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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4 20:52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이명헌은 제 허리춤을 더듬고 있던 정우성의 손을 재빨리 쳐냈다. 중간층에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기획팀 대리는 다행히 이상한 기류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양쪽에 대고 꾸벅 인사를 두 번 하더니 뻘쭘한 낯으로 올라탔다. 아무래도 상사 둘과 같이 타는 게 불편한 기색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리 뒤로 아직 앳된 얼굴의 사원 하나가 따라 탔다. 정우성을 보고 퍼뜩 놀라 인사를 하더니, 곧 옆에 서 있는 이명헌을 발견했다. “아.” 잠깐 멈칫한 그가 “안녕하세요.” 뒤늦게 이명헌에게 인사했다.

“네.”

이명헌이 자리를 비껴 공간을 내어주면서 대답했다. 평균 신장을 훨씬 웃도는 키의 사원이 “감사합니다.” 속닥거리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이명헌의 옆에 섰다. “큼.” 그가 헛기침을 하더니 옷깃을 두어 번 팔랑거렸다.

잠깐의 정적 끝에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회의실이 있는 5층에 멈춰 섰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리가 먼저 인사했고,

“가보겠습니다.”

사원이 따라 인사하면서 내렸다. 그가 힐끔거리면서 이명헌을 돌아봤지만 이명헌은 상단에 붙은 전광판을 쳐다보면서 건성으로 “네.” 하고 고개만 까닥거렸다.

닫힘 버튼을 누르는 이명헌의 뒤로 정우성이 몸을 밭이 붙여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무거운 존재감에 이명헌은 오른쪽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쟤랑 잤어요?”
“......”
“쟤랑 잤냐고.”

정우성의 단단한 팔이 이명헌의 어깨 위쪽의 벽을 짚었다. 힘줄이 불거진 손등으로 꽉 주먹을 움켜쥐면서 정우성이 한 발짝 더 몸을 붙였다. 엉덩이께 위로 묵직한 사타구니가 닿는 것에 이명헌이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당기면서 거리를 벌렸다.

“씨씨티비 있어.”
“아니라곤 안하네?”

정우성이 우스울 정도로 간단하게 이명헌의 허리를 감아 당기더니 수트 허리춤에 제 성기를 두어 번 문질렀다. 얇은 옷감 위로 뭉근하게 찔러오는 감각에 이명헌이 질색을 하기도 전에 정우성이 먼저 팔을 풀었다. 

땡!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주차층에 도착했다.

“언제?”

이명헌은 대꾸도 않고 제 세단이 주차된 위치를 향해 걸었다. 똑같은 보폭으로 걸으면서 정우성이 재차 물었다.

“나 출장 갔을 때에요? 그건, 씨발. 이틀이잖아. 형은 이틀도 못 참아요?”

운전석 손잡이를 쥐려던 이명헌의 팔뚝을 정우성이 아프게 돌려세웠다.

“대답하라고!”

이명헌은 불꽃이 튈 것 같은 정우성의 눈을 가만히 쳐다봤다. 숨을 씨근거리느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잘 단련된 어깨를 잠깐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쉰 그가 정우성의 손을 붙잡았다. 정우성은 손을 떼는 대신 더 아프게 쥐어 잡았다.

“언제냐고 묻잖아요.”
“지난주 니 결혼기념일에 잤어.”
“......”
“너 결혼기념일에 니 와이프랑 호텔에서 밥 먹고 씹질할 때 나도 쟤랑 잤다고.”

“놔. 아프다.” 이명헌이 그렇게 말하면서 놔주길 기다리는 대신 단호한 손길로 정우성의 손을 떨쳐냈다. 

정우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씨발, 그게 지금-”

흥분한 목소리 사이로 휴대폰 벨소리가 끼어들었다. 정우성의 가슴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명헌이 운전석 손잡이를 당겨 열면서 힐끔 턱짓했다.

“받아. 니 와이프 벨소리잖아.”

*

이명헌과 정우성은 사수와 부사수 관계였다. 1년 차의 고만고만한 경력이었지만 제일 무서운 관계였다. 최동오가 이번에 니 밑으로 들어가는 신입이 제 대학 후배라면서 “좀 골 때려. 그래도 밉진 않을 거다.”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사흘 만에 알았다.

