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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05:03
대만이 마음이 싱숭생숭 하겠지. 불 다 끄고 다들 자느라 숨소리만 들리는데 유독 오른쪽 옆에 누운 애 숨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잠이 안 옴. 좋아하는 애가 내 옆에 자는데 잠 그거 어떻게 오는데.... 오히려 더 말똥말똥해져서 몇번이나 뒤척이다가 옆에서 작게 으음... 소리가 나니까 이제 움직이지도 못 함.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눈이 어둠에 익었을 무렵 눈동자를 슬쩍 오른쪽으로 굴려보니 좋아하는 후배가 제쪽으로 누워있음. 조심스럽게 그 후배 쪽으로 몸을 돌려서 후배의 얼굴을 마음껏 감상함. 평소와 다르게 머리를 내리고 짝짝이 눈썹이 아닌 순한 얼굴로 잠든 모습이 너무 새롭고 귀여워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짐. 귀엽네... 평소에도 이렇게 귀여우면 얼마나 좋아. 입에서 마음대로 말이 막 튀어나옴. 그러다 이런 귀여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질투가 남.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다녀라. 듣는 사람은 없는데 대화하듯이 중얼거림.

태섭아. 그렇게 불렀던 이름인데 새삼 또 다르게 느껴짐. 이름에 둥근 구석 하나 없는 것조차 후배 녀석 같아서 웃음이 남. 왜 이 녀석의 이름은 송태섭인지. 지구는 둥글다 같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다가오는 이 순간이 꼭 꿈처럼 느껴졌음. 태섭아. 송태섭. 입에 담아보는 그 이름에는 설탕물이라도 발랐는지 담으면 담을수록 달콤해졌음. 태섭아. 그렇게 불러봤지만 후배에게선 당연히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음. 색색 잠든 모습에 조금 욕심을 부려 몸을 가까이 했음. 그 후배의 숨소리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크게 들렸음. 숨쉬는 것마저 귀여우면 어떡하지. 아무래도 이 후배에게 단단히 빠진 것 같은데 그게 싫지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음.

이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다가 문득 부드러워 보이는 앞머리가 궁금해서 손을 뻗었음. 머리카락이 제 손가락에 감기는 게 퍽 마음에 들었음. 보이는 것처럼 부드러운 곱슬머리는 꼭 이 후배 녀석이 자는 얼굴 같았음. 그럼 이 녀석의 얼굴도 부드러울까. 곱슬머리를 만지던 손은 아래로 내려가 코를 타고 볼로 향했음. 말랑한 볼은 꼭 중학생 같았음. 애기네. 그렇게 말하며 대만이의 손가락은 입술로 향했음. 남자애답지 않은 도톰한 입술은 대만이가 질릴 정도로 보고 또 봤던 곳이었음. 이 입술에 입 맞출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대만이의 대답은 ‘아니’였음. 이 후배 녀석이 저를 좋아할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거였음. 첫인상이 그 따위였는데 가능이나 하겠냐. 그 사달을 내고 농구부로 돌아온 자신을 여태 밀어내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겨야했음. 그치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잖아.

좋아해 태섭아. 그래서일까, 멋대로 진심이 튀어나와버렸음. 자는 애 앞에서 비겁하지만 그래도 한 번 쯤은 제 마음을 말하고 싶었던 대만이었음. 어이없는 거 아는데 너도 날 좋아한다고 해주면 좋겠어. 이 입술로 정대만 선배, 좋아합니다. 라고 말해주면 안되겠냐. 후배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덧그리며 장난스럽지만 조금 쓴 표정으로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말해주길 바래요?

심장이 떨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낀 대만인 그대로 굳어버렸음. 후배는 제 입술에 올려진 대만이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살짝 얽었음. 선배. 정말 바래요? 작지만 또렷한 후배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음. ....바래. 그에 반해 자신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렸음. 늘 상상만 하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어떻게 그러지 않을수가 있겠음. 후배는 잠깐 심호흡을 하더니 대만이를 똑바로 보고 말했음.

정대만 선배, 좋아합니다. 진심이에요.

그러곤 입술을 말면서 대만이의 눈치를 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얽혔던 손가락을 풀고 후배의, 태섭이의 손목을 끌어당겨 안았음. 작은 몸은 조금의 반항도 없이 안겨 대만이 셔츠자락만 쥐었다가. 나도 좋아해, 태섭아. 많이 좋아해. 정말로 좋아한다. 둑이 터지듯 터지는 대만이의 고백에 조심스럽게 대만이 허리를 안았음. 그게 미치도록 만족스러워서 태섭이를 더욱 당겨안았음.

선배 심장... 엄청나게 뛰네요. 경기 뛰는 것 같아요. 제 품에 안겨 웅얼거리는 태섭이의 음절 하나하나가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음. 대만이는 당장 태섭이의 얼굴을 봐야했음. 분명 귀여울테니까. 태섭이를 품에서 살짝 떼어내니 태섭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보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귀여웠음. 대만이는 행복한 얼굴로 말했음. 송태섭을 좋아하니까 당연한 거야. 자꾸만 쏟아지는 고백에 태섭이의 눈동자가 굴러가더니 다시 꾸물꾸물 대만이 품 안으로 기어들어왔고 대만이는 기꺼이 태섭이를 다시 안아주었음.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했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에 대만이는 작게 웃으며 속삭였음. 모르겠어. 정신 차리고 보니까 이미 너한테 푹 빠졌더라. 귓가에 훅 들어오는 숨길에 태섭이 몸이 조그맣게 떨렸음. 태섭아, 나 좋아한다고 한 번만 더 말해주라. 재빠르게 태섭이의 약점을 캐치한 대만이는 일부러 태섭이 귓가에 대고 얘기했고 태섭이의 몸이 다시 한 번 떨리더니 고개를 빼꼼 들고 작게 노려봤음. 그래봤자 타격은 없었음. 포기를 모르는 남자의 성정을 모를리가 없는 태섭이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음. 저도 선배, 꽤.... 좋아해요. 일부러 귓가에 얘기한 복수로 한 방 먹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걸더니 태섭이 뒷통수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대만이가 말했음. 많이 좋아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태섭아. 그러면 태섭이가 대만이 가슴팍에 이마를 맞대고 잠깐을 침묵하다가 그럴거임. ...이미 많이 좋아하니까...노력 안 해도 괜찮을 걸요... 선배랑 사귈게요. 아 진짜 어디서 이런 애가 내 앞에 떨어졌지? 대만이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다시 태섭이를 꼭 끌어안았고 태섭이도 단단하게 대만이를 끌어안으면서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이 시작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