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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8 22:54
아무나 붙잡고 송태섭이 어떤 사람이냐 묻는다면 그가 굉장히 단단하고 견고한 사람이라 평할 것이다. 

송태섭은 누군가 그에게 남긴 말처럼 있는 힘껏 강한 척을 하고 살아왔다. 그랬기에 이제는 정말 강한 것인지 아니면 강한 척을 하는지 본인조차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 속내가 썩어문드러지기까지 아무도 몰랐다. 


/


"태섭아... 아버지가..."


교실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던 아이는 형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불길한 예감으로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태섭은 땀이 묻어난 손을 옷자락에 문질러 닦고는 어린 여동생의 손을 더욱 꼭 부여잡았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집안에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태섭은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겨우 열 살 남짓. 태섭은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더는 아버지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알았다. 


태섭의 손을 꽉 붙잡고 있던 그의 형이 태섭의 손을 놓고 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주저앉은 어머니의 옆에 무릎을 꿇은 준섭이 어머니의 어깨를 감쌌다.

태섭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여동생을 내려다보았다. 태섭보다 한참 어린 동생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듯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의 형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제가 이 집안의.. 주장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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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섭이 한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농구하자는 약속을 어기고 낚시를 하러 떠나는 그의 형에게 대고 태섭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더랬다. 그 탓일까? 준섭은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태섭은 바람이 거세게 부는 부두 한켠에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았다. 파도가 거칠게 밀어닥쳐 금방이라도 태섭을 쓸어갈 듯 했다. 하지만 태섭은 돌아갈 수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형, 내가 돌아오지 말라고 해서 돌아오지 못하는거야?"

온 몸이 쫄딱 젖어 덜덜 떨면서도 태섭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가 한 말이 실현되지 않았기를 빌었다. 형을 제발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믿지도 않는 신을 간절히 부르며 손을 모아잡았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태섭은 눈을 번쩍 뜨고 바다를 샅샅이 훑었다.

결국 태섭을 한참 찾아다닌 태섭의 어머니가 결국 쓰러지기 직전의 태섭을 부둣가에서 끌어냈다. 안 갈거에요! 형 기다려야해요! 어머니의 억센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리던 태섭은 결국 정신을 잃었다.


/


한참을 앓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형의 장례가 끝나있었다. 태섭에게는 형을 애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준섭의 방문을 굳게 걸어잠갔다. 집안 여기저기 걸려있던 준섭의 사진도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집에서 더이상 준섭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엄마 사실 제가 형을 죽였어요. 제 탓이에요. 

형이라는 글자만 뱉어도 표정이 이상해지는 어머니 앞에서 태섭은 감히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태섭이 형을 죽였다는 명제는 송태섭의 안에서 진리처럼 자리잡았다. 준섭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귀퉁이를 누가 베어간듯 고통스러웠다. 태섭은 그것을 묵묵히 감내했다. 

"저 애, 형이 단명한 천재라며?"
"형은 그렇게 농구를 잘했는데. 형보다 나은 동생은 없군."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태섭은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그 천재를 단명하게 한게 바로 자기 자신이라서. 살인자라는 자신의 더러운 이면이 까발려진 느낌이 들었다.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누구라도 자신을 더 매도해주길 바랐다. 

단단히 비틀린 마음이었음에도 이를 알아차릴 사람은 없었다. 태섭에겐 더 이상 의지하고 속내를 털어놓을 존재가 남아있지 않았다. 태섭은 그저 형의 그림자에 스스로 짓눌려 살기를 택했다. 


삶의 무게가 태섭을 짓눌러 숨이 막혀올 때면, 태섭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힘을 짜내어 코트를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형에게 있는 힘껏 의지했던 태섭은 이제 농구에 의존해서 삶을 지탱했다. 문제는 농구조차 형제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점이었다.

나 때문에 형이 죽었는데, 내가 감히 형이 알려준 농구로 행복해도 될까?

