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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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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반 들기 전까진 돌아올테니 네가 모친을 잘 살피거라."
"네."
"오늘 하루는 꼼짝없이 모친 곁에 있어야 하니 내일은 수업 대신 형장들과 채의진에 내려가 놀고 오려무나."
"알겠으니 걱정 마시고 어서 다녀오세요."

망기와 무선이 혼례를 올린지도 벌써 반년, 그간 망기는 선독으로서 금광요가 벌인 일들을 수습하느라 공사다망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제 도려의 수련을 도와 무선은 수련을 시작한지 석달 만에 금단을 맺는데 성공하였다. 모현우의 체질 자체가 영력이 부족하여 금단을 맺었다하여도 잠깐 검을 휘두르는 게 전부였지만 망기는 무선이 제 곁에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였다. 금단을 맺은 후론 잔병치레도 줄어들고 체력도 많이 좋아졌으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요즘들어 무선이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고 기력이 없어 망기의 근심이 늘어갔다. 하필 난장강의 진법을 고치는 일을 논하기 위해 이릉에 다녀와야 하는 날 무선이 새벽부터 미열이 올라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니 망기는 사윤에게 무선을 맡기고 나서야 했다.

"모친, 의원이 왔어요."

이젠 사술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도 사기로 인해 제 모친의 몸이 상했을까봐 걱정이 많아진 사윤은 의원이 진맥을 하는 동안 무선의 곁에 딱 붙어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떠합니까? 모친께서 근자에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 기력이 많이 상하였을까 걱정입니다."
"기력을 보하는 탕약을 함께 처방해드릴테니 아침, 저녁으로 달여드시면 큰 문제는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친께 다른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부인께서 회임을 하셨으니 선독과 도련님께서 각별히 챙기셔야겠습니다."

회임이란 얘기에 무선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정말 회임이 맞습니까?"
"예, 부인. 부인도 아기씨도 모두 건강하지만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시기이니 되도록 외출을 삼가시고 입맛이 없어도 식사를 챙기셔야 합니다. 그간 선독께서 부족함 없이 챙기신 덕에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으나 부인께선 쉽게 기력이 상하는 체질이니 조심하셔야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람을 시켜 약방에 처방전을 보내고 의원을 영죽당 앞까지 배웅할 때까지만 해도 고소 남씨 도련님으로서 제법 진중하게 굴던 사윤은 언제 그랬냐는듯 방정 맞게 정실로 뛰어들어왔다.

"모친, 저 아우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
"의원님의 말씀 들으셨죠? 입맛이 없어도 드셔야해요. 아우를 굶길 순 없잖아요. 어멈들에게 말해 당장 석반부터 산해진미를 올리라고 해야겠어요."
"그리도 좋아?"
"좋고 말고요."
"아윤, 네 아우가 생겼다고 해도 나한텐 네가 제일 소중해. 알지?"
"모친은 별 걱정을... 제 나이가 몇인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우한테 투기를 부리겠어요? 아우가 태어나면 제가 늘 업고 다니며 정성으로 기를 거예요. 그때가 되면 제가 아우를 너무 귀애하여 모친에게 관심이 없다 되레 모친이 서운해 할지도 몰라요."

사윤이 눈꼬리를 휘며 활짝 웃어보이자 무선 또한 그를 따라 웃으며 아이의 콧등을 툭툭 쳤다. 난장강에서 살 적에 사윤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 못한 게 한이되어 무선은 뱃속의 아이보다도 사윤에게 마음이 쓰였다.

"어서 숙조부님과 백부님께 소식을 전해줘야겠어요. 아! 사추 형장이랑 경의 형장이랑 수애에게도요. 온 숙부는 언제쯤 다시 운심부지처에 오신대요? 이번엔 또 어딜 가신 건지 알수가 없으니 돌아오시는대로 알려드릴 수 밖에 없겠네요. 사숙과 금여란에겐 직접 전할 수 없으니 서신을 보내야겠어요."
"남잠에겐 아무말 말아. 내가 전해줄테니."
"예, 모친."
"아윤, 천천히 가! 넘어질라."

사윤이 태어난 뒤로 이제껏 고소 남씨 직계손이 태어나질 않았으니 손이 귀한 집에서 참으로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무선의 회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윤은 제일 먼저 아실로 향했다.

"숙조부님! 숙조부님!"
"안지, 대체 몇 살을 더 먹어야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버릇을 고칠 것이냐!"
"아이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년이면 성년식을 치를 녀석이 아직도 이리 방정맞게 구는데 이게 중요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이냐? 네가 이 나이가 되도록 네 백부라는 녀석이 자식이 있기는 커녕 혼인조차 하지 않아 이대로라면 가문을 이어갈 자손이 너 밖에 없는데 학문과 수련은 소홀하게 여기고 허구한 날 밖으로 나돌기만하니 고소 남씨에 망조가..."
"모친이 회임을 하였어요!"

듣기싫은 숙조부님의 잔소리를 막을 방도라곤 제 어머니의 회임 소식뿐이니 사윤은 남계인의 말을 끊고 제 할말부터 하였다. 사윤이 전해준 소식에 깜짝놀란 남계인은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려 옷을 다 적시고 말았다.

"뭘 해?"
"회임을 하였다고요. 제게 아우가 생겼어요."
"확실한 것이냐?"
"정실에 의원이 다녀갔어요. 모친도 아우도 건강하대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간에 주름이 잔뜩 패일만큼 인상을 쓰고 있던 남계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이 귀에 걸려 서둘러 아랫것들을 불러 모았다. 무선이 회임을 하였으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한 것 없이 돌보라 명하는 남계인을 거들어 사윤은 앞으로 정실에 보내는 식사엔 꼭 고기 반찬을 올려달라 청하였다.

"이럴게 아니라 아이 이름부터 지어야겠다."
"숙조부님, 아우가 태어나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하는데 뭘 그리 서두르셔요."
"미리 지어놓아야 선수를 뺏기지 않을 것 아니냐? 네 녀석은 네 아비와 어미가 멋대로 이름을 지어와서 명망 높은 고소 남씨의 이름을 받지 못하였으니 네 아우만큼은 내 손으로 이름을 지어야겠다."
"숙조부님 모르셨어요? 제 이름은 사숙께서 지어주신 거예요. 감사해야 할 것에 마땅히 감사하라는 의미로 지어주셨죠. 얼마나 좋은 이름이에요? 숙조부님께서 비록 제 이름을 지어주시진 못했지만 제 자는 지어주셨으니 너무 서운해 마세요."
"누가 서운해 한다는 것이냐?"
"아니면 말고요. 전 이제 백부님께 가봐야겠어요. 좋은 이름이 나오거든 제게도 알려주세요."

