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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8 23:22
ㅈㅇ




정우성 18살, 이명헌 19살
우성이가 18살, 명헌이가 19살이던 때엔 매일 얼굴 보고 같이 연습하는 게 얘네의 일상일 거야. 특별한 데이트 없이 일상을 보내는 게 무료하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을 거임. 그땐 연애라는 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몰랐을 때였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풋풋하게 만나고 사랑했겠지. 하루종일 붙어 있는 게 데이트임. 눈 뜨고 농구하고 밥 먹고 매점 가고 산책하고 얘기하고.





계속 얼굴 보던 시기엔 이게 좋고 나쁘고 어떻고의 생각이 들지 않았을텐데. 어느 순간 명헌이는 그게 참 즐거웠단 생각을 할 거야. 우성이가 미국 간 이후로는 단 한 순간도 붙어 있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명헌이가 마냥 정우성만을 그리워하고 외로워했던 건 아님. 스무살이 되고 부턴 명헌이도 대학에 갔고 농구 계속 하면서 대학리그에서 뛰고 적응하느라 바빴으니까.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일상엔 서로가 없는 때가 된 거야. 고교 시절엔 하루에 열 다섯 시간쯤을 붙어있다가 이젠 그 시간만큼이나 걸려서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까.





서로 각자의 일상을 영위하느라 저 멀리 있는 애인에게 쏟을 여력같은 건 어쩌다 한 번이겠지. 달에 한 번 정도 하던 통화, 보내던 편지가 점점 텀이 길어졌고 문득 명헌이는 그런 생각을 하겠지. 예전엔 참 즐거웠는데, 지금은 아니네. 그리고 우성에게 말할 거야.





- 우린 더 이상 예전같지 않네.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될 거야. 명헌이도 우성이도 덧붙일 말은 없었어.
명헌이는 고등학생 시절 그렇게 잘 울던 우성이가 생각나서 혹시 얘가 통화 중에 울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거야. 그런데 우성이는 울지 않았고 명헌이는 이렇게 정리되는구나, 생각하고 말았을 거임.





우성이 울지 않고 그대로 명헌의 말을 받아들인 이유는 따로 있었겠지. 이명헌은 짐작도 못했을 이유로.





미국에 막 도착한 열 여덟살의 우성이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느라 바빴어. 언어도,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도,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일도 생각만큼 쉽진 않았거든. 그런 와중에도 우성이는 명헌이 생각을 많이 했어. 가끔은 정말 바빠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고 주말이 되서야 명헌이 생각이 나서 편지를 쓰고 같이 찍었던 사진을 꺼내 봤어. 자신이 떠나온 주제에, 자길 기다려 달라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와중에 고백하고 연인이 된 주제에, 명헌을 잊고 산 자신을 자책하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명헌을 떠올리지 않은 게 어떨 때는 고작 일주일 정도였지만 텀이 길 땐 이주, 한 달이 되기도 했었어. 그럴 때면 사람이 이렇게 바쁠 수도 있구나, 생각했겠지.





그런 우성이었기 때문에 명헌을 이해할 수 있었음. 명헌이 스무살이 되고, 아키타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대학에 들어갈 쯤 우성의 생활은 루틴이 생겨 차츰 여유가 생겼겠지. 반대로 명헌은 새로운 환경에 둘러쌓이며 우성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거야. 하지만 우성은 이해했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명헌은 잠시 바쁜 거 뿐이니까. 고작 19살이었던 우성이었지만 명헌을 이해할 만큼 빨리 성장했고, 그래서 울지 않고 명헌이 고하는 이별을 받아들였어.










그렇게 명헌이는 이별이었고 우성이는 잠시 시간을 가지는 걸로 이해한... 10년 동안의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우성이는 명헌이 결국엔 자신과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 서운하거나 불안하거나 하지도 않았을 듯.










정우성 28살, 이명헌 29살. 재회하다.
명헌이는 국내 리그에서 뛰다가 얼마 전에 은퇴했고, 우성이는 느바가서 행복 농구 하고 있음. 둘이 다시 만난 건 우성이 비시즌에 귀국해서 산왕 농구부 애들끼리 만났을 때겠지. 현철이나 성구나, 낙수, 동오, 현필이까지 모두 간간히 스느스나 편지로 연락은 주고 받았음. 단 한 명, 이명헌만 빼고.