태섭은 종종 자신이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압도당하곤 했다. 그래서 일부러 형이 알려준 농구를 했다. 농구를 할 때마다 형이 생각났다. 형과 함께 태섭의 과오도 떠올랐다. 형을 떠올리는 것은 꽤나 괴로웠고, 태섭은 농구를 할 때마다 치미는 그 감정을 묵묵히 감내하는 형벌을 스스로에게 내렸다. 


/


그런 태섭에게서 고통을 덜어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준섭을 떠올리게 하는 남자, 정대만이었다. 

"중학생?"
"실력도 있는데 혼자 하면 아깝잖아."
"다음번엔 날 이겨봐."

찰나의 만남이 태섭을 구원했다. 물 속에 잠긴 듯 죽어가던 태섭의 숨통을 틔우고 그에게 농구를 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그랬기에 송태섭은 더더욱 분했다. 나를 살려놓고 당신은 왜 이리 되었나? 몇 년만에 다시 만난 정대만의 눈동자는 까맣게 죽어있었다. 너랑 얽히면 다 죽는거야. 그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문득 반항심이 치밀었다. 그래? 그럼 네 말대로 되게 해줄게. 

태섭은 자신과 얽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죽는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기로 했다. 그래서 죽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을 몇 대 얻어맞고나니 정대만의 악에 받친 얼굴이 시뻘개보였다. 결국 당신도 죽어가는구나. 꼴 좋다. 태섭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렀다.

미친놈 아냐? 팔다리가 붙잡힌 새에 거센 발길질이 몸에 와닿았다. 제 몸에 쏟아지는 폭력은 태섭의 안중에도 없었다. 송태섭은 집요한 눈으로 구석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정대만을 쫒았다.


잠깐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워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제대로 떠지지도 않고,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의 몸 위로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쓰레기같다..."

제 더러운 몸뚱이 위를 쓰레기로 덮어줬으면 했다. 다시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태섭은 쏟아지는 눈송이를 한참이고 맞았다. 겨우 눈발이 멈췄을 때, 태섭은 비척비척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


송태섭에게 있어 자기 자신의 존재는 저주였다. 까맣게 타들어간 마음으로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내달렸다. 거기서 차라리 죽었으면 했다. 송태섭이 다시는 누구도 죽이지 않도록.

안타깝게도 송태섭은 살았다. 

다시 돌아간 농구부에서 송태섭은 정대만을 만났다. 형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그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하지만 송태섭의 특기가 무엇이던가, 심장이 쿵쾅거려도 있는 힘껏 강한 척하는 것. 

매일 같이 형의 흔적이 남은 농구를 하면서도 송태섭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은 오직 형의 유지를 이어야하기 때문이었다. 최강을 꺾어내고 그 자리에 서는 것. 살해된 형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그 뿐이라 생각했다. 

태섭은 더욱 연습에 매달렸다. 채치수가 짜오는 훈련 프로그램을 모두 소화하고도 입에서 피맛이 날 때까지 공을 튀겼다. 보던 사람이 그러다 쓰러지겠다 말려도 태섭은 미소지으며 이 정도는 괜찮다고 답할 뿐이었다. 



수많은 강팀들을 꺾어내고 북산은 결국 산왕에 대적하게 되었다. 심장이 마구잡이로 쿵쾅대고 먹은 것도 없는 속에서 자꾸만 위액이 역류했다. 그럼에도 태섭은 괜찮아야했다. 

쫄지 않은 척. 있는 힘껏 강한 척. 여유를 가장하며 최강에게 최선을 다해 부딪혔다. 간절함이 닿은 것일까. 태섭은 결국 그리도 바라던 것을 손에 쥐었다. 


/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지독한 허무였다. 산왕을 꺾고나면 형에게 속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었다. 

산왕을 이겨봤자 형은 돌아오지 않는데.
최강을 꺾고싶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형인데. 

