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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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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헌이 형 미국 온대."
"어. 다음 주?"


아 젠장. 무심코. 엉성하게 끓인 토마토 치킨 스튜를 먹다 말고 태섭의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우성은 태섭의 맞은편에 앉아 시선을 식탁 위로 내리깐 채 그릇을 쳐다보며 음식을 한가득 입에 떠 넣었다. 태섭이 다시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잘됐다. 나가서 놀다 와."
"너 알고 있었네, 송태섭."


여전히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 우성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태섭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릇에 스테인리스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부엌을 어색하게 채웠다.

우성이 불쑥 침묵을 깼다.


"나 솔직히 그전부터 알았는데. 형이 그런다니까 그냥 놔뒀는데 막상 들으니까 기분 존나 별로다."
"뭐가."


태섭이 딱딱하게 받아쳤다. 우성이 옆에 있던 콜라 페트병 뚜껑을 돌려 땄다.


"태섭아."
"어."
"나 이명헌이랑 결혼할 거야."
"축하해. 근데 안 물어봤어."
"다른 생각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런 적 없어."
"그래?"


우성이 식탁 위에 숟가락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태섭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왜 이명헌이랑 연락해?"


태섭도 식탁 위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우성의 눈초리가 아주 매서웠다. 지고 있을 때 저런 표정인가 싶었다.


"번호는 그 형이 먼저 땄어. 니도 알잖아?"
"그야 그랬지 어쩌다 나 연락 안되면 너한테 연락하려고."
"실제로 그래. 그리고 연락해도 별 얘기 안해."
"근데 니가 어떻게 형이 다음주에 오는지 알아."



태섭의 눈썹이 비틀렸다. 알 수도 있지. 친분 있는 사이에 그런 얘기도 못하나. 정우성 이거 결혼하면 이명헌한테 핸드폰 없애라고 할 놈이네.

아, 하긴 요즘은 조금 연락 빈도수가 잦아지고 있었다. 최근 이명헌이 치렀던 국내리그 친선 경기에 자기처럼 작고 빠른 포가가 있었다는데, 그때 열몇시간의 시차를 이기고 밤새 카톡을 하느라 다음날 코치한테 좀 혼이 났더란다. 태섭 자야되는데 시간 너무 뺏었다삐뇽. 잘 자고 내일 택배 왔는지 봐라삐뇽. 우성 어머님이 김치 보내셨다삐뇽. 태섭은 그 문자를 한참 바라보다 답장을 했다. 네 감사합니다. 조금 망설이다 문장 하나를 더 쳤다. 형도 몇 시간 있다가 좋은 꿈 꾸세요.

얼마 뒤 1이 사라졌고, 그 후로 답장은 없었다.

우성이 식탁 위에 팔꿈치를 얹으며 턱을 괴었다.



"태섭아. 난 니가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미국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니까 좋고. 너랑 계속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
"근데 내가 너한테 뚫려준건 그때 한번 뿐이야."


내 꺼 못 지킨거 그때 한번 뿐이라고.



우성이 그릇과 수저를 들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태섭은 식탁 의자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앉은 채 싱크대로 향하는 우성의 등을 바라보았다.


"정우성. 니가 걱정하는 그런 거 없어."
"..."
"나 믿기 싫으면 니 애인을 믿어."
"형은 당연히 믿지."


우성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태섭은 문득 어떤 사실에 대한 강한 궁금증을 느꼈다. 이런 거 물어보면 정우성 또 예민하게 나오겠지.


"우성아."
"어."
"미안한데 난 진심으로 진짜로 아무 관심 없는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
"혹시 이명헌이랑 그때 일 얘기해?"


우성의 어깨가 움찔했다. 잠시 또 적막이 흘렀다.



"가끔."



우성이 짧게 대답했다. 싱크대 수도에서 떨어지는 물 소리만이 들려왔다.



태섭은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뚫지 못할 압력을 뚫고 이겨냈을 때처럼 오금이 저려오는 짜릿한 쾌감이었다. 그에게서 나를 결코 걷어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 때 이긴 건 내가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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