위계질서가 유난히 엄격한 사내 분위기 탓인지 다른 부사수들은 제 사수가 어려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던데 정우성은 첫날부터 싹싹한 얼굴로 선배님, 선배님, 하고 이명헌을 잘 따랐다. 아부나 떨 줄 알고 일을 못했으면 진즉 칼같이 잘라 냈을 텐데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 만큼 일머리도 있었다. 

정우성과 고작 1년 차. 후배를 받아본 게 처음이라 이명헌도 애교 있고, 일 잘하고, 졸졸 거리면서 제 뒤를 쫓아다니는 신입한테 면역이 없었다. 어느 순간 “선배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를 떠올리면 비식 웃음이 났다. 이명헌은 자연스럽게 정우성을 좋아하게 됐다.

정우성은 입사 때부터 눈에 띄었다. “야, 넌 배우를 하지 그랬냐.” 과장이 회식자리에서 술만 취하면 그 소리를 할 만큼 잘생긴 낯짝도 그랬지만 일하는 센스도 있었다. 게다가 나이에 비해 앳돼 보이는 얼굴과 달리 승부욕도 남달라서 뭘 해도 최고가 아니면 안 됐다. 목표를 주면 밤을 새서라도 완성시키는 놈이니 위에서 볼 때 눈에 띄는 게 당연했다.

이명헌이 입사 4년차 대리를 달고, 그보다 1년 모자란 정우성이 주임이었을 때. <미국지사 연수단> 명단에 정우성의 이름이 올랐다. 기획조정실 주관의 연수단은 이름만 연수단이지 사실상 될 성 부른 인재들을 선별하는 거였다. 로열패밀리 직속의 기조실에서 특별 관리하는 소수의 정예들.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평사원으로는 어림도 없을 자리까지 가는 게 꿈만은 아닌 일이라 정우성이 그 한 달짜리 연수단 명단에 뽑혔을 때 꽤 뒷말이 돌았다. 

“걔 얼마 전에 부사장 딸래미랑 선 봤다며. 이번에 부사장 라인타고 뽑힌 거라던데. 이대리는 뭐 들은 거 없어?”  

이명헌은 대놓고 옆구리를 찌르는 소리에도 “아뇨. 들은 거 없는데요.” 했다. 

“형, 나 진짜 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니에요. 부장님이 안 나가면 목 졸라 죽일 거 같아서 가는 거지. 주말에 형이랑 놀지도 못하고.”

그 즈음의 이명헌과 정우성은 애매한 관계였다. 손 한 번 잡아 본 적 없지만, 원치 않는 선자리에 나가게 된 것을 제일 먼저 변명하는. 선후배라기엔 가깝고 연인이라기엔 아직 시작한 게 없는 관계였다.

이명헌은 전화에 대고 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정우성을 달랬다. “어떻게 안 나가. 한 번 나가기는 해야지.” 그 주말이 지나고 이명헌은 굳이 어땠느냐고 묻지 않았다. 정우성도 딱히 언급하지 않아 그냥 지나간 일이었다. 

사내 인트라넷 공지란에 연수단 명단이 공개되고 이틀 뒤 이명헌은 정우성과 저녁을 같이 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두세 번 같이 저녁을 먹었고 그 날도 시간이 맞는 날이었다. 정우성은 연수단에 뽑힌 것에 잔뜩 흥분해 있었다. “미국에서 뭐 사다줄까요?” 소풍가기 전날의 어린애 같은 얼굴로 묻는 말에 이명헌은 맥주를 마시면서 “됐어.” 대답했다.

여름 직전의 늦봄, 연수단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전화할 테니까 받아요!” 이명헌은 한달 내내 머리 맡에 핸드폰을 두고 잤다. 촘촘한 일정 탓인지 정우성에게서 전화가 오는 일은 없었다. 마침 새 프로젝트가 떨어져서 바쁜 시기였다. 이명헌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 형!” 하고 부르는 정우성이 없는 쓸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

꼬박 한 달이 지나 정우성이 귀국했다. 인천공항에 오전 도착이라 연수단이 회사에 온 건 오후가 다 되어서였다. “오늘 정주임 오겠네.” 점심시간에 별 뜻 없이 던지는 차장의 말에 “네.” 하고 대답하는 이명헌의 목소리가 조금 들떴다. 

