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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7 00:05
태섭의 하루는 여전히 그랬듯 평화로웠음
부모님의 직장때문에 오키나와를 떠나 카나가와로 왔지만 잘 적응했고 형이 뚫어준 길을 그대로 따라 괜찮은 고등학교 농구부에서 제의도 들어왔음. 전 국가대표인 안현수 선수가 감독으로 있다는 북산으로 갈까 하다가 선수층이 얕은게 마음에 걸려 능남으로 갔음. 대학 진학을 건너뛰고 프로로 뛰고 있는 형은 바쁜지 연락이 힘들었지만 종종 편지가 왔음. 올해도 형아는 못온대요? 응 국가대표 선출때문에. 태섭은 아쉬운듯 케이크의 초콜릿 장식을 반으로 갈랐음. 전화 한 번 하지 목소리 잊어먹겠어. 능남에서 무리 없이 전국대회에 진출했고, 막 강해지기 시작한 팀이라 금방 떨어졌지만 내년 인터하이, 잘하면 올해 윈터컵에서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었음. 태섭이 헉헉대며 숨을 골랐음. 눈앞에는 산왕이 있었음. 더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운이 따라준 덕에 산왕과 붙어본 다음 돌아갈 수 있다니. 다음 번엔 이겨줘야지. 태섭이 손을 뻗자 같은 나이의 포워드가 악수를 했음. 수고했어 태섭아 다음 번에 또 보자. 태섭은 그가 마음에 들었음. 그런데 쟤 내 이름을 외웠던건가?
태섭의 일상은 평화로웠음. 윈터컵을 앞둔 훈련. 끌고다니는 스쿠터는 낡아서 중고로 내놔야겠다. 새로운 스쿠터를 살까? 집에 귀가하기 전 아라의 생일선물을 사기 위해 나온 번화가의 성인 파칭코에는 새빨간 머리의 양키를 중심으로 불량배 무리가 있었음. 쟤네 미성년자 아닌가. 알 바는 아니지.
막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무렵 태섭의 집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음. 몇 주 전 우연히 도쿄에 갔다 마침 잠시 여행중이던 우성과 번호를 교환했는데 그 뒤로 쭉 우성과 교류중이었음. 태섭아 나 미국에 가게됐어. 응. 그렇구나. 놀랍지 않았음. 왜이리 당연한 거 같지? 나도 곧 갈게. 태섭은 방금 그 말을 뱉어놓고 스스로 놀랐음. 미국에 가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우성과의 전화를 끊고 태섭은 전화기를 내려다보았음. 그러고보니 아라 생일인데 아버지와 준섭에게 전화 한 통이 없었음. 오늘도 바쁘대요? 저 멀리서 그렇다는 어머니의 대답이 들려왔음. 태섭이 수긍하며 괜히 액자가 가득 놓인 전화기 옆의 테이블을 둘러보았음.

어?

아라와 태섭의 사진
이건 어머니와 아라 태섭 셋이 여행에 간 거
이건 어머니와 아라
이건 .....

어른이 된 형은 어떻게 생겼더라?
아버지는?
그러고보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태섭이 비디오테이프를 뒤졌음. 어머니는 항상 태섭의 경기, 준섭의 경기를 전부 녹화해두었음. <송준섭 국대 선발전> 이라고 쓰인 테이프를 테이프플레이어에 넣었지만 TV화면은 먹통이었음.
태섭이 방으로 들어왔음. 걸려있는 능남 고등학교 유니폼. 7번. 그러고보니 우리팀에 누가누가 있었더라? 오히려 선명한건.. 태섭은 연습경기를 떠올렸음. 새빨간 유니폼을 입은..

쿵. 전원이 나간듯 태섭의 동공에 생기가 사라졌음.



....현실로 돌아오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요. 더 투약하면 ..
.......프로그램에는 이상이 없..
....
..태섭..
....섭아...

태섭아 왜 자꾸 깨어나려고 하는 거야?

깜빡.
태섭이 눈을 떴음. 평화로운 일상.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더라? 뇌에서 무언가 도려낸 느낌. 태섭이 눈 뜨길 기다렸다는 듯 전화 한 통이 걸려왔음. 여보세요? 어 우성아. 응. 응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