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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0 10:18
비가 주룩주룩 오던 어느 날 저녁

요 앞에 쪼끔만 걷고 오께!!!! 하고 우산 들고 우비도 입고 장화 신고 총총 걸어 나온 우성이

멀리 나가면 혼나는데...
그래도 오늘은 쪼금 더 멀리! 하고 씩씩하게 동네 탐방하는 우성이

어... 어...

동네 뒷산에 올라가는 길목

뭐지이...?

광철미사가 봤다면 아주 겁도 없다며 궁둥이를 팡팡 맞았을지도 모를일이지만
우리의 정우성은 아주 용감한 어린이니까 그 시꺼먼 물체를 향해서 도도도 걸어가는데

사람.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쓰러져 있는

사람

저기.. 저기요

우성이가 조심스레 불러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무슨 정신인지 가까이 다가가 이미 차가운 볼에 쪼끄만 손을 갖다 대어 보는데

그 순간
슬며시 떠진 눈



우성이가 얼른 입고 있던 우비를 벗어서 그 사람에게 덮어주고
잠깐만 있어요!!!! 광철 불러 오께!!!!!!

그 앞에 남자가 힘겹게 뜬 눈을 스르르 감을 때 얼른 뛰어가는 정우성

광철어어어러얼얼어!!!!!!!!!!!!!!!!!빨리 빨리!!!!!!!!!!!!!!!!!!!!

광철 손 붙잡고 다시 그곳으로 뛰어가는데

광철도 그 사람을 보자마자
119
119 불러야지

그러자 그 남자가 겨우 손을 뻗어 광철을 잡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한 광철이

우리...집으로 갑시다

건장한 덩치에 물까지 한껏 젖어 엄청 무겁지만 지금 아들이 보고 있다.
광철 그 남자를 겨우 업고 집으로 오는데

집에 있던 미사도 놀라 자빠진 건 마찬가지

일단 그 남자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빗물부터 닦아 주려는데

설마... 간첩은 아니겠지?
간첩이래도 도... 와줬는데 뭐 해치기야 하겠어 애도 있는데
그...치?

엄마 아빠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그 사람을 쳐다만 보자 우성이가

뭐해! 하며 수건을 한 움큼 들고 오는데

우성아 들어가 있어 엄마랑 아빠가 할게

왜애 나도!

미사가 얼른 우성이 번쩍들고 방에다 눕혀놓고는
일찍 자야 내일 이 형아한테 궁금한 것도 물어보지? 하며 우성이 달래고 재우고 나오겠지

광철이 젖은 옷을 벗기고 물 닦고 자기 옷이라도 갈아입혀주려는데

가슴팍에 있는 커다란 문신

간첩...보단 조폭이 낫나...?

그리고 옆구리에 나 있는 상처와 벌겋게 새어 나오는 피에 놀라 급하게 응급치료를 하는데
꾸욱 하고 지혈하자 눈 번쩍 뜨고 일어난 그 남자

헙.

어휴... 정신은 좀 들어요?
119 부를랬는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예... 감사합니다.

...
죄송합니다

그 금방

조금만 더 있어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우리가 그쪽에게 도움이 되었는 거 같은데
그쪽이 어떤 사람이든...

우리를 해치지 않으면 그만이죠?


...




상처가 생각보다 깊지 않아 광철과 미사가 붙어서 치료를 마저 하고 옷도 갈아입고
밥까지 한술 뜨는

근데 그래도 우리 집에 며칠은 있어야 하실 텐데
이름 정도는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정광철입니다.


...

이 ... 명헌입니다.


그렇게 이명헌 밥 얻어먹고 잠도 자고

형아~ 나는 우성이야 정우성 하고 옆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 우성이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동네 의원에서 치료도 마저 받고

선생님 대충 눈치 깠지?

내 평생 이렇게 시골에서 의원하면서 이런 영화 같은 순간. 기다렸다고

킥킥 웃으며 그 시골의사가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하자

표정 없던 이명헌도 픽 하고 한번 웃고

재밌는 동네에용



광철의 헐렁한 티
미사가 시장에서 사 온 몸뻬 바지 입고

거실에 누워서 티비보는 이명헌

엉덩이 벅벅 긁다가
나 너무 적응력 좋은 거 아닌가용?

