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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3 00:53
태웅이네 집에서 밥을 먹고 자전거 타고 백호네 집에 온 날이었음. 부모님은 자고 가라고 했지만 태웅이가 거절함. 자기 방에서 자면 즈그멍청이가 손도 못대게 해서 뽀뽀도 못하고, 안고 엉덩이를 조물딱 거리면서 자는 것도 못하니까 당당히 외박하러 나옴.












"...멍청아, 왜 울어? 내 멍청이를 슬프게 하는 책은ㅡ"
"ㅡ뭐래는 거야. 이거 우리 엄마랑 아부지가 남겨준 레시피북이야. 원래는 엄마가 썼던걸 아부지가 적다가 나한테 왔는데 그냥 펼치면 눈물이 나. 엄마랑 아부지가 글 속에만 있잖아..."

태웅이가 뒤에서 백호를 안고 사쿠라기가의 레시피북을 같이 보고 시작했지. 동글동글한 백호엄마의 글씨가 백호의 글씨랑 귀엽게도 닮아있었지.









[만국기 하트 오므라이스

오므라이스에 만국기를 꽂아주면 좋아한다.
원래는 함박스테이크에 꽃는거라고 그랬는데도 "앙대여?"하면서 귀엽게 졸라서 엄마가 기분 썼다!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주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신나한다.
오늘은 케첩이 떨어져서 우리 백호의 하트는 그리고, 엄마 오무라이스에는 못 그렸더니 서툰 스푼질로 자기 하트를 떠서 부들부들 떨면서 엄마의 오무라이스 위로 올려줬다.

내 아기, 우리 백호, 이 사랑둥이야. 엄마가 정말 사랑해.]


태웅이가 안아주는 팔뚝 위로 백호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길래 내 멍청이가 아까워서 살살 눈물을 닦아주고, 더 꽉 안아줬겠지. 아기멍청이는 이렇게 사랑스러웠구나.











[특제 백호표 카레

퇴근하면 찬거리를 사고 서둘러 집에 와야한다. 안 그러면 백호 녀석이 다 해놓으니까.
사실은 이제 백호가 아빠보다 요리를 잘한다. 그래도 아빠밥을 먹여주고 싶어서 힘내본다.

여보, 우리 아기가 이렇게 커서 아빠가 야근하면 저녁밥도 해놓고 그래. 오늘도 카레를 한솥 끓여놨지. 밥솥을 열어보니까

"수고했어, 아부지!"라고 콩으로 써놨더라고.

예민한 애라서 안자고 있었을텐데 막 깬 것처럼 이제 퇴근한 아빠의 늦은 저녁이 외롭지않게 마주앉아서 계속 말을 걸어주는 우리 아들 좀 봐. 예뻐. 우리 백호가 아빠의 꽃이야.

우리 아들의 식탁이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으로 채워지기를 아빠는 소망한다.]


백호가 태웅이 손에 눈물을 슬며시 닦더니 뒤를 돌아 입술에 쪽! 뽀뽀를 하고 아버지의 글 아래에 동그란 글씨로 뭔가를 적어넣었지.


[아부지, 같이 밥먹는 사람이 생겼어. 백호네 식탁은 외롭지 않으니까 거기서도 걱정마!]


태웅이의 가슴에도 백호의 동글동글한 글씨가 총총 새겨졌지. 사랑스럽게 키워주셔서, 제가 이렇게나 사랑하는 멍청이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속으로 인사도 하면서.











백호가 태웅이한테 안겨서 레시피 북에 글을 적기 시작했지.


[백호표 여우 계란말이

엄마, 아부지, 우리 집 계란말이는 달콤한 거잖아.
그래서 늘 달게 해줬더니만,
오늘 여우네서 밥을 먹었는데 글쎄, 계란말이가 짠맛이었어!
이 바보가 자기네 집 계란말이 맛이랑 다른데도 참고 먹었나봐.
내일부터 백호의 계란말이는 짠 걸로 바뀔 예정이야. 깜짝 놀라면 안돼!

같이 밥을 먹어주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기쁨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부지.]




"...멍청이가 해준 건 다 맛있어."
"어! 엄마랑 아부지가 잘 가르쳐줘서 그래!"
"계란말이에 하트 그려줘."
"어! 여우도 그려준다!"
"...사랑해."
"...어! 흑..."

나도...하면서 레시피북을 소중히 덮고 포개져서 이불 위로 쓰러진 백호와 태웅이었지.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안아주는, 언젠가는 정말로 가족이 될 어린 연인들이었지. 살며시 미래를 한자락 적자면 이 레시피북에 10년쯤 뒤엔 태웅이가 적은 아기이유식 페이지도 생겨날거야. [가을이를 위한 여우아빠표 이유식] 이런 제목의. 먹고, 농구하고, 영원히 사랑할지어다.








루하나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