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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7 21:43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는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는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방다병은 뒤늦게 도착한 하 당주에게 등을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상대를 말리거나 그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요지는 단순했다.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원을 바로 곁에 대기시키지도 않았다고? 너와 적비성 둘 다 양인인데? 방다병, 내가 널 그리 멍청하고 무신경하게 키우지는 않았다!' 비록 이런 시간차 변화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었지만, 방다병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자코 야단을 맞았다. 그 시선이 줄곧 이연화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방다병의 스승은 침상에 앉아 소소용의 설명을 들으며, 마치 처음 내력을 운용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몸을 조절하고 있었다.
"방소보,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작지만 어쩐지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말에, 방다병이 퍼뜩 고개를 돌렸다. 하 당주의 엄정한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방다병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물론이죠."
"앞으로도 정말 조심해야 한다, 내 말 알아들어? 이 선생은 아직 익숙하지 않을 테니 네가 알아서 주의해야 해."
"그, 그럼요."
"이번에도, 너나 적 맹주가 잘 참았기에 망정이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어쩔 뻔했어? 냄새가 어찌나 짙던지 까무라칠 뻔했다. 꼭 효봉이 처음 발현할 때 같았다니까."
"어머니, 무슨 일이라뇨. 아무리 그런 상황이라도 제가 어떻게 이연화한테 잘못하겠어요."
시뻘겋게 익은 방다병이 시선을 내리깔고는 꿍얼거렸다.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대경실색해 방문을 열었을 때, 자신의 몸이 생리적으로 보이던 반응을 기억한 탓이었다. 다행히 그런 속사정까지 알 길 없었던 어머니가 혀를 찼다.
"음인과 양인 사이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난 물론 내 아들을 믿지만, 때로는 악의가 없어도 난처한 상황이 생기는 법이야."
"저도 알아요. 하지만...어머니, 이연화잖아요."
방다병이 답지 않게 우물우물 말하며 이연화를 슥 손짓했다. '제가 어떻게 전 사고문 문주이자 전우이자 스승에게 이상한 짓을 하겠어요?'와, '어차피 제가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이연화가 저를 때려서 기절시킬 텐데요.' 따위의 생각이 뒤섞인 반응이었다. 하 당주가 쯧 소리를 내며 방다병의 손을 찰싹 때렸다.
"그 이름을 무슨 주문처럼 얘기하는구나. 아무리 고강한 사람이라도 형질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순 없어. 방소보, 네가 고집을 부려서 이 선생을 음인으로 만들어 놨으니 선생이 새로운 형질에 익숙해질 때까지 책임지고 살펴야 한다."
"제가 음인으로 만들다뇨, 어감이 너무 이상해요...."
방다병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웅얼거렸다. 어째선지 등과 목이 불타버릴 것 같았다. 멀리서 모자의 대화를 듣던 이연화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뭘? 그 말이 맞지. 네가 아니었으면 절대 그 화봉초인지 뭔지 먹을 일 없었어."
"난 그냥, 네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널 난처하게 만들려고 그런 건 아닌데."
방다병이 걷어차인 강아지처럼 이야기했다. 이연화가 에이, 소리를 내며 손을 내저었다. 처음 자신의 형질이 변한 것을 깨달았던 때와 딴판으로, 늙은 여우는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워낙 해괴한 일들을 많이 겪은 탓에 이런 변화도 빠르게 수용한 것인지, 죄인처럼 선 방다병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어쩌면 둘 다인지도 몰랐다).
"왜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거야? 건강한 음인과 벽차지독에 중독된 양인 중에 고르라면 전자가 낫긴 해. 내력을 운용하는 방식에도 좀 차이가 생기겠지만, 벽차지독을 눌러야 할 때보다는 쉽겠지. 오, 그리고 이제 대충 조절된다. 고마워요, 소 낭자."
이연화가 넉살 좋게 웃으며 양팔을 가볍게 벌렸다. 조금 전보다 한결 옅어진 냄새에, 방다병이 크게 뜬 눈을 깜박였다. 그 곁에 앉았던 소소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하네. 나도 관 오라버니 따라서 이런저런 환자 많이 봤는데, 연꽃 냄새가 나는 건 처음 봤어요. 보통 이런 냄새가 나진 않거든요. 이래저래 다양해도 어차피 사람 몸 냄새라."
