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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8 13:59
다정한 청유형으로 끝맺었지만 담긴 의도, 앞둔 미래가 까끌한 혓바닥 밑으로 그대로 느껴졌겠지
어제도 선배의 정액으로 가득 찼던 뒤를 씻어내느라 피곤했던 몸이 한결 무거워져. 단단한 팔뚝이 가슴을 껴안고 치받아 오던 감각이 살아나서 벽에서 띄워뒀던 등을 다시 기댔지. 도톰한 입술을 감쳐물어 한번 적셨어. 애초에 거절이란 선택지는 없었음
코트 위를 압도하는 몸이 열기를 그대로 품고 자기를 끌어안았을 때의 불경하리만치 짜릿한 감각은 열일곱 평생 겪어보지 못한 중독적인 배신의 맛이었음. 명헌이는 말수가 적지. 명헌이는 그래도 사고 안 치고 얌전한 편이지. 속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순한 느낌이야. 자신을 두고 쌓아올려진 수많은 흐린 문장들, 덜 여문 몸을 둘러싸고 틀어막아버린. 그리고 그 바래고 지겨운 문장들을 깨부수고 침범해오는, 한 학년 위 선배의 몸. 코트 위에서든 침대 위에서든 거침없이 파고들고 요구하고 어루만지고 짓밟는 손.

명헌이 고개를 끄덕였음. 동시에 커다란 손이 등 뒤로 가 반바지 밴드 위 척추선을 따라 목까지 길게 쓰다듬었지. 그리고 턱끝을 깨무는 치아. 희고 단단해 꼭 선배의 몸을 닮은.

기다릴게.

야릇한 행위를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한 점 수치도 외설도 없는 해사한 웃음. 선배는 꼭 금잔화처럼 웃는군요. 명헌은 우성이의 손끝이 스치고 간 척추 언저리를 제 손으로 다시 더듬으며 고향집 마당의 꽃을 떠올렸음. 그 꽃을 좋아해요. 전하지는 못할 말은 혓바닥 아래에 숨겼음. 우성은 세 달 뒤에 아주 멀리 비행기를 타고 떠날 테니까, 어쩌면 아키타의 고등학교에서 만나 한철 몸을 섞은 어린애는 펼쳐질 그의 인생에서 티끌만도 못할 테니까. 그건 나의 인생에서 그가 잊히지 않을 것처럼 분명한 사실이고 말았으니까.
비극의 막이 닫히는 것처럼 부실의 문이 닫히고, 명헌은 가만히 웃었음. 선배 앞에선 웃지 않아. 욕심내지 않는 것이 내가 배운 코트 위의 방법이고 결론이야. 그걸로 되었어. 금잔화는 한해살이꽃인 걸 알아요? 우리도 한 해 피고 지는 것으로 해요.




우성명헌 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