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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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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열이는 눈이 왕따시만하게 커진 채로 입만 뻐끔뻐끔 거리고 있었음
정작 폭탄 발언을 터트린 당사자는 "아~ 너네 집 진짜 편하다~" 하며 대자로 누워 스노우 엔젤을 만들고 있었고.


"며.. 며칠 전엔 모른다고 했잖아요."

"응? 한 번 몰랐다고 영원히 모르나? 너 바보냐?"


바보 트리오 대장이 말했음

저! 저 천연덕스러운 표정 좀 봐!!!!

양호열은 정대만이 너무 얄미워 미치겠음
이제는 한 대가 아니라 한 열 대 쥐어 박고 싶어짐
가만 있던 사람 가슴에 이렇게 불장난을 쳐놓고 자기는 평화롭기 그지 없잖음!!!

사실 호열이도 자기 마음을 모르겠지
며칠 전에 정대만이 귀엽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고, 왠지 모르게 자기가 정대만한테 무르게 군다는 걸 자각하고는 있지만 이게 좋아하는 마음이 맞나 싶은 거지
그러니까 이런 애매한 마음으로 사귀는 것도 좀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아니. 근데 정대만은 도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지?!


"그래서요."

"뭐가?"

"그.. 제발 좀. 사람 정신 빼놓고 나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뭐가?' 하는 것 좀 그만하면 안 돼요?"

"내가 그랬나? 흠. 근데 뭐가?"


신이시여.
제 말을 듣고 계신다면 지금 이 순간 정대만에게 벼락을 내려주세요.


"하... (이 꽉 깨물기) 나한테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뭐 어쩌자고요. 사귀자고요?"

"어? 아니? 그런 생각 한 적 없는데?"


아악!!! 정대만!!!!!!!!!!!!!
오늘 진짜 사람 열받아서 죽는 꼴 보고 싶어?!!?!?!?


"아니 그럼!! 그럼 왜 괜히 그런 얘기를 꺼내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요!!!!"


왜!! 고백한 건 정대만인데!
애꿎은 양호열만 전전긍긍하냐고, 왜!!
사귀지도 않을 거면서 좋아한다는 말은 대체 왜 한 거야!!!!


"니가 궁금하다며? 그래서 말해준건데? 나도 그 맘 알거든. 나 궁금하면 밤에 잠도 못 잔다? 너도 그럴까봐. 어때. 나 존나 착하지?"


시발..
네.. 존나 착하시네요..

양호열은 왠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음
너무 혈압이 올라서 그런가 오히려 차분해졌겠지

저건 사탄이다.
날 화나게 만들어서 머리를 터트려 죽게 만들 사탄...


"...나 씻을래요. 대만군은 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요."

"어? 진짜? 그럼 나 저녁도 먹고 갈래!!"

"(ㅆㅂ..)"

"야!! 너 지금 욕했냐?!"

"안 했는데요."


귀는 더럽게 밝은 정대만이었음

호열이가 씻고 나오자 집에는 밥 지어지는 냄새가 가득 차 있었음
아까 너무 감정을 쏟아내서 그런지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히고 나니까 이제는 뭐라 할 힘도 없는 호열이였음

일일이 대응하면 지는 거다.. 저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다.. 흐린 눈 하자 양호열..

그나저나 정대만이 밥을 할줄 알다니. 호열이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됨
물론 다른 양호열이 10년 동안 교육시킨 결과였겠지만.

어디서 찾았는지 구석에 있던 밥상을 펼쳐서 반찬 세팅까지 끝난 상태였음
호열이는 16세에 벌써 반찬도 직접 해먹는 프로 자취러라서 잘 상하지 않는 반찬으로 골라 야무지게 만들어놨었거든


"얼씨구. 아주 본인 집이세요?"

"호열아. 너 진짜 반찬 잘 해놨다~?"

"혼자 살면 이 정도는 다 해요."

"난 아니던데?!"

"대만군 혼자 안 살잖아요."

"그, 그렇지. 아무튼!! 나 밥 푼다?"

"그러세요."


호열이가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 사이 대만이가 밥을 퍼옴
자기꺼는 고봉밥이고 호열이꺼는 밥 공기의 3/4 정도.


"어? 나 적게 먹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몰랐는데!! 모자라면 더 먹겠지 싶어서 그냥 푼건데!!!!"

"몰랐으면 몰랐는 거지 왜 소리를 질러요. 밥이나 먹어요. 먹고 빨리 가 버려."

"뭐-? 내가 밥까지 해다 바쳤는데 날 이렇게 모질게 쫓아낸다고?!"

"그럼 어쩌게요. 뭐, 아주 자고 가게요?"

"오!! 그럴까?!"

"..."


더 이상 실랑이 하고 싶지 않았던 호열이는 자기 숟가락에 밥을 한 가득 떠서 멸치볶음을 올린 후 대만이의 입에 집어넣었음
놀란 눈을 하고 우물우물 씹던 대만이는 "야, 오얼아! 반잔 마이다!!" 하고 호들갑을 떨어댐


"대만군. 음식 씹을 땐 말 안 하는 거 몰라요?"

"(꿀꺽) 원래 맛있는 건 표현해줘야 되는 거거든! 그건 몰랐지, 너?"

"밥 먹으라고요."

"응."


