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서 내가 씀..
북산 팀주장 송태섭 x 맏형 정대만







딩동.

눈을 질끈 감는다. 정대만은 진심으로 오늘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얼렁뚱땅 시작한 것치고 제법 교제 다운 교제를 이어오고 있는 송태섭과의 데이트 날로 정착된 토요일. 평소였다면 안 그런 척 들뜬 채 그의 방문을 기다렸을 법도 한데.

“…….”
“…….”

지렁이 굼뜬 동작으로 기어가 문을 열자 보이는, 초록 캡을 거꾸로 뒤집어쓰고 헐렁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눈을 깜박이고 선 연하 남친의 모습은, 정말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퍽이나 불량스럽게 보였다. 한 쪽 손목에 걸린 무엇이 담겼는지 모를 수상하고 불룩한 검은 비닐 봉다리도 분명히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몫을 했고.

“안녕.”

여태 문고리를 놓지 않은 정대만이 말도 않고 반만 열린 현관 앞을 비켜서지도 않자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송태섭 쪽이었는데,

“…안녕…”
“…….”

개미 굴 파고 기어가는 소리로 마주 인사를 건네는 정대만을 보더니 첫인상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짝짝이 눈썹이 대번에 그 높낮이를 더더욱 달리하는 것이었다. 껄렁한 양손도 아직 주머니에 꽂힌 그대로였다. 불행하게도 정대만은 놈의 행동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양쪽 어금니 사이에 아주 작고 단단한 은단 알갱이가 끼이기라도 한 것처럼 정대만의 상악과 하악이 절로 앙다물린다.

“…흐스으(하세요).”
“그래. 안녕.”

뱉기까지 가지도 못하고 그냥 입안에서 처참히 씹혀버린 맺음이었으나 송태섭은 의외로 별다른 지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양 발꿈치를 번갈아 움직여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만아.

“발음이 왜 그래. 임플란트 어긋났어?”

제 집 둘러보듯하며 자연스레 거실을 향하는 태연자약한 옆모습엔 웃음기 한 점 없다. 죽이리라. 기필코. 자정이 넘어 원래대로 내 선배의 자리를 되찾으면 필시로 네 놈을……

“얼른 안 들어오고 뭐해.”
“하… 하하. 으에, 급느드 슨브(예, 갑니다 선배).”

유난히 하늘 맑고 화창한 토요일 오전 열 시. 북산 농구부의 유일한 3학년이자 맏형,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정대만의 강렬한 후배 체험은 그렇게 막을 올렸다.





.


송태섭과 정대만은 거실과 주방 사이 놓인 식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다. 정대만은 말을 최대한 아끼면 되는 일 아닌가, 하는 빤한 생각이었고, 송태섭은 글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징글맞게도 식탁 의자에 비뚜름히 앉아서까지 망할 주머니 속에 찔러 놓은 손을 빼지 않은 채로 천장 모서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얼마쯤 더 시간이 흘렀을까.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에도 송태섭이었다.

“좀 출출한데.”
“…….”
“라면 사 왔으니까 먹고 하자.”

송태섭은 마주 앉은 식탁 한가운데 놓인 검은 비닐봉지를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참나, 하기는 뭘… 하겠단 건지. 뭐가 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정대만이 입술을 꾹 닫고 송태섭의 얼굴과 비닐봉지만 번갈아 본다. 그러고 멀뚱히 앉아있으려니까 송태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만아. 좀처럼 후배 놀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대만의 어깨가 움찔 튀며 송태섭의 눈을 좇는다.

“뭘 멀뚱히 보고만 있어. 네가 가서 끓여야지, 라면.”

아……. 순간 힘이 들어간 턱뼈를 억지로 느슨하게 풀어낸 정대만이 의자를 느리게 밀며 일어났다. 그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송태섭을 처음으로 제 집에 초대했던 날, 고작 봉지 뒤에 적힌 조리법 확인하는 걸 못(안)해서 한강물 만들어 온 걸 본 송태섭이 ‘어… 선배는 앞으로 이런 거 하지 마요’ 하고 다소 절망스러운 투로 말한 이후 정대만은 정말로 그 말을 착실하게 지켜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그나저나 이 자식, 속으로는 줄곧 반말 하고 있었던 거 아냐? 왜 저리 자연스러워? 일부러 그러려는 게 아닌데 자꾸만 동작이 굼떠지는 정대만은 생각한다. 사실은 어쩌고고 저쩌고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발단이야 뻔했다. 본인들이 별 쓸데 없는 문제를 두고 세기의 대결 펼치듯 열을 올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그날 역시 별스럽지도 않은 내기를 물어다 놓고 내가 맞네 네가 맞네 실랑이를 벌이다 시작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찮기로는 으뜸이라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그 승부에서 승기를 잡은 것이 하필 송태섭이었고, 그가 보상으로 내세웠던 것이 ‘야자타임’이었던 것뿐. 이미 결정 난 승패를 뒤집으려는 비겁한 행동을 차마 할 수 없었던 사나이 중의 사나이 정대만이 이 같은 수모를 겪고 있는 이유는 그저 그때문이었다.