"무공 심법에 정통한 사람들은 가끔 이런 자연물의 냄새를 풍기기도 해. 아마도 양주만이 만들어낸 특징이겠지."
관하봉이 진맥을 끝내며 조용히 덧붙였다. 이연화는 더 이상 체취를 뿜어내고 있지 않았지만, 아직도 방에는 그 특징적인 냄새가 가득했다. 방다병은 땀이 가득 배어난 손을 쥐었다 펴며 마른침을 삼켰다. 득과 실을 비교할 때 분명 기뻐할 만한 결과였는데도, 어쩐지 목이 바짝 말랐다. 방다병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연화가 삿대질을 하며 농담처럼 건넸다.
"너 말이야. 나를 그 울상으로 협박해서 해독하도록 만들어놓고, 지금 또 왜 이렇게 울상이야? 이렇게 될 줄 아주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방다병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두 가지 생각이 퉁 튀어올랐으나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하나, 사실 방다병은 형질 변화라는 부작용에 대해 그리 깊고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벽차지독을 해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온 신경이 쏠렸던 탓이었다. 방다병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양주만으로 연명하고 있다 한들 이연화는 늘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도 같은 상태였다. 게다가 남윤의 음모를 제지한 후로는 삶에 대한 의지보다 허허로운 초탈함이 더욱 짙게 느껴져, 방다병은 사실 시간이 갈수록 미칠 지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의 눈에, 목숨과 형질 변화라는 두 개의 사안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둘, 사실 방다병은 몰랐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연화가 음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분은 물론 알았지만, 이런 냄새를 풍기는 음인이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체취였음에도 눅눅하게 들러붙는 느낌이 없었고, 그 뒤에 과연 어떤 사람이 존재하고 있을지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한 마디로, 끝내주게 인상적이면서도 동하는 냄새였다. 양인의 코에 이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이제 형질이 바뀌어버린 이연화는 절대 알 리가 없었다(사실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형질이 변해도 상관없다던 적비성조차, 멀찍이서 돌부처처럼 굳어서는 그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연화가 안전해지길 바라며 벌인 일이긴 한데, 설마 그의 삶에 커다란 위험요소 하나를 선사해버린 건 아닐까? 묘한 불안감이 뇌리를 스쳤다. 눈을 꾹 감고 고개를 흔들며, 방다병은 그 불안을 털어내듯 스스로를 향해 되뇌었다. 아냐, 괜찮을 거야. 형질이 변했다고 한들 이연화의 외양이 변한 것은 아니었고, 체취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만 입을 조심한다면 당분간 곤란하거나 귀찮은 상황은 피할 수 있을 터였다.
방다병은 열두 시간쯤 그 생각을 유지했다.
한밤의 푸닥거리와 관계없이, 하효봉의 혼인은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천기산장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만큼, 결혼식은 화려하고 떠들썩했다. 아름다운 날씨 아래에 음식과 음악, 웃음이 넘쳐났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신랑과 신부를 축복했고, 그들의 번듯함을 치켜세웠다. 이연화 역시 축하하는 무리에 섞여 있다가, 신랑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농담처럼 '나와의 내기로 네가 인연을 놓치지 않아 안심했다'는 말을 건넸다.
방다병이 속으로만 키득거리는데, 문득 이상한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칼이 검집을 떠나는 소리였다.
방다병이 홱 고개를 돌렸다. 순간 전신에 오싹함이 끼쳤다. 다른 무인들의 시선 역시 순간적으로 한 점을 향했다. 평범한 문사의 옷을 입은 남자가, 복수심에 번득이는 눈을 한 채 달려오고 있었다.
"남윤의 원수들! 혼사 날에 장례를 치르게 해주마!"
그 부르짖음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방다병은 칼을 빼들며 그 앞으로 달려들었다.
남자의 검은 방다병에게 막혔으나, 곧 칼 빼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방다병이 숨을 들이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님과 악사들 중 몇몇이 첫 사람과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공을 모르는 하객들이 비명과 함께 뒤엉켜 넘어지자 혼란이 가중되었다. 자객들은 신랑과 신부를 제일 먼저 노리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신랑과 신부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바로 허공으로 피가 튀지는 않았다. 대신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전운비는 검이 없어 급한 대로 권을 펼쳤고, 하효봉도 불편한 차림으로나마 상대를 차고 넘어지며 악을 썼다("나쁜 놈들, 내 결혼을 두 번씩이나 망칠 순 없어!").
