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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4 22:01
그걸 굳이 고쳐주려고 하지 않는 태섭이.

둘이 맞짝사랑인데 하나는 자기 감정을 모르고 하나는 굳이 밝힐 생각이 없음. 왜냐하면 선배는 정상의 테두리 안에서만 살아왔던 사람이니까. 한 번 엇나갔을 때조차 다른 불량들의 애정을 끌어모으고 한가운데에서 웃었지. 그러니까 굳이 가장자리를 넘어 선 밖으로 밀려나는 경험을 주고 싶지는 않은 거임.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까.

그래서 태섭은 계속 모른 척 했음. 딱 한 번 미국 유학 전 둘 다 술에 취해 선을 넘어버린 걸 빼면. 정신이 든 대만의 표정이 혼란스러워 보이길래 그냥 미안하다고, 자기가 취해서 선배를 덮친 것 같다고 담담히 얘기하고 혼란이 혐오감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저 보았지. 가만히 있었으면 대만이 어떤 답을 내었을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음. 그 뒤로 연락은 끊겼지만 우성의 연인인 명헌과 그가 같은 방에서 자취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근황은 간간히 들을 수 있었지. 우성과 명헌은 자신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숨기지 않았고 그게 대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나봐. 우성이 간간히 전해주는 대만의 근황, 자기와 명헌의 대화에 끼어들어 틱틱댔다던지 명헌에게 왜 너보다 큰 사내놈이랑 사귀냐며 시비를 걸었다던지 하는 일들을 태섭은 가끔 들을 수 있었음. 우성에게는 불쾌하기만 할 일들을 굳이 말해준다던가, 결코 순한 성격이 아닌 명헌이 대만의 시비를 별 반응없이 받아넘긴다는 걸 보면 아마 둘은 태섭과 대만의 일에 대해 눈치를 챈 모양이야. 태섭은 미안했음. 안 그래도 힘들 둘인데 . 그래서 태섭은 우성을 더 챙겼고 우성은 그때마다 웃어보이곤 했음. 미안할 거 없는데 태섭아. 왜나하면-

그때 우성의 뒷말을 들어둘걸. 태섭은 아득한 머리로 생각했음. 그리고 자기가 지금 미국까지 예고없이 찾아온 대만에게 멱살이 잡혀 씩씩대고 있다는 사실을 힘겹게 받아들이려 했음. 원래라면 대만에게는 전해질 리도 없는 일이었음. 사실도 아니었고. 그냥 사소한 친절을 베푼 것 뿐인데 여러모로 눈에 띄는 동양인 유학생과 치어리더부의 퀸카라는 관계는 소문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는 좋은 가십거리였고 그게 반쯤 장난으로 학교신문에 실린 것뿐이었음. 구도의 마법 때문에 얼핏 보면 둘이 키스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 한 장과 함께. 그런데 대만이 그걸 어떻게 알고... 그런 태섭의 정신을 다시 아득하게 만든 건 대만의 눈물이었음.

"사람 몇 년간 바보로 만드니까 좋냐?"

대만이 씩씩거렸음. 그 날 나랑 잔 거 네가 억지로 한 거 아니잖아. 먼저 키스한 거 나잖아.

언제부터 기억났었냐는 말을 하기 전에 대만이 눈물을 떨궜음. 이명헌에게 괜히 부아가 치밀었던 것도 그 자식이 남자랑 사귀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게 아니었어. 부러워서... 그 녀석이 좋아하는 사람이랑 당당하게 사귀는 게 부러워서 그랬던 거였어. 나 그 녀석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게 부러워서 그랬던 거였어.

"너는 사람을 어디까지 바보로 만들 셈이냐? 왜 내가 매번 후회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 너는 왜 날 늘 비참하게 만들어..."

멱살을 쥔 대만의 손이 떨려왔음. 태섭은 망설이다가 뭐라도 말해야 될 것 같아 입을 열었음. 그 순간 대만이 입술을 부딪혀왔음. 놀란 태섭이 대만을 밀어내려 했지만 대만은 끈질겼음. 필사적인 모습에 대만을 밀어내던 손길이 힘이 빠졌음. 키스가 끝나고 대만이 입을 열었음.

"좋아해, 송태섭."

눈물범벅인 초라한 고백. 태섭이 대만에게 절대 시키고 싶지 않던 모습이었는데 역설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대만의 눈동자가 너무 곧고 찬란하게 빛나서 태섭은 깨달았음. 그 동안 당신을 가장자리로 밀어왔던 건 나구나.

그러니 어떡하겠어. 받아들여야지.

이번에는 태섭이 먼저 입을 맞췄음. 그런 태섭의 등을 대만이 꾹 끌어안았음.




태섭대만 약 우성명헌

대만에게 태섭의 스캔들을 알린 건 명헌, 명헌에게 스캔들 소식을 알린 건 당연히 우성.
대만은 꽤 이전에 그 날 밤의 진실을 떠올리긴 했지만 디나이얼이라 혼란스럽기도 했고 둘 다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라고 합리화하던 중에 태섭의 스캔들 소식을 듣고 자각하고 바로 태섭에게 쳐들어감.

이후로는 둘이 행복하게 살겠지. 다만 둘 다 지은 죄가 있어서 우명에게는 약함. 사실 우명도 이어지기까지 꽤나 삽질하고 고민했어서 괜찮다고 웃으며 손사래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