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유곽이었으면 좋겠다. 우성이도 여기 드나들던 사모 고객이 몰래 버리고 간 거였으면. 아버지는 뭐 여기 있는 남창 중 한명이겠지만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고 어머니는 당연히 누군지 모르고. 그래도 꽤 장사 잘 되는 규모 큰 유곽이라 아기 하나 다같이 기르는건 어려운 일 아니었을듯. 황폐하고 외로운 남창촌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떤 은은한 낙이 되었겠지. 학교도 보내주고 오늘은 뭘 배웠냐 오며가며 묻기도 하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오라 하기도 하고 최대한 평범한 삶을 살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성이가 열일곱 살쯤 자랐을 때 불쌍하게 여긴 주인장이 우성이는 남창일 안시키고 물 긷고 장작 패고 빨래하고 허드렛일하는 머슴으로 뒀으면 좋겠다.


그렇게 출신에 비해 딱히 불행하지 않게 살고 있던 우성이 앞에 어느 날 젊고 불행한 귀족 자제 한 명이 나타나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게 보고싶다.

자제의 이름은 아키타 영사의 아들 이씨 명헌이었는데, 오래 전부터 맺어지기로 약속한 사모하는 정혼자가 있었는데 그가 사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임. 실연의 고통과 슬픔에 젖어 있던 명헌을 보고 친구들이 마음이라도 달래라고 우성이 있는 유곽에 데려온 것이었음. 누가 봐도 억지로 끌려온 모양새로 앉아 있는 단정한 도련님의 얼굴에는 말로 하지 않아도 불쾌한 심기가 풀풀 풍김. 우성은 별 생각 없이 빗자루를 잡고 마당 청소에나 신경을 집중했음. 유곽에서 나고 자란 우성은 그런 손님들을 더러 본 적 있었겠지. 이딴 더러운 곳에서 천한 남창들에게 몸을 안겨 봤자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겠어? 진심도 아닌 행위에서... 그 명헌이라는 도련님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 날 그 누구도 사지 않고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나가 버렸음. 그래도 보통 저렇게 떠난 손님들은 한 이틀 후엔 다시 돌아오곤 했음. 막상 돌아가 보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는 현실이 더 크게 자각되니까. 그간 별의별 꼴을 다 보고 살아온 우성은 처음 보는 도련님의 절절한 사연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아 그 뒤로 곧바로 명헌을 잊어버렸음.

과연 명헌은 사흘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났음.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슬퍼 보이는 얼굴이었음. 주인장이 도련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걸 보며 우성은 아무 생각 없이 찬장을 닦았음.


"오늘 자고 가실 건가요?"
".....용."


명헌이 대답했음. 우성은 그럼 그렇지 속으로 생각했음. 안 그런 사람을 못 봤거든 특히 실연당해서 온 사람들 중에는. 그럼 누구를 고르려나? 왠지 저런 타입은 나이 많은 형 같은 사람한테 안겨서 잔뜩 여기저기 사랑받고 조물조물 만져지고 쓰다듬어져야 나을 것 같은데. ㅇㅇ형? ㅁㅁ형? 아무래도 삼십대 경력자들이 좋겠지?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우성은 명헌과 주인장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음.


"......?"
"저, 도련님. 저 애는 그런 일을 안 합니다."
"그런가용."


지금 나 고른 건가...? 정우성 당황해서 찬장 닦던 걸레도 멈추고 이명헌 쳐다보는데 이명헌 고개 돌려 버림. 그러면 ㅇㅇ이로 하시렵니까? 요즘 젊은 아가씨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습니다. 편하신 대로 아무나 주세용. 명헌이 탁자 위에 꽤 큰 돈(우성이 흘끗 보기에도 시세보다 7할은 많이 보였음)을 올려놓고 일어섰음. 우성은 멍하니 명헌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음.

다음날 ㅇㅇ형이 부잣집 도련님과 자고 평소 받던 팁보다 5배를 더 받았다며 죄다 들리게 자랑을 했음. 자는 것도 처음엔 뻣뻣하더니 나중 가서는 꽤 색정적인 얼굴을 하더라고, 손님 안는 것 같지 않게 흥분이 되더라고 떠드는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성은 혼자 손톱을 깨물어 뜯었음. 우성은 주인장을 찾아갔음.


"아저씨."
"어, 우성아. 뭐 필요하니?"
"어제 그 도련님 말인데요. 이씨 명헌..."
"아, 그래. 너는 안 된다고 했으니 앞으론 말씀 안 하실 게다."
"제가 그냥 하면 안 될까요?"


우성의 말을 듣고 주인장이 인상을 찌푸렸음. 곧 엄한 목소리가 날아들었음.


