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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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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령의 무덤은 마을 뒷산에 있었고 태섭은 매일 아침 도령의 무덤에 찾아가 무덤을 정리하고 벌초를 해주곤 했음. 그날도 태섭은 뒷산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있었음. 그런 태섭의 앞을 가로막은 게 우성이었지.

"뭐하는 거야. 비켜."
"씨까지 품더니 매일 무덤도 갔다 와주는 거야? 열부 났네."



정작 나한테서는 도망치고, 내 아이는 뗐으면서...

우성은 마지막 말은 꾹 눌러삼킨 채 태섭을 노려보았음. 태섭이 아침에 어딘가 나가는 걸 알아채고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던 것 같아. 제법 부른 배를 뒤뚱거리며 산을 오르는 작은 뒷모습이 제법 가냘프고 애처로워보였던 것 같기도 한데, 금방이라도 산 속에 녹아들어 사라질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던 것 같기도 한데, 태섭의 목적지를 안 순간 그런 생각들은 싹 사라졌지. 분노 때문에 뱃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음. 눈이 마주친 태섭이 주춤 뒤로 물러나며 배를 보호하듯 감싸는 모습을 본 순간, 감정이 폭발했음. 머리가 하얗게 달아올랐음.

다른 놈의 애를 지키겠다고 나를 경계하는 거야? 내치는 거야?

그럼 그 애만 없애면 다시 나를 봐줄 거야?





정신이 들었을 때는 태섭의 몸을 허공에 밀치고 있었음. 산비탈이라 길 바로 옆은 낭떠러지나 다름 없는 경사였고, 태섭의 몸은 공중에 붕 떴음.

공포에 질려 동그래진 갈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고

작은 몸이 낙엽처럼 나부끼며 추락했음.




퍽.

"태섭아!!!"

누군가의 비명이 쏴아아아아아.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소리와 섞여 귀를 찔러왔음. 우성은 그 소란 속에서 손을 쭉 뻗은 채 굳어있었음. 밀치려던 건지, 붙잡으려던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모양으로 굳어있던 손이 순간 경련했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명헌은 미친 듯이 산 밑으로 달려가며 생각했음.

차라리 우성과 태섭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나았을까. 둘에게 일찌감치 자신이 있다고 드러냈다면 좋았을까. 우성이 태섭을 가로막았을 때 우성을 막았다면 좋았을까.

하지만 명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 심지어 우성이 태섭을 밀쳤을 때도.




순간 이런 생각이 들어버렸던 것임.

만약 태섭의 뱃속의 아이가 죽는다면.

태섭과 태섭의 아이를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아비가 누구이든 아이는 자신과 태섭의 아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했는데. 결국 속내는 이것이었음. 태섭과 다른 이의 결실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이기 그지 없는 마음.

그 찰나의 망설임이 가져온 결과가 대체 어떤 것인지.

태섭이 허공에 나부낄 때 태섭의 눈동자는 찰나지만 분명히 명헌을 담았음. 그 순간 태섭은 모든 것을 이해한 듯 했음. 공포가 담겨있던 눈동자에 이내 체념과 절망이 스미고...





퍽.

망가진 인형처럼 제멋대로 꺾인 팔다리. 감긴 눈. 그리고 밑에서 새어나오는 피. 피. 피.

"태섭아!!!"

명헌은 울부짖었음. 울부짖으며 산 밑으로 달려가 태섭을 들처업었음. 산바람에 식은 태섭의 피부는 선뜩한데 흐르는 피만 뜨거웠음. 명헌은 이를 악물었음. 태섭아. 태섭아, 안돼.

명헌은 위를 올려다보며 여전히 허옇게 질려 굳어있는 우성에게 악을 썼음.

"빨리 내려가서 의사 데려와!!!!!!!!"
"명헌이, 형, ...?"
"씨발 거기서 멍청히 있지 말라고 정우성!!! 태섭이 죽일 셈이야?!?!"
"흐,"

아이러니하게도 우성은 자기가 송태섭을 밀어 굴렸음에도 태섭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흠칫 튀더니 움직이기 시작했음. 산을 타는데 특화된 몸이 빠르게 능선을 내려 마을로 사라졌음.

명헌도 달리기 시작했음. 등에 얹힌 무게가 너무나 가벼워서,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음. 명헌은 아랫입술을 깨물었음. 입술이 터졌는지 공기 중에 혈향이 더해졌지만 명헌이 신경쓸 일은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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