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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5 01:39
알렉스한테 별 감정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친구 정도. 처음엔 알렉스가 뻔뻔하고 자기자랑 심한 애 같아서 가까이 안했는데 마을에서 지내다 보니 그냥 자연스레 인사하는 사이가 됨. (조지랑 에블린의 덕이 크다..)
알렉스는 마을에서 동 떨어진 빈 집에 누군가 이사온다는 얘길 들었을 때 부터 흥미로웠겠지. 꽤 큰 땅이지만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된 곳인데다가 거기 살던 할아버지의 손주라는 말까지 나오니 마을 내에선 한동안 이슈였을듯. 저녁에 종종 조지랑 에블린이 그 집 살던 할아버지 얘기를 하며 좋은 사람이었으니 손주도 착한 애일거라며 알렉스한테도 또래일테니 잘 지내라는 얘기도 하겠지. 알렉스는 처음엔 도시에서 유령 나올 것 같은 집 (그것도 완전 구석진 시골)에 이사오는 젊은 사람을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어딜가도 그 얘기가 나오니 누군지 궁금해질 것임. 그 애가 여자애라는 걸 들었을 땐 예쁘려나? 그래도 헤일리 정도는 아니겠지.... 이랬을 듯.
날이 지날수록 소문은 사그라지고, 날은 점점 풀리겠지. 알렉스의 호기심도 잠잠해질 무렵 진짜로 그 집에 젊은 여자가 이사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 알렉스는 이제 밖에서 운동할 수 있겠다는 핑계로 매일 집 밖에 나와 그 사람이 언제 지나가나 궁금해 함. 하지만 좀 처럼 근처도 안 지나가니 내가 돌아다녀야 되나... 고민하는데 저 멀리서 못보던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어. 자신을 발견하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게 웃겼지만 소리내서 웃진 않았어. 깔끔한 차림이었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이 몇 살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어. 혼자 이사온 걸 보면 분명 성인인 것 같은데... 알렉스는 스스럼 없이 인사를 건네며 자신을 허니라 소개하는 농부를 보며 귀엽다 생각하겠지. 짧은 대화를 나누고 뒤돌아가는 허니를 보며 순간 자기가 왜 귀엽다 생각했는지 의문을 품었어. 자신한텐 마을 최고의 미인인 헤일리가 있는데 말이지..
종종 집에 간단한 간식이나 과일, 야채 같은 걸 들고오는 농부를 보며 알렉스는 왜 자꾸 집에 찾아오지? 의문을 품다가 설마 나 보러? 라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 꽤 인기 있었으니 나한테 호감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겠지. 하루는 알렉스가 너 왜 자꾸 우리집에 찾아와? 하고 물어보는데 그냥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올 때 마다 종종 구워주시는 쿠키가 맛있어서? 무엇보다 두 분 다 좋은 분들이잖아~ 너도 잘해드려 ㅋㅋ라고 대답해서 김이 팍 식겠지ㅋㅋ 오해했다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알렉스 귀가 빨개지는 걸 본 농부는 놀릴까 하다가 그냥 넘어가겠지. 놀렸다간 쿠키 먹으러 놀러오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ㅋㅋ
알렉스는 그 날 이후로도 종종 놀러오는 농부가 처음엔 보기 민망했지만 여전히 전처럼 대하는 농부의 태도에 점점 자신도 편안함을 느끼게 되겠지. 헤일리와 자신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일반적인 친구랑은 달라서 그렇게 편하진 않았거든. 농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얘기하더라도 다 이해해 줄 것 같았어. 진짜 친구같은 느낌... 과거의 기억을 잊으려고 시작한 운동도 사실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못했기 때문에 정말로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절실했던 알렉스는 집 앞의 더스티에게 얘기하다 농부에게 들키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 지얘기해주겠지. 자신의 얘기에 진심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농부에게 알렉스는 완전히 기대게 될 것 같다. 처음으로 마을 내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큰 의지가 되겠지.