정우성은 오후 두시 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이명헌은 타자를 치던 것을 멈추고 모니터 위로 정우성을 쳐다봤다. 출장을 다녀올 때면 으레 그랬듯이 이명헌에게 눈썹을 한 번 들썩이면서 눈인사를 하곤 부장에게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다녀왔습니다.”

정우성이 곧장 부장에게 가 인사했다.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까지 정우성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고생했다는 인사를 한참 받고 제 자리로 돌아가면서 정우성이 이명헌을 돌아봤다. 눈썹을 한 번 들썩이는 인사에 이명헌 역시 고개를 까닥했다.

*

쾅, 쾅, 쾅!!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이명헌은 문을 부술 것처럼 두드리는 소리에 긴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쾅, 쾅, 쾅!!

침대에서 일어나 현관까지 가는 잠깐 사이에도 재차 문을 두들겨댔다. 이명헌이 한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면서 떨어져 나갈 것처럼 흔들리는 문을 열었다.

“내가 너 한 번만 더 밤에 찾아오면-”

꾸중하는 목소리가 정우성의 입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이명헌은 짐승처럼 달려드는 정우성에게 안간힘을 써서 반항했다. 마구잡이로 때리고 버둥거리는 손 끝에 정우성의 뺨이 찢기는 감각이 느껴졌다. 고작 그 정도 상처에도, 멈칫하고 손을 무르는 이명헌을 정우성은 놓치지 않았다. 피나는 뺨을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그가 한 손으로 이명헌의 손을 억세게 움켜 쥐었다. 취기에 벌겋게 달아오른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놔."
"형."
"놔!"

다시금 입을 맞춰 오려는 것을 고개를 빗겨 피했다. 입술 대신 헐렁한 파자마 위로 드러난 목줄기에 입을 비비면서 정우성이 자꾸만 “형.”, “명헌이형.” 하고 불렀다. 이명헌은 대답 대신 붙잡힌 손을 뒤챘다. 손아귀에 힘을 주어 당기면서 정우성이 채근했다.
 
"형. 대답해요."

이명헌이 다시 한 번 손을 잡아 빼려 애를 줬다. 정우성의 날렵한 뺨이 불거졌다. 화가 날 때마다 이를 악 무는 습관 탓이었다. 제 손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는 이명헌을 내려다보는 정우성의 눈에 분노가 번뜩였다. 그가 곧장 손을 뻗었다.
 
"하지마!"
 
허리춤에 손이 닿았을 때, 이명헌은 거의 울 것처럼 소리쳤다. 발길질을 하고, 몸을 뒤흔들자 정우성이 이명헌의 몸을 벽에 처박았다. “억!” 고통에 머뭇거리는 사이 그가 이명헌의 파자마 끈을 끌렀다. 속옷과 함께 바지가 벗겨진 건 한 순간이었다.
 
"하지마, 하지마, 이 개새끼야! 하지마!"
 
정우성이 아래만 벗긴 채로 이명헌을 돌려 세웠다. 벽에 얼굴이 짓눌리도록 등을 누르면서 그가 이명헌의 엉덩이에 허리춤을 비볐다. 발가벗은 살갗 위로 단단한 흥분이 느껴졌다. 머리 끝부터 수치심이 찬물처럼 끼얹어졌다.
 
"정우성!"
 
정우성이 픽, 웃는 소리가 목으로 느껴졌다. 어느 틈에 벗은 성기가 엉덩이 사이를 문질렀다. 날뛰는 몸을 붙잡고 굳이 여유를 부리는 건 굴욕감을 주려는 짓이었다.
 
정우성이 길쭉한 성기를 엉덩이 사이에 끼워 위 아래로 문질렀다. 이명헌이 버둥거리느라 비껴갈 때마다 계속해서 반복했다. 점점 단단해져 가는 살덩이를 이명헌은 그 손아귀에 틀어 잡힌 살갗으로 고스란히 느꼈다.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이명헌을 붙잡고, 그는 꼭 계집애 가슴을 희롱이라도 하듯이 성기를 비볐다.
 
