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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22:26
태섭이 체구작고 곱슬에 까무잡잡한 피부에 턱이 갸름하고 눈매 시건방지니 이목구비 오밀조밀해서 얼굴에 복이 없다고(ㅋㅋ 시집도 못가고 있었는데 뜬금 명문가 전주이씨 가문에서 중매 들어옴
송태섭 뒷산에서 지 몸뚱이 다섯배만한 장작 바닥에 와장창 내려놓고는 ??그 대단한 집안에서 날 왜? 했음
그러자 그 중매소식 들고 온 남자가 멀뚱한 얼굴로 사실 그 댁 아들이 성정이 희한해서 혼인도 못하고 있느라 온 집안 어른들이 속을 끓였는데 우연히 그쪽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그쪽이 아니면 혼인 안한다고 드러누웠다고 함
태섭이가 ???? 뭐 그딴 모지리가.......하고 얼척없어함
사실 송태섭도 딱히 결혼에 생각없었는데 장손 죽고 집안이 휘청한지라 아라하고 엄마라도 편하라는 마음에 걍 ㅇㅋ 하고 시집 갔음
송가네가 사실 육지출신도 아니고 섬출신에 한미한 집안이라 그 양반가문에서 대놓고 구박은 안해도 걍 그 경직된 분위기에 그다지 편안하게 지내지는 못하고 있었음

근데 시집와서 보니까 남편=그 중매 소식 직접 들고 온 인간임
송태섭 어이없어서 보는데 이명헌이 냅다 

모자란 놈이라 여즉 혼인도 못한거 부인이 구제해준거 맞으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고는 갑자기 뿅. 함

송태섭은 맞나 모자란거..? 하고 미심쩍었는데 갈수록 모자란척도 안함
당연함 송태섭처럼 한미한 부인 보호하려면 장손으로서 남들보다 더 빡세게 모범을 보이고 권위를 세워야 함 
자기랑 말할때만 갑자기 말끝에 뿅. 이럼
저게 모자란척인가 싶어서 개얼탱없음

심지어 이 대단한 가문의 장손이라는 거임
존나 막 어디 종친회라도 가면 나이많은 사람들도 어렵게 대함
집안 사람들 당연히 그 시절 미인상이랑은 달리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얼굴 갸름하고 까무잡잡 곱슬에 허리 한품이고 엉덩이 손바닥만하고 키작은 송태섭 안좋아함 
이명헌은 ㅈㄴ 적당히 큰키에 다부진 체격 밝은피부 부처같이 인자한(ㅋㅋㅋㅋ 얼굴상 등 누가봐도 그 시절 미남이었기 때문에 더 좋은 혼처는 얼마든지 있었음

존나 행동거지도 반듯하고 무술이며 문장까지 빠지는데가 없고 평판도 좋은데다 실력상 급제도 따놓은 당상이라 집안의 자랑이었는데 결혼은 안 하려고 해서 유일하게 문제였던거임
근데 갑자기 송태섭이랑 결혼하겠다고 드러누운거

송태섭은 아니 ㅅㅂ 뭔데.....하면서도 정기적으로 자기 집으로 보내지는 양곡이나 생필품 보면서 이거면 됐다 그래......또라이지만 나쁜놈은 아닌것 같고 하고 대충 적응하고 살음
옛날 그 시절 답게 부부관계도 걍 별생각없이 함 
그러다 애도 들어섬

..근데 귤이 존나 먹고싶은거임

이 시절 귤은 워낙 귀해서 나랏님한테 진상되던 물건이고 태섭이도 섬에 살던 시절 한두번 맛본게 전분데 그게 미친듯이 땡기는거임;
그 조그만몸으로 기운이 넘쳐서 맨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느라 마님다운 체신머리 없다고 뒷말듣던 송태섭이 귤이 너무 먹고싶어서 방에 틀어박히니 사람들은 이제 좀 마님답게 차분해졌다고 흡족해하는데 이명헌만 가만히 쳐다봄
그러면서도 이명헌한테 귤 먹고 싶다는 말은 안 꺼냄
일단 워낙 귀한데다가 자기가 그런거 요구할 처지가 아닌것도 알고 뭣보다 이명헌이 어려움............
근데 귤은 진짜 너무 먹고싶어.........
너무 먹고싶다못해 온 생명력이 빨려나가 방 밖으론 나가지도 않고 이 집안 어른들이 부녀자의 덕목이라며 수 놓는 연습이라고 갖다준 무명천에다가 바늘이나 푹푹 찌르고 있는데(원래 아라 혼수로 뭐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잘 못만듬)
이명헌이 슥 들어오는거임

