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비밀연애 끝에, 어른의 사정 때문에 더이상 만남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정환이형이 미안하다고 무릎 꿇고 이별을 고했고 그런 형에게 괜찮다고 미소지어 보이며 떠나 보낸 게 바로 일주일 전인 거지. 그리고 지금, 타이밍 나쁘게 임신 사실을 알고 태평하게 낚시나 하며 앞으로를 고민하는 윤대협이다.


앞으로의 일 때문에 떠난 사람 앞길을 막을 순 없으니 정환이형한텐 절대로 말할 수 없음. 그럼 역시 지우는 게 맞겠지.... 멍하니 바다보면서 생각 정리하던 대협이에게 마침 본가에 돌아와있던 태웅이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온 김에 왕옹왕이나 하자고 하려했는데 연락도 안 받고 집에도 없어서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됨.


왜 전화 안 받냐고 투덜대는 태웅이에게 대협이는 하하 웃으면서 옆자리를 권유할 거야. 하지만 태웅이는 앉지 않음. 그거 말고 농구하자는 요청에 대협이는 별 수 없다는 듯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겠지. 그리곤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농구를 할 수 없다고 함. 그 이유를 말하진 않았지만 대협이의 손이 잠깐 배에 머물렀던 걸 태웅이는 놓치지 않고 보았음. 어디 아픈가? 생각하던 태웅이는 묘하게 뭉글뭉글하게 변한 대협이의 페로몬을 감지하곤 놀라서 눈을 땡그랗게 뜨겠지.


너 임신했어?


대협이는 부정하려다 자기가 지금 멍하니 있느라 페로몬을 풀어놓은 상태란 걸 깨닫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음. 태웅이는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안절부절 하다가 얌전히 대협이 옆자리에 앉을 거임.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정환은 알고 있냐고 묻겠지. 대협이는 어깨를 으쓱일 뿐임.


알아도 어차피 의미 없어.
왜?
지울 거거든.


대협이의 대답에 태웅이는 인상을 찌푸릴 거야.


그쪽에서 지우라고 해?
나 임신한 거 알지도 못해.
말 안 했어?
헤어졌거든.


태웅이는 잠깐 침묵했음. 그리고 다시 물었지.


넌 지우고 싶어?


....그건 아닌 듯? 대협이가 아리송하게 고개를 꺾는 걸 보고 태웅이는 단호하게 말함.


네가 싫으면 지우지마.
이미 헤어졌다니까.
그게 문제가 돼?
그쪽에서 알면 어떡해.
내가 애아빠라고 해.


이번엔 대협이의 눈이 휘둥그레질 차례였지. 말도 안되는 소리. 정환이형 앞길 막고 싶지 않다고 이 어린 녀석 앞길을 막을 리가 없잖음. 이상한 소리하지 말라고 가볍게 농담처럼 넘기려고 했지만 태웅이는 2000% 진심일 거임. 대협이와의 첫만남부터 거의 자각 없이 반하다시피 했는데 윤대협은 그 시점 훨씬 전부터 이미 이정환의 연인이었음. 주변만 빙글빙글 돌면서 지낸 게 벌써 몇년. 드디어 둘이 헤어졌다는데 이 기회를 놓칠 태웅이가 아니다.






아무튼 태웅이의 열렬한 대쉬에 결국 대협이가 포기하고 태웅이를 받아들이게 되겠지. 아이를 지우지 않고 싶던 것도 맞고... 그러려면 핑계댈 사람이 필요한 것도 맞고.... 태웅이가 서툴지만 열심히 연인이자 약혼자이자 애아빠 노릇 하려는 거 보고 서서히 감기기도 함. 누가 채갈까봐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길 꼭 끌어안은 채로 자고 있는 태웅이 보면서 웃음이 나오는 대협이겠지. 이렇게 보면 아직 어리기만 한데. 중얼거리면서 태웅이 머리 살살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네.


열애 발표하고 얼마 안 있어서 임신 사실까지 밝히면 아주 언론이 뜨거울 듯. 주변에서도 미쳤냐고 난리남ㅋㅋ 태웅이가 윤대협 좋아하던 거 알던 사람들은 이자식 기어코... 하면서 고개 절레절레하다가 어쨌든 둘은 좋아보이니 축하해주겠지. 대협이가 정환이형이랑 연애하던 건 극소수만 아는 비밀이었으니 둘이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연애에 임신까지 했냐 입방아 오르는 일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임.


아무튼 그렇게 거한 속도위반에 결혼도 속전속결로 끝내고 별 문제 없이 꽁냥꽁냥 지내던 둘임. 문제는 애가 태어나면서 부터 생겼겠지....

애가... 아무리봐도 정환이형 판박이라...ㅋㅋㅋㅋㅋㅋ 축하해주러 왔던 지인들 애기 보고 다들 동공지진 일으키고 대협이마저도 조금 머쓱한 티 내는데 태웅이만 눈 빛내면서 내 아이라고 뿌듯하게 자랑 할 거 같다. 다들 어... 그래... 하고 눈치만 볼 뿐 차마 말은 못 꺼내겠지.





여태 태웅대협 소식 듣고는 있었지만 차마 연락할 염치는 없어서 속만 태우던 이정환씨. 어느 날 오랜 절친이 말 한마디 없이 싸늘하게 아기 사진 하나 건네주는 거 보고 뭐지? 하고 봤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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