소식을 전해야 할 사람이 많으니 마음이 급해진 사윤은 아실의 창문을 뛰어넘어 밖으로 나왔다. 들어올 때도 방정을 떨어 잔소리를 들어놓고는 나갈 때도 예의와 법도 따윈 개나 줘버린 사윤의 행동에 남계인은 또 한번 울화가 치밀어 올라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곤 경을 쳤다.

"안지! 멀쩡한 문을 놔두고 어째서 창문을 뛰어넘고 다니는 것이냐? 네 어미의 안좋은 점만 닮아서 어찌 하자는 거야?"
"창문도 명색에 문인데 넘나들면 좀 어때서요? 탓할 거면 창문에 '문'자를 붙인 조상님들을 탓하세요."
"네 이녀석! 입만 살았구나!"
"숙조부님 화내지 마세요! 곧 제 아우가 태어날텐데 오래오래 사셔야죠."
"늙은이를 놀리는 거냐!"

남계인의 호통을 들은체 만체하며 한실로 향한 사윤은 늘상 그랬듯 들어간단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백부님!"

사윤이 요란스럽게 희신을 부르며 뛰어들어오자 휘장이 쳐져있는 침상에서 희신이 굴러떨어졌다.

"백부님?"
"아윤이 왔구나."

희신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는 동안 강징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침상에서 나오니 사윤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사숙께선 기별도 없이 언제 오셨어요?"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렸다."
"헌데 두 분이 왜 같이 침상에 계셨던 거예요?"
"네가 알 거 없다. 너는 어찌 된 게 네 백부님 침소에 기척도 없이 이리 마음대로 쳐들어오는 것이냐?"
"기척이야 들어오면서 요란스럽게 냈는데요."
"집안 어른의 침소에 들어오면서 허락을 구하지 않는 건 무슨 경우고?"
"백부께서 굳이 제게 허락을 구하고 들어오라 하신 적이 없어서요."
"내년이면 성년식을 치르는 녀석이 언제까지 이리 경거망동 할 것이야?"

강징이 예의범절을 따지기 시작하자 사윤은 속으로 어딜 가나 제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은 사람 투성이라고 한탄을 하였다. 제 숙조부님 못지 않게 사숙 또한 한번 잔소리를 시작하면 끝이 나지 않는 걸 잘 아는 사윤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희신을 바라보며 저를 구해달라는 무언의 요청을 보냈다.

"아징, 아윤이 어릴적 한실에서 자라 제 처소같이 여기는 까닭에 그런 것이니 너무 타박 말아요."
"어릴적은 어릴적이고 저 녀석 올해 나이가 몇입니까? 아환이 매번 싸고 도니 그걸 믿고 저 녀석이 철이 안드는 거 아닙니까?"
"위 공자의 성정이 워낙 자유분방하여 아윤도 이를 닮았을 뿐입니다."
"지금 제 사형이 철이 없어서 아윤이 그걸 닮았다는 겁니까?"
"아징, 어찌 얘기가 그리 됩니까?"

갑자기 저를 앞에 두고 다투는 희신과 강징을 구경하던 사윤은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영 이상함을 느꼈다.

"잠시만요!"
"어른들이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말거라."
"백부와 사숙 언제부터 서로를 그리 부르신 겁니까?"
"무엇이 말이냐?"
"그러니까... 방금 전에 아징, 아환이라 부르셨잖아요."

사윤의 물음에 한실엔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무슨 일로 왔는지 용건이나 말하거라."

강징이 급하게 말을 돌리자 사윤은 마지못해 의심 가득한 표정을 풀고 전하려던 소식을 꺼냈다.

"마침 사숙도 계시니 잘 되었어요. 귀찮게 서신을 보낼 일이 줄었네요."
"아윤, 무슨 얘길 하려고 그러느냐?"
"백부님, 저도 이제 어엿한 형장입니다."
"응?"
"모친이 회임을 하였어요. 저 아우가 생겼다고요."
"그게 정말이냐?"
"네."
"집안의 경사가 생겼구나. 망기도 아는 것이냐?"
"부친은 출타 중이시라 아직 모르세요."
"망기가 알면 크게 기뻐하겠구나."
"부친께서 돌아오시면 모친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니 일단은 함구해주세요."
"그리하마."

사윤과 희신이 기뻐하는 사이 표정이 어두워진 강징은 자리를 뜰 요량으로 제 패검을 집어들었다.

"네 모친 정실에 있는 거냐?"
"네."
"아환,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징, 벌써 가시는 겁니까?"
"연통하겠습니다."

강징이 한실을 나가자 사윤은 눈을 가늘게 뜨곤 제 백부를 바라보았다.

"방금 또 사숙이 백부를 아환이라 불렀어요."
"근자에 왕래가 잦아 막역해진 탓에 말이 편해진 것이지."
"부친과 모친도 서로를 그리 부르지 않아요."
"아윤, 소식은 다 전했느냐? 내게 왔으면 숙조부님껜 이미 전했을 것이고... 사추에게 아직 전하지 못했겠구나. 수애는? 수애도 아느냐?"

사윤이 이곳저곳 소식을 전하기 바쁜 걸 이용한 희신은 다른 이들에게 어서 경사를 알려달라 부탁하며 그를 등떠밀었다. 한실을 나서자마자 정실로 걸음한 강징은 영죽당의 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사시사철 날이 따뜻한 운몽과 달리 고소는 한기가 서린 땅이라 흐르는 물마저 뼈가 시릴만큼 차가웠다. 그러니 연꽃이 싹을 띄우기에 좋은 조건이 아님에도 망기의 정성에 영죽당의 연못엔 연꽃이 만개해 있었다.

"위무선."