알렉스는 농부를 그저 친구라고 생각을 했는데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데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 마을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농부를 보며 처음엔 그래도 진짜 마음을 나눈 친구는 나뿐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자신 말고도 친구가 많다는 걸 깨닫자 마음이 묘하게 불편해졌어. 그러던 어느 여름 밤, 잠이 안와서 밖에 잠깐 나와있는데 주점에서 샘과 함께 나오는 농부를 보게 되겠지. 많이 취했어? 라고 묻는 샘에게 아니아니, 나 집에 혼자서 갈 수 있어~ 나 한 잔 밖에 안 마셨어... 하는데 데려다 주겠다는 샘의 눈빛이 딱 봐도 농부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았어. 정말 걱정스러워하면서도 휘청이다 자신에게 살짝 기댄 농부를 보며 살짝 상기되어 있었거든. 어둠속에 숨어있는 자신을 발견한 샘이 슬쩍 보고는 모른척하고 농부를 챙기겠지. 멀어지는 둘의 모습을 보며 만약 샘이 아니라 나였다면... 나에게 저렇게 기댔다면... 이런 생각을 하자 잠은 점점 더 달아나고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어.
농부를 바라보던 샘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어. 샘이 정말로 허니를 좋아하는 거라면... 허니랑 나는어떻게 되는거지? 그래도 친구로 지낼 수 있겠지. 혹시 샘이랑 사귀게 된 건 아니겠지. 고등학생 땐 파티 다음날 종종 커플이 생기곤 했으니까. 사실 둘이 사귀게 됐다 해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어.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 도서관 옆 노점에 앉아있는데, 평소처럼 헤일리가 찾아오겠지. 안녕! 알렉스! 하고 꽃처럼 환하게 웃는 헤일리를 보면서도 농부와 샘에 대한 생각이 멈추질 않았어. 자신의 옆에서 조잘조잘대던 헤일리가 사뭇 다른 알렉스의 모습을 눈치채고 너 무슨생각해? 내 얘기 안들었지? 하고 묻자 퍼뜩 놀란 알렉스가 아! 어.. 어. 하고 어버버 대자 헤일리가 뭐야~ 나 오늘 갈래! 재미없어! 하고 자리를 뜨는대도 알렉스는 다른 생각만 하고 있겠지. 멀어져가던 헤일리가 허니! 하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든 알렉스가 그 쪽을 보는데 헐렁한 여름옷을 입은 농부가 눈에 들어왔어. 햇볕이 뜨거운지 밀집모자까지 꺼내 쓰고 손 부채질까지 하는 걸 보자 귀엽다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까지 했던 생각들이 전부 머릿속에서 지워졌어. 알렉스는 멍하니 농부를 바라보다 가까워지는 걸 보고 딴 데 보는 척을 하겠지. 나 아이스크림 하나만 줘. 진짜 너무 덥네~ 하는 말에 알렉스는 사실 그냥 주고 싶었지만 농부가 그닥 좋아하지 않을거란 걸 알기에 늘 그래왔던 것 처럼 돈을 받고 아이스크림을 건네줬어. 살짝 닿은 손가락에 온 신경이 쏠리자 얼굴에서 열이나기 시작했어. 자신의 얼굴을 본 듯, 너 얼굴 빨개~ 너도 덥지? 하고 묻는 농부에게 어, 어.. 하고 바보처럼 대답하자 농부가 파는건데 하나 그냥 먹는 건 좀 그런가? 하고 웃더니 아까처럼 돈을 한 번 더 건네겠지. 하나 더 먹으려고? 하고 묻자 농부는 아니. 너 먹으라고. 내가 사주는거야~ 하고 웃는데 사실 하나 정도는 먹어도 되긴 하지만, 농부와 손끝이라도 한 번 더 닿고 싶어서 고마워. 하고 받았어. 농부가 너 먹는 거 까지 보고갈게~ 그냥 챙기면 안되니까! 하고 웃자 알렉스도 아이스크림 하나 먹음. 좋아. 좋아~ 그럼 나 간다! 많이 팔아~ 하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손 끝에 닿았던 감촉을 떠올리던 알렉스는 생각했어. 나, 어쩌면 허니를...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알렉스는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섣불리 말하기가 어려웠어. 