자객들은 손속에 거침이 없었으나, 천기산장 사람들은 오히려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인파가 밀집된 가운데, 자칫 잘못했다간 엄한 사람이 희생될 터였다. 자객들은 그 차이를 놓치지 않고, 하객을 방패삼아 마구 밀고 들어오려 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다소 정신없는 방어가 전개되던 중, 뒤편 지붕에서 살금살금 올라온 두 자객이 칼을 든 채 하효봉의 위로 뛰어올랐다. 방다병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전운비는 너무 멀리 있었고, 자신도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느라 발이 묶여 있었다. 방다병과 전운비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이모!"
"효봉!"
그 순간, 보이지 않는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두 명분의 비명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검기의 위력이 어찌나 센지, 자객들의 가슴이 터진 것은 물론이고 두 몸뚱이가 도로 지붕 위까지 날아 굴러갔다. 그와 함께, 방다병은 코끝을 스친 연꽃 향기를 맡았다.
연꽃 향기...연꽃...?
방다병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자신과 대치하던 적들을 얼른 베어 넘기고, 청년은 푸른 옷자락이 펄럭이는 광경을 아연히 바라보았다. 이연화가 파괴적인 제비처럼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 손에는 죽어 넘어진 자가 쓰던 칼 하나가 들린 채였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몇 차례 울리자마자, 그 파공음의 개수보다 많은 사람이 쓰러졌다. 보검이 아니라 하여 고수의 손에 들린 칼이 무뎌지지는 않았다.
"이상이!"
"이상이다!"
군데군데서 그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좌중의 관심이 이연화에게 쏠린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방다병을 비롯한 천기산장 사람들은 적을 날렵하게 베거나 제압했다. 초반에 잠깐 팽팽했던 대치 상황은, 순간적으로 기울어지다 와르르 허물어졌다.
이후의 전투는 치열했으나 길게 지속되지는 않았다. 개중 가장 번득이는 모습을 보인 사람은 물론 이연화였다. 아직 내력을 회복한 상태가 아님에도, 상이태검의 검기는 정확하게 표적을 찾아 마치 무처럼 전장에서 쑥쑥 뽑아버렸다. 추풍낙엽이라는 말에 걸맞도록, 적들은 곧 천기산장 앞마당에 차곡차곡 쓰러져 신음하게 되었다. 심문을 위해서인지 경사스러운 날 피를 보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들 중 목숨을 잃은 자는 없었다.
싸움이 끝난 시점에도, 사람들은 입을 닫지 못한 채 한 점을 응시했다. 방금 목도한 검술 때문이기도 했고, 코로 맡아지는 낯선 냄새 때문이기도 했다. 천기산장의 넓은 공간에 연꽃 향기가 진동했다. 마지막 적을 발로 툭 굴려놓고, 이연화는 시선을 느낀 듯 퍼뜩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살짝 킁킁거리던 그 얼굴로 곧 머쓱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 네. 접니다. 죄송해요. 내력을 쓸 땐 조절이 잘 안 되네."
이연화가 한 손을 대충 흔들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물론 그 미덥잖은 설명에 만족하고 시선을 돌리는 하객은 없었다. 누군가가 떨리는 손으로 이연화를 가리켰다. 그 눈이 화등잔만큼 커져 있었다.
"이, 이 문주...음인이었소?"
"예 뭐, 그렇게 됐네요. 최근 일입니다. 잠시만요."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 이연화가 손짓했다. "이봐, 아비! 거기 나무처럼 서 있지만 말고, 내력으로 이거 좀 날려줘." 높이 외치자, 저만치서 지켜보던 적비성이 코웃음을 치더니 손바닥을 펴 내질렀다. 강한 바람이 한 차례 불어 연꽃 냄새를 날려버렸다. 칼을 내려놓은 이연화가 양손을 마주 잡으며 뻔뻔한 얼굴로 빙긋 웃었다.
