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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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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열 사용법 2. 백호군단을 이용하라!

입에서 나오는 말 중 50%는 말 줄임표인 삶을 살고 있는 양호열은 생각이 아주아주 많았음
눈치가 빨라서 그런가 상대방의 말투, 행동, 습관 등을 모두 관찰하고 파악하는 게 습관이었겠지
그리고 상대에 대한 파악이 끝나면 이 사람은 여기까지. 이렇게 딱 선을 그어버리고는 자기가 곁을 내 준 사람이 아니면 사소한 빚도 지지 않으려고 했음

하지만 같은 무리의 녀석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나머지 백호군단들은 단순 그 자체였음
특히 강백호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었고.
정대만에게는 다행히도, 자기 사람한테 약한 양호열은 백호군단 애들이 뭔가 하자고 하면 웬만해서는 다 따라주는 편이었음
그래서 정대만은 이런 양호열의 습성을 이용할 생각이었지
거기서 특히나 제일 많이 이용되는 건 대식가 강백호와 먹보 이용팔이었음


"아.. 오늘 날씨가 좀 쌀쌀한데."

"만만이가 약골이라서 그래."

"그래..? 이 약골은 따뜻한 라멘을 좀 먹어야겠는데.."


이렇게 딱 떡밥만 던지면 먹대장 물고기 두 마리가 눈이 뒤집혀서 걸려 들었음


"뭐?! 나도! 나도!!!"

"강백호랑 나랑 라멘 먹으러 갈 건데 너네도 같이 갈래?"

"대만군이 사준다는데 당연히 가야지!!"

"사준다고 말은 한 적 없는데."

"안 사줘? 형인데?"

"...이용팔.. 징그럽다, 진짜. 아무튼! 너네 다 가는 거지?"


이렇게 물으면 나머지 녀석들은 다 공짜 라멘이다! 가자! 가자! 하며 대만이를 따라 나섬
그럼 양호열은 항상 뒤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한숨을 한 번 쉬고 같이 뒤따라 가겠지
아마 양호열한테 물었으면 완곡하게 거절했을 게 분명함


"만만아. 나 곱배기에 차슈 3장 추가해도 되지?"

"언제는 안 했냐. 마음 껏 하세요~"

"오예~"


자리는 늘 똑같았음.
정대만 강백호 이용팔 노구식 김대남 양호열
양 끝과 끝.

이게 현재 양호열과의 거리겠지..
아. 양호열이랑 밥 먹기 참 힘들다.

하지만!
기회는 노력한 자에게 찾아오는 법.
백호군단과 자주 밥을 먹다 보면 아무리 양호열이라도 정대만과의 식사 자리가 익숙해지기 마련임
그리고 다른 애들이야 아무 생각 없다지만 양호열은 아마 매번 얻어 먹는 밥에 부채감을 좀 느끼고 있을 게 뻔했음
암만 단체로 얻어먹는 거였어도 말이지.

그럴 때


"아.. 나 지갑.. 지갑을 안 가져 왔어..."


라고 말 하면 양호열이


"그럼 내가 낼게요."


라고 할 것이고,
그럼 정대만은 미안하다고 어쩔 줄 몰라한 후에 며칠 뒤 양호열에게만 밥을 사준다고 하면


"아.. 안 그래도 되는데요. 이때까지 우리가 얻어 먹은 게 훨씬 많은데요, 뭐."

"아니. 진짜. 진짜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러는데.. 그냥 못 이기는 척 따라와주면 안 되냐..?"

"....알겠어요."


음. 양호열이랑 단 둘이 밥 먹기 미션 클리어.
16세의 양호열. 쉽다, 쉬워.

하지만 또 여기서 너무 오버해서 비싼 걸 사면 안 되겠지
적당히 저렴하고, 또 양호열이 익숙한 곳으로 골라야 함

그래서


"하하.. 결국 또 라멘이네.. 더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는데."

"괜찮아요. 이 집 맛있잖아요."


단골인 라멘집에 올 수 밖에 없었음
늘 양 끝과 끝에 앉았었는데 이번에는 단 둘이라서 마주보는 식탁에 앉음
앉자마자 기계처럼 물과 젓가락을 세팅하는 양호열..
그 모습에 갑자기 호열이가 너무 그리워졌겠지
지금 눈 앞에 있는 양호열 말고 정대만만의 아기연하남친 호열이 말임..
사실 양호열을 꼬시겠어! 하고 당당하게 외쳤지만.. 호열이의 무심한 눈을 보는 건 정대만을 참 외롭게 만들었음
저 하얀 손을 한 번만 잡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텐데..

그 순간, 대만이가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던 하얀 손이 대만이의 이마를 짚음


"대만군? 어디 아파요?"


맞다.
양호열은 늘 한 방이 있었지.
한 번씩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면 맨날 정신을 못 차렸었는데..
16살의 양호열도 여전하구나.


"어..? 아, 아니. 그냥 잠깐 딴 생각을 좀.."

"표정이 안 좋아요. 그냥 집에 갈까요?"

"아냐!! 가긴 어딜가! 나 배고프단 말이야!"