"너는 그런 일 안 시킨다 하지 않았니. 이 장에 발 들이지 말고 청소나 해라."
"아저씨."
"어허! 안 돼! 일이 더 하고 싶으면 요리나 배우던지."
"그 도련님이 팁을 5배나 준다고 했단 말이에요! 처음에 저 골랐잖아요 저도 돈 받고 싶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떼를 쓰는 우성을 바라보던 주인장이 손을 내저으며 아이를 내보냈음.


"안 돼! 용돈이 모자라면 청소를 더 해! 그리고 그 도련님 다시 오실 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인장 말대로 명헌은 그 날 후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음. 딱 그 날 한번 남창과 몸을 섞고 인생에 후회라도 들었던 건지 정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음. 우성은 왜 그 자리에서 냉큼 알겠다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점점 더 아쉬워졌음. 자신이 매일매일 그 도련님 생각을 하고 있단 걸 알게 된 우성은 어느 날 몰래 유곽을 빠져나가 그 도련님의 집으로 가 보기로 함.

이렇게 바로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아키타 영사의 으리으리한 대저택 근처 길가로 들어서자마자 우성은 명헌을 만나게 되었음. 명헌은 잠시 어디로 출타를 다녀오는 길인지 매우 반듯한 옷을 입고 있었음. 명헌은 우성을 보고 살짝 표정을 굳혔음.


"너는..."
"절 기억하십니까?"
"그... 몸 안 파는 애. 뿅."


몸 안 파는 애라니... 우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음. 뚜렷한 용무 없이 단지 명헌을 보고 싶어 온 것이라 막상 얼굴을 마주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통 좋은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음.


"아, 뭐, 맞는데.. 그.."
"날 보러 온 것이냐뿅?"
"뿅은 뭐에요?"
"내가 너 대신 잔 이에게 돈을 많이 줘서 아쉽더냐뿅?"
"네?"


명헌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물었음. 우성은 당황해 말을 멈추었지만 이미 명헌은 등을 돌려 저택의 현관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음.


"자, 잠깐만요! 그, 그래서 온게 아닌데, 그, 그냥 저는, 그냥 자꾸..."


자꾸 생각이 나서....

명헌이 문을 닫고 들어간 현관 앞에서 우성이 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음. 하긴 실연당해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에게 무엇이 고와 보일까. 허구한 날 뻔한 치정싸움의 주인공들이 헤쳐모여 뺨 맞고 뺨 때리는 장면만 보고 살았는데.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담 오기만 해도 불쾌할 수도. 내게도 따귀를 올려붙이지 않은 게 다행인가... 우성이 울적하게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는데 뒤에서 현관문이 끼이이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남.


"....너 이름이 무엇이냐 뿅?"







그 다음날 명헌은 유곽으로 찾아감. 주인장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명헌을 맞았고 오늘 이런이런 애를 사시면 특별히 싸게 잘 해드리겠다며 아양을 떨었지만 명헌은 우성을 지목했음. 당황한 주인장이 저 애는 그런 거 하는 애가 아니라며 몇번 더 말해 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명헌이 돈을 두 배 세 배로 올려 얹었음. 우성은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었고 남창들은 뒤에서 저들끼리 무어라 수군거렸음.

우성은 결국 남창이 쓰는 옷과 수건과 바가지를 받아 명헌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음.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어쩌지 못한 열일곱살의 우성은 제 머리통보다 한 뼘이 작은, 이 단정한 이목구비의 도련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해서 얼굴을 훔치듯 쳐다보았음.


"네 시선이 너무 뜨거워서 내가 뭘 못 하겠다뿅."
"아...아, 네."


명헌은 문을 닫고 바로 바닥에 이불을 깔았음. 우성은 어쩔 줄 모르고 무릎을 꿇은 채 가만히 있었음.


"너 정말 이런거 안 하는구나뿅."
"네?"
"손님한테 이불 깔게 하면 되니 뿅. 넌 이걸로는 못 벌겠다."


우성의 얼굴이 빨개졌음. 명헌은 옷을 벗지 않고 그냥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베개를 베고 누웠음. 뭔가 편안하게 잠들려는 것 같은 모습에 우성은 또 당황했음. 이거 말 안해도 내가 이불 안으로 들어가서 옷 벗기고 그런저런 거 해줘야 하나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거 맞지 이거? 근데 나 하나도 모르는데 어떡하지.... 아침에 형들한테 좀 물어봤어야 했는데 아씨.... 조그만 머리통을 굴리느라 울상이 된 우성을 쳐다보던 명헌이 피식 웃었음.