"이제 좀 낫지요? 그럼 경사스러운 혼례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방다병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면서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경악하여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니, 앞으로의 혼란이 뻔히 예상된 탓이었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방다병은 뒤늦게 도착한 하 당주에게 등을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상대를 말리거나 그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요지는 단순했다.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원을 바로 곁에 대기시키지도 않았다고? 너와 적비성 둘 다 양인인데? 방다병, 내가 널 그리 멍청하고 무신경하게 키우지는 않았다!' 비록 이런 시간차 변화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었지만, 방다병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자코 야단을 맞았다. 그 시선이 줄곧 이연화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방다병의 스승은 침상에 앉아 소소용의 설명을 들으며, 마치 처음 내력을 운용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몸을 조절하고 있었다.
"방소보,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작지만 어쩐지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말에, 방다병이 퍼뜩 고개를 돌렸다. 하 당주의 엄정한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방다병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물론이죠."
"앞으로도 정말 조심해야 한다, 내 말 알아들어? 이 선생은 아직 익숙하지 않을 테니 네가 알아서 주의해야 해."
"그, 그럼요."
"이번에도, 너나 적 맹주가 잘 참았기에 망정이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어쩔 뻔했어? 냄새가 어찌나 짙던지 까무라칠 뻔했다. 꼭 효봉이 처음 발현할 때 같았다니까."
"어머니, 무슨 일이라뇨. 아무리 그런 상황이라도 제가 어떻게 이연화한테 잘못하겠어요."
시뻘겋게 익은 방다병이 시선을 내리깔고는 꿍얼거렸다.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대경실색해 방문을 열었을 때, 자신의 몸이 생리적으로 보이던 반응을 기억한 탓이었다. 다행히 그런 속사정까지 알 길 없었던 어머니가 혀를 찼다.
"음인과 양인 사이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난 물론 내 아들을 믿지만, 때로는 악의가 없어도 난처한 상황이 생기는 법이야."
"저도 알아요. 하지만...어머니, 이연화잖아요."
방다병이 답지 않게 우물우물 말하며 이연화를 슥 손짓했다. '제가 어떻게 전 사고문 문주이자 전우이자 스승에게 이상한 짓을 하겠어요?'와, '어차피 제가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이연화가 저를 때려서 기절시킬 텐데요.' 따위의 생각이 뒤섞인 반응이었다. 하 당주가 쯧 소리를 내며 방다병의 손을 찰싹 때렸다.
"그 이름을 무슨 주문처럼 얘기하는구나. 아무리 고강한 사람이라도 형질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순 없어. 방소보, 네가 고집을 부려서 이 선생을 음인으로 만들어 놨으니 선생이 새로운 형질에 익숙해질 때까지 책임지고 살펴야 한다."
"제가 음인으로 만들다뇨, 어감이 너무 이상해요...."
방다병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웅얼거렸다. 어째선지 등과 목이 불타버릴 것 같았다. 멀리서 모자의 대화를 듣던 이연화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뭘? 그 말이 맞지. 네가 아니었으면 절대 그 화봉초인지 뭔지 먹을 일 없었어."
"난 그냥, 네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널 난처하게 만들려고 그런 건 아닌데."
방다병이 걷어차인 강아지처럼 이야기했다. 이연화가 에이, 소리를 내며 손을 내저었다. 처음 자신의 형질이 변한 것을 깨달았던 때와 딴판으로, 늙은 여우는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워낙 해괴한 일들을 많이 겪은 탓에 이런 변화도 빠르게 수용한 것인지, 죄인처럼 선 방다병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어쩌면 둘 다인지도 몰랐다).
"왜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거야? 건강한 음인과 벽차지독에 중독된 양인 중에 고르라면 전자가 낫긴 해. 내력을 운용하는 방식에도 좀 차이가 생기겠지만, 벽차지독을 눌러야 할 때보다는 쉽겠지. 오, 그리고 이제 대충 조절된다. 고마워요, 소 낭자."
이연화가 넉살 좋게 웃으며 양팔을 가볍게 벌렸다. 조금 전보다 한결 옅어진 냄새에, 방다병이 크게 뜬 눈을 깜박였다. 그 곁에 앉았던 소소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하네. 나도 관 오라버니 따라서 이런저런 환자 많이 봤는데, 연꽃 냄새가 나는 건 처음 봤어요. 보통 이런 냄새가 나진 않거든요. 이래저래 다양해도 어차피 사람 몸 냄새라."
