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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03:43
날조
나만 아는 설정 많음 주의...

영수가 예전에 대협이한테 한 번 고백했던 거

그땐 졸업을 앞두고였겠지
3학년을 같이 보내면서 이전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고 주인도 없는 대협이 자취방에 영수가 먼저 들어와 있는 것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을 때

졸업을 앞두고 영수가 고백했겠지
대협이는 솔직히 방심했다고 생각했음
영수는 남자애고 친구라 자기한테 고백할 줄 몰랐을 거임
영수가 자기 좋아하는 줄은?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
그렇게 붙어다니는데 모를 수가 없지 영수는 특히 말투며 사소한 터치며 의식했을 때 얼굴 빨개지는 거 하나도 못 숨겼을 것임
그런데 대협이는 받아줄 생각은 없었겠지
그리고 좀 귀찮아질 것 같다고 예상했는데

영수는 대답 없는 대협이 얼굴을 살피다가 딱딱하게 굳더니 미안... 하고 가버렸을 것임

예상과 달리 귀찮은 일은 안 생겼음
여자애들 고백은 잘 거절해야 했거든 안 사귀면 열심히 따라다니던 애가 돌변해서 마치 배신당한 것처럼 굴기도 했고 사귀어도 넌 날 좋아하긴 하는 거냐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싸우다가 차이기도 했거든
차라리 처음부터 잘 거절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었음

근데 영수는 안 그랬지
대협이는 다시 도쿄로 대학 가면서도
원래 가까우니까 후배들 만나러도 가고 동창 모임에도 자주 나갔는데
거기서 대학을 간 영수와도 자주 만났음
그때 고백은 서로 얘기 안하니까 없는 얘기처럼 되어버렸는데
몇 번 어울릴 때 전혀 사심없는 친구처럼 굴어서 대협이도 괜찮게 어울렸음
오히려 대협이가 순간순간 고백을 떠올리고 멈칫했는데 영수는 전혀 그런 일 없다는 듯 대해서 괜찮았지
그렇게 대학 시절을 보내고 나니 동창 모임도 흐지부지 되고 점점 못 만나기 시작했음 이사가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고 각자의 사정이 한참 많이 생길 때니까 빠른 애들은 벌써 애가 생겨서 못 나오곤 했음

영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 작은 회사에서 직장을 잡았는데 그 소식을 마지막으로 보기 어려워졌지
천천히 멀어져서 이제 모임 말고는 개인적으로는 안 만나는 사이가 됐거든


그러다 서른을 넘어서 다시 우연히 재회하는 둘 보고 싶다
대협이는 이번 시즌에 이적했는데 도쿄에서 꽤 떨어진 지역이 연고지인 팀이었지
그래서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이사할까 했는데 그러기엔 비시즌에는 대부분 도쿄에서 머물기도 했고 막상 올라왔을 때 계속 호텔에서 지내기는 싫었거든
어떻게 할까 망설이던 차에 우연히 길거리를 걷다가 영수를 만나는 거 보고 싶다 정말 우연이었음

영수는 제법 회사원으로 짬이 차서 직급도 올랐고 얼굴도 젖살이 빠져 달라보였지
그때쯤엔 고백은 잊고 고등학교 때 한참 친했던 기억만 갖고 있다가 반가워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다
마침 영수가 이전 집 계약이 다 되어서 이사를 앞두고 집을 찾는데 자기 빈집에다가 데려오는 거 보고 싶다
영수는 집 구하는 게 힘들었던지 몇 번 예의상 거절하다 들어왔는데
영수가 거기 살고 있는 게 꽤 마음에 들었겠지
중간중간 도쿄로 올라와 집에 머무를 때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채워져있고
청소도 깔끔하게 되어있고
심심하지 않게 옛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집에 있고
가끔 물건을 잊고 가면 주말쯤 드라이브 왔다면서 대협이 숙소까지 와서 갖다주고 가곤 했지
이미 그 숙소 비번까지 영수가 알고 있을 것 같음

같이 산지 햇수로 두 해가 되는 연말에 대협이도 영수도 집에서 연말을 보내게 되는데 폭설로 차편이 끊겨서 각자 본가 가보려는 일정이 어그러졌겠지
와인이라도 까서 연말 기분을 내보는데 내내 분위기가 느긋하고 나른하겠지
영수가 조금 취했는지 소파 건너편에서 스르르 무너지면서 눕는데
대협이는 예전부터 이런 분위기를 잘 캐치하는 편이었지
분위기가 촉촉한 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음 아주 오랫동안 그 고백을 묻어뒀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겠지
혹시 나 아직 좋아하나? 생각했는데 그때는 너무 오래전이잖아
살짝 떠보려고 영수는 요즘 좋아하는 사람 있어? 하고 묻는데
영수가 소파에 한 쪽 뺨을 묻은 채로 끄덕거렸음
정말?
끄덕
영수 그런 말 한 번도 안했잖아
끄덕
어떤 사람이야? 궁금하다

영수는 작게 웃었음

언제 데리고 와 같이 밥먹자

가만히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음

대협이는 그게 귀여워서
왜? 나도 보고 싶어~ 나도 내 여자친구 소개시켜 준 적 있잖아
했는데 영수는 잠들었는지 더는 답이 없었음

그러다 한 번 영수네 누나가 집에 온 적이 있었음
영수는 대협이 집에 있으니까 나가자고 했는데 대협이가 고등학교 때 몇 번 본 영수 누나를 알아보고 곧 갈 거니까 여기서 있다 가시라고 함
그래서 둘이 얘기하는 거 드문드문 들어가면서 준비하고 인사하고 내려가는데
차키를 안 가지고 나왔음
다시 올라와서 들어가는데 열어놓았던 창문으로 둘이 얘기하는 게 들렸음

누나도 영수 연애 얘기를 하고 있었음
얘기...가 아니라 닦달하면서 결혼하라고 하는 거
왜 연애도 안하고 지내느냐 좋아하는 사람도 없냐 하는데

영수가 몇 번 계속 말을 돌리려고 하다가

누나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하니까

누나가 대뜸
윤대협?
하고 자기 이름 말해서 대협이 그대로 딱 굳겠지

윤대협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하고 영수 엄청 당황하는데
너 걔한테 말은 해봤냐고 심각하게 묻는 거임
고등학교 때부터 너 걔뿐이지 않았냐고
영수가 누나한테 말하겠지

누나 난 걔한테 절대 절대 절대 말 안 할 거야
내가 좋아하는 애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해서 윤대협 다시 내려가지도 못하고 발 딱 굳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숨기지를 못하던 애가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 숨기게 됐을지 자꾸 되새기며 생각하고
자기 고백을 곤란해하던... 아니 싫어하던 모습을 보고 영수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하고
자기가 올 때 쯤 꽉꽉 들어차 있던 냉장고와 두고간 물건을 귀찮은 기색도 없이 운전해서 가져다 주던 모든게 영수의 애정이었다는 걸 느끼고
대협이 어느 때보다 생각이 많아지는 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