제 손이 부들대는 줄도 모르는 정대만은 하는 수 없이 절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송태섭이 던져놓은 검은 비닐봉지 안을 뒤져 다섯 개 들이 라면 묶음을 꺼냈다. 그런데,

툭.
라면 묶음보다 더 깊숙이 들어있던 다른 내용물이 함께 딸려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
“…….”

그것은 얌전히 수직낙하하지 않고 바람에 구르는 낙엽처럼 저쪽에 앉은 송태섭의 발치까지 굴러갔고, 시선을 떨어뜨려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정대만의 안색이 별 수없이 어색한 모양으로 굳어졌을 때. 석고상인 양 내내 꼼짝 않던 송태섭이 앉은 채로 허리만 굽혀 떨어진 콘돔 상자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식탁에 올려두는 꼴을 보고 아연해진 시뻘건 정대만을 두고, 송태섭은 태연한 기색으로 손가락을 뻗어 주방 안쪽을 가리켰다.

“뭐해? 형 배고프다니까.”





.


정대만이 얼마 만에 끓인 라면은 볼 것도 없이 한강물이었지만, 정말로 손 하나 까딱 않고 기다리다가 대령된 냄비 속을 들여다 본 송태섭은 대놓고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어도 군소리를 보태지 않고 깜빡할 새 두 봉지 분량을 먹어치웠다. 반면 제가 끓여놓고도 도저히 먹을 만한 것이 못 되었던지, 간신히 반 봉지쯤을 씹어 삼킨 정대만은 패색에 절은 목소리로 자진해 설거지까지 도맡겠다 했다.

송태섭은 말끔하게 닦인 식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그러고는 양손에 야무지게 고무장갑을 낀 정대만이 싱크대 앞에서 사부작거리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본다. 반듯한 자세, 나긋한 목덜미, 너른 어깨, 탄탄한 등허리와 바닥을 딛고 선 곧게 뻗은 두 다리. 정대만의 집중한 뒷모습을 언제까지고 바라보고만 있을 것 같던 송태섭이 어느 순간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던 상체를 일으켰다. 반쯤 열려있던 창밖에서는 자유로이 흩날리던 바람과 함께 공 차는 아이들의 상기된 목소리가 밀려들고 있었다.

“…비누 냄새.”

성큼 다가가 정대만의 덜미에 코끝을 스친 송태섭이 말했다. 간지러운 건지 뭔지, 그릇을 엎어놓던 정대만이 작게 몸서리를 친다. 곁눈질로 슬쩍 개수대 안을 들여다본 송태섭은 방금 엎은 것이 마지막 그릇임을 확인했고, 정대만의 몸을 뒤에서부터 감싸 안듯 손을 뻗어 수도꼭지를 잠갔다. 물소리가 그치자 어쩐지 정대만도 그에 따라 숨을 멈춘다. 불어난 심장소리를 감추려 함이었겠지만 도리어 송태섭의 마음을 부추기는 꼴이었다. 슬쩍 달아오른 귓등으로 송태섭의 목소리가 흘렀다.

“기대했나 봐. 아침부터 샤워하고 기다린 거 보면.”
“…으, 아니ㅇ…”
“아니.”

품을 빠져나가려는 정대만보다 그를 저지하는 송태섭의 행동이 더 빠르다. 너르게 굳은살 박인 송태섭의 손바닥 안 가득, 정대만의 따끈한 양 뺨이 들어찼다.

그렇게 마주한 송태섭의 눈동자는 언뜻 새까맣게 보였다. 평소의 부드러운 적갈색을 떠올린 정대만의 본능이 찌르르 뒷골을 울리며 위험 신호를 알렸지만, 너무 늦었다. 존대와 호형을 요구한 송태섭의 의중이 단지 정대만을 놀려먹기 위함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엔, 이미……

“귀엽다고, 너.”

송태섭의 입술 위로 속절없는 정대만이 와르르 쏟아진다. 송태섭이 끌어당긴 것인지 정대만이 알아서 쏟아져 내린 것인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가볍게 부딪는 입맞춤 따위 없이 곧장 서로의 입안으로 혓바닥이 파고들었다. 정대만이 허둥지둥 벗어낸 고무장갑이 툭, 개수대 안으로 떨어졌고, 자유로워진 두 팔이 정대만의 방을 향해 뒷걸음질 치는 송태섭의 몸을 세차게 끌어안았고, 그리고………








아 얘네 사귀기 전부터 할 거 다 했음 ㅇㅇ​

태섭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