강징의 부름에 깜짝 놀란 무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강징? 너 기별도 없이 언제 온 거야?"
"위무선! 너 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 아이를 가진 몸으로 이렇게 채신머리 없이 뛰어다니는 어미가 세상에 어디 있어?"
"그러는 너는 오랜만에 보는 사형에게 안부 인사는 커녕 잔소리부터 하는 예의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위무선이 누구한테 예의 운운할 처지는 아니지."
"보아하니 아윤에게 소식을 듣고 온 모양인데 계속 거기 서있을 거 아니면 들어와. 사정상 술은 못내어줘도 차 한잔 정도는 내어줄 수 있으니까."

강징을 안으로 들인 무선은 제법 익숙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였다. 의복을 단정히 하라는 남계인의 잔소리에 질리기도 한데다 선독인 망기의 체면을 생각해 무선은 운심부지처에 있을 때만큼은 흰 옷을 입고 푸른색 머리끈으로 단장을 하였다. 그런 무선의 모습이 낯설어 강징의 눈은 계속 그를 좇았다.

"뭘 그렇게 쳐다봐? 새삼스럽게 내가 너무 잘생겨서 놀랐어? 이 사형이 미남자라는 걸 잊고 있었나보지?"
"입만 열면 헛소리... 네 꼴이 하도 어울리지 않아서 쳐다본거야."
"그렇게 이상해?"

무선이 빙그르르 돌면서 제 차림새를 둘러보자 강징은 툴툴 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고소 남씨의 가규를 잘 지켰다고."
"숙부님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잔소리를 해대니 어쩌겠어."
"철든 것처럼 굴지마. 너 답지 않아."
"남잠에겐 아버지와 같은 분이고 아윤이 내 아이인 걸 알면서도 남씨 성을 주고 키워주셨잖아. 효부는 못될 지언정 자식된 도리는 해야지. 나 때문에 홧병이 나서 앓아 눕기라도 하시면 어떡해?"

망기가 하는 걸 어깨너머로 배워 무선은 제법 그럴싸하게 강징에게 차를 내어주었다.

"은으로 산을 쌓고 산다는 고소 남씨가 안주인은 굶기기라도 하는 거냐? 누가 보면 피죽도 못 얻어먹은 줄 알겠어."
"근래에 입맛이 없어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어. 오늘에서야 입덧인지 알았지."
"툭하면 쓰러지는 주제에..."

강징이 흘리듯이 하는 얘기에 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아챈 무선은 강징을 놀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니까 우리 사제는 이 연약한 사형이 회임을 했다하니 걱정돼서 한달음에 달려온 거구나."
"누가 걱정했대?"
"그래, 우리 사제는 걱정한다고 말한 적 없으셔요. 말은 안하고 행동으로 보여줬지."
"위무선!"
"깜짝이야! 애 떨어지겠다!"

무선이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안자 강징도 놀란 모양인지 곧장 소리를 죽였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볕 하나 들지 않는 곳에서 금단이 없는 몸으로 아이를 낳은 적도 있는데 뭘... 이제 금단도 있고 네 말대로 고소 남씨 안주인이라 이렇게 좋은 집에서 좋은 것만 먹고 사는데 뭐가 걱정이야? 내가 아윤의 만월례를 치러보지 못해 이 아이 만월례는 아주 성대하게 치를 생각이거든. 그러니 사숙께선 조카를 위해 귀한 선물을 구할 걱정이나 해."

무선의 능청에 강징은 조금 안심이 된 모양인지 그제야 찻잔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강징, 네 요대 말이야. 그거 택무군 거 아니야?"

무선의 말에 강징이 마시던 차를 뿜자 무선은 경악을 하며 제 옷에 튄 찻물을 털어냈다. 급하게 제 허리춤을 내려다본 강징은 사윤이 갑자기 한실에 뛰어들어와 급하게 옷매무새를 갖추는 사이 희신과 제 요대가 바뀌었음을 이제야 알아챘다.

"뭘 그렇게 놀라?"
"어떻게 알았어?"
"푸른 비단에 은사로 권운모양이 수놓아져 있으니 고소 남씨 것인데 고소 남씨 중에서도 이리 비싸고 귀한 걸 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잖아. 첫째로 숙부님은 이리 화려한 것은 좋아하지 않으시고 둘째로 남잠과 아윤의 것은 내가 다 아는데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게 없으니 남은 사람은 택무군뿐이겠지."

쓸데없이 눈썰미가 좋다며 강징이 속으로 무선을 욕하는 사이 무선은 사윤이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택무군의 요대가 네 허리춤에 있는 것인데?"
"실수로 바뀌었나보지."
"요대가 실수로 바뀔 일이 있단 말이야? 아! 하긴 나도 가끔 실수로 남잠의 침의를 내것인 줄 알고 입긴 하는데 남잠과 나는 부부이니 이상할 것이 하나 없지만 너와 택무군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네가 왜 기별도 없이 운심부지처에 왔는지 이제 알겠어."
"알긴 뭘 알아?"
"요대가 바뀐 걸 내가 먼저 알아채서 다행이지. 너 그 꼴로 계속 돌아다녔으면 선문에 소문이 파다하게 났을 거야."
"무슨 소문?"
"선독이 강 종주와 정분이 났다는 소문?"
"위무선! 또 헛소리를!"
"다른 사람들은 그 요대가 고소 남씨 것인지는 알아도 택무군의 것인지 함광군의 것인지 어떻게 알겠어."

무선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큰 소리로 웃어대자 강징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무선, 장난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마. 기분 나빠."
"알았어, 알았다고."

