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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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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ㅈㅈㅇ 
오타, 비문 ㅈㅇ

 

 

 

 


 

 

 

고등학생 때부터 둘 만 아는 연애를 했다가 대학생이 되어 무난하게 연애를 하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걸로 싸우다 헤어진 둘이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보고싶다

 

 

 

둘 만 아는 연애였던 이유는 딱히 아무도 안 물어봤기 때문에. 어느 날 부터 달고 다니는 녹색/보라색의 핸드폰 고리라던가 누군가의 뒷모습으로 지정된 핸드폰 배경화면이라던가, 새로산 농구화가 왠일로 평소의 것이 아닌 다른 브랜드의 것이라던가. 핸드폰 메세지를 확인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같이 놀다가도 전화가 오면 슬쩍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돌아 오는 것. 연애의 증거는 도처에 널려 있었어. 그래서 다들 아 주장 연애하는 구나 하고 다 알았지 게다가 핸드폰 보면서 슬쩍슬쩍 웃는 모습이나 그래서 형 예뻐요??(수겸: 섹시하지) 애인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정환: 어디서도 당당한게 매력이지) 하고 물어보면 빼지도 않고 다 대답해주면서 애인자랑 하는 정환이랑 수겸이어서 오히려 멈추지 않는 자랑질에 물어본 사람이 기겁하면서 사라졌겠지 그래서 정작 제일 중요한 건 아무도 못/안 물어봤음 

 

그래서 애인이 누구에요?

 

물어봤으면 대답해줬을 텐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 졸지에 비밀연애 하고 있는 둘이었음 코트 위에서야 적이지만 밖에서까지 굳이 싸울 이유는 없으니까. 아직 그만한 적대감이 쌓이지 않았을 1학년 때, 우연히 동네에서 만난게 시작이었어. 알고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거든 그래서 그렇게 한 두번씩 지나가다 인사하고 어느 날은 인사도 하고 커피도 한잔 하고 또 어느 날은 그러다 스포츠 용품점에도 같이 갔다가 또 다른 날은 밥도 먹고. 인사만 하던 사이가 우연히 만나 노는 사이가 되었다가 이제는 약속 하고 만나 노는 사이가 되었지 낮에만 만나던 사이가 이제 저녁 먹고 심심하다는 이유로 불러낼만한 사이가 되었을 때 집 근처 공원 벤치에서 나눈 첫키스가 연애의 시작이었어 그 이후로 김수겸과 이정환의 핸드폰 단축 번호 1번은 바뀐 적이 없었어. 학기 초 비상연락망에 적어낸 친한 친구 번호 중에 하나도 항상 서로의 것을 적어 냈지.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들에게 관심이 없다니까 아님 세상의 편견이 지켜준 건지. 둘이 붙어 다녀도 남들의 반응은 일관됐어 1. 너네 맨날 싸우더니 생각보다 친한가 보다? 2. 오 너네 같이 있네 잘됐네 농구하실? 물론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놈들은 김수겸이 걸치고 있는 셔츠가 몸에 안 맞게 조금 크다던가 이정환한테서 김수겸이 즐겨쓰는 향이 난다던가 하는 걸 눈치 챘겠지만 아 친구사이에 뭐 쟤네 집에서 잤나보지 하고 넘겨서 오늘도 들통 안남

남들한테 야 김수겸 이정환 사귄대 그러면 대게는 일주일 안에 김수겸이 이정환 머리채 잡고 둘이 깨진다에 내 급식 돈까스를 건다 아니 애초에 이 루머를 누가 믿어 뭐냐 시합전 트래쉬 톡? 멘탈 흔들기 그런거냐 그랬겠지만 둘은 의외로 안정된 연애를 이어갔어 김수겸이 와다다하면 이정환이 허허허 하는 식으로 상양 어그로와 해남 병맘이라 의외의 황금밸런스였음 싸워도 금방 화해하고 남들이 보면 의외네 싶을 정도로 편안한 연애를 했었지