"무공 심법에 정통한 사람들은 가끔 이런 자연물의 냄새를 풍기기도 해. 아마도 양주만이 만들어낸 특징이겠지."
관하봉이 진맥을 끝내며 조용히 덧붙였다. 이연화는 더 이상 체취를 뿜어내고 있지 않았지만, 아직도 방에는 그 특징적인 냄새가 가득했다. 방다병은 땀이 가득 배어난 손을 쥐었다 펴며 마른침을 삼켰다. 득과 실을 비교할 때 분명 기뻐할 만한 결과였는데도, 어쩐지 목이 바짝 말랐다. 방다병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연화가 삿대질을 하며 농담처럼 건넸다.
"너 말이야. 나를 그 울상으로 협박해서 해독하도록 만들어놓고, 지금 또 왜 이렇게 울상이야? 이렇게 될 줄 아주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방다병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두 가지 생각이 퉁 튀어올랐으나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하나, 사실 방다병은 형질 변화라는 부작용에 대해 그리 깊고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벽차지독을 해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온 신경이 쏠렸던 탓이었다. 방다병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양주만으로 연명하고 있다 한들 이연화는 늘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도 같은 상태였다. 게다가 남윤의 음모를 제지한 후로는 삶에 대한 의지보다 허허로운 초탈함이 더욱 짙게 느껴져, 방다병은 사실 시간이 갈수록 미칠 지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의 눈에, 목숨과 형질 변화라는 두 개의 사안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둘, 사실 방다병은 몰랐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연화가 음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분은 물론 알았지만, 이런 냄새를 풍기는 음인이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체취였음에도 눅눅하게 들러붙는 느낌이 없었고, 그 뒤에 과연 어떤 사람이 존재하고 있을지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한 마디로, 끝내주게 인상적이면서도 동하는 냄새였다. 양인의 코에 이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이제 형질이 바뀌어버린 이연화는 절대 알 리가 없었다(사실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형질이 변해도 상관없다던 적비성조차, 멀찍이서 돌부처처럼 굳어서는 그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연화가 안전해지길 바라며 벌인 일이긴 한데, 설마 그의 삶에 커다란 위험요소 하나를 선사해버린 건 아닐까? 묘한 불안감이 뇌리를 스쳤다. 눈을 꾹 감고 고개를 흔들며, 방다병은 그 불안을 털어내듯 스스로를 향해 되뇌었다. 아냐, 괜찮을 거야. 형질이 변했다고 한들 이연화의 외양이 변한 것은 아니었고, 체취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만 입을 조심한다면 당분간 곤란하거나 귀찮은 상황은 피할 수 있을 터였다.
방다병은 열두 시간쯤 그 생각을 유지했다.
한밤의 푸닥거리와 관계없이, 하효봉의 혼인은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천기산장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만큼, 결혼식은 화려하고 떠들썩했다. 아름다운 날씨 아래에 음식과 음악, 웃음이 넘쳐났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신랑과 신부를 축복했고, 그들의 번듯함을 치켜세웠다. 이연화 역시 축하하는 무리에 섞여 있다가, 신랑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농담처럼 '나와의 내기로 네가 인연을 놓치지 않아 안심했다'는 말을 건넸다.
방다병이 속으로만 키득거리는데, 문득 이상한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칼이 검집을 떠나는 소리였다.
방다병이 홱 고개를 돌렸다. 순간 전신에 오싹함이 끼쳤다. 다른 무인들의 시선 역시 순간적으로 한 점을 향했다. 평범한 문사의 옷을 입은 남자가, 복수심에 번득이는 눈을 한 채 달려오고 있었다.
"남윤의 원수들! 혼사 날에 장례를 치르게 해주마!"
그 부르짖음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방다병은 칼을 빼들며 그 앞으로 달려들었다.
남자의 검은 방다병에게 막혔으나, 곧 칼 빼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방다병이 숨을 들이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님과 악사들 중 몇몇이 첫 사람과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공을 모르는 하객들이 비명과 함께 뒤엉켜 넘어지자 혼란이 가중되었다. 자객들은 신랑과 신부를 제일 먼저 노리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신랑과 신부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바로 허공으로 피가 튀지는 않았다. 대신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전운비는 검이 없어 급한 대로 권을 펼쳤고, 하효봉도 불편한 차림으로나마 상대를 차고 넘어지며 악을 썼다("나쁜 놈들, 내 결혼을 두 번씩이나 망칠 순 없어!").