눈물이 날만큼 웃은 무선은 그 눈물을 훔치고는 강징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네가 말벗을 해주겠다며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택무군이 많이 좋아진 것 같더니 단순히 말벗만 해준 건 아니었구나. 하지만 강징, 택무군은 아직 금광요 때문에..."
"나도 알아. 아직도 가끔 헛소리를 하는 거.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그게 쉽게 나아지겠어..."
"사람 때문에 생긴 상처는 사람으로 덮는다지. 네가 곁에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실 거야."
"그러길 바라야지."
"강징, 넌 예전부터 천사같은 얼굴에 몸매가 좋고 순하고 말을 잘 듣는 미인과 혼인할 거라더니 아주 적합한 사람을 찾았잖아."
"대체 그게 언제적 얘기야? 넌 늘 중요한 건 기억하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것들은 잘도 기억하고 있구나?"
"가문이 깨끗해야 하고 성격이 너무 강해도 안돼고 말을 너무 많이 해서도 안되니 네 그 깐깐한 조건과 택무군과 아주 딱 맞아 떨어져. 다만 너도 보다시피 고소 남씨는 말로는 사치를 금한다면서 차려 입는 것을 보면 근면 검소하지 못하는데 괜찮아?"
"치장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그렇지 다른 곳에 헤프게 쓰는 건 아니잖아."
"콩깍지가 아주 단단히 씌였어. 네가 좋다면 내가 왈가왈부할게 아니지. 헌데 숙부님이 어찌 나오실지 모르겠네."
"남 선생님이 왜?"
"그야 너와 택무군이 혼인을 하면 택무군이 운몽 강씨에 데릴사위로 가야하니 그렇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너 택무군이 고소 남씨 종주인 거 잊었어? 지금도 숙부님은 택무군이 종주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며 툭하면 화를 내시는데 아예 종주를 그만두고 연화오로 가겠다고 하면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역시..."
"역시 뭐?"
"택무군을 납치하는 게 빠르겠군."
"뭐?"

생각지도 못한 강징의 얘기에 무선은 겨우 참은 웃음을 다시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생각이 있거든 꼭 내게 알려줘. 이 사형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줄테니까. 보쌈하는 것도 같이 해줄까?"
"네 도움은 필요 없어. 나 혼자 힘으로도 충분해."
"강징."
"왜?"
"그냥... 내 사제가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어서."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해보이는 강징의 모습에 무선은 마음이 놓여 강징이 하지 말라며 성화를 부리는데도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린애 취급을 했다.

"돌아가는 길에 꼭 한실에 들려 택무군과 요대를 바꾸도록 해. 난 내 부군이 운몽의 강 종주와 정분이 났단 소문을 듣고 싶지 않단 말이야."
"시끄러워!"

돌아가겠다는 강징을 배웅하며 끝까지 놀리던 무선은 방안에만 있기 답답하여 산책을 나섰다. 무선이 남씨 사당을 찾아 무사히 아이를 낳게 해달라 기원을 올리는 동안 마지못해 한실을 나선 사윤은 대체 언제부터 제 백부와 사숙이 저리 막역해진 것인지 고민하며 돌아다니다 때마침 사추와 마주치자 그에게도 무선의 회임 소식을 전했다.

"아직 부친께는 비밀이니까 행여나 오늘 부친을 만나거든 입도 뻥긋해선 안돼. 그리 해줄 거지, 형장?"
"그래, 알겠어."
"다른 형장들에겐 형장이 좀 전해줘. 난 수애에게 가봐야겠어."
"그러고 보니 오늘 수애를 보지 못하였네. 어제도 수업에 들지 않았는데. 지난 번 야렵 때도 몸이 좋지 않다며 빠졌는데 아직 낫지 않은 거야?"
"수애가 몸이 좋지 않다 했다고?"
"응."
"몰랐어... 난. 모친이 아픈 탓에 그것만 신경 쓰느라."
"수애를 만나거든 수업에 더는 빠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전해줘."
"응..."

요즘 들어 제 모친을 신경 쓰느라 수애와 통 붙어있지도 얘길 나누지도 못했다는 걸 깨달은 사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수애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대체 어디에 숨은 건지 침소에도, 장서각에도, 뒷산 토끼밭에도 수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애를 태우던 사윤은 수애가 냉천으로 가는 걸 보았다는 한 수사의 말에 냉큼 그곳으로 달려갔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보다야 차라리 이런 애매한 시간이 사람이 없어 한적하기에 수애가 홀로 느긋하게 목욕이나 하려고 냉천에 갔다 생각한 사윤은 한기가 도는 계곡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오자 사윤은 상기된 표정으로 천천히 소리의 근원으로 다가갔다. 삼단 같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수애의 뒷모습에 사윤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풀숲에 숨어 그를 지켜보았다. 정혼자의 벗은 몸을 보는 게 좀 어떻다고 이리 숨어있어야 하나 싶어 당당하게 나서려던 사윤은 수애가 물밖으로 나오자 저도 모르게 다시 몸을 숨겼다. 물밖으로 수애의 나신이 드러나자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눈을 가리려던 사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구야?"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가지런히 벗어놓은 옷 옆에 두었던 투창을 집어든 수애는 사윤과 눈이 마주치자 급하게 제 몸을 가렸다.

"너 뭐야?"
"너야 말로 거기에 숨어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처음부터 훔쳐보고 있었던 거야?"
"너...! 너 회임했어?"

수애가 아무리 가려보려 해도 제법 불러온 배는 가릴수가 없었다. 반 년 전 망기와 무선의 혼례가 있었던 날, 세가자제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어른들 몰래 천자소를 훔쳐먹었던 날 사윤과 수애는 그 날 유독 과음을 하여 사고를 치고 말았다. 어차피 혼인 얘기가 오가는 사이에 정을 통할 수도 있는 거라며 사윤도 수애도 그날 일을 조용히 묻어두었지만 하필 그 단 하루 정을 통한 걸로 수애가 회임을 하고 만 것이었다.

"임수애! 너 아이를 가졌는데 어떻게 나한테 일언반구도 없을 수 있어? 배가 이렇게 불렀는데 언제까지 숨기려고 한건데? 애가 태어나면 나한테 말할 작정이었어? 아님 애도 나 몰래 낳을 생각이었어?"

사윤이 몰아붙이자 수애도 감정이 격해져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수애가 눈물을 보이니 금새 마음이 약해진 사윤은 일단 옷부터 입고 얘기하자며 수애가 개어놓은 옷을 집어들었다. 옷가지 사이에서 배를 조여매던 복대를 발견한 사윤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걸 제외한 나머지 옷들을 수애에게 건넸다. 복대가 없으니 수애는 옷을 다 갖춰입어도 티가 나게 배가 불러있었다.

"임수애, 내가 그렇게 못미더워?"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면 아이의 아비인 내게 왜 회임한 사실을 숨긴 건데?"

제 물음에 수애가 입을 꾹 다물어버리자 사윤은 회유책을 쓰기로 하였다.

"미안해, 내가 너무 내 기분만 생각했어? 몸은 좀 어때? 회임을 하면 입맛이 없어지고 헛구역질이 나온다던데 넌 괜찮아? 먹고 싶은 것은 없어?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침소로 가서 좀 누워있자. 여긴 너무 추워서 너와 아이에게 좋지 않아."