생각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느새 태섭은 자신이 멀쩡히 살아서 손 안에서 공을 굴리는 것이 대단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분리된 느낌으로 공을 튀기다 정신을 차려보면 연습이 끝나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불과 며칠전이 그와 형의 생일이었다는 것도 태섭이 형의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한몫했다.

형이 살아있었다면 스무살. 형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대단한 업적을 이뤘겠구나. 형 대신에 죽었어야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나.


머리 위로 줄줄 흐르는 물을 맞다가 태섭은 문득 손을 들어 반대 팔을 주욱 긁어내렸다. 한참 물을 맞아 연약해진 살갗 위로 피가 비쳤다. 손톱이 지나가는 대로 길다란 붉은 줄이 생겨났다.

다시 손을 들어 같은 자리를 세게 긁어낸다. 빨갛게 맺힌 피가 금세 물줄기를 타고 사라진다.

이러다 피가 다 빠져나가면 죽을까?

태섭은 멍한 머리로 손톱을 세워 손목을 벅벅 긁었다. 그는 기어코 팔뚝을 온통 긁어놓고 나서야 물을 껐다. 


태섭이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제, 엊그제. 어쩌면 일주일전, 어쩌면 그보다도 전. 스스로 낸 상처가 짙은 색으로 변한채 몸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무심하게 고개를 돌린 태섭이 수건을 들어 몸을 닦아냈다. 벌겋게 변한 살갗이 따끔거렸지만 그 고통마저 기꺼웠다.


/


"섭섭! 팔이 왜 이래??"
"넘어졌다."
"구르기라도 한거야? 팔이 너덜너덜하잖아!"
"신경꺼 강백호."

태섭이 팔을 들어올리는 백호의 손을 쳐내고 공을 들었다. 팔뚝에 온통 상처가 나서 팔을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결국 드리블을 하다 공을 놓쳐 공이 저만치 튀어가고 말았다.

너 말고 송준섭이 여기 있었으면 이런 실수는 안 했을걸?

들어올린 농구공이 입이라도 달린듯 나불댔다. 시끄러워. 송태섭이 이를 악물고는 공을 바닥에 퉁퉁 튕겼다.
 

실력도 안 되면서 형을 대신하려고 애쓰네. 송태섭이 송준섭을 죽였어. 저런 기초적인 실수를 하다니. 송태섭이 송준섭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어. 송준섭은 천재였는데. 송준섭은 그래서 죽은거야. 저 애 형은 진짜배기였지. 네가 죽였구나! 같은 환경인데 저 애는 그보다 훨씬 못하는군. 형을 죽이니 기분이 좋았나? 형보다 나은 아우는 없다더니.
네가
천재를
죽였나?
살인자.
살인자.



송태섭
송태섭
정신차려!


허억


태섭은 물 위로 끌려올려지듯 막힌 숨을 토해냈다. 등 뒤로 딱딱한 바닥이 와닿았다. 눈을 깜박이자 흐릿하던 시야가 명확해지며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부원들이 송태섭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이 태섭을 책망하고 있는 듯 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태섭이 헐떡거리며 숨을 밭게 몰아쉬자 어쩔줄 모르고 다들 눈만 맞추었다.


마침내 달재가 가져온 종이봉투에 대고 막힌 숨을 토해내고서야 태섭은 정상적인 호흡을 되찾았다. 등을 연신 쓸어주던 대만이 조심스레 묻는다.

"너... 무슨 일 있어?"

태섭이 가만히 대만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정대만이 질린 표정으로 말한다. 나마저 죽일거야? 송태섭은 눈을 깜박여 잔상을 털어내고는 그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일은요... 요즘 피곤해서 이래요. 걱정끼쳐서 미안해요."

태섭은 늘 그래왔듯 여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아직 허옇게 질려있다. 백호가 연신 괜찮다는 태섭을 부축해 벤치에 앉혔다.


다시 연습이 재개되고 태섭은 부원들이 공을 주고받으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을 눈으로 좇았다. 여길봐도 송준섭, 저길봐도 송준섭... 모두의 얼굴이 송준섭의 얼굴로 보였다.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듯 속이 불편해졌다.

