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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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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체ㅈㅇ
타싸 올린적 있음







서태웅이 이상하다.

아니 원래 좀 이상하긴 했지만 요 근래 좀 더 이상해졌다. 자꾸 같잖은 핑계를 대며 원온원 상대를 안 하려 들길래 초등학생 때나 쓰던 소원권을 들먹였더니 고민하다 받아줄 때부터 이상함을 눈치챘어야 했다.
10번 도전해서 10번 패한 것도 열받아 죽겠는데 소원권까지 10개라고 우겨서 받아가는 모습에 대체 저한테 뭘 시켜먹으려고 저러나했다.
솔직히 약간 긴장했는데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한다는 말이 '단둘이 밥 먹고 싶다'란다.



불 꺼진 방 안에 누운 백호는 자꾸만 여우놈과 하교하며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무슨 생각이지? 단 둘이서. 나랑. 점심을. 도시락까지 싸와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단둘이 상담할 게 있나? 그 자식이...나한테? 백호는 괜히 팔뚝에 돋는 소름을 반대편 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아니면 내가 친구들이랑 다같이 먹는 걸 방해하려고? 방해하면 무슨 이득이 있지? 내 친구들이 없어지면...아!

서태웅 이자식, 나랑 한 판 뜰 생각이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 뿐이었다.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해진 백호가 편하게 발을 뻗으며 양 손목을 꺾었다. 당최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걸려온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이참에 농구 외적으로 누가 더 강한지 가려낼 수 있겠군. 백호가 킥킥 웃으며 잠들었다.





"...진짜 밥 먹자는 거였어?"



고급스러운 보자기 위로 나란히 놓여진 4단 찬합통에 가득 담긴 반찬과 한 통 가득 쥐여준 밥의 정성이 무거웠다. 심지어 고기 뿐이긴 해도 3칸은 서태웅 저 자식이 한 거란다.

생각지 못한 도시락 정신공격에 얼이 빠진 백호는 멍하니 밥을 먹었다. 따뜻하진 않아도 맛은 있었다. 도시락을 죄 비우고도 아직 넋이 나가 있는 백호를 보며 차곡차곡 찬합통을 정리하던 태웅이 말을 걸었다.



"맛있었냐?"

"엉? 어...엉..."

"내일 오후엔 뭐해."



내일은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농구 연습만 끝나면 백호는 딱히 일정은 없었다. 아마 매주 그랬던 것처럼 연습을 더 하거나, 호열이나 백호 군단이 놀자고 부르면 설렁설렁 놀러 가겠지.



"농구 연습 끝나면 뭐 딱히?"

"그럼 나랑 스포츠용품점 가자."

"..."



백호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너랑? 왜?' 따위의 말이 튀어나오려다가 간신히 삼켜진 모양새였다. 보자기의 매듭을 야무지게 맨 태웅이 그런 백호를 빤히 들여다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소원권."

"하놔, 이 자식이 진짜. 알았다고."



약이 오른 백호가 뒷목을 잡고 문지르며 대답했다. 태웅은 먼저 부실을 나서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내일 연습 끝나고 집 가버리면 죽어. 알았다고! 백호가 짜증내며 대답하자 태웅은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곤 가버렸다.



"아니 진짜 저 자식 뭔 꿍꿍이냐?"



밥은 일단 맛있게 다 먹었지만 여전히 찜찜했다. 게다가 스포츠용품점이라니. 소연이랑 농구화를 사러 가는 걸 데이트라고 설레발치던 자신이 떠올라 괜히 멋쩍게 헛기침을 했다.





어제부터 이상하게 굴어온 것 치곤 또 훈련은 평소처럼 하는 서태웅이 눈꼴시려웠다. 태섭이 '나이스, 서태웅' 하고 칭찬하는 것도 아니꼬와서 괜히 태섭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코트에서 쫓겨났다. 여우놈 얼굴을 보기 싫어서 나머지 연습도 안 하고 그냥 집에 와버렸더니 괜히 또 생각만 복잡해져서 잠을 설쳤다.



"자, 오늘도 수고했고, 주말 잘 보내라. 1학년들은 코트랑 공 닦고 집에 가고. 이상!"



태섭이 손뼉을 치며 훈련 종료를 알렸다. 대만을 비롯한 2학년들이 주위에 굴러다니는 공을 주워 바구니에 담는 동안 1학년들은 대걸레를 가져와 구석부터 닦았다.

어찌저찌 정리를 끝내고 샤워를 하고 부실로 가는 길 내내 백호를 따라다니는 태웅이 거슬렸다. 같은 1학년이니 동선이 겹치는건 당연한데도 오늘따라 신경쓰였다. 서태웅도 백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알지?' 같은 눈빛을 보내서 더 그랬다.