사윤이 다정하게 저를 챙기자 수애는 놀란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는지 순순히 그를 따랐다. 수애를 데리고 그의 침소로 들어온 사윤은 침상에 수애를 앉히고 화로에 불을 지폈다.

"먹고 싶은 건 없어? 뒷산에 가서 비파를 좀 따올까?"

사윤의 물음에 수애는 고개를 내저었다.

"뭐든 말만해. 아기를 가진 사람은 잘 먹어야 해. 모친께서 얘기해주었는데 나를 가졌을 때 모친이 제대로 먹질 못해서 나는 다른 아기들보다 훨씬 작게 태어났대. 우리 아긴 잘 먹고, 잘 자라서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좋겠어."
"남사윤."
"응."
"아이가 생긴 게 좋아?"
"그걸 말이라고 해? 너와 내 아이잖아. 벌써부터 예쁘고 사랑스러워."
"사람들이 흉을 볼지도 몰라."
"무슨 흉을 본다고?"
"혼례도 올리지 않았는데 아이부터 생기면 다들 어떻게 생각하겠어? 넌 선독의 아들이고 고소 남씨 유일한 도련님인데 함광군과 위 선배 얼굴에 먹칠을 하면 안되는 거잖아."
"그게 무슨 흠이라고. 함광군과 이릉노조가 혼인도 안하고 정을 통해 자식을 낳은 걸 선문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어? 먹칠은 이미 부친과 모친 스스로 하셨다고."
"남사윤!"
"소리 지르지마. 아기가 놀랄 거야."

사윤은 능청스럽게 수애의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뱃속의 아이를 달랬다.

"너 설마 아이랑 함께 투기대륙으로 도망칠 생각은 아니었겠지?"
"여차하면 그러려고 했어."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거든 그렇게 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너랑 떨어질 생각 없어."
"그럼 숨기질 말았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손가락질 받지 않을 방법이 없는 걸 어떡해?"
"내가 그런 걸 무서워할 거 같아? 임수애, 네가 나를 믿지 못하는 게 더 무서워."
"믿지 못하는 거 아니야... 너라면 끝까지 책임지고도 남을 사람인 거 알아. 우린 아직 어리고 예기치도 못한 일이라 겁이나서 그런 것뿐이야."
"너도... 기뻤으면 좋겠어. 너와 나의 아이가 생긴 거니까."

사윤이 조금 풀이 죽은 말투로 얘기하자 수애는 그를 끌어안고는 목덜미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당연히 나도 기뻐. 너와 내 아이니까.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어? 너 닮아 예쁘게 태어나라고 아이에게 매일같이 당부한단 말이야."
"운심부지처의 사고뭉치는 나 하나로 충분해. 날 닮지 말고 널 닮아야 해."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 아이를 예뻐해줬으면 좋겠어..."
"숙조부님께 이 소식을 전하면 기뻐서 쓰러지실지도 모르겠네."
"화가나서 쓰러지시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화가 날게 뭐가 있어? 손이 귀한 집에 자식이 둘이나 더 태어난다는데 기뻐하셔야지."
"왜 둘이야?"
"아참! 내가 널 찾아다닌 이유가 따로 있었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걸 얘기 못했네."
"무슨 얘기?"
"모친도 회임을 하셨거든. 내 아우가 태어날 거야. 아우는 석달이 조금 못됐다고 했으니 우리 아이가 먼저 태어나겠네."

사윤의 말에 수애는 귀끝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조카가 제 숙부보다 먼저 태어나면 어떡해?"
"어떡하긴 둘이 형제처럼 자라면 되는 거지."
"함광군과 위 선배에겐 뭐라 말할 거야?"
"솔직하게 고해야지 뭘 어떡해... 나를 때려죽이려 한다 해도 너와 빨리 혼인을 올리게 해달라 할거야."
"함광군께서 화를 내시거든 내가 나설게... 나까지 때리진 못하시겠지."
"됐어. 맞아도 내가 맞고, 혼나도 내가 혼나. 다만 모친이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할 때라 적당히 눈치를 봐서 얘길 꺼내볼게. 그때까진 이 일에 대해 함구해야 해."
"배가 이렇게 부를 때까지도 숨겼는데 뭘..."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수애에게 걱정하지 말라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막상 저도 마땅한 계획이 없었던 사윤은 앞날이 걱정되어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한편 석반 들기 전까진 돌아오겠다더니 정말 해지기 전에 운심부지처에 돌아온 망기가 정실에 돌아왔을 때 방안은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무선은 물론이고 사윤까지 보이지 않자 망기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다급하게 그를 찾으려 나서려다 때마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무선을 마주쳤다.

"위영!"
"남잠! 언제 돌아온 거야?"

무선을 마주치자마자 그의 이마에 제 손등을 대본 망기는 아직도 미열이 남아있는 것에 미간을 찌푸리며 무선을 안아들어 그를 침상에 눕혔다.

"어딜 다녀 온 거야?"
"방안에만 있기 답답해서 돌아다니다 왔어."
"아직 열이 남아있다."
"괜찮아, 이정도는."
"괜찮지 않아."
"고집은..."
"아윤은 어딜가고?"
"내가 시킨 일이 있어서 좀 바빠."
"의원은?"
"다녀갔어."

걱정이 서린 표정으로 무선의 뺨을 어루만지던 망기는 그가 무슨 큰 병에라도 걸렸을까봐 섣불리 그의 병증에 대해 묻지 못했다.

"남잠, 내가 왜 아픈 줄 알아?"

무선의 물음에 망기가 고개를 가로젓자 무선은 그의 귓가에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잠 때문이래."

망기는 놀란 눈으로 무선을 바라보고 무선은 끝까지 들으라는 듯 다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남잠이 매일매일 나를 가만두지 않으니까 아이가 생길 수 밖에 없잖아."
"위영."
"아윤의 아우가 생겼어. 아윤은 그 소식을 전하고 다니느라 바쁘고."
"정말이야?"
"내가 설마 이런 걸로 남잠을 속이겠어?"

무선이 장난스럽게 웃어보이자 망기는 그를 꼭 끌어안았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남잠, 우리 사이엔 그런 얘기 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리고 대체 뭐가 미안해?"
"내가 또 널 아프게 했잖아."
"남잠, 남잠. 나는 남잠이 날 아프게 하는 게 좋다니까."