"우성이라고 했지뿅."
"ㄴ...네."
"너 살아온 얘기나 좀 해주렴."
"네?"
"부담 갖지 말고... 난 오늘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괜히 안겠다거나 나에게 뭘 해줘야 한단 생각 하지 말고 그냥 같이 누워서 이야기나 하다 자자. 동무처럼...."










저는 아비도 어미도 모르고 태어났습니다.
여기 있는 형들 중 누군가 제 아비일 거라 생각하지만 찾을 수도 없도 찾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어미가 여기서 제 아비와 저를 낳았을지 아니면 어디 다른 데서 아이를 갖고 이 유곽에 떠넘긴 것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다들 먹고 살기 빠듯한 날이었겠지만 감사하게도 여기서 갓난 저를 돌보고 지금까지 키워주셨습니다. 밖에서는 더러운 남창이라 손가락질하지만 제게는 은인 같은 분들이십니다.
제가 자라고 나자 여기서 일을 할 수 있게 일자리도 주셨구요. 손님 상대하는 일은 아직까지 못 하게 하셨지만요.


너도 할 생각이 없었구나뿅.


큰 생각은 없었어요. 도련님이 저 고르시기 전까지는.


그랬구나뿅. 내가 괜한 소리를 해서 한 아이의 맑은 영혼을 타락시켰군뿅.


뭐 근데 지금 저랑 뭐 안 하고 계시잖아요. 동무처럼 이야기나 하자면서요.


그렇지...


근데 도련님은 왜 저를 골랐어요 처음에? 저 솔직히 형들하고는 입은 옷도 다르고 좀 하인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니가 여기서 제일 외로워 보여서.









내 정혼자는 내가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육촌 형이다.
내심 형 같은 사람과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 부모님들이 정혼을 결심하셨을 땐 뛸 듯이 기뻤고, 형도 나를 사랑해줬다. 그렇게 믿었어. 형이랑 처음 이불을 같이 썼을 때, 부부가 되면 해야 하는 일들을 형과 미리 했을 때 나는 이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었나요?


형은 나를 그냥 동생으로만 보고 있었던 거지. 동생이자 미래의 아내로 그저 그뿐으로... 나를 안았던 것도 나에게서 후사를 봐야 하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 곤란하니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나에게 잘 해줬던 것은 그게 부부간에 당연한 존중이자 예의이니까. 형에겐 오래된 다른 연인이 있었어. 결혼이 가까워 오니 나도 알아야 한다 생각해서 말씀을 해 주셨던 거고. 결혼해도 그 연인과의 관계는 끊을 생각이 없다면서.


결혼이 언젠데요?


오월 초하루.


.....얼마 안 남았네요.


하고 싶지 않아. 깨고 싶어. 솔직히 말하면 깨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 함께 살아 봤자 둘 다 불행하고 외로울 뿐이야.












우성은 그날 밤 후로 명헌을 연모하게 되었음. 명헌은 이틀에 한 번씩은 유곽에 들러 우성을 샀고 우성과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은 채 두런두런 이야기나 나누다 잠이 들었음. 우성은 명헌의 몸에 손을 대어 쓰다듬고 안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느꼈지만 명헌이 다른 사내의 몸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자신의 욕망을 꾹 눌러 참았음. 이야기만 하다 잠든다는 말에 ㅇㅇ형은 말도 안 된다며 좀 만지고 빨아주다 관계를 하라고 우성을 채근했음. 손님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안아보지 않으면 손해라면서. 손짓 발짓으로 시범을 보이는 ㅇㅇ형이 명헌과 한 번이지만 관계했다는 사실에 우성은 불같은 질투를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음. 우성은 명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끔 손을 잡아주고 잠든 명헌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음.


그러던 어느 날 명헌이 지친 얼굴로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부터 우성을 찾아왔음. 우성은 서둘러 명헌에게 목욕물을 내어주고 옷을 갈아입었음. 무슨 일이 있나 몹시 걱정이 되어 미리 이불을 깔아놓고 방에서 기다리는데 명헌이 들어오더니 우성의 품에 털썩 주저앉으며 안겼음.


"왜...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우성아."


명헌이 크게 한숨을 쉬었음.


"한 달쯤 전에 내가 결혼을 깨자고 했더니 형이 날 억지로 안은 적이 있다뿅."
"....뭐라고요? 저한텐 그런 말 안 했잖아요?!"
"중요한 건 애를 가진 것 같다는 거야."


확실해. 그런 느낌이 있어...

우성은 말을 잃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명헌의 등과 어깨를 바라보았음. 명헌은 몹시 피곤하고 슬퍼 보였음. 한동안 말이 없던 우성이 명헌의 팔을 껴안은 손에 힘을 주었음.


"명헌이 형."





저랑 같이 도망가요.










우성명헌
모브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