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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부터 장발은 아니었을거야. 타과 신입생들이야 이제 새내기라고 한껏 멋낼 시즌이지만 군기 빡센 체대생이 1학년 댓바람부터 머리를 기른다..? 어지간한 모난 돌 인생 각오한 게 아니고서야 그러기 힘든 분위기겠지 ㅋㅋ큐ㅠㅠㅠ 그래서 정대만도 분명 3월 대학리그 개막할 때는 고딩 때처럼 스포츠머리이긴 했었음. 윈터컵 거치면서 약간 자라나서 살랑거리는 정도?

 

대학 생활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음. 우선 기본적으로 정대만이 진학한 대학교가 농구 강호교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불안정하고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고등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조금씩 프로 선수로서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지금, 스스로 느끼기에도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겠지. 꾸준한 훈련으로 인해 더 단단하고 체력적으로 보강된 신체. 체계적으로 조직된 소속 농구팀. 유능하고 성실한 동료들. 아. 이 코트 위에 설 수 있어서,나에게 이런 자격이 주어져서 다행이다. 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지금의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농구를 했겠지.

 

"대만아아아아아─!"

불,꽃,남,자,정,대,만 !!!!!!!!!

 

그래. 그러다보니 이렇게 대학 리그 경기까지 빠짐없이 응원하러 달려오는 친구도 있고,

 

"수고했어요, 선배. 오늘 컨디션 좋은데요?"

​"네 눈에도 그렇게 보였냐 태섭아? ㅎㅎ 하긴 내가 오늘 좀 날아다니긴 했지."

 

가끔씩 (자주는 아니다), 아주 가끔씩은 수험생이라 바쁘신 귀한 후배님까지 관람하러 와주곤 했으니.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나날일텐데. 여기서 더 욕심내면 과분한 걸 탐한다고 벌이라도 내려올 지 모르겠단 실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인데... 그런데 난 왜 네가 보고싶냐 철아. 

 

 

하는 싱숭생숭한 심리상태로ㅋㅋ큐ㅠㅠㅠ 분명 표면적인 결핍은 하나도 없이 완벽한 하루하루인데 계속 가슴 어딘가가 텅 빈듯한 감각이 이상해서,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머리 기르는 걸로 달래는 정대만이 보고싶다. 본인조차 의식하고 기른 건 아닌데 그냥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기억 속 철이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발버둥이었는지 어느 새 제법 긴 머리에 곱슬곱슬한 펌까지 넣은 자기 자신과 조우하게 됨.

 

다행히 대만이네 소속 팀의 주요 주전 선배들이 꽉 막힌 타입들은 아니어서, 뭐 기량에만 지장 없으면 된다- 하는 마음으로 새내기의 일탈(!)을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 1학년이 머리 치렁치렁하게 기르는 게 불만인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공식적으로는 큰 문제 없이 정대만은 머리를 기를 수 있었음. 와중에 주로 농민 봉기 스타일 똥머리로 뛰지만 가끔씩은 포니테일, 반묶음, 심지어는 그냥 얇은 철제 머리띠로 훌러덩 이마만 넘기고 코트 설 때도 있어서 ㅋㅋㅋㅋㅋ 관중들 입장에서 OO 대학교 농구팀 정모모 선수 매 경기별로 달라지는 헤어스타일 보는 재미도 은근히 있었을꺼야

 

 

8월은 북산고 애들도 한창 인터하이 치루느라 빡세고, 9월 되어 이제 쫌 여유가 생겨서 간만에 다같이 정선배 경기나 함 보러 가자고 지들끼리 일정 잡은 고딩즈들. 10월 플레이오프 전, 이제 최종 결승전만을 남겨둔 시점에 정대만네 대학이랑 타교랑 매치하는 경기 보러 옹기종기 서울로 원정 경기 보러 감. 그리고 도착한 스타디움. 제법 후끈한 관객석의 열기 속에서  송태섭의 눈은 바삐 누군가의 존재를 찾았지. 

 

선배... 지난 봄 때까지만 해도 스타팅 멤버까진 아니었는데. 어?

 

"야야야 서태웅, 저기 저거 만만쓰야???? 만만쓰 맞지???"

언제 머리를 저렇게 길렀대???? 공주님 시즌 2라도 찍나!

"시끄러워, 이 멍청아."

 

대학교 이름이 새겨진 웜업 자켓을 입고 이리저리 몸을 풀며 등장한 갈색 머리 청년은, 분명 송태섭이 아는 정대만이 맞았어. 오늘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지 팀원들과 가볍게 웃기도 하고 어깨 동무도 하며 맑게 웃고 있었지. 경기 시작 휘슬이 불기 직전, 정대만과 같은 가드 동료가 제 손목에 두개 끼고 있던 아대 중 하나를 풀어 정대만의 왼쪽 손에 끼워주는 광경까지 보였어. 이내 경기가 시작되고 정대만은 여전한, 아니 오히려 더 깔끔하고 예뻐진 폼으로 팡팡 잘도 공을 쏘아댔고 그가 그리는 포물선의 높이에 관중은 물론 상대팀까지 홀려있다보니 어느새 경기는 막바지에 가까워졌어.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송태섭은 길게 나풀거리는 정대만의 머리칼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선배... 본인 스스로는 자각하고 있을까? 지금의 당신 모습이 누굴 떠올리게 하는지. 정대만이 '그 사람'을 의식해서, 일부러 저 모습이 되었다면 왠지 모르게 빡칠 것만 같고.... 반대로 본인도 자각 못한 상태인데 무의식적으로 쫓은 결과가 저런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또 속 터질 것 같아서 심란해지는 송태섭이 보고싶다. 스포츠맨으로 돌아와 아무 장애물 없이 정석 루트를 걸어가는 와중에도 철이를 잊지 못하는 정대만과 그런 정대만을 스포츠맨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계기이자 상징 그 자체인 송태섭과, 정대만이 자기 좋아하는 거 알면서 일부러 자각하지 못하게끔 판 깔았던 박철 ㅠㅠㅠㅠ 셋의 20대 보고싶다고......





슬램덩크
약 철대만
약 태섭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