이 집에 온 지 3일은 됐나
하루반은 누워있었고
이틀째 아침엔 멍하게 앉아있었고
점심 무렵 병원 가고
저녁 얻어먹고

나 이제 다 나은 거 같은데용

하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벌떡 몸 일으켜 앉는데

일어났는지 방문 열고 뽈뽈 달려와 명헌이 무릎 위에 앉는 우성이

어머 우성아 아직 형 아퍼어
무거워 내려와

하는 엄마 목소린 들리지도 않는지 형아 진짜 우성이 내려가? 하는 목소리가 눈에 다 담겨 있는데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어떻게 애를 내려놓아

괜찮아용

동그란 애를 꼭 안고

나도 이런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적이 있었지용

그날 저녁
이제 몸이 다 나은 거 같은데...
말 꺼내는 이명헌에

지금 여기서 나가면 어디 갈 곳은... 있고요?
정확한 사정 말 안 해줘도 되니까

여기 있어요


씩 웃는 광철 얼굴에 아 저 사람도 사연 있구나 직감적으로 느끼는 이명헌

에라 모르겠다
시골집에 궁댕이 눌러앉아 사는 이명헌

일주일째 됐을 땐 우성이 손잡고 동네 산책도 하고
대충 친척이에용~ 둘러대고

한 달쯤 됐을 땐 이 시골에 키 180 건장한 청년 등장이면 얼마나 좋아
일도 돕고 방앗간에 쌀 나르러 갔다가 앉아서 거의 한 가마니째 가래떡 뽑아 먹고 있기도 하고

따끈한 가래떡 들고 우성이 줄 거라며 전력질주해서 집에 가는데
아직 따뜻한 거 애 입에 탁 물리는 순간

내가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였나 싶겠지

형아 고마어~ 하고는 따뜻한 입술로 볼에 쪽 하고 뽀뽀해 주는 우성이

갑자기 서울에 계신 우성이 할머니가 아프셔서 광철미사가 명헌이한테 우리. 이정도 믿음은 있죠?
하고 우성이 덜렁 맡겨놓고 서울 간 날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 쓸고
애 먹일 밥 차려놓고

아가 이제 일어나서 밥먹자! 하고는 우성이 무릎 위에 앉혀놓고 빠삭 구운 쏘시지 콕콕 집어서 입에 넣어주고
밥 다 먹고는 손잡고 김 씨 아저씨 과수원도 구경 갔다가 저기 큰 논도 구경 갔다가

형아가 우리 집에 와서 난 너무 좋아!
형도 우성이가 형아 데리고 와줘서 너무 좋아용~


이 시골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어디론가 전화를 한 통 거는데

어 낙수야

살아...있었냐 이 새끼야 진짜아!!!!!!!!!!!!!!!!!!

진짜 그 깡패 새끼들이 이명헌을 안 찾은 게 아니라 못 찾은 거라
서울에선 진작에 장례식까지 끝낸 이명헌인데

한참있다 걸려온 전화
그렇게 이명헌 그렇게 만든 상대 조직은 이미 처리 끝난 지가 한참이고 살아있는 꼬라지 보러 우르르 내려오는
산왕파 식구들

그래도 한 명은 사무실 지켜야 한다며 성구 빼고
낙수 현철이 동오 오는데


저기 꽃무늬 몸뻬 바지 입고 새마을 티셔츠 입고 머리에 새참 지고 가는

...


헌아!!!!!!!!!!! 빨리와라

삐뇽





저거 우리 이 실장이냐



와 하필 김장이래
건장한 남자 셋 추가에

다들 앞치마 입고 빨간 다라이에 앞에 둘러앉아 김치 속 채우고 있음

예? 이거 어디로?
어깨에 몇 포대씩 짊어지고 턱턱 옮기고

이명헌 보러 왔다가 사람 써는 것보다 더 힘들게 일하고 지금 평상에 누워서 코 골며 자는 중

어이 총각들!!!!!!!! 보쌈 먹어!!!!!!!!!!!!

그 소리에 다들 기어 나와서 고기랑 김치랑 냠냠 먹고 막걸리도 얻어먹고 마을 회관에서 배까고 잔다


야 우리... 여기로 귀농할까...

시꺼먼 깡패 총각들 후루룩 감아버린 농촌의 맛.

그리곤 명헌이 형 팔 베고 귀에 작게
형아 나 크면 나랑 결혼해 하고 속삭이는 우성이

그럴까용?
형아 여기 계속 살까용~ 하고 우성이 고기 많이 먹어서 뽈록 해진 배 쓰다듬으며 스르륵 잠드는 이명헌



10년뒤.
마을 청년회장 출마하는 이명헌

옆에서 선거 유세하는 최동오 신현철

시장에 장 보러 간 정성구 김낙수 까지



형아 멋있어!!!!!!!!!!!!!!!!!!!!!!!!!!!!!!!!!!!! 외치는 애기 남친 정우성




얘들아
귀농을 해라

약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