고등학생 때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쿼터백인 자신의 여자친구가 누가 될 지는 모두가 알고있었고, 누가 먼저 사귀자하던 서로가 거절하는 법이 없었어. 서로에게 진짜 마음이 있었다기 보단 그저 학교의 룰에 맞춰서 사귀는 관계였거든. 하지만 사귀는 사이이니 데이트도 했고, 적당히 진도도 나갔어. 알렉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사랑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고 하나의 오락정도였어. 자신의 과거들을 잊기에도 딱 좋았지. 자신을 우러러보는 학생들과 미모의 여자친구. 자신의 앞날에 괴로운 거라곤 하나도 없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는... 교내에선 자신이 최고였지만 막상 선수로 전향하려하니 도무지 쉽지가 않았어. 갑자기 가로막힌 벽 때문에 알렉스의 마음속에 있던 것들이 하나, 둘 씩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쏟아지는 상실감과 무기력함에 빠지게 됨. 알렉스는 자신의 기억들을 가려주던 운동에 다시 매진하기로 하고, (사실 될 지 안 될지도 모르지만) 선수의 꿈을 갖고있는 척하며 지내기로 한거야. 그러던 중 농부가 앞에 나타났고 마음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어.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빠진 알렉스는 한 번 깨달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제대로 된 고백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농부에게 다가가기가 두려웠어. 농부는 그런 자신을 아는 지 모르는지 여전히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자신을 대했어.
기온이 점점 서늘해지고, 남은 아이스크림이 다 팔리면 이제 올해 장사도 접어야겠네. 하며 다리 쪽을 바라보던 알렉스가 등 뒤에서 알렉스, 안녕! 하는 소리에 뒤돌아봤어. 어떻게 저기서 나타났지? 도서관이라도 갔다왔나? 하고 생각하는데 너, 내가 저기서 나타나서 놀랐지? 하고 웃는 걸 보며 응. 하고 대답한 알렉스에게 농부는 이거 너한테만 알려주는건데...하고 가까이 다가 옴. 숨이 닿을 것 처럼 가까워지자 입을 연 농부가 저기 도서관 뒤에있는 광차. 오늘부터 운행된다? 아직 아무도 몰라! 하더니 신기하지? 하고 웃었어. 저거 타면 이제 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엄청 빨리 올 수 있다고~ 버스정류장이랑 광산이랑 다 연결되어있어! 하고 말하는 걸 듣던 알렉스가 광산? 하고 되묻겠지. 순간 응! 하고 대답하던 농부가 아차차.. 하자 알렉스는 농부에게 화를 냈어. 너, 광산이 어떤 곳인 줄 알고 가는거야? 하고 묻자 농부는 그게... 농사일 만으로는 돈이 안 되는 걸 어떡해...하며 눈을 피했어. 알렉스는 농부가 광산에 들어가는 게 싫었지만, 자신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 할 수가 없었어. 많이 위험한 곳이니까... 다치지마. 사람들이 안 가는데엔 이유가 있어. 하며 농부를 걱정스런 눈으로 보자 농부가 걱정말라며 아~! 덥다. 아이스크림이나 줘! 하고 말을 돌렸어. 알렉스는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며 농부가 건네는 돈을 거절했어. 오늘은 그냥 가져가. 조만간 아이스크림 장사는 접을거거든. 하자 농부가 이제 안팔아? 하고 아쉬워하자 남은 거 팔면 끝이야 내년 여름에 와. 하겠지. 농부는 알았어. 그럼 잘 먹을게! 고마워. 하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겠지. 알렉스는 처음 봤을 때 보다 살이 빠지고, 그을린 농부를 보며 농사 일은 할만해? 하고 물었어. 허니가 아니.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 나 살 탄 거 보이지? 여기 잘 보면 주근깨 같은 것도 생겼다? 선크림 발라도 소용 없어~ 하며 조잘댔어. 그래도 도시에서 회사 다닐 때 보단 낫긴해. 