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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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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한테 이렇게 하면 좋아할거다."

태웅선배님이 1학년들에게 노트를 한권 준다. 나는 신라중 농구부 출신으로 우리 주장이자 전설의 에이스였던 선배를 따라 북산에 왔다. 전국대회 언더독이었던 북산이 산왕을 꺾던 그 순간, 나는 태웅선배가 만나버린 그 붉은 빛이 궁금해 여기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의 붉은 빛인 백호선배는... 귀엽다. 이런 점이.



[후배 : 백호 선배! 덩크하는 법 보여주십셔!
천재강백호 : 눗! 이 정도의 슬램덩크?(천재시범)
후배 : 천재다!!]


동글동글한 글씨로 이런게 쓰여있다. 태웅주장은 말이 별로 없는 선수였는데 나는 신라중일때보다 북산의 태웅선배에게서 더 많은 말을 듣는다. 주로 백호선배에 대한 이야기들.

"1학년들 입학하기 전에 멍청이가 그런거 쓰고 좋아서 웃더라. 가끔 그런거 물어봐줘라."


태웅선배는 백호선배의 재활을 청대소집 기간에도 들여다봤다고한다. 전설의 신라중 에이스는 사랑도 에이스다.



[후배 : 백호선배님! 리바운드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천재강백호 : 이정도의 리바운드?(천재시범)
후배 : 카나가와 No.1 리바운드왕!!]


좋았어. 오늘은 덩크시범을 보여달래야지. 그럼 백호선배가 천재의 덩크시범을 보여줄거고, 그걸 보면서 태웅선배가 몰래 귀여워하면서 "멍청한 시범"이러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겠지. 다 티나는 것도 모르고. 팔불출에이스와 귀여움의 천재가 연애중인 우리 북산은 강하다.










1학년들이 호랑이주장 태섭선배에게 백호선배의 전설적인 무용담을 듣고 있었다. 농구를 시작한지 4개월째 이룬 것들. 1학년들이 오오...하고 감탄하고 있을때 간식을 사온 백호군단선배님들이 진실의 방을 열었다. 조금...많이 인간함량이 낮았던 백호선배의 이야기들



ㅡ소연이 있는데서 고릴라 바지를 벗겨서 엉덩이 노출시킨거 진짜 원숭이짓이었지.

ㅡ500엔 들고가서 해남감독 아니 이정환한테 신칸센 왕복으로 얻어타고 왔지?

ㅡ백호가 능남감독 똥침했던거 기억나냐?

ㅡ감독님을 애착슬라임을 쓰는거 지금봐도 남다른 놈이긴 해.


백호선배가 얼굴이 머리만큼 빨개져서는 주장 뒤로 숨어보려다 안가려지니까 "눗..!"하더니 태웅선배 뒤로 가서 슬쩍 태웅선배 유니폼을 쥐고 몸을 가리려고하자 태웅선배가 "멍청한 역사."이러면서 면박을 주는 척 하면서 슬쩍 웃었다. 자기한테 달라붙어 있어서 기쁜 거다. 1학년들한테 [적당히 놀려]하고 입모양으로 말하는 거 소름돋았다. 슈퍼에이스는 슈퍼달링이다.











"백호선배님, 허락받고 싶은게 있는데요. 저 선배님 붉은 머리가 멋있어서 그러는데 저도 그렇게 염색해도 될까요?"

"눗..!"

백호선배가 "빨간 머리면 놀림받아."하면서 진지하게 걱정해주는게 귀엽다. 그래서 나도 할거다. 이건 놀림거리가 아니라 존경받아 마땅할 선배의 트레이드마크니까. 나는 태웅선배의 농구를 풍요롭게 만들고 재활 후 부활한, 이제 초짜가 아닌 백호선배의 천재적 잠재력을 존경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슬퍼할거야. 갑자기 빨간원숭이가 됐다고."

엄마의 허락도 받았다. 백호선배는 우리가 연습하느라 늦을거 같으면 엄마한테 전화하고 오라고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을 쥐어주는 선배니까.


"어설프게 따라하는 건 용서못해."

태웅선배가 낮은 목소리로 언짢아한다. 화가 났으려나?

"할거면 내가 따라간다."


태웅선배는 진심이었다. 자기가 아끼는 백호선배의 머리를 두고 타협하지 않는게 바로 서태웅인걸 그를 쫓아서 입부하고, 그의 시선이 늘 머무는 곳을 쫓아서 바라보는 내가 모를리가 없잖아.













"이런 색입니다."

정말로 날 데리고 미용실로 온 태웅선배였다. 선배가 나이키 저지 속에서 걸고있던 로켓 목걸이를 꺼내 붉은 머리 몇가닥을 미용사에게 보여준다. 로켓 한쪽은 북산왕전 하이파이브, 한쪽은 백호선배의 머리카락이 들었다. 백호선배가 걸고있는 로켓의 내용물은 본 적이 없지만 하이파이브와 검은색 머리겠지.


"어설픈 빨강 다 용서못해. 와인색, 버건디, 마젠타 쳐부순다."

태웅선배가 나 대신 빨간색 염색 샘플을 점검하는데 미용사가 이런 색은 잘 안나온다고 비슷하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그건 나도 사양인데.


"저 그냥 짧게 다듬어주세요. 색은 못 따라해도 백호선배처럼 복복 쓰다듬고 싶어지는 머리통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예쁜 색은 염색으로 나오는게 아니더라고 내일 백호선배한테 말할게요, 태웅선배."


"어..."

결코 사랑에, 사랑하는 사람의 색에 타협하지 않는 태웅선배가 내가 머리를 다 자르자 복복 쓰다듬어준다. 태웅선배가 아끼는 그 빨간머리를 내가 아끼고 존경하고 응원하는걸 인정해주었다는걸 안다. 우리 주장이었던 그 과묵한 선수가 사랑 앞에선 물러서지 않는 남자였다는걸 이제는 안다. 나는 까까머리를 하고가서 백호선배에게 쓰다듬어달라고 하면서 그 유일무이한 붉은 빛이 얼마나 귀한지 알았다고 한마디 할 것이다. 그럼 좋아할거다, 라고 태웅선배의 눈이 내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니까.




내가 존경하는 부동의 에이스가 아주 귀여운 사람을 사랑하면서 유난스러워지고 깐깐해지는걸 본다. 태웅선배가 그 붉은 빛을 얼마나 아끼는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을 것만 같다. 태웅선배의 로켓이 닫힌다. 소중한 붉은 빛이 다시 담겨 선배의 또 다른 심장이 된 것을 나는 안다.







루하나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