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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4 00:20
졸업 후 봄이 되기 전 어느 날 치수가 대만이한테 전화걸어 권준호 어딨는지 아냐고 물어보면...
집은 난장판에 야반도주라도 한 모양새고 당연히 애랑 연락도 안되는 상태로...

농구부 다같이 찾아나서서 카나가와를 다 누벼도 안 보임.. 좀 운신이 자유로운 백호군단이랑 이제 성인인 치수 대만이가 인근으로 수소문을 암만 해봐도 찾을 수가 없음

법적으론 아무 관계도 아니고 학교도 졸업했으니 실종 신고같은 걸 할 수도 없고...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 치수와 함께 가게 되었던 대학의 입학식날이 되어서야 결국 권준호가 사라졌다고 받아들이는 농구부...
암묵적으로 준호 얘기는 금지됐고 모두한테 상처처럼 남았을 거임

특히 치수랑 대만이 상처가 어마어마했겠지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애들이 프로 선수가 되었을때도 여전히 준호가 사라진 상태고... 프로리그에서 대만이가 처음으로 mvp가 됐을때 인터뷰 말미에 고민하다 준호야 보고 있냐, 보고 있으면 연락해라 알지? 말 남기는데 끝끝내 연락 안 옴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동뿅한테 연락받는 치수랑 대만이..
현철이네 본가 놀러가다가 길 잘못 들었는데 그쪽 시내에서 권준호 닮은 사람 봤다고..
대학 다니는 동안 정대만이 술만 들어가면 준호 얘기하고 사진 보여주고 다녀서 그 둘도 익숙했거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장 그 동네 찾아가는데 진짜 시골촌구석에 공장 몇개 있는 그런 동네임... 아무리 봐도 그들이 기억하는 권준호같은 인재가 있을 법해보이지가 않았음

동네랑 안 어울리는 치수의 커다란 신형 차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이런 데 권준호가 있다고? 하는데 진짜 거짓말같이 밥 먹으러 나오던 공장 사람들 사이로 권준호 섞여있으면 어떡하냐...

차분하지만 늘 열정과 끈기로 가득하던 눈은 잔뜩 가라앉은 상태로, 단정하던 머리는 아무렇게나 자라 덥수룩함
귀여운 티셔츠 대신 검은 기름이 곳곳에 묻은 칙칙한 작업복 입고 있는 권준호..
앳되던 얼굴엔 무미건조한 표정만이 가득해서 차에서 차마 내리지도 못하고 멀리서 권준호 쳐다만 보는데..

조금 더 가까이서 보니 권준호 한 손이 잔뜩 흉지고 덜덜 떨리고 있으면 어카냐... 뭐에 깔렸든 베이고 찢겼든 밟혔든 어쨌든 왼손 제대로 못 쓰는 상태면...
근데 또 그 와중에도 양 손목에는 비록 예전처럼 깨끗하진 않아도 여전히 하얀 아대가 있으면 진짜 어카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감도 안와서 할 말 잃은 정대만 채치수

그러다 문득 권준호가 고개 돌려서 쳐다보는 바람에 정면으로 눈 마주치면....
마주한 권준호가 놀람으로 저도 모르게 잠깐이나마 그때 그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마냥 웃어버리면....
근데 다음순간 그 모든게 허상이었던 것 마냥 사라지고 얼굴 굳힌 채 뒤돌아서길래 그제야 정신차리가 급하게 뛰어나가 잡아보는데 눈빛이 너무나도 공허해서 심장 덜컥하는 치수랑 대만이....



그냥 클리셰처럼 부모님 사업 망해서 집안 풍비박산나고 빚 감당못해서 쫒기며 도망다니다 겨우 시골에 눌러앉은 권준호..신분 숨기고 일용직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다가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나서야 상속포기 뭐 그런 걸로 빚에서 해방됐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돌아갈래도 어떻게 돌아가야할 지를 몰라서 계속 그렇게 그 동네서 살았던 거면 좋겠음

손은 박살나서 농구같은 섬세한 운동은 못하는데도 단칸방 구석에 늘 낡은 농구공 하나 놓고 사는 권준호...
가끔, 아니 실은 꽤 자주 북산애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삶과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연락할 시도조차 못하는 갇혀버린 권준호..
빚이 없어지며 얼마전부터 생긴 여윳돈으로 동네 낡은 서점에서 그동안 사지 못했던 애들 인터뷰 실린 잡지도 하나 둘 사모으는 권준호..
그래놓고 막상 애들 만나니까 저도 모르게 웃었으면서 바로 표정굳히고 모르는 척 뒤돌아버리는 권준호...


뭐 그런 게 보고 싶다

심장 덜컹한 치수랑 대만이가 잘 달래서 서울로 데려가서 치료도 시키고 해감해주고 세같살로 잘살아도 좋은데
거부하고 안 간다고 극구 뻗대서 결국 둘이서만 돌아와 답답함에 술 퍼마시는 것도 좋고...
근데 후자여도 치수랑 대만이면 한나 소연이 달재에 미국조 애들 태섭이 백호 태웅이까지 다 데리고 가서라도 준호 데리고 돌아올 것 같지...

준호 위태로워보여서 당분간 대만이네서 치수도 같이 지내며 돌보기로 하는데
무슨 일 있었는지 말 안해주다가 어느 날 문득 밤에 자다 깬 치수가 물 마시러 나갔더니 깨어있던 준호가 천천히 말해주겠지

너무 무서웠다고 겨우 19, 20살이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무서웠다고
이제는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다 우는 권준호

담담히 고백하는데 치수 그냥 말없이 어깨 조금 두드려주고 언제 깼는지 모를 대만이 뒤돌아서 자기도 같이 울고...


정대만이 우겨서 손 뒤늦게나마 치료받는데
몇 달 지나 준호가 먼저 희미하게 웃으며 얘들아 농구할래?말하는 그런 거...






하 이런 거나 보고싶고.. 준호야 미안하다 근데 니가 먼저 처연하게 생겼잖아...ㅠ


대만준호 치수준호
(근데 논씨피로 봐도 상관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