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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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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웅이는 약속했던 상대가 맞선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야 백호가 맞선상대가 아니었다는걸 알았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몸까지 섞긴 했지만 그냥 단순한 해프닝으로 충분히 넘길 수도 있는 문제였지. 그래도 왜인지 백호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해서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음. 오로지 아는 특징이라고는 빨간머리 뿐이었지.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다가 한참 지나서야 그 호텔에서 브리딩 만남이 이루어진다는걸 알게됨. 업체를 찾아 남자의 인상착의를 말하고 사람을 찾는다고 했지만 개인정보는 유출할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오겠지. 그래서 태웅은 대뜸 브리딩 업체에 가입하고 붉은 머리를 조건으로 만남 주선을 요구함. 하지만 매번 나간 자리에는 머리를 붉게 염색한 사람들만 나올뿐 백호는 나타나지 않았지. 왜냐하면 백호는 첫 시도만에 '축 임신' 이 되어버렸거든.

중종의 번식은 성공률이 낮다는 설명과 적어도 10회까지 매칭을 보장해준다는 조건이 있어서 걱정했던것과 달리 한번에 임신이 되어버린 백호는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 아이방을 공들여 꾸미고 아이가 쓸 물건들을 장만하면서 말이지. 자기를 닮아 호랑이라면 좋겠지만 중간종 고양이인이어도 너무 귀여울것 같다며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음. 하지만 웬 걸. 혼자서 품고 힘겹게 출산한 아이의 혼현은 중종 곰인이었음. 윤기나는 검은 털은 가진 곰인 남자 아이였지. 그 사실을 알고 잠시 혼란스럽긴 했지만 자기가 낳은게 확실한 아이를 혼현으로 마다할 이유는 없었음.

하지만 아이의 뿌리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서 그 날 이후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브리딩 업체로 전화를 걸었지. 분명 상대와 몸을 섞을때도 고양이인 냄새를 맡았기때문에 그 부분은 틀림이 없으니 브리딩 업체에서 뭔가 실수한게 있다는 막연한 의심이 있었음. 근데 업체에서는 당일날 백호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아 계약이 파기되었다는 소리만 하는거임. 백호는 그럼 나는 대체 누구랑 교배를 한거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 

사실을 알고 백호는 한동안 조금 우울해 했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놓고 자기가 잘 양육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음. 하지만 검은 털이라는 뜻과 자신의 이름을 따 현호라고 이름 붙인 아이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어. 아이를 볼때마다 죄책감은 서서히 잊혀지고 떳떳하고 멋진 반류로 키워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을 거야. 


태웅은 끝내 백호를 찾지 못했고 이젠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정도로 시간이 흘렀음. 그 사이 누구도 결혼을 전제로 만나지 않았으니 참다못한 태웅의 조모는 화병으로 쓰러지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며 자손 번창과 가문의 혈통 보전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 병원에 입원한 것 치고 목소리에 힘이 실린 잔소리를 듣고 나온 태웅은 지끈거리를 머리를 붙잡았음. 그 때 발 밑으로 뭐가 툭 하고 부딪히는 느낌에 아래를 보자 댕그랗게 놀란 눈을 하고 태웅을 쳐다보는 어린 아이가 털썩 하고 넘어졌어. 그리고 호야! 뛰면 안된다고 했잖아! 하며 다가와 아이를 번쩍 안아드는 남자를 보고 태웅은 얼른 손을 뻗어야 했지. 

백호는 넘어진 현호를 안아들고 죄송하다고 인사만 하고 돌아서려던 참이었어. 하지만 손목을 덥썩 잡는 거친 손길에 놀라 얼굴을 쳐다보고는 잊고있던 그 날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음. 얼굴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백호는 최대한 모르는척 하려고 노력했어. 혹시라도 남자가 현호를 보고 자기 아이라는 걸 알아챈다면 원치도 않았을 아이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거나 더 심각하게는 아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 하지만 얼른 손목을 뿌리치고 도망치려던 몸짓에 놀란 현호가 울기 시작하면서 모든게 수포로 돌아갔음. 

백호는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태웅은 곁에 서서 백호와 아이를 유심히 지켜봤어. 한바탕 울던 아이의 혼현이 새어나와 검고 앙증맞은 귀가 뿅하고 튀어 나오자 태웅은 직감적으로 곰인걸 알아차렸음. 백호가 놀라 얼른 아이의 머리를 감싸안아 숨기려 하는 걸 보고 의심할 겨를도 없이 확신에 차서 물었지.


내 아이 맞지?


백호는 거짓말이 서툴렀고 입으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불안이 서린 눈동자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음. 태웅은 이미 속으로 계산과 결론을 내곤 그대로 백호를 붙잡아 끌고 좀전까지 시달렸던 병실로 다시 돌아갔지. 이거 놓으라고 외치는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셋의 등장에 놀란 조모의 앞에서 당당하게 얘기했음. 내 아이를 낳은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이지. 그 날 태웅은 생전 처음으로 쌍욕으로 쳐맞는 경험을 당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