금요일 마다 친구들이랑 주점에서 노는 것도 좋고... 까지 말하자 알렉스는 샘이 떠올랐어. 농부는 그런 알렉스의 속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샘에대한 얘기를 꺼냈어. 샘이랑 세바스찬, 걔네는 거기 당구대가 있어서 오는 것 같아. 가면 매번 당구만 치고 있더라고? 술도 거의 안 마시는데 그냥 모이는 건가봐...처음 갔을 때 애비게일이랑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한 적이 있는데.. 샘이 졌어. 나는 샘한테 걸었는데! 알고보니 세바스찬이 엄청 잘하더라.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하고 말하는 걸 듣던 알렉스는 자기도 모르게 샘이랑 친해? 하고 농부에게 물어봤어. 훅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농부는 응. 친하지~ 걔 되게 재밌는 애야. 성격도 좋고... 라며 샘을 칭찬했어. 알렉스는 샘을 떠올리는 농부를 보다가 이번이 아니면 못 물어볼 것 같아서 속으로 숨을 크게 들이키고 물어봤어. 허니, 너... 샘이랑 사귀어? 질문에 놀란 농부가 씩 웃으며 글쎄? 하고 대답을 얼버무렸어. 알렉스가 전전긍긍하는 걸 본 농부는 알렉스. 하고 진지하게 부르더니 나 좋아하지? 하고 물어봄. 얼굴이 달아오른 알렉스는 사람 가지고 놀리지마. 하며 얼굴을 홱 돌렸어. 내내 매대 건너편에 있다가 처음으로 안쪽으로 들어온 농부가 알렉스를 보며 나,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으면 안돼? 하고 물었어. 장난기 가득한 농부의 얼굴을 보던 알렉스가 네 맘대로 해... 하자 농부가 까치발 들고 알렉스에게 입맞추면 좋겠다.
자신에게 관심 없는 줄 알았던 농부랑 마음이 통했다는 걸 알게 된 알렉스는 이런 감정과 관계는 완전히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 농부가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다른 이들에겐 이 관계를 비밀로 하고싶어하는 것 같아서 알렉스는 집에 직접 찾아가지도 못하고 종종 선물을 동봉한 편지를 보냈어. 농부는 자신을 대할 때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거든. 날이 추워졌는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지, 혹시라도 광산에서 무리하다 다치면 어떡하지... 걱정하다가도 항상 씩씩한 농부를 보면 마음이 놓였어.
농부가 주점에 간다는 금요일 밤, 혹시라도 취해서 나오면 집에 데려다줘야지 ㅎㅎ 하는 마음에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데, 오늘도 샘과 같이 나오는 농부를 보며 질투하겠지. 나랑 만나면서 왜 다른 남자랑...내가 주점을 가야하나?하고 고민할듯. 평소보다 더 마셨는지, 샘에게 기대어있던 농부가 샘이 데려다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알렉스는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둘을 몰래 뒤쫓았어. 고요한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집 앞까지 데려다 준 샘에게 농부가 바람 쐬고 싶어. 속이 안좋아.. 하자 샘이 너무 많이 마셨어. 오늘은 왜 그렇게 달린거야? 하고 집 앞계단에 같이 걸터앉겠지. 대답없이 바람쐬며 멍하니 농장을 바라보는 농부에게 샘이 우리 사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해도 돼? 하겠지. 농부가 응. 특별하지. 우리는. 하고 말하는 것 까지 들은 알렉스가 한 대 맞은 것 처럼 둘을 바라봤어. 그럼 나랑 키스해줘. 하는 샘을 거절하지 않는 농부를 본 알렉스의 속이 울렁거렸어.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한걸까? 그 때의 키스는 뭐였지? 알렉스는 혼란스러워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
알렉스가 다 보고있었다는 걸 알고있던 농부는 그가 뒤돌아서 떠나자마자 샘 끌어안고 더 진하게 키스하면 좋겠다..
