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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7 01:25
같은 대학교 같은 과지만 학년이 달라서 마주치면 간간히 인사만 하는 거지. 길게 얘기해본 적 없고 데면데면한 사이임. 그런데 어쩌다 둘이 자게 된 거. 다음날 아침 태섭이가 눈 뜨면 대만이가 옆에서 보고 있겠지. 대만이가 살짝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안녕. 하고 인사하면 반쯤 눈 뜬 태섭이는 눈이 번쩍 떠질 거고 잠이 싹 달아나는 느낌일 거임. 왜 선배가 내 옆에 있어? 옷은 왜 안 입고, 아니 나도 왜 안 입고 있어?! 머릿속은 뒤죽박죽에 몸은 얼어서 존나 당황스럽겠지. 그런 태섭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진득하게 눈 맞추면서 계속 보고있는 대만일 거야. 그 눈에 뭐라도 탄 건지 잠깐동안 녹색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봤다가 몇 가닥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에 다시 정신이 들었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선 옷을 주워입겠지.

갑작스런 태섭이 행동에 대만이도 상체를 일으키더니 벌써 가려고? 묻지만 태섭이는 대답 못 하고 고개만 주억거림. 데려다줄게. 그러면서 대만이도 일어나려고 하길래 태섭이가 급하게 안 그래도 된다고, 혼자 갈 수 있다고 함. 제대로 된 기억은 없지만 일어나보니 얼굴만 아는 선배와 나란히 누워있고 둘 다 나체에 제 온몸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고 결정적으로 콘돔 껍질이 여러 개 보이는게 아무리 봐도 일을 치렀는데 얼굴만 아는 상대방 차를 얻어타고 갈 정도의 뻔뻔함은 도저히 있을 수 없었음. 제대로 옷을 입었는지 확인할 여유도 없었기에 옷이 팔다리에 꿰어진 것만 보고 대충 인사한 뒤 얼른 집을 빠져나왔지.

그 후로 태섭이는 대만이를 피하기 바빴음.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고 과방은 한동안 얼씬도 하지 않았지. 대만이는 과방을 자주 가니까 그 주변에선 대만이를 볼 확률이 가장 높았음. 대만이 머리꼭지만 보이면 곧바로 방향을 틀었고 다른 사람 입에서 정대만 이름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몸을 굳힌 적도 여러번 있었음. 하필 강의도 하나 같이 듣고 있는데 그 강의 들을 때는 거의 강의시간에 맞춰서 들어가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튀어나감. 어떻게 제 번호를 알았고 제 폰에도 대만이 번호가 저장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만이한테 문자도 몇 번이나 왔는데 오는 족족 무시하고 있겠지.

며칠동안 열심히 대만이를 피하던 태섭이는 우연히 대만이랑 마주치게 됨. 그것도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태섭이는 내려가고 대만이는 올라가고 있는데 딱 마주친 거. 태섭이는 눈 커져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대만이가 더 빨랐겠지. 바로 성큼성큼 두 계단씩 올라가서 태섭이 앞을 딱 가로막음. 태섭이는 왜, 이러세요... 하면서 눈도 못 마주치는데 대만이는 왜 자꾸 나 피해? 라면서 직구를 던짐. 너 같으면 안 피하겠냐!! 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는 태섭이는 정작 대만이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하겠지. 그런 태섭이 보더니 대만이가 훅 고개를 숙이고 태섭이 귓가에 속삭이는 거. 나 먹고 버리는 거야? 그 말에 태섭이는 놀라서 대만이 쳐다보는데 대만이 불쌍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겠지.

이대로 나 먹고 버리는 거야? 진짜? 다시 한 번 귀에 꽂히는 충격적인 말에 태섭이는 저도 모르게 대만이 입을 막음. 그만해요...! 그리고 제가 선배를 왜, 그, 먹, 아니, 버리, 아니 아무튼! 왜 그런 소릴하는 건데요? 태섭이가 놀라서 횡설수설하면 불쌍한 얼굴 지운 대만이가 태섭이 손 잡아내리면서 말하겠지. 너 진짜 기억 안 나? 그 말에 태섭이 당황함. 뭐, 뭐가요...? 제가 뭘 했어요? 대만이는 가만히 태섭이 쳐다보다가 그럼. 우리 할 얘기 생겼네. 수업 다 끝나고 만나자. 오늘 마지막 수업 언제 끝나? 대만이 질문에 태섭이 우물쭈물 대다가 6...시. 라고 대답하면 강의실도 물어볼 거임. 강의실까지 알려주면 대만이가 잡은 태섭이 손 부드럽게 쥐고는 그럴 거야. 그럼 그 때 강의실 앞에 있을테니까 이번엔 피하지마.




ㄹㄴㅇㅁ ㅅㅈㅈ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