자객들은 손속에 거침이 없었으나, 천기산장 사람들은 오히려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인파가 밀집된 가운데, 자칫 잘못했다간 엄한 사람이 희생될 터였다. 자객들은 그 차이를 놓치지 않고, 하객을 방패삼아 마구 밀고 들어오려 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다소 정신없는 방어가 전개되던 중, 뒤편 지붕에서 살금살금 올라온 두 자객이 칼을 든 채 하효봉의 위로 뛰어올랐다. 방다병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전운비는 너무 멀리 있었고, 자신도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느라 발이 묶여 있었다. 방다병과 전운비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이모!"
"효봉!"
그 순간, 보이지 않는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두 명분의 비명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검기의 위력이 어찌나 센지, 자객들의 가슴이 터진 것은 물론이고 두 몸뚱이가 도로 지붕 위까지 날아 굴러갔다. 그와 함께, 방다병은 코끝을 스친 연꽃 향기를 맡았다.
연꽃 향기...연꽃...?
방다병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자신과 대치하던 적들을 얼른 베어 넘기고, 청년은 푸른 옷자락이 펄럭이는 광경을 아연히 바라보았다. 이연화가 파괴적인 제비처럼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 손에는 죽어 넘어진 자가 쓰던 칼 하나가 들린 채였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몇 차례 울리자마자, 그 파공음의 개수보다 많은 사람이 쓰러졌다. 보검이 아니라 하여 고수의 손에 들린 칼이 무뎌지지는 않았다.
"이상이!"
"이상이다!"
군데군데서 그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좌중의 관심이 이연화에게 쏠린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방다병을 비롯한 천기산장 사람들은 적을 날렵하게 베거나 제압했다. 초반에 잠깐 팽팽했던 대치 상황은, 순간적으로 기울어지다 와르르 허물어졌다.
이후의 전투는 치열했으나 길게 지속되지는 않았다. 개중 가장 번득이는 모습을 보인 사람은 물론 이연화였다. 아직 내력을 회복한 상태가 아님에도, 상이태검의 검기는 정확하게 표적을 찾아 마치 무처럼 전장에서 쑥쑥 뽑아버렸다. 추풍낙엽이라는 말에 걸맞도록, 적들은 곧 천기산장 앞마당에 차곡차곡 쓰러져 신음하게 되었다. 심문을 위해서인지 경사스러운 날 피를 보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들 중 목숨을 잃은 자는 없었다.
싸움이 끝난 시점에도, 사람들은 입을 닫지 못한 채 한 점을 응시했다. 방금 목도한 검술 때문이기도 했고, 코로 맡아지는 낯선 냄새 때문이기도 했다. 천기산장의 넓은 공간에 연꽃 향기가 진동했다. 마지막 적을 발로 툭 굴려놓고, 이연화는 시선을 느낀 듯 퍼뜩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살짝 킁킁거리던 그 얼굴로 곧 머쓱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 네. 접니다. 죄송해요. 내력을 쓸 땐 조절이 잘 안 되네."
이연화가 한 손을 대충 흔들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물론 그 미덥잖은 설명에 만족하고 시선을 돌리는 하객은 없었다. 누군가가 떨리는 손으로 이연화를 가리켰다. 그 눈이 화등잔만큼 커져 있었다.
"이, 이 문주...음인이었소?"
"예 뭐, 그렇게 됐네요. 최근 일입니다. 잠시만요."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 이연화가 손짓했다. "이봐, 아비! 거기 나무처럼 서 있지만 말고, 내력으로 이거 좀 날려줘." 높이 외치자, 저만치서 지켜보던 적비성이 코웃음을 치더니 손바닥을 펴 내질렀다. 강한 바람이 한 차례 불어 연꽃 냄새를 날려버렸다. 칼을 내려놓은 이연화가 양손을 마주 잡으며 뻔뻔한 얼굴로 빙긋 웃었다.
"이제 좀 낫지요? 그럼 경사스러운 혼례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방다병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면서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경악하여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니, 앞으로의 혼란이 뻔히 예상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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