알렉스너붕붕샘
별듀
알렉스는 마을에서 동 떨어진 빈 집에 누군가 이사온다는 얘길 들었을 때 부터 흥미로웠겠지. 꽤 큰 땅이지만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된 곳인데다가 거기 살던 할아버지의 손주라는 말까지 나오니 마을 내에선 한동안 이슈였을듯. 저녁에 종종 조지랑 에블린이 그 집 살던 할아버지 얘기를 하며 좋은 사람이었으니 손주도 착한 애일거라며 알렉스한테도 또래일테니 잘 지내라는 얘기도 하겠지. 알렉스는 처음엔 도시에서 유령 나올 것 같은 집 (그것도 완전 구석진 시골)에 이사오는 젊은 사람을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어딜가도 그 얘기가 나오니 누군지 궁금해질 것임. 그 애가 여자애라는 걸 들었을 땐 예쁘려나? 그래도 헤일리 정도는 아니겠지.... 이랬을 듯.
날이 지날수록 소문은 사그라지고, 날은 점점 풀리겠지. 알렉스의 호기심도 잠잠해질 무렵 진짜로 그 집에 젊은 여자가 이사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 알렉스는 이제 밖에서 운동할 수 있겠다는 핑계로 매일 집 밖에 나와 그 사람이 언제 지나가나 궁금해 함. 하지만 좀 처럼 근처도 안 지나가니 내가 돌아다녀야 되나... 고민하는데 저 멀리서 못보던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어. 자신을 발견하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게 웃겼지만 소리내서 웃진 않았어. 깔끔한 차림이었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이 몇 살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어. 혼자 이사온 걸 보면 분명 성인인 것 같은데... 알렉스는 스스럼 없이 인사를 건네며 자신을 허니라 소개하는 농부를 보며 귀엽다 생각하겠지. 짧은 대화를 나누고 뒤돌아가는 허니를 보며 순간 자기가 왜 귀엽다 생각했는지 의문을 품었어. 자신한텐 마을 최고의 미인인 헤일리가 있는데 말이지..
종종 집에 간단한 간식이나 과일, 야채 같은 걸 들고오는 농부를 보며 알렉스는 왜 자꾸 집에 찾아오지? 의문을 품다가 설마 나 보러? 라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 꽤 인기 있었으니 나한테 호감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겠지. 하루는 알렉스가 너 왜 자꾸 우리집에 찾아와? 하고 물어보는데 그냥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올 때 마다 종종 구워주시는 쿠키가 맛있어서? 무엇보다 두 분 다 좋은 분들이잖아~ 너도 잘해드려 ㅋㅋ라고 대답해서 김이 팍 식겠지ㅋㅋ 오해했다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알렉스 귀가 빨개지는 걸 본 농부는 놀릴까 하다가 그냥 넘어가겠지. 놀렸다간 쿠키 먹으러 놀러오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ㅋㅋ
알렉스는 그 날 이후로도 종종 놀러오는 농부가 처음엔 보기 민망했지만 여전히 전처럼 대하는 농부의 태도에 점점 자신도 편안함을 느끼게 되겠지. 헤일리와 자신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일반적인 친구랑은 달라서 그렇게 편하진 않았거든. 농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얘기하더라도 다 이해해 줄 것 같았어. 진짜 친구같은 느낌... 과거의 기억을 잊으려고 시작한 운동도 사실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못했기 때문에 정말로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절실했던 알렉스는 집 앞의 더스티에게 얘기하다 농부에게 들키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 지얘기해주겠지. 자신의 얘기에 진심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농부에게 알렉스는 완전히 기대게 될 것 같다. 처음으로 마을 내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큰 의지가 되겠지.