일부러 이명헌한텐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정우성인데, 입국 날짜가 잡히고선 가장 먼저 연락한 게 명헌이임. 이번 휴가에는 꽤 오래 국내에 머물 생각이었고, 이명헌이 은퇴까지 한 마당에 만날 사람이라곤 누가 있겠음? 당연 정우성으로 돌아와야지






당연하게 우성의 머리 속에서 예정되어 있는 재회와는 다르게 명헌이는 아무 생각도 없음. 아 오랜만에 전남친 만나겠군 뿅... 어색하려나 이런 생각만 하고 있음. 헤어진 지 10년쯤 된 마당에 우정으로 얼굴은 한 번 봐야지, 싶은 거임. 헤어질 땐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으로 남으려나 싶었는데 명헌에게 10년은 길었다...! 아련하게 남은 사랑, 성숙한 이별...은 잊혀지고(물론 명헌이 혼자 아.. 이게 어른의 이별? 쿨하게 정리했다..각자 갈길을 뿅...이라며 헤어짐) 10년 사이 정우성보다 정신연령 어려진 명헌임.






그렇게 정우성은 설렘 가득한 재회를 그리며, 이명헌은 아무 생각 없이 옛 애인이자 후배 만나러 갈 생각으로 만나게 됨.






다시 만난 정우성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지. 조금 골격이 커진 것 같고, 아기같던 얼굴은 남아있었지만 몸은 엄청 두꺼워졌으니까. 약간 낯선 모습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길어질수록 여전히 정우성, 이라는 생각을 할 거야.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어제까지 봤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우성과 마주했어.






잘 지냈냐, 뿅.
보고 싶었어요. 명헌이 형.






우성은 여전한 말투, 라며 속으로 작게 웃고 어쩐지 조금 작아지고(아님) 귀여워보이는(이건 맞음) 명헌을 애틋한 눈빛으로 쳐다봤어. 명헌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아 이거 ㅈ됐다 뿅, 이라며 생각했겠지. zipzip해서 그렇게 둘이 만나는 날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됐을 쯤 명헌도 받아들여야 했음. 그 동안 떨어져있던 세월이 무색하게 정우성과 너무 가까운 사이였었고, 정우성과 떨어져 있던 시간은 모두 우성을 다시 만나기 위해 기다렸던 시간이었을 뿐이었단 걸.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만나는 둘임.






근데 이제... 스물 여덟 정우성을 만나면서 10년 전 아가(?) 시절 우성이를 그리워하는 게 보고싶다. 이젠 제대로 된 데이트도 하고, 명헌에게 비싼 선물을 척척 안겨줄 정도의 으른이 된 게 못내 서운한 명헌이임. 예전에는 같이 훈련 끝내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사먹고 산책하다가 다음에는 어떤 어미를 쓸지 고민이다 뿅, 이라는 대화를 하는 풋풋한 연애를 했는데 이젠 좀 다른 거임.






우성은 어렸을 땐 줄곧 명헌에게 사랑받는 쪽이었다면 이젠 명헌에게 뭐든 해주려고 했겠지. 좋은 곳으로 데려가고, 형이 좋아하는 걸 먹이고, 명헌이 좋아하는 잘생긴 우성의 얼굴도 많이 보여줬어. 명헌의 집, 소파에 앉아 명헌을 제 품에 가두면 명헌은 우성의 말랑한 볼 아니면 단단한 복근을 만지면서 ~이명헌의 힐링 타임~을 가짐. 그러다 명헌은 생각함.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뿅. 우성의 우는 얼굴을 닦아주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지. 어쩐지 묘하게 역전된 관계 속에서 명헌은 어딜 가던 자신의 손길이 필요했던 그 시절 정우성이 그리워짐.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하나보다 뿅.
뜬금없이? 무슨 생각했어요.
내 첫사랑 돌려내라, 우성 뿅
형 첫사랑 나 아니에요????!!!!






아련하고 풋풋했던 추억 속의 첫사랑이 10년 만에 딱뚝콱미남으로 돌아와서 그 시절 우성이를 잃어버린 것 같아 조금 속상한 명헌이 보고싶다. 하지만 여전히 정우성을 사랑하는 자신을 줏대없다고 여기는 (!!) 명헌이 보고싶다.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