힘이 들어간 성기 끝이 구멍에 닿았다. 그대로 들어오는 대신 그가 두드리듯 허릿짓을 했다. 삽입에 익숙한 구멍이 벌름거렸다. 젖은 소리가 나도록 아래가 헐떡거리는 게 엉망으로 소리를 지르는 이명헌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잡아 위쪽으로 당겨 벌렸다. 정우성의 시선이 형태라도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형은 여기가 더 솔직하지."
 
고개를 돌려 노려보자 정우성이 웃으면서 성기를 좀 더 힘주어 눌렀다. 구멍이 저절로 성기 끝을 빨았다.
 
"5년이에요. 형 기분 틀어질 때마다 성질 부리는 거. 언제까지 그럴 건데?"
"싫으면 다른 새끼 찾아 가."
 
정우성이 소리 내서 웃었다.
 
"형은 몰라. 돈 주고 파는 구멍도 형처럼은 안 조여요."
“흐읏!!”

그리고 그가 짓쳐들어왔다. 성기가 밀려드는 게 빠듯하게 느껴졌다. 벌벌 떨리는 몸과 달리 아래는 옴찔거리면서 성기를 물었다.
 
"흑!"
 
퍽, 소리가 나도록 처박으면서 정우성이 귀를 물었다. 도리질을 쳐도 뜨거운 입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이명헌."
 
그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면서 이명헌은 그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고개만 저었다.
 
“이명헌... 읏, 이명헌!”

성기를 끝까지 박아 넣으면서도 정우성은 성에 차지 않는 사람처럼 자꾸만 허리춤을 추켜 올렸다. 공기조차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만큼 온전히 이명헌의 등을 끌어안으면서 정우성이 어린애처럼 이마를 비볐다.

“왜. 왜 그때 말했어요. 왜 나 결혼할 때까지 말 안했어.”

정우성이 원망스러운 듯 속삭였다.
 
어딘가가 터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 머리를 내리친 것처럼 뜨거운 분노가 쩡하고 이명헌의 머리를 울렸다. 이명헌은 눈물이 날 것 같은 눈을 꾹 감았다.

개새끼야. 너 내가 좋아하는 거 알았잖아.

*

연수를 다녀온 뒤로 정우성은 바빠졌다. 정우성뿐 아니라 연수단 전체가 그랬다. TF팀이다, 파견이다, 연수단을 중심으로 꾸려진 프로젝트들이 많았다. 

이명헌 역시 덩달아 바빠졌다. 팀에서 정우성이 맡고 있는 역할이 꽤 되던 터라, 그가 연수단 일로 차출이 되자 출혈이 컸다. 

자연스럽게 이명헌과 정우성이 만나는 횟수도 줄었다. 같이 저녁을 한 지도 두 달이 넘어갔다. 이명헌이 정우성과 저녁을 먹게 된 건 여름이 끝나고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단 둘은 아니었고, 사무실 전체가 같이하는 자리였다.

정우성의 청첩장 모임이었다.

“새끼. 그럴 줄 알았다.” 

진즉부터 정우성이 부사장 딸과 뭐가 있다는 둥, 떠들어 대기 좋아하던 옆팀 대리가 뒤에서 비아냥거렸다. 그래놓고는 멀찍이서 부장과 같이 걸어오는 정우성을 보자마자 “정주임!” 하고 한 달음에 뛰어갔다. 팀원들과 미리 식당에 와 있던 이명헌은 불판을 살피는 척 시선을 피했다. 이명헌의 이마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시선이 느껴졌다.

회식 자리는 떠들썩했다. 다들 티내기 싫어하면서도 곧 부사장 사위가 되는 정우성의 눈치를 보느라 평소보다 과장되게 시끄러웠다. 이명헌은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다가 담배를 핑계로 빠져 나왔다. 한 대만 태우고 이대로 빠져야지, 생각하면서 한 모금 빠는데 옆에 와 서는 길쭉한 인영이 느껴졌다. 

이명헌은 담배를 한 번 더 빠는 척, 잠깐 시간을 끌었다가 정우성을 돌아봤다. 흐트러지는 연기 사이로 불콰하게 취한 낯의 정우성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
“축하한다.”

이명헌이 담배를 왼손으로 갈아 끼우면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정우성이 손을 마주 잡으면서 물었다.

