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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02:37
어른이랑 어린이 사이 어중간하게 되돌아가 버려서 최소한의 행동은 할 수 있지만 원래의 정대만은 절대 아닌 상태가 좋음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뭐든 꺼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막상 먹은게 알레르기 일으키는 음식인지는 모르고 어느 때는 멀쩡하게 말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입 꾹 다문 상태로 몸짓만 해대는거. 탑에 대한 기억도 깜빡깜빡해대서 운이 좋은 날은 탑이 자기 애인인걸 알지만 평소에는 자기 보호자로 보고 상태 안 좋으면 자기 아프게 하는 사람으로 인식해서 방구석에 몸 웅크리고 덜덜 떨기만 함



근데 이렇게 만든 사람이 탑이면 좋겠음 둘이 만난지 몇 년이 넘어가니 탑에게도 결국 권태기가 찾아왔고 언제나 똑같이 자길 보고 웃는 대만이가 너무 익숙해진거 그러다 다른 사람이 점차 마음에 들어오지만 바람을 피진 않았고 누가 먼저 선을 넘을지 긴장감이 도는 관계임 탑도 자기가 흔들리는걸 알고 죄책감을 느꼈음 탑은 티를 안 냈다고 하지만 사실 다 알고 있었겠지 대만이도 바보는 아니니까 묘한 위화감에 삐꺽이는걸 느껴도 오히려 모른척 했을거임 혹시나 먼저 꺼냈다가 헤어질까 무서워서



탑도 결국앤 정신 차리고 아예 상대와의 관계를 끊어내는데 오히려 상대가 탑에게 집착할 거임 매일마다 전화하고 문자하고 심하면 탑의 직장까지 찾아와서 기다리는 통에 탑도 피가 말려 죽을지경이었음 그러다 비가 오는 날에 결국 사고가 났음 갑작스러운 소나기라 대만이가 탑이 일하는 곳까지 데리러 와주기로 해서 탑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근데 그 상대가 또 찾아온거임 그렇게 둘이 말다툼에 약한 몸싸움까지 해대서 탑은 비에 쫄딱 젖고 엉망이 됬음 그러다 그 놈이 마지막으로 키스 한 번만 해주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다고 해서 탑도 반강제로 키스를 했겠지 그리고 클리셰 돋게도 이 장면을 대만이가 봐야 함



탑이랑 눈이 마주친 순간 대만이는 그대로 뒤돌아서 뛰어가 버리고 탑도 대만이 이름 부르면서 쫓아감 대만이 우산까지 버리고 뛰어서 얼굴 때리는 빗방울에 눈물에 어두컴컴한 밤이라 앞에 뭐가 있는지도 분간못했음 그리고 결국 속도위반하고 달리던 차랑 부딪혀서 무릎이랑 다리가 아예 망가지는 사고나 남 뼈가 붙어서 걷고 일상생활은 해도 평생 농구도 못하고 휴유증이 따라 다니게 됨 대만이는 의사가 전하는 말 하나도 못 듣고 깁스에 싸여서 늘어진 자기 다리만 보고 있을거 같다



그리고 점차 퇴행될거 같음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넘어서 뇌에서 자체적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군데군데 잘라낸거 근데 그 과정에서 행복했던 기억도 함께 잊혀지고 결국앤 탑과 함께 했던 즐겁거나 슬펐던 기억 모두 잊어버리게 됨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가 퇴원날 가까워 지고 나서야 알아버려서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질 못했음 근데 대만이가 이상하게 탑한테는 꽤 얌전하게 구는 편이라 대만이네 부모님이 탑에게 부탁해서 둘이 살던 집으로 돌아감



대만이는 어느 날에는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서 안 틀어진 티비나 보고 있고 뭔가를 공책에 끄적이기도 하는데 탑이 제일 힘든 순간은 대만이가 예전 자기 사진 걸린 액자 보고 있을 때임 평소의 멍한 얼굴과 달리 뜻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얼굴로 우승 트로피 들고 웃고 있는 과거의 자신을 바라 보는데 탑이 못참고 그 액자 치워버릴거 같음



대만이는 정말 아이로 돌아간건지 슬퍼도 울지도 않아서 대만이 몫까지 탑이 울어버렸음 자신의 하나 뿐인 연인이 이제는 살아 숨쉬는 죄책감 덩어리가 되어버렸고 그걸 만든건 자신이란 사실에 매일 아침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대만이 품에 파고들어 안길거 같음 꿈을 꾸면 비가 오던 사고가 재생되고 그때마다 대만이의 얼굴은 더 선명해져서 차와 부딪힌 후 튀긴 핏방울의 갯수를 셀 수 있을 때쯤에는 진짜 이상한 관계가 되어 있을거 같음




그나마 정상적인 날의 탑은 정말 부모처럼 대만이를 챙기고 혹여나 가만히 있던 대만이가 툭하고 자기 이름을 부르면 오히려 혼을 내면서 다른 호칭을 강요할거 같음 자신이 제대로 인지되지 않는 것이 대만이에게 좋을거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대만이가 상태가 안 좋은 날에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어대는 대만이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비는 탑이 좋음 차마 껴안지도 못하고 무릎으로 기다시피 다가가서 대만이 발끝만 겨우 어루만지며 제발 자길 죽여달라고 용서를 비는거... 사실 마지막 문장이 보고 싶었음




대만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