무선은 망기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내리눌렀다. 무선은 이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자신을 옥구슬마냥 어여삐 여기고 사랑해주는 부군이 있고 그런 부군을 닮은 사랑스러운 아들과 뱃속의 아이까지, 사악한 마귀 이릉노조가 이리 단란한 가족을 꾸리게 될 것이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무선은 망기의 손을 끌어 아직은 판판하기만 한 제 배 위에 얹어주었다.

"아윤을 가졌을 때 천지신명께 매일 기도를 올렸어. 남잠을 닮은 아기가 태어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한 덕에 남잠을 빼다박은 아윤이 태어났으니 오늘부터 또 기도를 올려야겠어. 이번에도 남잠을 닮은 예쁘고 아정한 아기를 낳게 해달라고."
"위영, 내가 더 열심히 기도할 거야. 널 닮은 아이가 태어나게 해달라고."

무선이 사윤을 가졌을 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온녕에게 전해들은 망기는 당시에 무선의 곁을 지키지 못한 게 한이 되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함 없이 무선을 챙기겠노라 다짐하며 무선의 마른 배를 살살 쓸어주었다.

"아윤은? 서운해하진 않고?"
"나도 그걸 걱정했는데 아윤이 나보다 더 기뻐하던 걸. 마냥 어린줄만 알았는데 벌써 철이 들었나봐."
"아윤은 내가 부족함 없이 챙길테니 위영 넌 네 몸부터 챙겨야 해."
"이리 다정한 부군이 있는데 내가 무얼 걱정하겠어. 둘째 오라버니, 내가 아이를 돌볼 줄 모른다 분명 말했는데도 나와 혼인하였으니 이 아이는 둘째 오라버니가 키워줘야 해. 난 몸이 낫는대로 남가 제자들을 데리고 아렵을 다닐 거란 말이야."
"음.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리 해."

제가 하늘의 별을 따다 달라고 조르면 망기는 진짜 따오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무선은 눈꼬리를 활짝 휘고 해사하게 웃으며 망기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춰주었다. 선독 부부가 둘째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은 하루만에 운심부지처 담장을 넘어 선문 전체에 퍼지고 선독에게 잘보이고 싶은 이들은 벌써부터 축하 인사를 건네며 아기의 선물을 보내왔다. 남계인은 무선이 묘시를 넘겨 해가 중천에 뜨도록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지 않아도 화 한 번 내질 않고 되레 먼저 정실로 찾아가 몸은 어떤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살뜰하게 무선을 챙겼다. 한 달이 넘게 고심하고 고심해 아이 이름 열 몇 개를 적어놓고 제일 좋은 이름 한 개를 정하느라 고민에 빠진 남계인은 사윤이 어쩐 일인지 의복을 단정히 하고 뛰지도 않고 얌전히 아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해가 서쪽에서 뜨진 않았는지 창 너머의 하늘을 한 번 확인해 보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어 오늘은 이리 얌전히 굴어?"
"숙조부님은... 제가 뭐 다른 속내가 있어야지만 얌전히 군다는 식으로 말하셔요..."
"언제는 안그랬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아우의 이름은 정하셨어요?"
"고르는 중이다."

사윤은 남계인이 책상 위에 늘어놓은 이름이 적힌 종이 중에 하나 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집었다.

"넌 그것이 마음에 드느냐? 어디보자... '해아'. 아우 이름을 해아라 지을까?"
"아우 이름 말고요."
"아우 이름이 아니면?"
"숙조부님..."

사윤이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하며 저를 바라보자 본능적으로 그가 또 사고를 쳤다는 걸 알아챈 남계인의 미간이 점점 구겨지기 시작했다.

"우리 고소 남씨는 손이 귀하니 자손이 태어나는 건 경사이지요."
"안지,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고하거라!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숙조부님, 길일을 뽑아주세요! 수애가 회임을 했어요. 제 아이를 가졌으니 빨리 혼례를 올려야 해요."

사윤의 나이 이제 고작 열일곱이었다.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은 아이가, 혼례도 올리지 않고 아이부터 가졌으니 제 아비가 젊었을 적 그랬듯 가문의 명성에 먹칠을 한 것이다.

"남안지!"

남계인이 대노하여 소리를 지르자 사윤은 깜짝 놀라 도망치고 남계인은 그 뒤를 쫓으며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사윤을 마구 내리쳤다. 남계인이 나이가 들어 세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해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선문에 명성을 떨친 수사였다. 그가 나뭇가지에 영력을 실어 한 번씩 내리 칠 때마다 사윤의 입에선 '억'소리가 절로 나왔다.

"똑같이 고소 남씨 자손인데 모친의 회임은 축하할 일이고 수애의 회임은 경을 칠 일입니까? 제가 벌인 일 제가 책임질 것이니 혼인 시켜주세요!"
"경거망동하지 말라 그리 일러도 어찌 이리 말을 안듣는 것이냐!"

이 상황에서 저를 구해줄 이는 백부뿐이라 사윤은 다급하게 한실로 도망쳤지만 한실 어디에도 희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든든한 제 편이 보이지 않자 사윤은 적어도 부모가 저를 때려죽이진 않을 거라며 울며 겨자먹기로 정실로 걸음을 틀었다. 무선은 오랜만에 난을 치는 솜씨를 보여주겠다며 금을 타는 망기의 곁에 앉아 붓을 놀리고 있었다. 날씨는 따사롭고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은 바깥의 꽃내음을 실어다주었다. 청아한 망기의 연주에 맞춰 무선은 한가롭게 난을 그리니 그 어느 때보다 정실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사윤이 울면서 뛰어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친! 모친! 숙조부님께서 저를 때려죽이려 하셔요!"

사윤이 죽는 소리를 하자 무선은 버선발로 뛰쳐나가 아들을 제 뒤로 숨겼다. 무선이 가로막으니 차마 그를 때릴 수 없어 남계인은 제 분을 못 이기고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바닥에 내던졌다.

"숙부님, 아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도 체면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찌 남들 보는 앞에서 이리 마구잡이로 때리시는 겁니까?"
"부모라는 녀석들이 모범이 되질 못하니 자식이 이 모양 이 꼴인 거 아니냐!"

