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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7 00:06
동성혼도 드물지 않은 고대 중국 황실 배경으로 해서
천덕꾸러기 9황자 우성이랑 그의 정혼자이자 책사 명헌이 보고 싶다

우성이 엄마는 하룻밤 승은 입은 궁녀였음
궁녀 중에서도 천한 신분이었던(조선으로 치면 무수리에 가까운) 터라 내노라하는 집안 여식들인 타 후궁들이랑 다르게 뒷배도 없고 황제도 하룻밤의 유흥이었을 뿐 다시 찾아오지 않았음 승은을 입고 아이를 뱄으니 명목상낮은 품계나 하나 받고 작은 처소 하나 배정받은 게 전부인 거
태교건 산후조리건 제대로 할 수 있을리가 없었겠지 간신히 산달 채우고 애 낳고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
아들이니 황후나 품계 높은 후궁에게 자식이 없다면 양아들로 길러질 수라도 있었겠지만 위로 살아있는 황자만 8명.. 맡아봐야 짐덩이지 무슨 이득이 있겠음
그렇게 우성이는 말이 좋아 황자지 기댈 곳 하나 없이 고아처럼 자라게 됨

명헌이는 명망있는 가문 종손이고 신동으로 유명했음 3살에 천자문을 떼고 5살에 시를 짓는 촉망받는 인재였겠지 약관도 안된 나이인데 정치든 학문이든 누군가 조언을 구한다면 몇마디로 명쾌하게 답을 던져줌
젖살도 안빠진 10대 소년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정작 본인은 딱히 큰 포부 없음 낭중지추라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고관대작까지 올라갈게 뻔하긴 한데 권력싸움 진흙탕같은 건 관심 없으니까

그런 이명헌이 어느 여름날 입궐했다가, 혼자 공놀이하던 꼬질꼬질 9황자 우성이랑 마주치게 되는 거

아무래도 이명헌 황실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가문에서 난 천재니까, 어렸을 때부터 뺀질나게 황궁 드나들었을 거 같음 자연스럽게 황자들이랑 동문수학 -결코 비슷한 수준이 아닌데도- 하게 됐고 그날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데굴데굴 공 하나가 굴러오는 거임
주워들어보니 다 헤져 바람빠진, 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장난감이었음 그걸 주워들고 두리번거리는데 웬 거지같은(머리까지 산발이라 진짜 거지같았음) 애 하나가 도도도 뛰어오더니 우물쭈물하면서 말하는 거야 그거 내 공이니까 돌려달라고
궐에 이 정도 어린애가 있었나, 이명헌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 생각해냈겠지
그러고 보니 몇 해전 황자 하나가 태어났지
자세히 살펴보니 옷도 허름하긴 하지만 황족이 입는 옷이고, 이목구비도 우성이 형들 그러니까 명헌이 동문들이랑 엄청 닮아있음

아 내가 보고 싶은건 이게 아니야 아무튼 여차저차 꼬마 우성황자랑 친해지게 되고 몇 가지 사건을 거쳐 형아 껌딱지가 된 우성이와 꼬마애를 지켜주고 싶었을 뿐이던 명헌이가 정혼까지 하게 됨

반발이 엄청났겠지 그도 그럴게 대대로 정승을 배출해낸 명문 중의 명문가 자제가, 황제와 관료들마저 탄복시켰던 어린 천재가, 있는지조차 잊기 일쑤인 9황자의 뒷배가 된 거임

그나마 윗 황자들이 이미 자기들끼리 정치적 경쟁구도 다 잡아놓은 상황에서 이명헌이 나 아닌 다른 놈 밀어주느니 막내 황자비 돼서 정치 간섭 안하는 게 낫겠다 우성이는 황제가 아끼던 자식도 아니고 모후도 없고 워낙 기반이 없으니까 아무리 이명헌이라도 뭘 하기 힘들겠지 그런 계산 끝에 밀어줘서 성사된 약혼이었음

우성이 성년 되면 혼인하기로 하고 다사다난한 몇 해가 지나 둘이서 꽁냥꽁냥 잘 지내나 싶었는데 어느날 반란이 일어남.

