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54102457
view 3086
2023.07.18 08:46
영수는 항상 윤대협의 '네가 해 줘' 에 약했음. 그건 음료수 뚜껑일 때도 있었고, 수학 숙제일 때도 있었고, 심하게는 여자 친구의 선물 고르기일 때도 있었음.
왜 심한 일이냐면,윤대협은 영수의 고백을 거절한 적이 있었거든.

영수는 고백할 마음도 없었는데 어느 날 자기를 좋아하느냐고 묻더니 영수가 뭐라고 대답할 말도 찾지 못하는 사이에 예의 호탕한 웃음으로 그래도 난 영수랑 사귈 생각은 없지,하고 못박아 버린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모를 싸가지 없는 행동
.
태연함이 도를 지나쳐서인가 영수는 그러고서도 여전히 윤대협의 네가 해 줘, 영수야 도와줘에 약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장장 십 년이란 시간을 끌려 다니고야 말았음.

그러고선 어느 날 윤대협은 마주하게 된 거임. 네 씨가 필요하니 떡 좀 치자며 올라탄,어딘가 싸늘하게까지 보일 정도로 차분한 영수를.
다행히 영수는 그대로 무작정 윤대협을 엉망진창 따먹어버리지는 않았고 자기의 기행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줬음.

내가 사귀자고 한 것도 아닌데 이 배려 없는 새끼 지 맘대로 0고백 1차임 만들고,그러고서도 뻔뻔하게 치대서 미처 못 접은 순정 농락당하느라 꽃다운 20대 거진 다 보내고...이러고 나니 예쁜 아기 하나 낳아 오메가로서 행복 찾고 싶은데 지난 세월 억울하니까 윤대협한테서 제공받아야겠다. 적어도 그러면 얼굴은 잘날 테지.

하나부터 열까지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윤대협 얌전히 협조했고 아기는 한 번에 생겼음.모든 게 완벽할 뻔했지.
윤대협이 안영수에 대한 제 마음을 알게 된 것만 빼면.

세상 편하게 사는 윤대협이지만 지금 아기의 친부로서 권리도 의무도 없음을 명시하는 서류를 들고 온 영수 앞에서 사실 몰랐는데 널 너무 좋아해서 간절해지는 걸 외면하고 싶어서 그랬고 이젠 적법한 배우자가 되고 싶다고 말해 봤자 돌아올 건 잘 들었고 짜증나니까 서류에 서명이나 하라는 경멸일 거 알았지.

그래서 차마 좋다는 말 못 하고 영수 옆 맴돌면서
나 아이가 생기면 병원에 같이 가 보고 싶었는데,
태동을 느껴 보고 싶었는데,
이름을 고민해 보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그거 네가 해 줘,영수야. 이런 핑계로 임신 기간 지키고 아기도 같이 키우다가 그래도 같이 아기 만든 알파라고 본능적으로 경계심 누그러지는 영수 틈 귀신같이 파고들어 아빠이자 남편 역할로 끼어드는 데 성공했겠지.

근데 그때 작성한 서류는 윤대협이 자기 달라고 암만 구슬리고 아양을 떨어도 절대 어디 뒀는지 안 가르쳐줘서, 그게 혼자 상처받고 기다려 온 영수의 마지막 방어 기제인 거 아는 윤대협 나태해질 틈 없는 결혼생활 하는 거 보고싶다



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