"잘 가 백호야, 태웅아~"

"월요일에 봐~"

"잘 가!"



환복을 마친 동기들과 인사까지 하고 나자 백호는 아까부터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태웅에게 삐그덕거리며 몸을 돌렸다. 여전히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백호를 보던 태웅이 먼저 두어 걸음 뗐다가, 따라오지 않는 백호를 돌아 봤다.



"뭐해, 멍청이. 빨리 와."

"누가 멍청이야. 여우놈아."



울컥하며 잰걸음으로 태웅에게 다가간 백호가 뭔가 부족해 보이는 태웅을 죽 훑어보다가 말했다.



"야 너 자전거는?"

"안 가져왔어."

"아하"



맨날 타고 다니더니 오늘은 왜, 까지 생각했던 백호는 시내 가야되서 그랬나보지 하고 대충 의문을 뭉갰다. 서태웅놈한테 그렇게 관심 쏟을 일도 아니었고.

버스를 타고 가자는 태웅에게 백호가 '버스비 없는데?' 하고 대답하자 태웅은 그럴 것 같았다며 두명 분의 버스비를 내고 올라탔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버스 창 너머로 햇빛이 반사되는 바다가 보였다.



태웅이 백호를 끌고 들어간 곳은 나x키 전문매장이었다. 브랜드 전문매장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던 백호가 헤- 하는 얼굴로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동안 태웅은 아대를 하나 새로 사고, 늘어난 운동화끈도 하나 샀다. 백호가 보이지 않아 휙휙 고개를 돌린 태웅은 저 쪽 구석에서 농구화를 구경 중인 백호에게 다가갔다.



"뭐 해."

"아 깜짝아. 살 거 다 샀냐?"



백호가 유심히 보던 농구화를 힐끔 쳐다본 태웅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저거 사줘?"

"뭐? 미쳤냐? 이걸 니가 왜 사줘. 나 그리고 농구화 아직 멀쩡하거든?"



다른 농구화에 비해 0이 하나 더 붙은 제품을 사준다는 말에 백호가 펄쩍 뛰었다.



"너 돈 많은 건 알겠는데, 그렇게 남아돌면 저축이나 해 인마."

"..."



태웅이 백호를 빤히 쳐다봤다. 헛돈 쓰지 말라고 타박하던 백호가 그런 태웅의 눈길에 입을 삐죽였다. 뭐, 인마. 왜. 심기가 불편한 듯 눈썹을 치켜 올리는 백호에게 태웅이 가까이 다가가더니 교복을 확 젖혔다.



"으악?! 미친 새끼야 뭐해!?"

"농구화가 부담스러운거면 티셔츠는 괜찮지?"

"뭐???"



홀랑 젖혀졌던 목깃을 빳빳하게 세우며 백호가 당황스레 묻는 사이 태웅이 척척 어디론가 걸어가더니 뭔가 계산해서 들고 왔다. 당당하게 내미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받아든 백호가 안을 열어보니 흰색에 검은색 로고 하나가 작게 박힌 티셔츠였다. 갑자기 무슨 짓인가 했더니 목 뒤에 있는 사이즈 표를 보려고 한 모양이었다.



"입어."

"...아니 뭔데. 나 생일 아니거든."

"알아 멍청아. 그냥 입어."

"아니 그니깐 왜?"



당최 영문은 모르겠고 태웅의 태도가 의아하기만 한 백호가 거듭 물었지만 태웅은 그냥 받으란 소리만 반복했다. 당혹스러워 하던 백호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지자 태웅은 결국 그 단어를 뱉었다.



"너 대체-"

"-소원권. 그거 입는게 소원이야."

"......아니 진짜 미친 놈 아니야 이거????"



백호가 어이없다는 듯 소리를 지르자 태웅은 내친 김에 지금 입으라며 백호를 좁은 탈의실 안에 밀어 넣었다. 막아선 문 안쪽에서 뭐라뭐라 험한 소리를 뱉던 백호는 결국 투덜거리더니 태웅이 사준 티로 갈아입고 나왔다. 태웅은 백호의 잠그지 않은 교복 재킷 사이로 작은 로고가 보이는게 만족스러웠다.



"이제 됐지? 볼일 끝? 나 집 간다."

"잠깐만. 하나 더 쓸래."

"...하, 또 뭐. 그래 빨리 쓰고 끝내자 제발."



백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인상을 쓰며 태웅을 째려봤다. 그런 백호에게 태웅이 건너편의 가게를 가리켰다. 태웅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 백호의 얼굴이 한층 험악해졌다.