황제의 이복형 그러니까 우성이한테는 백부가 일으킨 반란이었음 수도는 산지옥이 됐음 황궁은 불타고 황제는 감금되고 황자들은 살해당했음 수도군을 이끌던 1황자와 3황자는 가장 먼저 칼을 맞았고 2황자는 왕부를 버리고 도망치다가 잡혀 죽었고 4황자는 자객에, 5황자는 독으로... 아직 어린 황자들도 제거되는 건 시간 문제였겠지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발길 닿는 곳마다 피가 흩뿌려지는 난리통에서, 이명헌은 정우성을 목숨걸고 빼돌렸음
급히 마련한 은신처에서 우성이 밤새 끙끙 앓으면서 우는거 끌어안고서 이명헌 태어나 처음으로 모든 걸 쥘 결심을 하겠지 전부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눈도 못뜨는 애 앞에서 맹세함

우성이는 아무것도 몰랐지 그냥 형이 나 살려줬다는 것만 알아 하루종일 읽지도 않는 서책이나 뒤적이면서 형 기다림
형도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서, 올 때마다 얼굴에 쌓여있는 피로로 바깥이 아직 소란스럽구나 하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음
그런데 어느날 이명헌이 말하는 거야 검 휘두르는 법을 익히라고

우성이 어렸을 때부터 무예에 두각을 드러냈지만 형 말고는 그거 아는 사람이 없었음 처음 형을 졸라 대련한 날 형이랑 약속했거든 절대 누구 앞에서도 검 쓸 줄 안다 말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형이 이제는 검을 잡아야 한다는 거임. 그리고 제왕학도. 입 무거운 사람들을 데려와 사제의 연을 맺게 하고 혹독하게 가르침. 이명헌 들릴때마다 어디까지 배웠는지 보고받고, 우성이가 형이 가르쳐주면 안되냐 칭얼대면 부드럽게 안아주면서 나는 따로 할 일이 있다고 달랬음 2년쯤 지났을 때 우성이도 알았겠지 형이 나를 반란군 수장으로 기르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걸 위해 밖에서 준비할 것도 있겠지

아무리 이복동생과 조카들을 몰살한 새 황제라도 수도 모든 관리들의 목을 벨 수는 없었음 수도를 거점으로 하는 지지세력이 필요했을 거고, 명문가 수장격인 명헌이 가문이 가장 들어맞는 후보였음 이씨 가문 가주는 청류파 선비의 명예를 저버렸다 욕을 먹으면서도 대외적으로 새 황제측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함 당연히 이명헌의 뜻에 따른 결정이었음
새 황제는 몹시 기뻐했고 충성에 대한 증명을 원했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견고한 동맹이 뭘까?
이명헌은 새 황태자와 혼인을 맺기로 함

우성이 이거 알게 되고 눈 돌아가서 형 붙잡고 황위고 복수고 필요없다고 나한테는 형이 전부라고 어떻게 내가 원치도 않는 걸 위해 이걸 놓으라는 거냐고 움 말없이 눈물만 닦아주는 명헌이

한참 울고 소리지르다 지쳐 쌕쌕거리는 우성이한테 입 맞춰주면서 천하는 원래 네가 가졌어야 하는거라고 뭐든지 다 네 손에 쥐어줄거라고 속삭이는 이명헌


아 정력 딸려 더 쓸 힘이 없어

원치도 않는 심지어 원래 자기 것도 아니었던 황위 자기 손에 쥐어주겠다고 자기 곁에서 멀어지는 형 보면서 미쳐가는 우성이랑 대충 재야에 묻혀 살라 했는데 약혼자 건드리자마자 정치 싸움 한복판에 뛰어드는 이명헌 보고 싶은 거였는데 보고 싶은건 나오지도 않았네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