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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9 11:01
태웅이가 백호네 집에서 사는 게 자연스러워진건 백호가 어느날 한바탕 울고 나서였음. 태웅이랑 그날은 크게 싸웠고 집에서도 싸울까봐 "너는 이제 본가로 가!"해놓고 정작 태웅이가 안들어오니까 백호 집 앞 가로등 밑에서 웅크리고 있었겠지. 이제 안오나봐. 내가 화내서, 가라고 해서 갔나봐... 울고있는데 "멍청아, 너 거기서 뭐하냐" 소리 들려서 목놓아 울겠지. 나한테 왔어... 간 거 아니야... 태웅이 백호 먹이려고 인당 수량 제한 있는 디저트 가게 줄 서서 사온 거 뿐인데. 그날 백호가 그랬음.

"너랑 내가 가족은 아니지만 너랑 같이 밥먹고 같은 집에서 사니까 식구는 맞잖아. 그거면 돼. 내가 가라고 해도 잠깐 갔다가 곧 와야된다, 여우야."

태웅이는 밥 먹고도 안가, 자고도 안가, 싸워도 안가, 본가는 냉장고 털러 가는거야, 내 멍청이 혼자 두고 절대 안가, 생각하면서 "...어."했지.
















"깨졌네. 여우 너 안다쳤어? 그럼 됐어. 근데 이거 붙여서 불단에 올려놓을 거니까 버리지 마. 접착체 찾아올게."

태웅이가 설거지하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그릇이 깨졌는데 문제는 그 접시가 백호 어머니 혼수 중에 마지막 남은 접시였다는 거지. 백호가 태웅이 전용접시라고 "예쁘지?"하면서 내줬을때 태웅이도 예쁘다고 생각했었지. 단풍이랑 벚꽃이 같이 새겨져 있었거든. 그렇게 귀한 걸 내주고, 이제는 붙여서 보기만 하면 되니까 또 괜찮다는데 태웅이 마음은 그게 아니잖아.











그날 본가로 가서 폰으로 찍은 접시 보여주면서 태웅이가 똑같은 거 구하고 싶다고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림.

"백호가 접시 깼다고 뭐라 그랬어?"
"...안 다쳤으니까 다행이라고 했어."
"그럼 왜 울어."
"멍청이네 어머님 유품이야."
"!!!"

부모님이랑 누나들이랑 다 놀라서 태웅이 달래면서 구할 수 있어.. 이런 한정판 접시는 분명히 귀하게 가지고 있는 분들이 꼭 있어..!하면서 사태를 의논했겠지.

"백호는 그렇게 귀한걸 너 쓰라고 준거야?"
"...자기가 가진 것중에 제일 좋은 거니까 나 주고 싶었대."

가족들이 다 같이 울었지. 무조건 찾는거야! 못 찾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자! 그러면서 부모님과 누나들이 그게 몇년도 생산된 접시인지, 어디 제품인지, 재고는 있는지, 수집하는 사람들 동호회 같은건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겠지. 그리고 주말마다 가족들이 분산돼서 수집가들 찾아가서 구하고 그러겠지. 태웅이도 주말마다 볼 일 있다고 나가서 늦게 들어오니까 백호는 또 백호대로 자낮한 생각에 빠지고...












태웅이 자전거가 바쁜 마음보다는 빠르지 않게 질주했지.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가로등 밑에 쭈그리고 있는 자기 멍청이가 보였지. 자전거 내던지고 멍청이 안아주려다 자전거에 실린 보물 생각에 조심히 내리고 세워뒀지.

"멍청아! 이제 다시는 너 두고 어디 안가!"

태웅이가 백호 일으켜서 끌어안고 백호 품에 꼭꼭 싼 포장된 물건을 안겨줬을거야.

"미안하다. 더 빨리 구했어야 하는데."

"이거 뭔데?"

"귀한 거."

백호가 살살 풀어 보니까 엄마 접시야. 딱 하나 남았는데 깨진거랑 같은 거. 백호가 소리도 없이 우는데 태웅이가 자기 저지 소매로 눈물 닦아주는데 청대 저지라서 백호가 울다가도 궁금해서 물어봤지.

"청대 소집도 아닌데 너 왜 이거 입고 있냐?"

"누나가 청대 유니폼 입고 가서 그릇 구하면 신원보증도 되고 점수도 딴다고 입고가랬어."

"....앞으로도 누님 말은 꼭 듣자, 여우야."

고마워... 백호가 울고, 태웅이 저지 소매가 축축해졌지만 가로등 밑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이 눈물보다 더 귀하게 쌓여갔지. 함께 있으면 더 아름답기에 같이 새긴다는 단풍과 벚꽃이 백호 품 안의 접시에도, 자전거를 세워두고 꼭 안고있는 어린 연인들에도 새겨져 있었지. 귀하니까 귀한 것만 주고 싶은 사랑이 빛을 따라 포근히 내려앉고, 가족같은 존재가 아니라 가족이 되어야만 하겠다는 태웅의 결심히 스며드는 어스름이었지. 너희들처럼 아름다운.





루하나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