 

대학 진학 후에도 둘은 진득하게 연애를 이어갔어 물론 순탄치는 않았지 일단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일이었고 고등학교에 비해 확연히 넓어진 인간관계로 많이 싸웠지. 어딜가나 빠지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들이라 매번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미팅 자리에 들러붙는 동기 선후배들, 길가다 번호 따이는 건 예사였지. 만나라 만나지 마라 답장하지 마라 거길 니가 왜 가냐 하는 걸로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지만 괜찮았지 질투도 애정이 기반이 되어야 나온느 거니까. 아직 싸우고 돌아서서는 쟤가 싫은 이유보다는 좋아하는 이유가 더 많았으니까

 

그래서 둘이 헤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가장 실감하지 못한 것은 당사자들이었어. 시간이 흘러 수겸이가 의대 본과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정환이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 즈음이었어. 둘 모두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서 스트레스가 폭발 직전까지 쌓여 마음에 여유도 뭣도 없었지. 그래서 싸운 이유는 정말 별거 아니었을 거야 기억도 안 나는 걸 보면. 홧김에 누구 입에서 나온지도 모르는 헤어지자는 말에 둘은 당황과 함께 찾아온 적막 속에서 지친 마음으로 슬며시 동의했어, 여기가 멈출 타이밍이라고. 무엇이든 한 번 정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해치우는 사람들이라 이별 또한 일사천리였지. 서로의 짐을 정리하고 따로 집을 구하고. 한바탕 정신 없는 나날들이 지나 겨우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기니까 차차 정신이 돌아왔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러 버린 건지 이제서야 맨 정신으로 생각 할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돌이키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지. 혼자 살게 된 새로운 집 침대에 앉아 멍청하게 잃어버리고 만 것에, 그 곳에 두고 온 것에 대해 생각했어. 이정환도 김수겸도 삶에 후회해 본 적 없는 인간들이라 후회하는 방법을 몰랐지, 마음을 달래는 법도 찌질하게 매달려보는 법도. 그래서 미련과 후회는 마음 속 어딘가에 처박아 모르는 척 하고 일에만 몰두 했어. 둘의 연애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저기, 좀 전에 김수겸 환자 연락 받고 왔습니다만"
 

아, 이쪽으로 오세요. 급하게 뛰어왔는지 늘 단정하게 정리하고 다니는 머리와 옷 매무새는 이리 저리 흐트러져 있었고 숨소리가 조금 거칠었어. 그도 그럴게 몇 년만에 처음으로 몇 년만에 수겸이에게서 온 연락은 본인에게서가 아니라 응급실 간호사로부터였거든. 쓰러졌대, 과로로. 집에 가는 길이었는지 버스 정류장에서 쓰러졌고 집에서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이동되었나봐. 간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정환은 겨우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어. 다행인지 뭔지, 살이 내리고 날카로워진 얼굴 선을 보면서 한 숨을 푹 쉬었지. 안 그렇게 생겨서는 녀석은 스스로에게 조금 소홀한 경향이 있었어. 그러니 아마도 한계치 넘어서까지 버티다가 남들 안 보는 곳에서 또 쓰러진 거 겠지. 크게 다친 곳은 없으니 링겔만 맞고 퇴원해도 된다고 했으니 큰 일이 아니라 다시 회사로 돌아가도 되지만, 이미 반차까지 쓰고 나온 터라 정환은 간만에 합법적 땡땡이를 좀 쳐 보기로 했어. 느슨하게 자세를 풀고 앉아 옛날 생각을 좀 했지. 여기는 예전, 같이 살던 집 근처의 병원이었는데 은근히 잔병치레를 하는 수겸이 때문에 자주 왔었지. 그리고 그 때마다 보호자 연락처에는 당연하게도 정환이의 이름이 적혔었어, 반대로 이정환의 보호자는 김수겸이었지. 보호자라고 불릴 때마다 은근히 마음에 들어 속으로 좋아했었는데. 내가 책임지고 보호할 사람, 지켜줄 사람 이라는 걸 확인 받는 느낌이었거든. 그 때 남겨 놓은 개인정보를 통해서 정환이게 연락이 왔어. 이별 후에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만 같았는데 여기에는 아직 서로의 보호자인 김수겸과 이정환이 남아있었지. 한 동안 잊고 살았던 애틋함에 녀석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지. 