아 죽고싶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놀란 태섭이 제 뺨을 내리쳤다. 철썩 하고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체육관에 울리자 부원들이 태섭을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태섭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를 지켰다.


흘긋 시계를 확인하자 연습이 파할 시간이었다. 태섭은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해가 져서 어둠이 내린 교정에는 가로등 몇 개만 켜져있었다. 태섭은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왜 갑자기 죽음이 떠올랐을까? 이제 농구를 할 수 없게 되는걸까.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눈시울이 뜨거워져 태섭이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묻어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런 태섭의 뒤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다가왔다.

"섭섭쓰! 같이 가!!!!"
"어우 쪼그만한게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누군지 모를 수가 없는 시끄러운 목소리. 네 인영이 삽시간에 송태섭을 둘러쌌다. 태섭은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 그들이 떠드는 것을 올려다보았다.

아 오늘 진짜 덥다. 그러게요 대만 선배. 달재는? 집에 일 있대요. 여우자식 너 집에 전화안해도 되냐? 알바냐 멍청아. 이익! 부모님 걱정하신다고 이 자식아! 흥.

비지않는 오디오에 태섭은 잡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송태섭아~ 너 오늘 그냥 집에 못 가. 얌전히 어울려줘야겠다!"
"이 놈들이 벌인 일이다."

신난듯 히죽 웃는 대만과 백호를 가리키며 치수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치수도 송태섭을 그냥 집에 보낼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니 치수 선배마저? 오늘 태섭이 조금 이상하게 굴기는 했다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손길이 떠미는대로 따라가다보니 태섭은 어느새 바닷가에 서있었다. 습하고 시원한 바람이 태섭의 곱슬머리를 흐트려 놓았다. 누군가 삼켜져서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깊고 까만 바다. 태섭은 저도 모르게 몇 발짝 바다로 다가섰다. 

뒤에서 그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대만이 다가와 태섭의 머리를 북북 헝클였다. 허리에 손을 올린채 태섭을 내려다보던 대만이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풀썩 주저앉았다. 그 옆으로는 서태웅이 이미 웅크리고 앉아 졸고있었다.

치수는 태섭의 뒤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다 태섭의 왼편에 자리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섭도 조심스레 자리를 잡고 앉았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 사이로 태웅이 푸푸 숨을 내뱉으며 자는 소리가 섞였다. 

"고릴라고릴라! 빨리 좀 와봐. 어른인 척 해야해!!!" 


뭔가 사러간다던 백호는 다시 돌아와서 치수의 옷자락을 끌고 사라졌다. 잠시후 돌아온 백호의 손에는 폭죽이 쥐어져있었다. 이딴 게 뭐가 재밌냐고 못마땅하게 중얼거리면서도 치수의 표정이 온화하게 풀려있었다. 

"헤헤 바다에서는 이런걸 해줘야한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다고!"

백호가 조르륵 앉아있는 남자들의 손에 스파클라를 쥐어주었다. 치수가 성인인 척하며 사온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폭죽이 민들레 홀씨같은 궤적을 그리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백호가 태섭과 치수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섭섭쓰 이것봐 글씨도 쓸 수 있어! 백호가 팔을 붕붕 흔들다가 폭죽을 날려먹고 울상을 지었다. 멍청이. 태웅이 한심한듯 백호를 바라보았다. 


태섭이 끌어당겨 안은 무릎에 볼을 기대었다. 폭죽이 타닥타닥 제 몸을 태우며 어두운 사위를 밝히는 것을 오래토록 응시했다.

서태웅! 그걸 쥐고 잠들면 어쩌자는거냐! 졸려요 주장... 그래보인다 임마. 여우자식 그럴거면 나 줘! 여기...

바닷가에 있어서일까? 쉴새없이 떠드는 소리도 배경음으로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아.. 끝났다."