남계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자 행여나 무선과 뱃속의 아이가 놀랄까봐 이번엔 망기가 나서 무선을 감쌌다. 아비까지 나서니 확실하게 몸을 숨길 수 있어 사윤은 제 부모의 뒤에 숨어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숙부님, 위영이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할 때입니다. 노기를 거두시지요."
"안지 저 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쳤는지 알고는 있느냐?"

망기와 무선이 돌아보자 사윤은 개미만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수애가 아이를 가져서... 숙조부님께 혼인을 시켜달라 한 것인데..."
"수애가 뭘 해?"

무선이 되묻자 사윤의 목소리는 더 작아져만 갔다.

"수애가 제 아이를 가졌어요."

사윤이 수애가 제 아이를 가졌다는 얘길 꺼내자 제 귀를 의심하던 무선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져 그 자리에서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위영!"
"모친!"

차라리 모친이 저를 때리고 욕하는 게 낫지 충격을 받아 쓰러져버리자 사윤은 제 부친이 저를 한담동에 가둬버린데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만 했다. 망기는 급하게 무선을 침상에 눕히고 남계인은 직접 의원을 부르러 나섰다.

"부친... 모친은 괜찮은 것이지요?"
"아윤, 너와 수애가 정혼서를 주고 받았으니 마땅히 때가 되면 부족함 없이 준비하여 혼례를 올려주었을텐데 어찌 이리 경솔하게 굴어 모친에게 심려를 끼친단 말이냐?"
"잘못했습니다."
"네 모친은 네가 학문과 수련을 소홀하게 여겨도 괜찮으니 건강하고, 바르고, 단정하게 자라기만을 바라는데 너는 모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효를 행하는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구나."
"모친께서 이리 놀라실지 정말 몰랐습니다. 다 제 잘못이예요."

사윤도 많이 놀란 모양인지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얼굴을 하자 망기는 마음이 약해져 더 이상 혼을 내지 못했다. 무선과 뱃속의 아이 모두 큰 탈은 없다는 의원의 진단을 듣고나서야 망기는 한시름 덜 수 있었다.

"남잠..."

무선이 정신을 차렸을 때 망기는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선 사윤과 수애가 남계인의 훈계를 듣고 있었다.

"위영."
"나 쓰러졌었어?"
"음. 의원이 다녀갔어. 아이는 무사하니 걱정하지마."
"응... 남잠."
"음."
"아윤을 혼냈어? 어째 더 기가 죽어보이네."
"조금."

무선이 사윤을 가졌을 때 그의 나이 고작 스물이었다. 그때도 어린 나이에 이르게 아이를 가졌다 생각했건만 아직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사윤과 수애가 부모가 된다니 눈앞이 캄캄해 무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를 혼내시는 건 상관 없지만 수애는 회임을 한 몸이에요. 숙조부님 지금 수애를 한 시진 째 무릎 꿇려 혼내고 계시는 건 아세요?"
"시끄럽다! 뭘 잘 했다고 말 대답이야?"
"계척으로 때리시든 계편으로 때리시든 군말 않고 맞겠습니다. 그러니 수애는 용서해주세요."

사윤이 간절하게 애원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무선은 사윤과 수애를 제 곁으로 불러들였다.

"숙부님, 자식 단속 제대로 못한 저희 잘못도 있으니 훈계는 저와 남잠이 하겠습니다. 그만 노여움을 푸세요. 곧 고소 남씨 귀한 손이 둘이나 태어나는데 숙부님께서 울화가 쌓여 앓아 눕기라도 하시면 아이들에게 가규는 누가 가르치겠습니까? 남잠은 선독의 일로 공사가 다망한데 설마 저보고 가르치라 하시진 않으실 거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라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떡하겠습니까? 오히려 아윤이 이 일을 모르쇠했으면 그것이 더 가문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제 잘못을 알고 책임지겠다고 하니 너그럽게 봐주셔요."

무선이 먼저 숙이고 나오자 남계인도 더는 화를 낼 수 없어 소매를 한 번 휙 펄럭이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는 아실로 돌아갔다. 상황이 좀 수습되자 무선은 협탁에서 연고를 꺼내 여기저기 붉은 줄이 그어진 사윤의 상처에 발라주었다.

"네가 예뻐서 편 들어주는 거 아니야. 숙부님이 계속 화를 내시니 내 골이 다 울려서 편 들어주는 척 하는 거지."
"모친..."
"뭘 잘 했다고 울어?"

무선이 이마에 딱밤을 놓자 사윤은 억울하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해댔다.

"아직도 이리 철이 없는데 아이는 어떻게 키우려고? 애는 뭐 낳아놓으면 알아서 크는 줄 알아?"
"그렇다고 이미 생긴 아이를 없앨 순 없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해?"
"모친, 화내시지 마세요. 뱃속의 아우를 생각하셔야죠."
"이 어미 걱정이 되긴 해? 그런 녀석이 이런 일을 벌여?"
"위 선배, 죄송해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윤이 안쓰러워 수애가 나서자 무선은 멋쩍은 마음에 사윤을 타박하는 걸 멈췄다.

"몸은 괜찮고? 아픈덴 없어? 끼니는 잘 챙기고 있는 거야?"
"의원님이 아기도 저도 아주 건강하다고 했어요. 입덧도 없어 가리는 거 없이 잘 먹고 있어요."
"숙부님 잘 설득하여 길일 뽑아 배가 더부르기 전에 혼례부터 올려야겠다. 내 손주 녀석까지 부모가 혼례도 올리지 않고 낳았단 소릴 듣게 할 순 없잖아."
"저희가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면목 없어요..."
"수애 너는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너와 아이만 생각해. 알겠지? 오늘부터 침소를 영죽당으로 옮겨 지내도록하고. 지척에 있어야 내가 하나라도 더 챙길 거 아니야."

무선의 명에 수애는 당장 거처를 사윤의 침소로 옮기고 운심부지처는 한시 바삐 사윤의 혼례를 준비하였다. 남가 말썽쟁이 도련님이 제 정혼자와 아이부터 가진 탓에 급하게 올리는 혼례라는 소문이 선문 전체에 퍼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흉을 보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혼례를 준비하느라 남들이 하는 얘기에 신경을 쓸 겨를 없이 바빴다.

"안지의 혼사로 인해 논의할 것이 산더미인데 희신은 어찌 코빼기도 비추질 않아?"
"선생님 그것이..."