태섭이 깜짝 놀랐다가 그래도 보고 배운 예절이라고 지아비 오셨으니 부녀자로서 엉거주춤 일어나서 어서오십쇼; 함
명헌이가 고개 끄덕거리고 자리에 앉음
뭐....지네 집이고 지네 방이니 자리에 앉는게 별건가.......하고 태섭이는 다시 수놓는 척 하고 있음
근데 갑자기 부스럭하더니 이명헌이 봉투를 꺼내는거임
태섭이는 이런저런 동물적인 감각이 좋았고 특히 귤 향은 맡기도 힘드니까 한번에 방 안에 귤이 생겼다는걸 깨달아버렸음
근데 이명헌이 바닥에 내려놓은 귤 집어들고 껍질까더니 지혼자 먹음
솥뚜껑만한 손으로 조막만한 귤 들어서 껍질 까고 하얀 부분까지 일일히 떼어내고 질긴 껍질 뜯어 벌린 다음에 한조각씩 천천히 먹음

송태섭 생전 그런적 없는데 진심 서러워짐
아니 혼자 처먹을거면 몸도크고 입도큰게 한번에 다 먹던가 약올리는것도 아니고 존나 천천히 한조각씩....
진짜 개패고싶은데 그러면 안되지.............
송태섭 진짜 분통터져서 쭈그리고 있다가 너무 서럽고 자기도 귤 먹고 싶어서 훌쩍.........훌쩍..........히잉...............함
형아가 살아있었으면 안먹으면 안먹었지 혼자는 안먹었을텐데............이명헌나쁜놈돼지새끼사레들려서콧구멍에귤즙튀어서아파해라

태섭이 훌쩍거리면서 진짜 넘어진척하고 바늘로 이명헌 찌를까 고민하는데 이명헌이 슥 일어나더니 송태섭 감싸안듯 뒤로 다가옴
그리고 태섭이 치맛자락에 귤 우르르 쏟아줌
그리고 자기가 겨우 반개 먹은 껍질이랑 흰거 다 떼어놓은 귤도 쥐어줌

전부 부인 귤입니다.

그리고는 머쓱하게 나가버림
이명헌은 송태섭이 앓아누운거(사실 워낙 건강체질이라 앓아누운건 아니고 임신하고 기운없어서 활동량 줄어든거지만 이명헌 눈에는 안그래도 조그만 아내가 저러다 죽을까봐 앓아누운걸로 보였음)보고 충격받아서 장모님한테까지 직접 찾아감

부인이 애가 서서 힘들어하는데 뭘 해주면 좋아할까요.

태섭맘도 당황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글쎄..하고 열심히 고민하는데 태섭이 맨날 뭐 해줘도 생전 반찬투정도 안하고 주는대로 먹고 혹한기나 보릿고개에는 지가 나서서 식량 챙겨오던 기억밖에 없어서 새삼 안쓰러움에 탄식함

그 애가 귤을 참 좋아했는데...

하고 섬에 살때 어쩌다 생긴 귤 좋아하면서 먹던 기억이 나서 말해주니 명헌이가 끄덕끄덕 하는거임
사실 태섭맘도 그렇게 기대하진 않았음 워낙 귀한 과일이라
그래도 신거라도 챙겨주면 좋지.......하고 이것저것 싸서 보내줌
그 애가 워낙 조르지를 않아서 나도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거라도 전해주게나 사위.
하니까 이명헌 흠칫하더니 묘하게 비장한 표정으로 감사합니다 장모님. 하고 받아옴

그러고 어렵게 철도 아닌 귤 구해다가 체신머리없이 본인이 직접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송태섭 귤냄새 맡고 화색돌고 들뜬 티 내는게 귀여웠음
근데 달라고 말을 안함
이명헌은 모처럼 구해온 귤 맛없으면 그것도 곤란하다 싶어서 맛보기 겸 송태섭 놀리기 겸 해서 먹는척 했는데 태섭이 우는거 보고 속으로 존나 놀랐음

이명헌은 존나 동요했다..

그리고 귤 안겨주고 머쓱하게 나옴
태섭이는 눈물그렁해서 귤 안고있다가 만져보다가 하나씩 까먹음
달고 새콤하고 아무튼 맛있음
맛있다......하고 잘먹음
나중에 일정끝난 이명헌 들어와서 태섭이 눈물 그렁해서 머리맡에 귤 껍질 두고 귤냄새 맡으면서 편안하게 자는거 보고 안심함
태섭이가 하던 자수도 뭔가 귤 비슷한 걸 만들려고 했던것 같은데 동그라미가 삐뚤빼뚤함
명헌이가 조용히 자수천 집어들어서 반듯한 동그라미 만들어주고 주황색 실 가져다가 귤 수놓아서 태섭이 옆에 놔줌

암튼 그렇게 태섭이는 간만의 엄마반찬과 이명헌의 정성어린 음식태교 보필로 밥잘먹고 애도 잘 낳고 잘 살았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