알렉스는 농부를 그저 친구라고 생각을 했는데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데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 마을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농부를 보며 처음엔 그래도 진짜 마음을 나눈 친구는 나뿐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자신 말고도 친구가 많다는 걸 깨닫자 마음이 묘하게 불편해졌어. 그러던 어느 여름 밤, 잠이 안와서 밖에 잠깐 나와있는데 주점에서 샘과 함께 나오는 농부를 보게 되겠지. 많이 취했어? 라고 묻는 샘에게 아니아니, 나 집에 혼자서 갈 수 있어~ 나 한 잔 밖에 안 마셨어... 하는데 데려다 주겠다는 샘의 눈빛이 딱 봐도 농부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았어. 정말 걱정스러워하면서도 휘청이다 자신에게 살짝 기댄 농부를 보며 살짝 상기되어 있었거든. 어둠속에 숨어있는 자신을 발견한 샘이 슬쩍 보고는 모른척하고 농부를 챙기겠지. 멀어지는 둘의 모습을 보며 만약 샘이 아니라 나였다면... 나에게 저렇게 기댔다면... 이런 생각을 하자 잠은 점점 더 달아나고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어.
농부를 바라보던 샘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어. 샘이 정말로 허니를 좋아하는 거라면... 허니랑 나는어떻게 되는거지? 그래도 친구로 지낼 수 있겠지. 혹시 샘이랑 사귀게 된 건 아니겠지. 고등학생 땐 파티 다음날 종종 커플이 생기곤 했으니까. 사실 둘이 사귀게 됐다 해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어.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 도서관 옆 노점에 앉아있는데, 평소처럼 헤일리가 찾아오겠지. 안녕! 알렉스! 하고 꽃처럼 환하게 웃는 헤일리를 보면서도 농부와 샘에 대한 생각이 멈추질 않았어. 자신의 옆에서 조잘조잘대던 헤일리가 사뭇 다른 알렉스의 모습을 눈치채고 너 무슨생각해? 내 얘기 안들었지? 하고 묻자 퍼뜩 놀란 알렉스가 아! 어.. 어. 하고 어버버 대자 헤일리가 뭐야~ 나 오늘 갈래! 재미없어! 하고 자리를 뜨는대도 알렉스는 다른 생각만 하고 있겠지. 멀어져가던 헤일리가 허니! 하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든 알렉스가 그 쪽을 보는데 헐렁한 여름옷을 입은 농부가 눈에 들어왔어. 햇볕이 뜨거운지 밀집모자까지 꺼내 쓰고 손 부채질까지 하는 걸 보자 귀엽다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까지 했던 생각들이 전부 머릿속에서 지워졌어. 알렉스는 멍하니 농부를 바라보다 가까워지는 걸 보고 딴 데 보는 척을 하겠지. 나 아이스크림 하나만 줘. 진짜 너무 덥네~ 하는 말에 알렉스는 사실 그냥 주고 싶었지만 농부가 그닥 좋아하지 않을거란 걸 알기에 늘 그래왔던 것 처럼 돈을 받고 아이스크림을 건네줬어. 살짝 닿은 손가락에 온 신경이 쏠리자 얼굴에서 열이나기 시작했어. 자신의 얼굴을 본 듯, 너 얼굴 빨개~ 너도 덥지? 하고 묻는 농부에게 어, 어.. 하고 바보처럼 대답하자 농부가 파는건데 하나 그냥 먹는 건 좀 그런가? 하고 웃더니 아까처럼 돈을 한 번 더 건네겠지. 하나 더 먹으려고? 하고 묻자 농부는 아니. 너 먹으라고. 내가 사주는거야~ 하고 웃는데 사실 하나 정도는 먹어도 되긴 하지만, 농부와 손끝이라도 한 번 더 닿고 싶어서 고마워. 하고 받았어. 농부가 너 먹는 거 까지 보고갈게~ 그냥 챙기면 안되니까! 하고 웃자 알렉스도 아이스크림 하나 먹음. 좋아. 좋아~ 그럼 나 간다! 많이 팔아~ 하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손 끝에 닿았던 감촉을 떠올리던 알렉스는 생각했어. 나, 어쩌면 허니를...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알렉스는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섣불리 말하기가 어려웠어. 