남계인의 불평에 남가 제자가 난처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 말을 하다가 마느냐?"
"며칠 전 운몽의 강 종주님께서 종주님을 찾으신 뒤로 종주님께서 보이질 않으십니다. 어딜 가면 가신다고 저희에게 말씀을 하셨을텐데..."
"보이질 않아?"
"예..."
"날이 갈수록 어째 더 미운짓만 하는 것인지... 어디 유람이라도 간 모양이니 돌아오면 알리거라. 망기와 상의하련다."
"예, 선생님."

적당히 때되면 돌아올 것이라 여긴 희신은 사윤의 혼례가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 옛날 저처럼 형장이 방황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망기는 수사들을 시켜 그를 찾아나서야 한다 했지만 무선은 짚이는 구석이 있다며 그를 말렸다.

"남잠, 아윤이 우리에게만 특별한 아이야? 택무군에게도 애지중지 공들여 키운 하나뿐인 조카인데 그 조카의 혼례를 그냥 넘어가겠어? 때가 되면 오실테니 너무 걱정 말아."
"하지만 형장이 연통도 없이 이리 오래 자릴 비운 적이 없었어."

망기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자 무선은 손에 들고 있던 과일 그릇을 내려놓고는 침상에 걸터 앉아있던 망기를 등뒤에서 끌어안았다. 방금 전까지 산딸기와 포도를 먹던 무선에게서 달큰한 과일 향기가 풍겨왔다.

"남잠, 설마 나를 못 믿는거야?"
"그런 게 아니라..."
"그렇다면 걱정말라는데도. 이리와, 남잠. 하루종일 내 몫까지 아윤의 혼례를 준비하느라 바빴잖아. 조금이라도 한가할 때 눈 좀 붙여."

무선이 끌어당기니 망기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를 마주보고 누웠다. 무선이 입술이며 뺨, 이마에 접문을 해주자 굳어있던 망기의 표정이 풀리고 망기는 살짝 불러온 무선의 배를 쓰다듬어보았다.

"아윤은 뱃속에 있을 때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는데 이 녀석은 정말 남잠을 닮아 아정한 모양이야."
"음."
"아윤의 아이는 아윤을 닮았는지 밤중에도 배를 발로 차대서 수애가 깜짝 놀라 깬다지 뭐야. 얼마나 사고뭉치인 아이가 태어나려는 건지..."
"음."
"아참! 남잠, 그거 알아? 아윤 이 녀석이 숙부님께서 제 아우 주려고 골라놓은 이름 중에 하나를 채갔다지 뭐야. 아기 이름을 해아라고 짓겠대. 처음부터 그게 마음에 들었다고. 남해아, 예쁜 이름이야. 숙부님께서 바름을 갖추라는 뜻으로 지었다니 부디 이름값은 해야할텐데..."
"우리 아이 이름은?"
"응?"
"마음에 드는 게 있었어?"
"응."

무선은 망기의 귓가에 대고 아주 비밀스러운 얘기라도 하듯이 속삭였다.

"소범."
"소범?"
"응. 모두의 모범이 되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가 되라고 그리 지으셨대. 남잠은 어때? 마음에 들어?"
"위영 네가 좋다면 나도 좋아."
"정말로?"
"음."

무선이 몸을 일으켜 침상에 기대어 앉자 망기는 가만 무선의 배에 귀를 대보았다.

"그런다고 아기가 말이라도 걸어줘?"
"그냥... 그냥 좋아서."
"남잠, 남잠이 아이에게 이름을 알려줘."

무선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나른해진 망기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 소범아. 어미와 아비를 걱정 시키지말고 건강하게 나와야한다. 어미를 아프게 하면 아니된다. 그것이 네가 진정으로 효를 행하는 것이다."
"남잠도 참... 뱃속에 있는 게 뭘 안다고."
"매일매일 말하면 알아들을지도 모르잖아."

망기의 엉뚱한 대답에 무선은 작게 웃으며 계속 망기의 머리칼을 만져주었다. 정실에 오래 머물러서인지 어느새 무선에게서도 단향목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나와 망기는 잠투정을 하는 어린 아이처럼 무선의 품에 고개를 부볐다. 창밖의 풀벌레 소리에 무선의 웃음소리가 섞여 귓가를 간지럽히고 다정하게 머리칼을 만져주는 손길에 망기는 점점 수마에 사로잡혀갔다.

"남잠, 졸려?"
"음."
"그럼 버티지 말고 자."
"음."
"걱정 하지마. 자고 일어나도 옆에 있을게."

한 여름밤의 꿈처럼 자고 일어나면 무선이 사라질까 여전히 두려운 망기에게 무선의 약속은 주문과도 같았다. 편하게 잠에 들 수 있는 주문. 망기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하자 무선은 행여나 제 부군의 잠을 방해할까 손짓으로 일렁이는 촛불을 껐다.


그 해 운심부지처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남가 말썽쟁이 도련님의 혼례는 급하게 준비하였는데도 온 집안 사람들이 공을 들여 선독의 혼례보다 더 화려하게 치러졌다. 사윤의 혼례날은 여러모로 시끌벅적하였는데 그간 연통조차 없던 희신이 연화오의 데릴사위가 되어 나타난 일로 남계인이 홧병이 나서 쓰러진 것이 화룡점정이었다. 혼례를 올린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수애는 사윤을 빼다박은 사내아이를 낳았고 미리 지어놓은대로 아이의 이름을 해아라 정했다. 그로부터 또 석 달이 지나 무선이 해산을 하니 망기가 열심히 기원을 한 덕에 둘째 아이는 무선을 닮아 망기는 한 시도 아이를 품에서 떨어뜨려놓질 못했다. 해아와 소범의 만월례를 치르고 나서야 희신과 강징은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겠다며 운심부지처에 자색 비단으로 곱게 꾸민 청첩장을 보내왔다. 고소 남씨 모두가 연화오를 찾아 혼인을 축하하였지만 남계인은 꼴도 보기 싫다며 희신과 강징의 혼례에 참여하지 않았을뿐더러 희신에게 축객령을 내려 운심부지처엔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희신의 축객령이 풀린 것은 강징이 둘째 아이를 낳고 난 후였으니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다.







정말로 끝!


망기무선 망선 사윤수애 희신강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