태섭이 꺼진 폭죽을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해변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처얼썩 쏴아아. 파도가 해변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사방을 메웠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응시하며 그 누구도 말이 없었다.

"야.. 난 말이다. 사는게 싫었다."
"갑자기 뭔데요 선배."

"그냥 들어봐 얌마. 알다시피 내 무릎이 정상이 아니었잖냐. 나한텐 농구가 전부였으니까.. 농구를 잃었을 때 세상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시선이 대만의 무릎으로 모였다. 대만도 그 시선을 느낀 듯 제 무릎을 쓰다듬었다

"나 하나 사라져도 세상은 잘만 굴러가서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근데 태섭아.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었어... 누군가는 항상 나를 기억하더라. 나는 내가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날 그리워하고 있었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

한쪽 눈썹을 치켜든 태섭의 등 뒤로 온기가 가닿았다. 대만이 태섭의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익숙치 않은 손길에 태섭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 위로 백호가 어깨동무를 해왔다. 

"내가 그랬듯이 너를 생각하는 사람이 항상 있을 거라는 얘기지. 그러니까 허튼 생각하지 말라고."

"무슨, 말이에요 그게..."
"송태섭. 너가 요새 얼마나 이상하게 굴었는지 영상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치수가 헛웃음치며 고개를 돌려 태섭을 바라보았다. 다들 알고있구나. 태섭은 내심 소스라치게 놀랐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귀로 들렸다.

"선배. 우리가 썩 미더운 사람은 아니란걸 알지만 그래도 힘든 일이 있다면 말해주면 좋겠어요."

태웅이 부드러운 말씨로 중얼거렸다. 태섭은 부끄럽고 무섭지만 기쁜,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센 파도가 발밑으로 철썩이며 흘러갔다. 잠시 정적. 


"형이 있었어요.."

바다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태섭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얘기를 꺼내어놓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훌쩍이고 누군가는 위로하듯 태섭의 팔뚝에 손을 올렸다. 나지막한 한숨과 울음으로 채워진 시간을 지나 태섭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마쳤다.

"...그래서...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쳐요. 다 제 곁을 떠났는데 제가 살아있는 것도 대단히 이상한거 아닐까 싶은거죠. 그랬다고요."

다시 적막. 어느샌가 머리 위로 넘어온 초승달이 눈앞에 요요히 떠있었다. 태섭이 메마른 눈가를 쓸어내고 점점 가라앉는 달을 바라보았다.


눈을 손으로 비벼 물기를 닦아낸 백호가 와락 태섭에게 달려들었다. 섭섭 진짜 힘들었겠다! 악 무거워 강백호! 그 위로 대만의 무게가, 태웅이 그리고 치수가 더해졌다. 다섯은 견고한 성처럼 서로를 감싸안았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그리 말하는 대만의 얼굴 위로 준섭이 언뜻 스쳤다. 태섭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왜 내, 윽, 흑"

태섭이 고개를 푹 떨궜다. 굵은 물방울이 마른 모래를 적셨다. 으흐흑. 서러운 울음이 터져나왔지만 바다가 소리마저 모두 가져가버린듯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이 남았다. 태섭의 등을 토닥이며 다들 모른척 시선을 돌렸다. 


마침내 태섭이 빨개진 코끝을 문지르며 머쓱하게 미소지었을 때,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와르르 웃음이 터져나왔다.

송섭섭~ 눈이 사라졌어. 시끄러 강백호. 와 난 송태섭이 울 때도 상남자처럼 울 줄은 몰랐지. 송태섭 휴지 받아라. 고마워요 주장. 

돌아가는 길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태섭이 문득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다정하고 고요하게 손 흔드는 파도를 눈에 담은 태섭이 미소지었다. 




태섭준섭 생일이라 태섭이 왠지 심란할 것 같아서 걍 위로해주고 싶엇음... 역량부족으로 어쩌다보니 걍 설명충 됐지만ㅠ 

+아맞따... 배코는 부상없다는 설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