고등학생 때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쿼터백인 자신의 여자친구가 누가 될 지는 모두가 알고있었고, 누가 먼저 사귀자하던 서로가 거절하는 법이 없었어. 서로에게 진짜 마음이 있었다기 보단 그저 학교의 룰에 맞춰서 사귀는 관계였거든. 하지만 사귀는 사이이니 데이트도 했고, 적당히 진도도 나갔어. 알렉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사랑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고 하나의 오락정도였어. 자신의 과거들을 잊기에도 딱 좋았지. 자신을 우러러보는 학생들과 미모의 여자친구. 자신의 앞날에 괴로운 거라곤 하나도 없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는... 교내에선 자신이 최고였지만 막상 선수로 전향하려하니 도무지 쉽지가 않았어. 갑자기 가로막힌 벽 때문에 알렉스의 마음속에 있던 것들이 하나, 둘 씩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쏟아지는 상실감과 무기력함에 빠지게 됨. 알렉스는 자신의 기억들을 가려주던 운동에 다시 매진하기로 하고, (사실 될 지 안 될지도 모르지만) 선수의 꿈을 갖고있는 척하며 지내기로 한거야. 그러던 중 농부가 앞에 나타났고 마음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어.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빠진 알렉스는 한 번 깨달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제대로 된 고백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농부에게 다가가기가 두려웠어. 농부는 그런 자신을 아는 지 모르는지 여전히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자신을 대했어.
기온이 점점 서늘해지고, 남은 아이스크림이 다 팔리면 이제 올해 장사도 접어야겠네. 하며 다리 쪽을 바라보던 알렉스가 등 뒤에서 알렉스, 안녕! 하는 소리에 뒤돌아봤어. 어떻게 저기서 나타났지? 도서관이라도 갔다왔나? 하고 생각하는데 너, 내가 저기서 나타나서 놀랐지? 하고 웃는 걸 보며 응. 하고 대답한 알렉스에게 농부는 이거 너한테만 알려주는건데...하고 가까이 다가 옴. 숨이 닿을 것 처럼 가까워지자 입을 연 농부가 저기 도서관 뒤에있는 광차. 오늘부터 운행된다? 아직 아무도 몰라! 하더니 신기하지? 하고 웃었어. 저거 타면 이제 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엄청 빨리 올 수 있다고~ 버스정류장이랑 광산이랑 다 연결되어있어! 하고 말하는 걸 듣던 알렉스가 광산? 하고 되묻겠지. 순간 응! 하고 대답하던 농부가 아차차.. 하자 알렉스는 농부에게 화를 냈어. 너, 광산이 어떤 곳인 줄 알고 가는거야? 하고 묻자 농부는 그게... 농사일 만으로는 돈이 안 되는 걸 어떡해...하며 눈을 피했어. 알렉스는 농부가 광산에 들어가는 게 싫었지만, 자신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 할 수가 없었어. 많이 위험한 곳이니까... 다치지마. 사람들이 안 가는데엔 이유가 있어. 하며 농부를 걱정스런 눈으로 보자 농부가 걱정말라며 아~! 덥다. 아이스크림이나 줘! 하고 말을 돌렸어. 알렉스는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며 농부가 건네는 돈을 거절했어. 오늘은 그냥 가져가. 조만간 아이스크림 장사는 접을거거든. 하자 농부가 이제 안팔아? 하고 아쉬워하자 남은 거 팔면 끝이야 내년 여름에 와. 하겠지. 농부는 알았어. 그럼 잘 먹을게! 고마워. 하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겠지. 알렉스는 처음 봤을 때 보다 살이 빠지고, 그을린 농부를 보며 농사 일은 할만해? 하고 물었어. 허니가 아니.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 나 살 탄 거 보이지? 여기 잘 보면 주근깨 같은 것도 생겼다? 선크림 발라도 소용 없어~ 하며 조잘댔어. 그래도 도시에서 회사 다닐 때 보단 낫긴해. 금요일 마다 친구들이랑 주점에서 노는 것도 좋고... 까지 말하자 알렉스는 샘이 떠올랐어. 