"싫어! 미쳤냐!"

"소원 들어 준다며."

"아니 내가 왜 너랑 저딴 곳을...!"



싫다고!!! 발을 구르는 백호의 손목을 잡은 태웅은 성큼성큼 그 덩치를 잘도 끌고 길을 건넜다. 태웅이 가리킨 곳은 카페였다. 그것도 모던한 그런 평범한 카페가 아니라, 분홍색으로 벽을 칠하고 온갖 레이스와 흰 천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디저트 카페였다.



"너 그냥 나 엿먹이고 싶은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런 카페 안에 한 덩치 하는 남고생 두 명이 앉아 있으려니 손님들의 시선이 저절로 향했다. 부끄러워서 그 큰 몸을 최대한 구깃구깃 접어 앉아 있는 백호와는 달리 태웅은 태연하게 메뉴판을 읽고 있었다.



"뭐 먹을래."

"돈 없거든? 너나 시켜 먹어."

"사줄게. 뭐 먹을래."

"아, 안먹어."

"그럼 딸기듬뿍폭신폭신달달파르페 하나랑 쿠앤크바삭달콤쉐이크 하나 주세요."



백호의 말을 무시하고 점원을 부른 태웅이 메뉴판을 가리키며 주문하는 꼴을 본 백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내가 방금 뭘 들은거지? 눈 하나 깜짝 않고 딸기..뭐시기폭신..뭐?를 줄줄 읊는 꼬라지가 묘하게 이런데에 익숙해보여서 또 열이 받았다.



"너 이런데 많이 와봤나 봐."

"..."

"되게 익숙하네. 데이트하러 왔었냐? 엉?"

"처음 왔는데."

"거짓말 하지 마라. 근데 무슨 그런 주문같은 음식을 줄줄 읊냐."

"? 메뉴판에 있는거 그대로 읽으면 되잖아. 넌 그것도 못해 멍청아?"

"이게 진짜-"



백호가 확, 태웅의 멱살을 잡으러 일어났다가 음식을 가져다 주러 온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순한 눈으로 백호를 올려 보는 여점원이 당혹스러워 하자, 백호가 멋쩍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따...딸기듬뿍폭신폭신달달파르페 하나랑 쿠앤크바삭달콤쉐이크 하나 나왔습니다아..."



음식을 테이블 가운데 놓아 준 서빙이 잰걸음으로 빠르게 사라지자, 태웅이 파르페를 백호의 앞에 놓아줬다.



"먹어."

"안 먹는다니까."

"너 딸기파르페 좋아하잖아."

"눗...그,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백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백호가 태웅의 앞에서 홍조를 띤 건 처음이었다. 태웅이 제 머리만큼이나 붉어진 백호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 백호가 괜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덩치 산만한 남자가 좋아한다니까 웃겨?! 놀리고 싶냐!"

"아니 안 웃겨. 안 놀려. 먹기나 해."

"너어 이걸로 약점 잡았다던가 뭐 그런 생각하는거면-"

"안 한다고. 먹으라고."



태웅의 목소리에 약간 짜증이 서렸다. 정말 놀리려는 의도는 없는 것 같아 백호가 눈치를 보며 숟가락을 들었다. 혼잣말로 중얼중얼 투덜거리던 백호가 한 입 크게 떴다가,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 맛에 눈을 반짝이는 걸 보고서야 태웅도 시선을 내렸다.

그 뒤로 백호가 파르페를 깔끔하게 비울 때까지,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 먹고 나서도 백호는 괜한 쑥스러움에 헛기침만 했고, 태웅도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았다.

카페를 나온 백호가 눈치를 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야. 여우."

"왜."

"...잘 먹었다고."

"......"



태웅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다물더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내가 순순히 감사 인사를 한 게 놀라웠나? 흠, 그치만 이 천재는 고마운건 고맙다고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백호가 괜히 의기양양해져서 태웅의 등을 팡팡 쳤다.



"아, 이거 네가 멋대로 사준거니까 갚으라고 하거나 그러면 안된다?"

"안 그래."

"그럼 잘가."



제 쪽을 쳐다보지도 않는 태웅에게 백호가 멋대로 손을 흔들더니 몸을 돌려 떠났다. 서태웅이랑 몇 시간 보낸 건 아깝지만 맛있는 파르페를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태웅은, 뜨거워진 얼굴을 백호에게 보일까 봐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백호가 떠난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땜에 낯간지러운 주문 하는 서태웅 귀엽겟지..... 정작 백호는 따..따..딸기파르페 하나요...할거같음
태웅백호태웅 탱백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