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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8 14:19


흔히 스포츠는 기싸움이고 성깔 있어야 잘한다고 하잖음 근데 작중에서 그런 성깔이 가장 잘 느껴지는 게 이명헌이랑 정우성임.

산왕은 막판 보스라 일상이 거의 안 나왔지만 거기서 명헌인 삐뇽, 뿅 거리고 우성인 암바..아파..훌쩍... 거리는데 이건 그냥 그 나이대 평범한 애들 같음. 근데 경기 중 플레이는 전혀 아님ㅋㅋ
다른 애들은 성질 부려도 그래도 고딩이란 느낌인데... 특히 대놓고 험한 플레이로 묘사된 풍전도 오히려 성격이 나쁘다기보다 감성적으로까지 보이는데
얘네 둘은 상대 도발할 때 그런 감성이나 감정이 일절 안 느껴짐.

둘의 도발은 말을 험하게 하거나 목소릴 높이는 게 아니고 진짜 신경 긁는 소리만 쏙쏙 골라서 하는 건데 (체력 부족하냐고 묻고 쏴 보라고 물러서고) 
이게 머릿속에서 말 골라서 도발하는 게 아니라 상대 정보값 바탕으로 툭 내뱉는 말 같고 그래서 더 촌철살인으로 느껴짐. 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걸 니는 못한다는 걸 그냥 숨쉬듯 알려주는... 심지어 그게 허세도 아니란 점이 진짜 악독함(좋은 의미)

보통 상대를 도발하는 이유가 상대를 자극해서 상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데, 얘네 둘은 상대의 마음을 꺾으려고 하는 거 같음ㅋㅋ
근데 그게 자기들 평소 성격은 아니고 결이 다른 스포츠식 성깔이라고 생각됨...
예를 들어 만약 정우성이 자기랑 비슷한 스타일의 서태웅을 코트 밖에서 만났으면 대성해서 자기랑 겨룰 실력이 되길 바랐을 거 같음. 근데 코트 위에선 그럴 수 없음... 싹 밟아둬야 됨. 자기랑 겨루는 상대의 마음이 꺾이는 걸 봐야 됨. 그런 성깔임.

산왕은 최강이고 그게 당연하다, 작중 북산 애들이 끊임없이 느끼던 그 절망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산왕479인데 특히 정우성 이명헌은 상대가 절망할만한 흐름을 만들거나(정우성 수퍼플레이) 흐름을 끊어버리는(이명헌 찬물슛) 점이 진또배기 스포츠 선수 같음... 시합의 흐름을 느끼는 선수는 많지만 그걸 느끼게 하는 선수는 귀한데 얘네 둘이 딱 그런 느낌...

이런 점들 때문에 둘한테 유독 농구기계 같다는 인상을 받음... 경기 중 플레이에 자기들 평소 성격은 죄다 여과해서 농구만 남겨놓은 애들.... 그래서 경기 중의 모습과 경기 밖 모습이 둘은 잘 안 맞물리는 거 같아서ㅋㅋ 그런 점이 재밌음.

비슷한 성깔 보유자인 현철이는 코트 밖이나 안이나 비슷한 모습인데다 코트 위에서 동생 타박하는 것에서 인간미가 확 느껴짐. 게다가 현철인 덕규 보고 치수 아버지라 착각하며 경기와 상관없는 개그도 하고, 백호 보고 감탄하는 독백도 있고 너는 미래가 있다고 감동적인 대사도 한단 말임.
근데 4번 9번은 끔찍할 정도로 농구만 하고 있음. 뭐 개그 비슷한 장면 있다 해도 죄다 농구 관련임... 이노우에가 깔던 고교 농구에 대한 로망이나 청춘이 안 느껴짐. 이미 한 명은 거기에 대놓고 지루해하는 참이고.
낙엽 갖다대면 불 붙을 거 같은 뜨거운 코트 위에서 그들만 얼음장 같음. 청춘 들이밀면 그거에 대한 호오와 별개로 농구랑 상관 있냐는 비정한 반응을 보일 거 같음... 고교농구하는 소년만화에 이 무슨...

얘네 둘은 경기 중에 독백도 거의 없더라. 정우성은 대사가 많아서 굳이 할 필요도 없지만, 이명헌은 작가가 의도한 건지 뭔지 빠르다 높다 정도 말곤 "....." 으로 뭔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인텐션파울 전에 파울할까 말까 고민할 때, 정우성이 손짓으로 뒤로 물러나라 할 때) 묘사하고 안 알려줌. 아직 풋내나는 생각과 감성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고교 농구에 그들 자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양...

쓰다 보니 산왕479 또 생각난 게... 후일담에서 인터하이 패배 여파로 현철인 윈터컵에서 이기려고 한껏 의식하고 있잖음. 근데 정우성 이명헌은 그냥 자기 할 거 하고 있음... 정우성은 미국에 농구하러 가고 이명헌 어미 고민 중. 진 거는 진 거고 나는 내 인생 잘 산다는 점이 진짜ㅋㅋ 코트 위 자아 코트 밖 자아 따로 있는 기계들 같아서 너무 웃기고 좋음ㅋㅋ

(+근데 얘네 평소 모습 너무 웃기지 않음...? 미국 가는 애가 비행기 안에서부터 영어 못해서 취하는 해프닝 일어나고... 이명헌은 셔츠 단추 다 풀어제끼고 삐뇽 거리고 있는 껄렁함이 웃김... 얘네 둘 코트 위에서도 존재감 확실했지만 코트 밖 모습도 예사롭지 않음... 정말 산왕 일상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