농부는 그런 알렉스의 속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샘에대한 얘기를 꺼냈어. 샘이랑 세바스찬, 걔네는 거기 당구대가 있어서 오는 것 같아. 가면 매번 당구만 치고 있더라고? 술도 거의 안 마시는데 그냥 모이는 건가봐...처음 갔을 때 애비게일이랑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한 적이 있는데.. 샘이 졌어. 나는 샘한테 걸었는데! 알고보니 세바스찬이 엄청 잘하더라.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하고 말하는 걸 듣던 알렉스는 자기도 모르게 샘이랑 친해? 하고 농부에게 물어봤어. 훅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농부는 응. 친하지~ 걔 되게 재밌는 애야. 성격도 좋고... 라며 샘을 칭찬했어. 알렉스는 샘을 떠올리는 농부를 보다가 이번이 아니면 못 물어볼 것 같아서 속으로 숨을 크게 들이키고 물어봤어. 허니, 너... 샘이랑 사귀어? 질문에 놀란 농부가 씩 웃으며 글쎄? 하고 대답을 얼버무렸어. 알렉스가 전전긍긍하는 걸 본 농부는 알렉스. 하고 진지하게 부르더니 나 좋아하지? 하고 물어봄. 얼굴이 달아오른 알렉스는 사람 가지고 놀리지마. 하며 얼굴을 홱 돌렸어. 내내 매대 건너편에 있다가 처음으로 안쪽으로 들어온 농부가 알렉스를 보며 나,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으면 안돼? 하고 물었어. 장난기 가득한 농부의 얼굴을 보던 알렉스가 네 맘대로 해... 하자 농부가 까치발 들고 알렉스에게 입맞추면 좋겠다.
자신에게 관심 없는 줄 알았던 농부랑 마음이 통했다는 걸 알게 된 알렉스는 이런 감정과 관계는 완전히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 농부가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다른 이들에겐 이 관계를 비밀로 하고싶어하는 것 같아서 알렉스는 집에 직접 찾아가지도 못하고 종종 선물을 동봉한 편지를 보냈어. 농부는 자신을 대할 때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거든. 날이 추워졌는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지, 혹시라도 광산에서 무리하다 다치면 어떡하지... 걱정하다가도 항상 씩씩한 농부를 보면 마음이 놓였어.
농부가 주점에 간다는 금요일 밤, 혹시라도 취해서 나오면 집에 데려다줘야지 ㅎㅎ 하는 마음에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데, 오늘도 샘과 같이 나오는 농부를 보며 질투하겠지. 나랑 만나면서 왜 다른 남자랑...내가 주점을 가야하나?하고 고민할듯. 평소보다 더 마셨는지, 샘에게 기대어있던 농부가 샘이 데려다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알렉스는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둘을 몰래 뒤쫓았어. 고요한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집 앞까지 데려다 준 샘에게 농부가 바람 쐬고 싶어. 속이 안좋아.. 하자 샘이 너무 많이 마셨어. 오늘은 왜 그렇게 달린거야? 하고 집 앞계단에 같이 걸터앉겠지. 대답없이 바람쐬며 멍하니 농장을 바라보는 농부에게 샘이 우리 사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해도 돼? 하겠지. 농부가 응. 특별하지. 우리는. 하고 말하는 것 까지 들은 알렉스가 한 대 맞은 것 처럼 둘을 바라봤어. 그럼 나랑 키스해줘. 하는 샘을 거절하지 않는 농부를 본 알렉스의 속이 울렁거렸어.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한걸까? 그 때의 키스는 뭐였지? 알렉스는 혼란스러워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
알렉스가 다 보고있었다는 걸 알고있던 농부는 그가 뒤돌아서 떠나자마자 샘 끌어안고 더 진하게 키스하면 좋겠다..
알렉스너붕붕샘
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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