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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22:48
아무래도 백호일 듯..




재활하고 농구부 돌아와서 산왕전 분위기 못잊고 둘이 어설프게 썸아닌 썸타다가 2학년때쯤 사귀게 되겠지 맨날 싸우긴 싸우는데 퍽퍽 소리가 투닥투닥에서 토닥토닥으로 변할만큼 2년간 순탄하게 연애함
그리고 그날이 오고야 말았지 태웅이 먼저 미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 태웅이 마지막으로 백호의 손을 꾹 쥐고 울망한 눈으로 한참 보다가 떠났음 백호는 울컥할 뻔 했지만 길 잘 닦아놔라! 금방 간다! 씩씩하게 외치고 그렇게 헤어졌음


태웅이 떠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음 백호는 국내 대학에 진학해서 금방 적응했겠지 적응한 속도가 빠른만큼 깨달음도 빨랐음 곁이 허전하다는 걸
사실 처음엔 시원섭섭한 감정이었음 태웅이 항상 붙어있어서 잘하지 못했던 사회생활도 하고 -친구만나기, 지인만나기, 사람만나기 등등-, 잔소리 없이 내가 하고싶은대로 운동이나 농구도 하고, 불량식품도 좀 까먹고 이래저래 할게 많다고 생각했음 근데 생각보다... 별로 재미가 없었음 특히 밤이 문제였음 잠들기 전 누우면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데 대학생활이 어느정도 적응이 되자 멀리 떨어져있는 애인 생각만 났음 왜 이럴땐 걔가 잘해준 것만 떠오를까 

상상바 나누다 삐끗해서 차이나게 잘라지면 태웅은 항상 큰쪽을 줬음 백호가 잘라도 태웅은 보고있다가 늘 미세하게라도 작은쪽을 가져갔지 다른 아이스크림 다 두고 늘 먹던건 그거였음 
식당에 가서 백호가 호기롭게 신메뉴 시켰다가 입에 안맞아 깨작거리고 있으면 태웅은 제것과 바꿔놓았음 태웅이 시키는 건 늘 백호가 좋아하는 거였으니까
백호네 집에서 밥먹을땐 꼭 본인이 설거지를 한다고 했음 백호가 5분이면 끝낼걸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30분이 걸리는지 알수 없었지만 씽크대와 바닥까지 물바다가 되어 걸레로 닦고 있었음 입고 있는 옷 앞은 쫄딱 적신채로
농구할땐 또 어떻고 백호는 연습할때나 시합할때나 늘 자신을 좇는 시선을 느꼈음 알고 있었지 몸을 무리하게 쓰거나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고 풀죽어할까봐 늘 지켜보고 있다는 걸 경기가 끝나면 태웅은 본인것 뿐 아니라 백호것까지 늘 두명분의 플레이를 복기해서 상세하게 알려주었음
그리고 마지막 진도를 나갔던 날.. 둘은 2년가까이 사귀었지만 그건 딱 한번이었음 그것도 태웅이 진학할 미국 대학이 정해진 이후로 전전긍긍하던 백호가 억지로 용기를 쥐어짜내서 하게 되었음 물론 처참히 망했음 성교육도 수업시간이라고 둘다 잔덕에 지식 수준도 처참한데 기술도 요령도 없었기에.. 태웅은 삽입시도 중 백호가 아프다고 꺽꺽거리는 바람에 군말없이 물렸고 백호가 그치지 않은 눈물 떨궈가며 손으로 해줬음

그까짓게 뭐라고 좀 참아볼걸 
추억을 떠올리던 시간은 점차 자책과 반성의 시간이 되었음 처음에만 아프고 나중엔 괜찮았을수도 있는데.. 볶음밥할때 계란 더 많이 넣을껄 괜히 내일 나 먹을꺼 남겨놓는다고 2개 아꼈었지..농구할때마다 잔소리좀 그만하라고 했는데 그러지 말껄 다 나한테 필요한 얘긴거 나도 알고 있었는데..때릴때 좀만 살살 때릴걸...

1학기 종강파티를 마치고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날 밤, 백호는 결국 누워서 펑펑 울었음 잘때마다 자신을 숨이 막히게 안고 자던 그 체온이 그리워서 견딜수가 없었음




태웅은 서둘러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탔음 분명 늦을테니까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던게 역시 맞았음 밤 10시 도착예정이었던 비행기는 연착되어 12시에 도착했음 
익숙한 골목 어귀에 도착하자 저 앞에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커다란 인영이 보였음 저 멍청이. 추운데. 태웅은 서둘러 택시에서 내려서 달려갔음

- 강백호!
- ..서, 서태웅!

백호는 태웅을 보고 자리에서 굳었음 태웅이 앞에와서 백호 얼굴을 감쌌음

- 멍청아. 이렇게 추운데 목도리도 안하고.

백호가 더듬더듬 태웅을 안았음.

- 서태웅...
- 춥다. 들어가자.
- 응.