수겸이 눈을 떴을 때에는 한 참 시간이 지난 저녘께였어. 마지막 기억은, 며칠간 전전하던 수술방에서 드디어 벗어나 퇴근하던 길이었는데 버스에 탄 이후로 기억이 없어. 그래도 덕분에 푹 자서 그런지 몸이 가벼웠어 여전히 조금 피로한 감은 남아있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지. 체력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근래에는 조금 힘에 부쳤어. 워낙 일이 빡세야지.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는데 순간 익숙한 느낌에 고갤 들어 보니, 전혀 예상 못 한 인물이 침대 옆 간이 의자에 몸을 구기고 앉아 자고 있었어. 아침에는 말끔하게 올라가 있었을 갈색 머리는 흐트러져 이마를 가볍게 덮고 있었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지 몸에 핏된 정장은 끝내주게 잘 어울렸지. 여전히 그 얼굴은 짜증나도록 김수겸의 취향이었고. 그리고, 그리고 왼 손 약지에는 조금 닳은 태가 나는 반지가 있었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던 수겸은 정환이 깨어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지. 불편했는지 끄응 소리를 내며 깨어난 정환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건 침대에 앉아 저를 보는 수겸이었어. 옛날 생각을 하다 잠이 들어서 그랬는지 작게 웃으며 인사했어 안녕. 옛날, 같이 잠들고 깨어나던 그 때에는 매일 그렇게 아침 인사를 했거든. 그러면 서둘러 일어나야 하는 와중에도 수겸이랑 엉겨붙고는 했ㅡ 는데 가 아니라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는 저를 노려보는 김수겸에 빠르게 잠이 확 깼지. 녀석은 이미 상황파악을 마친 것 같았어. 뭐라 말 할 듯이 입술만 달싹이다가는 그대로 일어나 나갔지. 정환도 서둘러 옷매무새를 좀 정리하고 따라 나가며 간호사에게 들었던 설명을 그대로 전해주었지. 애석하게도 응급실 복도는 그리 길지 않아 둘은 금새 병원 밖으로 나왔고, 이미 수납까지 해버린 정환에게 수겸은 영수증과 계좌 번호를 불러 달라고 그랬어. 오늘 일은 어쨌든 고마웠고, 그 보호자 연락처는 바꿔 놓을 테니 이런 일 두 번은 없게 하겠다 했지.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을 피한 채로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와다다 쏟아 내는 수겸을 보며 정환은 아까 잠들기 전 정리한 생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어. 그리곤 그대로 택시를 타고 가려는 수겸을 붙잡았어.
 

"됐으니까, 그냥 나중에 밥이나 한 번 사 줘"
 

여기, 내 명함. 이미 택시에 들어 앉아 문을 닫으려는 녀석에게 급하게 명함을 주며 연락하라 일렀지. 하지만 정환의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핸드폰에 다시 수겸의 번호가 찍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행운의 여신은 이정환의 편이었어.

 

 

 

 




 



 

딩동ㅡ






 

"안녕하세요, 이번에 이사 온 옆집인데 떡... 드..리...려고...."





 

봐봐, 도망 간 김수겸을 이렇게 떡하니 문 앞에 가져다 줬잖아.

 

 

 

 

 

 

 

 

 









 

정환수겸

 

사실 정환이형 손에 그 반지 옛날에 수겸이랑 꼈던 커플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