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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4 23:03
정대만은 본인이 상처를 잘 받지 않는 타입이라고 생각함
타고 나기를 좀 눈치가 없게 난 것도 있고, 쉽게 발끈하지만 쉽게 잊어 버리는 것도 있고.
아무튼 농구 정도가 아니라면 정대만을 상처 입힐 수 있는 건 세상에 없었지
하지만 그 요란스러운 역경을 딛고 일어난 정대만을 그 누가 감히 상처 입히겠음
다만 조금 머쓱할 뿐이지.

지금도 쪼오끔. 쪼오끔 머쓱한 정대만은 뒷통수를 긁적이고 있었음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분 전.
비밀 연애중인 정대만은 3점슛을 날리며 자신의 연하남친을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었음
그 덕분에 슛폼은 깨끗했지만 공은 아쉽게 림을 맞고 떨어졌지
한눈을 판 걸 귀신같이 안 송태섭이 연습에 집중 안 하냐며 잔소리를 했음
양호열은 혼나는 정대만을 보고 살풋 웃었음
아마 '씨.. 내가 3학년인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 눈치챘나 봄

연하남친 앞에서 더 이상 자존심이 구겨지는 건 용납하지 못한 정대만이 그제서야 연습에 집중을 했음
철썩- 하고 그물이 출렁이는 소리에 정대만이 자신만만하게 웃었음
그 웃음에 양호열도 따라 미소지었지

그리고 휴식시간이 되었음
양호열을 포함한 백호군단은 소연이의 옆에서 음료를 나눠주고 있었음
정대만도 음료를 받아서 벌컥벌컥 마셨음
그러다가 문득 음료 대신에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생수병이 보이지가 않았지
그래서 정대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에 있는 사람의 손목을 잡았음
맹세코, 그 주변에 누가 있었든 정대만은 그 사람의 손목을 잡았을 거임
진짜로 물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었다구...

그런데..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정대만의 손이 세차게 뿌리쳐졌음
그제서야 정대만은 자기가 누구의 손목을 잡았는지 확인했지
갑작스러운 접촉이라 상대방도 놀랐을 수도 있으니까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음

음. 그게 양호열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정대만은 지금 호열이가 날 뿌리친 게 맞나? 하며 다시 기억을 되짚어 봤음
근데 굳이 기억을 되새기지 않아도 양호열의 표정을 보니까 그게 맞는 것 같음
양호열은 그러니까.. 어.. 누가 봐도 '고의로' 뿌리친 것 같았음
찌푸려진 미간과 경고를 보내는 눈빛.
아마 정대만이 비밀연애 중인 걸 잊었다고 생각했나 봄
그런 게 아닌데.

정대만은 양호열의 오해를 풀기 위해 입을 열었음
하지만 양호열이 좀 더 빠르게 조심해요. 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버렸지

오해를 풀 상대가 없어진 정대만은 자신의 손을 한 번 쳐다보고는 뒷통수를 긁적였음
정대만이 종종 머쓱함을 느낄 때 하는 행동이었음
그리고는 호열이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라고 생각하고는 잊어버렸지



그리고 얼마 후.

정대만은 또 뒷통수를 긁적이고 있었음
앞에는 양호열이 정색을 하고 서 있었고.


"나는 그 말이 싫어요."

"그래도.. 애정 표현인데..."

"대만군. 내가 싫다고요."

"알겠어.. 미안.. 이제 안 그럴게.."


이번에도 정대만의 잘못이었음
그냥 오랜만에 밖에서 만난 사복패션 양호열이 너무 귀엽길래 볼을 만지며 귀엽다고 했을 뿐인데 양호열은 대번에 표정을 굳히고 정색을 했지
정대만은 또 다시 머쓱해졌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좋게 말해줄 수 있지 않나 싶은 마음도 좀 들었지

원래 좋아하면 귀여워보이는 거라고 했는데...

양호열은 화가 났는지 정대만을 두고 앞장서서 걸었음
정대만은 그런 양호열의 뒤를 쭈뼛쭈뼛 따라가다가 문득 양호열의 손을 보았음
한 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지만 나머지 한 손은 빈 손이었지
정대만은 그 손을 잡으려 손을 내밀었다가 멈칫하고 다시 거뒀음
지금은 밖이고.. 양호열은 사람들이 있을 때 만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정대만은 비어있는 손이 허전해 괜히 양손을 쥐었다 폈다 했음
그리고는 뒷목을 쓸었지
정대만이 머쓱할 때 하는 행동이 하나 더 추가되었음



또 얼마 후.

정대만은 산책을 하고 있었음
걷다가 걷다가 걷다 보니 어느새 양호열이 사는 동네였음
양호열은 집에 잘 있는 편이 아니니까 이렇게 걷다 보면 우연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웃음이 나왔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역시나 양호열을 포함한 백호군단이 벽에 비스듬히 기대 시시콜콜 잡담을 하며 낄낄거리고 있음
정대만은 좀 더 속도를 높여 그들에게 다가갔지

그런데 다가갈수록 점점 더 머쓱해졌음
그래서 걷는 속도도 그에 비례해서 점점 더 느려졌지

노구식이 양호열의 어깨를 툭 치며 뭐라뭐라 하니까 양호열이 허리를 숙여가면서 박장대소를 하고,
이용팔이 그런 양호열에게 헤드락을 걸고,
김대남이 양호열의 볼을 툭툭 치고,
강백호가 양호열의 머리를 헝클어트렸음
그래도 양호열은 제법 멀리 떨어져있는 정대만에게 들릴 정도로 아하하 시원하게 웃었지

정대만은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멈춰서서 문득 자기 손을 내려다 봤음
그리고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뒷통수를 긁적이다가 다시 양손을 늘어뜨렸음
왠지 눈가가 시큰해서 마른 세수도 한 번 하고 뒷목도 좀 쓸었지

그리고 잠시 서서 양호열의 맑은 웃음 소리를 듣다가 이내 다시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 갔음
뒤를 돌기 전에 잠깐 양호열과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했지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아마 착각이었을 거임

정대만은 털레털레 걸었음
자꾸만 양호열의 웃음소리가 귀를 떠나질 않았음
그 웃음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다면 그냥 아는 척을 하면 됐을텐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왠지 정대만이 거기에 있었으면 양호열은 그렇게 웃지 않았을 것 같음
정대만은 괜히 분위기를 초치지 않고 돌아선 건 잘 한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였음
이런 기분은 익숙하니까 아마 언제나와 같이 곧 잊혀지겠지.



호댐 호열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