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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8 23:59
백호 재활 끝나고 등교했더니 담임이 부르겠지. 농구장학금 전달때문이있음.



입학 초에는 딱 봐도 양아치 무리인데 졸업이나 제대로 할까, 쟤는 얼마나 버틸까 생각했던 적도 솔직히 있었는데 농구부에 들어가더니 예선도 통과하고, 반 애들이 하나밋짱, 하나밋짱하면서 응원하는 것도 의외라고 여겼겠지. 그러다 전국대회 나가고 담임도 경기장에 갔음. 한참 전부터 백호는 담임뿐만 아니라 북산고의 아픈 아기손가락이었지. 얘는 전교막내잖아. 북산왕전 때 백호 쓰러지고 앰블런스 왔을때 백호군단 애들이 보호자로 따라가려고 하자 담임이 나서서 안선생님이 지정해준 재활병원까지 같이 동행했을 거야. 거기서 호열이한테 백호 가정형편에 대해 들었겠지. 사실은 서류상으로만 파악하고 있었던 걸 호열이가 마음을 열고 해준 얘기를 카나가와로 가는 내내 눈물을 삼키면서 들었지. 자기반 하나밋짱은 꼭 행복해져야하는 애였음.

재활 기간동안 담임이 고급과일바구니랑 특제장어도시락 사왔던거 기억하는 백호라서 어느새 담임도 애교부려도 되는 자기편이 되어 있었음. 맛있는 거 주고, 진짜로 자기 걱정을 해주는 어른이잖아.









"강백호, 백호, 백호야. 북산왕전 끝나고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졸업생들이랑 학부모회랑 상가 후원회가 농구부 지원하겠다고 기금을 만드셨는데 널 후원하고 싶으시다고 한다."

교사들도 금일봉을 모았고 담임이 제일 큰 돈을 냈지만 그 얘긴 꺼내지도 않았지. 상가 어르신들이 백호는 외상을 하면 꼭 갚으러 오는 애라고, 남들이 보면 무전취식하는 양아치처럼 보이는거 다 겉모습 뿐이라고, 부모님 보험금 나오는 날 상가 순시하면서 백호가 외상 갚는게 월례행사라고, 걔는 은혜를 입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어떻게 갚나 걱정하는 애니까 구체적으로 누가 여기다 기금을 냈는지는 말해주지 말라고 했었지. 그저 자기네들은 자기네 빨강머리 몸만 큰 어린애가 등 고치고, 훨훨 나는거 보고싶을 뿐이라고, 걔는 좀 고생을 그만 했으면 한다고 우시는던 걸 잊지 않았음. 전교막내야, 너는 이제 걱정 없이 운동 좀 해라.

"후눗..! 그런게 우리 학교에 있었어?"

"네가 발로 뛰고, 등을 걸어서 만든 거다. 자격이 있다."

"...그럼 그거 내준 사람들 장부도 줘. 어... 내가... 언젠지 모르지만 꼭 갚을게."

"익명이야. 그게 뭐냐면 후원자들이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으시대."

"...오야지가 갚지 못하는건 함부로 받지 말랬어."

"강백호야, 나중에 TV를 틀면 네가 뛰는 걸 보고 싶으시대. 전국대회도 가고, 대학농구도 하고, 국대도 하고, 그거 다 증명하면 은혜 갚고도 남아. 할 수 있잖아."

담임이 진심으로 말했지. 자기 반의 빨간머리 문제아가 이제는 제일 유망한 선수가 되어가는걸 보고싶었지.

"...."

"그럼 성공해서 찾아와. 그때 후원자들 알려줄게. 어른이 주시면 받는거다. 아버님이... 그것도 가르쳐주셨잖아, 백호야."

"눗..!"







그렇게 지원된 장학금이었는데 한달이 지나고 백호가 담임을 찾아왔지. 밧슈 상자를 담임 책상 위에 내려놓길래 박스를 열어보니까 돈이 제법 들어있음.


"쓰고 남은 거."

"뭐? 장학금은 네 돈이야. 매달 필요한거 사는 돈."

"필요한거 샀어. 그리고 남은 거야."

"뭘 샀는데?"

"스포츠양말 세 켤례."

백호가 양말을 보여주면서 아기감자 미소로 웃었지. 짱짱해!

"....왜 세 켤레만 샀어?"

"빨아서 신으면 되잖아! 나 빨래 엄청 잘해!"

담임이 머리를 부여잡고 교무실에 온 다른 학생에게 2학년 교실에서 송태섭이랑 이한나 학생 좀 교무실로 와달라고 전해달라고 했겠지. 태섭이랑 한나가 불려와서 자초지종을 듣더니 담임처럼 머리를 싸맸겠지.


"후눗! 섭섭군! 내가 세 켤레나 사서 그래??"

담임이 농구부 주장이랑 매니저가 책임지고 같이 농구용품 좀 사줄 수 있냐고 부탁했겠지.

"백호야, 장학금 나오면 그걸 생활비로 쓰고, 부모님 보험금은 이제 저축해도 된다. 송주장, 백호한테 저축통장 만드는건 내가 데려가서 하겠다. 재정관리하는 법도 이참에 가르쳐야지."

이제 외상 갚는데 부모님 보험금 쓰는게 아니라 저축해서 그걸로 미래를 만드는데 쓰면 된다. 강백호야, 너 공과금 내러 은행가는거 말고 다른 것도 배울 때가 됐다. 담임이, 그 등뒤의 후원자들이 백호한테 미래를 가르치기 시작했지. 한번도 백호가 꿈꿔보지 못한 시간을. 이제 너의 미래와 바꾸지말고, 네 미래를 위해 뛰어도 된다는 것을.








백호가 그날 훈련을 마치고 밧슈 상자를 들고 체육관을 나설때 바보트리오와 태웅이가 옆에 있었지. 대만이네 부모님이 윈터컵 전에 전지훈련 비용을, 태웅이네 부모님이 '미국 갈거에요. 멍청이 훈련시키고, 윈터컵 우승하고, 전국 재패한 뒤에. 걔도 데려갈 거에요.'라고 선언했을때 체육관 증축 기금을 기탁하신걸 아들들은 몰랐지만.

백호가 "눗... 양말... 더 사면 낭비 아닐까?"하는 소리에 다들 "이 멍청아!", "대만 선배 건치같은 소리 하네!", "야! 거기서 내 얘기가 왜 나와!!" 떠들면서 농구든씨의 신발가게부터 들르러 가겠지. 그 가게도 장학기금 리스트에 있는 줄도 모르고. 가게를 나설때 손은 무거운데 밧슈 상자의 돈이 하나도 줄지 않아서 백호가 "저 아저씨도 담임이 상담 좀 해줘야겠어..."했겠지.



농구부의 전교막내는 그렇게 자라기 시작했지. 어느 순간 아무도 없던 어른의 존재가, 이름 없는 어른들로 바뀌어 덩치만 커단 아이를 자라게 하기 시작했지. 빨간 머리 농구부의 아이는 이제 종생토록 태웅이와, 먼저 미국땅을 밟을 태섭이와, 북산 OB중 가장 먼저 국내 프로리그에서 영구결번과 최연소 감독으로 부임할 3점슈터 선배와 함께 어른이 되어가겠지.

벚꽃은 지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해를 기약하며 내일로 흐르는 강에 몸을 맡긴다는 것을 배워나갈 시간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어.






루하나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