백호는 태웅의 캐리어를 저가 들고는 계단을 올랐음
익숙하고 좁은 맨션이 태웅을 맞이했음 방안은 따뜻하고 음식냄새가 감돌았음

- 배고프지? 밥줄까?
- 아니 기내식 먹은지 얼마 안됐어.
- 아, 그그래?
- 늦었잖아. 얼른 씻고 자자.
- 응. 그렇지.. 물 받아줄까? 좀만 기다릴래?
- 아니 오늘은 간단히 샤워만 할래

태웅이 씻고 나오자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음 베개, 이불 모두 익숙한 것이었음 태웅이 타국에서 그리워했던

- 아 좋다아. 빨리 누워 멍청이.
- ..어, 근데 있잖냐...
- ?

태웅은 아까부터 뭔가 할말이 있는 듯 없는 듯 주춤거리는 백호를 보고 뭐지 싶었음 방안에 들어오니까 보이는데 쌍꺼풀이 진데다 눈안은 핏줄이 섰음 얘 단순히 오늘 나 기다린다고 밖에 오래있던게 다가 아닌데 며칠 못잤는데 

- 또 뭐 사고쳤어?
- 어엉??
- 지금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너 꼴이 그래
- 아니잇! 그게 아니고!

백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태웅이에게 내밀었음

- 이게 뭔데? ...엇.

콘돔이었음. 태웅은 눈을 끔뻑끔뻑뜨며 백호를 보았음

- 그, 그땐 어렸지만 이제 우린 성인이니까 좀 다를지도 모르고.. 또 그때 내가 몸에 좀 힘을 많이 줬던거 같다. 이번엔 힘을 빼보려고. 그 근육이완? 그거 잘 해볼게..천재니까.. 

우선은 아파도 이번엔 절대 티 안낼거고. 백호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음. 

- 갑자기...꼭 해야돼?
- 엉?...안하고싶어?
- 지금은 별로 안하고 싶은데

아. 백호는 그제야 머나먼 타국에서 힘들게 열몇시간 비행기에 갇혀 날아온 태웅에 생각이 미쳤음 피곤하겠지..당연히 안하고 싶겠지.. 내가 지금 그런 사람한테..창피함에 백호의 얼굴부터 귀, 목까지 빨개졌음.

- 아니 그것보다.. 너 아프잖아.
- ...안아플 자신 있어

안아플=참을 임을 못알아들을리 없는 태웅이 작게 한숨을 쉬고 누운 자리에서 이불을 활짝 열었음. 얼른 들어와 멍청아.
백호가 들어가자 태웅은 예전처럼 백호를 꼭 안았음 백호도 덩달아 마주 안았음 무려 1년만이었음. 아 살거같다. 태웅이 백호 품안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하자 백호가 조그맣게 말했음. 나도. 나도 그래.

- 오늘 하루종일 요리했지?
- 어떻게 알았어? 몸에서 냄새나?
- 아니 방안에
- 환기시킨다고 했는데
- 조금 나. 괜찮아.
- 응
- 뭐했는데?
- 미역국이랑 제육볶음이랑 감자조림이랑 또..
- 많이도 했네 너 원래 볶음밥밖에 몰랐잖아
- 응...최근에 배웠어
- 왜? 누구주려고?

태웅이 장난스럽게 물었음 백호라면 얼굴이 빨개진채 대답을 얼버무릴껄 알기때문에

- 너. 너오면 다 해주려고.

태웅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음. 어어?

- 된장찌개 재료도 다 사놨어. 그건 내일 저녁이나 모레 먹자. 어묵볶음도 할꺼야. 그리고 쏘야도 할줄 안다. 다 너 해줄게. 좋아하잖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앉았음. 강백호 나 봐봐.

- 김치 맛있게 볶는 방법도 알았어. 이제 계란말이도 잘한다.

여전히 제 손에 고개를 묻은 채 제 할말만 하는 놈을 억지로 일으켜 손을 떼자 얼굴이 온통 젖어있었음.

- 그리고, 콩나물무침도..

멍청아. 왜 혼자 울어. 태웅이 백호를 안고 등을 쓸었음. 흑. 끅. 흐으윽. 많이 보고 싶었어? 그래! 내가 너 가고 얼마나..얼마나...백호는 말을 잇지 못했음 

이럴줄 알았지. 멍청이가 얼마나 외로움을 잘타는데. 헤어지던 날 공항에서 마지막까지 백호의 손을 놓지 못했던건 혼자 힘들어 할 백호가 걱정되서였음
사귀고 난 이후로 태웅은 백호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날이 많아졌지만 아직 고등학생인만큼 외박이 매일 허락되는 건 아니었음 태웅이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저녁부터 눈에 띄게 기운이 없어지다가 꼭 태웅을 집까지 데려다줬음 대문앞에서 헤어져서 2층방으로 올라가 창문을 열고 '조심해서 가!' 외치면 '응! 간다! 잘자!' 방방뛰며 손을 흔들고 멀어졌음
이 잘때도 태웅이 꽉 안으면 숨막힌다고 찰싹찰싹 때리면서도 거기서 안정감을 느끼는 백호를 모를 수 없었음
본가에도 안 들르고 백호집부터 온건 이래서였음 백호는 태웅의 온기에 완전히 길들여져 있었음 태웅도 마찬가지였고

- 그래 다 해줘. 다 먹을게. 대신 설거지는 내가 한다.
-..흡, 너 설거지 못하잖아. 끅.
- 이제 잘해. 미국에서 연습 많이했어.

백호가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음. 설거지 잘하면 안아줘. 응. 숨 못쉴 정도로 꽉 안아줄게. 응. 좋네.


루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