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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9 02:17
애 살아온 자취만 봐도...

편모 가정에 요절한 장남 -> 그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별의별 일 다 겪지 않았겠음ㅠ 티 내고 대놓고 눈앞에서 수군거리는 사람은 없었더라도 자기만 끼면 묘하게 변하는 분위기라든지 저를 향한 측은한 눈빛이라든지, 안 그래도 예민한 성정의 애인데 절대 모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함

농구할 때의 작은 키도... 특출나게 작은 키는 아니지만 하필 농구부라서 제 신체적인 결함이 더 드러났겠지. 뭐만 하면 '너는 키만 조금 더 컸다면,' '키가 작아서 포인트가드인가?' '작은 키를 보완하려고 드리블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이런 말이 들려오니까 스트레스 오지게 받았을 것 같음. 그래도 힘껏 센 척하면서 참아왔는데

사춘기 지나면서 또다시 자신의 어긋남을 깨달아버린 송태섭이었겠지. 이번에는 성정체성. 모여서 낄낄거리며 나는 단발이 좋다, 장발이 좋다, 머리 길이가 문제냐 가슴이 문제지, 이런 저급한 농담하는 애들 사이에서 하나도 공감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송태섭은 알게 모르게 절망했을 것 같다. 나는... 정상이 아니구나. 그리고 홀로 깨달은 이 사실을 어떻게든 부정해보고자 온갖 여자애들한테 고백하고 차이고 다녔겠지. 여자애한테 차인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보단 '정상'적이니까.

그래서 이명헌이랑 사귀면서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 하는 송태섭이 보고 싶음. 이런 건 정상이 아닌데. 이 불안은 둘이 함께 나이들어가면서 더 커지겠지. 나란히 북산, 산왕 동료들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방문하는 동안 자꾸 잡생각하는 송태섭일듯. 맞아, 이런 게 정상인데. 나야 원래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해도, 명헌이 형은? 내가 형의 정상성도 빼앗아버리는 걸까?

그리고 어느 날, 의도 없이 봐버린 명헌의 휴대폰 알림창이 이 불안함의 기폭제가 되었음.

-

[명헌아, 정말로 선 안 볼 거니?]
[좋은 아가씨던데.]

발신자: 어머니

-

그 순간 내면의 무언가가 터져버린 송태섭. 그 자리에서 바로 이별을 갈겨버리겠지. 형, 우리 헤어져요.이건... 이건 정상이 아니예요. 미안해요, 형. 우리 제발 이러지 마요.

덜덜 떨면서 한 마디 한 마디 이별을 내뱉는데, 의외로 이명헌은 동요없이 담담했으면 좋겠다. 두서 없는 수많은 말이 다 흘러간 후에야 명헌은 입을 열겠지. 그래, 태섭아. 네가 원하는 게 그거라면, 헤어져 줄게. 대신 그 전에–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들어줘.



-

그리고 이명헌의 부탁은 이별 여행이었으면... 저 말 하면서 언제 끊어놨는지 모를 미국행 티켓을 차분히 내놓았겠지. 이 부탁만 들어주면 깔끔하게 헤어져 주겠다는듯이 구는 미련 없는 태도에 태섭이 거절 못 했으면 좋겠다.

근데 이건 이명헌의 큰 그림이었을듯. 이명헌도 송태섭과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오면서 태섭의 불안정함을 눈치챘을 거임. 그리고 저를 보는 눈에 서서히 죄책감이 깃드는 것도 느끼고. 어떻게 해야 너에게 확신을 줄 수 있을까. 네가 갈망하는 그 망할 '정상성'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송태섭이 모르는 사이에 이명헌은 이미 머리를 굴리고 있었겠지.

그래서 송태섭이 헤어지자고 하자마자 태섭이 데리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는 이명헌이 보고싶다. 미국에서 뭐하냐고? 혼인 신고 갈김ㅇㅇ 매리지 뷰로에서 식겁한 채 도망가려고 하는 송태섭 붙잡고 개담담하게 '태섭이 원하는 거 이거 아니었어? 남들처럼 결혼하는 거 뿅' 이래서 송태섭 그날 헛구역질 레전드 찍을듯... 근데 안 그래도 정신없는 송태섭 구렁이 담넘듯 꼬시는 이명헌의 말에 어? 어? 어...? 하고 넘어가서 어느새 정신 차리면 품에 허가서 껴안고 있겠지ㅋㅋㅋ

여행 끝나고 돌아온 공항. 여전히 멍한 송태섭을 앞에 두고 이명헌은 커플링을 벗겠지. 여행 끝났으니 이제 헤어져야지. 중얼거리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는 송태섭. 아니...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혼인 허가서는 뭔데...? 어리둥절해 있으니까 명헌이 덧붙인다. 개진지한 목소리로.

- 헤어져 주겠다고 약속했잖아. 태섭, 우린 이제 연인이 아니예용.
- ...? (아직 너갱이 안 돌아옴)
- 대신 부부 뿅

하고 자켓 속에서 결혼 반지 꺼내는 명떤남자ㅋㅋ

그러면... 멍한 정신으로 이 모든 사태를 달관하듯 휩쓸리던 송태섭은 결국... 그냥 푸스스 웃어버리겠지

- 형ㅋㅋㅋ 이것도 정상은 아녜요ㅋㅋ
- 뭐 어떠냐 뿅 비정상이면 비정상인 대로 특별하게 살면 되는 거지.

뿅. 하고 뒤늦게 덧붙이는 명헌을 바라보며 태섭은 왠지 모를 위안을 느꼈을 거다. 울컥하는 마음에 명헌을 바라보고만 있자 조금 조급해진 이명헌이 덧붙임.

- 그리고 태섭. 난 원래부터 정상 아니었어 뿅. 어떤 정상인이 뿅뿅거리냐 뿅

그제야 웃음 터뜨리면서 폭소하는 송태섭. 눈물도 흐르고 중간중간 코도 먹고 그러는데 암튼 웃는 거긴 함. 그런 태섭이를 품에 꾹 안아주는 이명헌 어떤데... 이런저런 위로의 말 굳이 안 하고 그냥 조용히 송태섭 손가락에 결혼 반지 껴줌. 태섭. 누가 뭐라 하든 누가 손가락질 하든. 너와 함께 있을 때가 나에겐 정상이야.

그러니까 불안해 하지마. 비록 모든 말은 송태섭의 입에 삼켜 들어갔지만 메시지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명헌이겠지.



송태섭의 불안을 눈치채는 순간 이것저것 안 따지고 그냥 일 저질러 버리는 이명헌이 좋다. 흔들리는 송태섭을 기다려 주면 더 흔들릴 걸 알아서 조금이라도 동요할 기미가 보이면 걍 무작정 세게 붙들어 주는 이명헌... 흔들려도 무너지진 않는 오뚜기 같은 사랑을 해라 얘들아

명헌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