다시 살아나는 대만이의 표정에 호열이가 이마에서 손을 뗌
갑자기 대만이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져서 자기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댄 거겠지
자기 행동에 자기가 더 놀란 양호열이었음
끝이 붉게 달아오른 정대만의 귀를 보니 괜시리 더 마음이 이상해져버림

다행히 분위기가 묘해지기 전에 주문한 라멘이 나옴
그리고 호열이는 앞접시를 들고 와 자기 라멘을 좀 덜어서 대만이의 앞에 두고 라멘 그릇을 바꾸겠지


"어..."

"뜨거운 거 잘 못 먹잖아요. 그래서 맨날 기다렸다가 먹잖아. 그렇게 덜어 먹으면 좀 나을 거예요."


알고 있었구나.
나만 널 본 게 아니었구나. 나만...


"대만군..? 울어요..?!"

"..안 울어."

"왜 그래요. 내가 뭐 잘못했어요?"


맞은 편에 있던 양호열이 호다닥 일어나 대만이의 옆에 앉아서 휴지를 건내면서 물어봄


"오늘 연습할 때 힘든 일 있었어요?"

"...아니."

"근데 왜..."

"씨... 너랑 밥 먹기 힘들어서 그런다, 왜!!"

"아니.. 지금 먹고 있잖아요. 그저께도 같이 먹었고.. 지난 주에도..."

"다 같이 말고! 너랑!"

"아.. 그건.."

"너 내가 모를 줄 알지. 넌 진짜.. 진짜 나쁜 놈이야!"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나가요. 나가서 울어."


양호열은 눈물을 찔찔 짜고 있는 정대만을 데리고 후다닥 라멘집을 나옴
결국 정대만이 사준다고 했던 라멘은 한 입도 못 먹었겠지.
호열이는 대만이의 손목을 붙들고 근처 공원으로 감


"왜 우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말해도 넌 몰라."

"알 수도 있잖아요."

"..안 비웃는다고 약속하면."

"약속해요."

"니가.. 니가.."

"내가?"

"니가 나한테만 안 웃어주잖아!"

"..............네..?"


양호열의 벙찐 얼굴...
흥. 쌤통이다.


"거봐. 말해도 모른다고 했지."

"아니. 잠시만. 지금 무슨 소릴... 내가.. 그러니까, 내가 대만군한테 안 웃어줘서 운다구요?"

"..갈래."

"아니! 그런 말을 해놓고 어딜 가요!"

"아니야. 잊어. 갈래."


정대만이 벌떡 일어나니까 호열이는 어깨를 잡고 다시 대만이를 앉힘
그러고는 하.. 허.. 하며 헛웃음을 내뱉음


"너 안 비웃는다고 했어."

"비웃는 거 아니거든요. 그냥 잠시.. 머리가 좀 아파서.."

"..갈래."

"아, 좀!! 미안해요. 미안하니까 다시 앉아봐요."


양호열은 마른 세수를 몇 번 함
낯 부끄러운 얘기를 꺼낸 건 정대만인데 이 인간은 귀가 살짝 붉어진 거 외에는 표정 변화 하나 없어, 왜??
2살 연하 앞에서 방금 울었던 주제에 심통 난 어린애 마냥 입술이나 삐죽거리고 있는데..

내가 미쳤나..

왜.. 귀여워 보이지..


짝!!!!!


"너 왜 갑자기 니 뺨을 때려!! 미쳤어?"

"아뇨.. 아니.. 아닌가.. 미친 게 맞나.. 모르겠네.."

"..."

"대만군.. 하.. 이거 미친 소린 거 아는데.. 혹시.. 혹시 나 좋아해요?"

"몰라."

"대만군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모르는 걸 어떡해."

"그럼 그것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해요?"

"나도 몰라!!"

"하...."


실컷 고민해라, 양호열!!!!
어때. 또라이 같지? 근데 불쌍하지? 근데 좀 귀엽지?!
어떠냐. 이게 바로 연상의 맛이다!!!

아. 모양새가.. 연상의 맛은 좀.. 아닌가..?

사실 눈물을 흘리는 건 정대만의 계획에 없었음
그냥 양호열의 다정함이 너무 반갑고 또 그리워서 눈물이 났을 뿐임
근데 생각보다 양호열이 더 당황하잖아? 신호도 꽤 긍정적이고?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던 거지


"그냥 난 느낀대로 말한 거 뿐이야. 신경 쓰지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그럼 신경 쓰든가. 가자, 이제."


이번에는 반대로 정대만이 양호열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음
가다 보니 호열이가 대만이를 데려다주는 모양새가 되었겠지
평온한 정대만과는 달리 양호열의 머리속은 시끄럽기 그지 없었음
안 그래도 생각이 많은데 오늘은 정말 과부하가 걸려버림

정대만의 눈물.. 그리고 간접고백.. 그리고... 그걸 귀엽다고 느끼고 있는 양호열 본인...


"나 간다."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지 벌써 대만이의 집에 도착을 했나 봄
정대만은 아까 울었다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음


"들어가요. 또 울지 말고."

"안 울거든!"


그 말에 호열이가 피식 웃음
그랬더니 정대만이..


"내일도 그렇게 웃어줘야 돼."


그러고는 쏙 들어가버리네?!
얼굴이 빨개진 양호열만 남겨두고?!

일기를 안 쓰는 대만이지만 만약에 오늘 일기를 썼다면 이렇게 딱 한 줄 썼겠지

'내 눈물샘 칭찬해!'



호댐 호열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