아'라고 불렀다. 태섭이 곧바로 아라에게 일갈했다. 그게 뭐야! 원숭이 같잖아! 아라는 남몰래 일기장에 쓸 때만 아기를 숭아라고 표현했는데,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태섭이 자리를 비웠을 때만 조용히 숭아라고 불렀다. 귀엽기만 한데, 숭아야. 그렇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방긋방긋 웃으며 팔다리를 허우적댔다. 좋지? 대답이라도 하듯 아기가 옹알이했다.

아기의 이름은 그대로 '슬기'로 할까 하다가 태섭에게서 따 '태은'이라고 지었다. 출생신고를 하러 가서 태섭은 잠시 망설였다. 아기에게 '정' 씨 성을 붙일 수는 없다. 다행히 아빠를 모르는 경우에는 母의 성을 딸 수 있다고 했다. 송태은, 태섭은 종이에 이름을 꾹꾹 눌러 적었다.

처음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날로부터 이제 곧 1년이다. 아기는 얼마 전 생후 백일을 넘겼다. 먹성이 좋아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고 성격은 유순했다. 아빠를 닮았는지, 태어났을 때부터 모질은 튼튼하고 새카맸다. 위로 바짝 올라간 아기치곤 꽤 숯 많은 머리칼은 여간 고집이 아니었다. 올리브색이 섞인 눈동자 또한 대만을 생각나게 했다. 그래도 다행인지 아기는 전반적으로 태섭의 가족과 많이 닮아 있었다.

태섭은 가끔 스포츠 뉴스에서 대만의 소식을 들었다. 잘생긴 데다, 뛰어난 농구 센스에 득점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꽤 인기몰이를 하는 것 같았다. 화면으로 보는 얼굴이 꽤 밝고 생기 있어 보였다. 건강하게 잘 지내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임신 중에도 가벼운 운동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볍게 농구를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농구를 하지 못한 지도 거의 1년이다. 그래도 태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보여주는 것들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비록 아기를 돌보는 백일 동안 통으로 8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고 식사 또한 제대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한 적이 없었음에도. 태섭은 대만보다는 저를 많이 닮은 아기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시대배경(?)은 90년대 말~2000년대 초쯤으로 생각하고 적었음 물론 큰 영향은 없으니 읽기 편한 대로 생각해도 됨



슬램덩크
대만태섭 미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