여기서 한 번 더 깝죽거리면 진짜 쫓겨나는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정대만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밥 먹었겠지
치고 빠지는 데는 참 재주가 있는 정대만이었음

밥을 다 먹고 난 후 대만이가 설거지는 자기가 하겠다며 수선을 떨어대길래 그냥 뒀는데 혹시 얼마 없는 살림살이를 다 깨부수지 않을까 싶어 곁을 어슬렁거려봤지만
놀랍게도 정대만은 깔끔한 솜씨로 설거지를 끝낸 후 싱크대 정리까지 해놓음

저 인간이 농구 말고도 잘 하는 게 있었다니.. 집안 일이랑은 영 거리가 멀어보였는데.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걸까.

물론! 이것도 다른 양호열의 작품이었고 호열이는 사람을 잘 본 게 아주 맞았겠지

정대만은 고무장갑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호열이네 냉장고를 뒤져 쌍쌍바 아이스크림 하나를 찾아냄
이제 이런 걸로 일일이 입 떼기엔 너무나 정대만식 막무가내에 익숙해져버린 양호열이었음..


"이거 봐. 내가 기가 막히게 반으로 갈랐지."

"그러네요."

"자."


정대만이 마치 지가 사온 아이스크림 마냥 생색을 내며 내밀었음
둘은 쌍쌍바를 쪽쪽 빨며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티비를 봄

작은 원룸인지라 어쩔 수 없이 어깨가 닿았겠지
정대만은 그게 신경쓰이지도 않는지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 개그에 박장대소를 하며 호열이의 머리에 자기 머리를 기대옴
반대로 호열이는 도무지 티비에 집중할 수가 없었음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결국 신경이 쓰이는 건 정대만의 체온, 냄새, 웃음소리 뿐이었음
백호군단 외에 이 집을 이렇게 떠들썩하게 만든 사람은 없었는데 정대만 한 사람으로 언제나 냉기가 감돌던 집에 온기가 가득했지

생각해보면 오늘은 학교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정말 정대만한테 휘둘린 기억 밖에 없음
가만히 있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찔러대는데 혼이 쏙 빠져서 당해낼 도리가 없었겠지
가만 보면 은근히 또 선은 지킨단 말이지.. 어떻게 알고 진심으로 화내기 직전까지만 그렇게 콕콕 쑤셔대는지 원,
아무리 양호열이라도 속수무책이었음

하지만..
하지만 늘 혼자 걷기 싫었던 하교길도, 삭막해서 들어가기 싫었던 집도 머리속에서 사라진 건 다 정대만 덕분이었음
비록 제 정신이 좀 아닌 것 같지만.. 씻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가 밥을 차려놓고 기다린다는 건 너무 따뜻한 경험이었음
그리고 저 태양처럼 밝고 따뜻한 사람이 자신이 쳐놓은 벽에도 굴하지 않고 다가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도..

문득 정대만이라면 곁을 내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듦

어쩌면.. 나..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지도..


"이제 티비 그만 보고 씻어요."

"어?! 진짜?! 진짜 나 자고 가냐?!"

"아님 말고."

"아니! 난 당연히 좋지!! 기다려 봐. 내가 5분만에 씻고 나온다!!"


정대만이 함박웃음을 짓고 화장실로 달려갔음
그 사이 호열이는 백호가 종종 입었던 옷을 꺼내서 화장실 앞에 둠


"옷 문 앞에 뒀어요."

"어~"


잠시 후 물소리가 끊기더니
벌컥-!
하고 정대만이 나오는데


"아니! 왜 벗고 나와요!!! 내가 옷 문 앞에 뒀다고 했잖아요!!!!!"


그 짧은 수건을 아랫도리에 덜렁 감고는 터벅터벅 걸어나오네?


"나 속옷도 줘."

"진짜. .염치라는 게.. 와.."


호열이가 이를 악물고는 빨개진 얼굴로 허둥지둥 옷장을 뒤짐
다행히 얼마전에 새로 사놓은 속옷이 있었음

키가 큰 정대만에게 보통의 수건 사이즈는 너무도 작았겠지
양호열은 정대만을 절대로 쳐다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고 속옷을 내밀었음


"자요. 들어가서 입어요. 자기가 노출증 환자야, 뭐야.."

"에이~ 남자끼리 뭘 그래."


당신 나 좋아한다며.. 근데 이래도 되는 거냐고, 진짜!
억울한 호열이는 정대만이 속옷을 입으러 다시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함

정대만은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호열아. 이거 좀 작다~"


하지만.. 옷을 다 갖춰 입고 어기적거리며 걸어나오는 정대만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제는 정말 울고 싶어진 호열이였음
알고 그러는 거야, 모르고 그러는 거야.. 제발.. 제발 이제 그만 좀 해..

호열이는 대꾸하지 않고 이부자리를 폈음
원래 백호군단 애들은 이불도 베개도 없이 그냥 막 누워 자는데 정대만은 특별히 이불을 펴줬음
그러고 "이제 자요. 불끌게요." 하고는 정대만을 돌아봤는데 정대만 표정이 좀 묘함


"근데 양호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나 잔뜩 긴장한 호열이는 침을 꿀꺽 삼킴
정대만은 천천히 호열이를 탐색하다가 입꼬리를 스리슬쩍 올리고서는


"너... 섰네?"


하며 호열이의 가운데 다리를 쳐다보았지




호댐 호열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