“괜찮죠?”

아.

이명헌은 목소리를 잃은 사람처럼 벙긋거리다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잘 안됐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얼굴이 너무 엉망이라 마주보고 웃는 대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추었다.

<신랑 정우성> 

그 글씨보다 괜찮냐는 물음이 더 비참했다. 정우성은 알고 있었다. 이명헌이 저를 좋아하는 걸.

*

정우성은 그해 가을에 결혼했다. 계열사 호텔에서 치룬 결혼식이었는데 태어나서 가본 결혼식 중에 꽃이 그렇게 많은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직원 둘이서 저 꽃장식이 얼마네, 식대가 얼마네, 하는 소리를 듣는데 너무 억소리 나는 액수라 별 세계가 따로 없었다. 

일찍 도착한 탓에 최동오를 기다리던 이명헌은 <나 조금 늦을 거 같애> 하는 문자에 의자에 벗어두었던 재킷을 걸치면서 일어섰다. 아직 가을 옷을 꺼내지 않아서, 조금 얇은 감의 옷깃을 툭툭 털어 정리하면서 입구에 서 있는 신랑 혼주들 쪽으로 걸어갔다.

“우성이 잠깐 화장실에 갔어요.”

정우성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이명헌에게 아들과 꼭 닮은 얼굴을 한 그의 아버지가 일러주었다. 이명헌은 꾸벅 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텅 빈 화장실에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 정우성 뿐이었다.

“형!”

거울로 들어오는 사람을 힐끗 확인하던 정우성이 이명헌을 발견하자 환하게 웃는 낯을 했다. 이명헌은 역시 따라 웃었다.

“축하해.”
“고마워요. 혼자 왔어요?”
“아니. 동오랑. 동오 좀 늦는대서 너 먼저 보려고.”

정우성이 좀 들뜨고 약간 긴장한 얼굴로 페이퍼 타월에 손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성아.”

그냥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맹세코 어젯밤까지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명헌은 휘황찬란하게 반짝거리는 정우성의 결혼반지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들어 올려 그의 두 눈을 마주보았다.

“나 너 좋아했어.”

오랜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잘 살아. 진심이야.”

이명헌은 조용히 웃었다. 정우성은 따라 웃지 않았다. 괜찮았다. 이건 이명헌의 이별이었다. 이명헌 혼자만의.

이명헌은 정우성의 결혼식을 끝까지 봤다. 키가 큰 탓에 최동오와 같이 불려나가 버진로드 끝에서 꽃잎을 뿌려주는 역할도 했다. 정우성은 긴장한 탓인지, 화장실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딱딱한 얼굴로 식을 치렀다. “쟤 왜 저렇게 굳었어?” 최동오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그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혼여행은 발리로 보름을 떠난다고 했다. 1박에 300만원이 넘는 무슨 명품 브랜드의 호텔이라고, 아까 꽃값을 알려주었던 여직원 둘이 이번에도 알려주었다. 이명헌은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2부 피로연의 마지막 순서로 신부와 나란히 서서 인사하는 정우성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는 안 났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정우성은 기획조정실로 인사발령이 예정되어 있었다. 팀 내에서는 비공식적으로 후임도 물색해놓은 상태였다. 

“갈까?”
“어.”

최동오의 말에 이명헌이 몸을 일으켰다. 얼핏 무대에 선 정우성과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지만 모를 일이었다.

정우성은 보름 뒤 돌아왔다. 회사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새벽 두 시. 이명헌의 오피스텔 문을 부술 것처럼 두드리는 그는 취해 있었다.

“정우성?”
“왜. 왜 그랬어요.”
“뭐?”
“왜 나한테 좋아한다고 했어요?”

술냄새 나는 입술을 거절했어야 했는데. 이명헌은 밀어내는 대신 그 등을 힘껏 끌어 안았다.   

*

“왜 그때 말했어요? 왜. 나한테 왜 그랬어?”
 
힘이 빠지는 몸을 추켜 올려 박아대면서 정우성이 으르렁거렸다. 이미 다리 사이는 줄줄 젖어서 무릎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좀 성가셨는지, 정우성이 한 팔로 허리를 감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퍽, 퍽, 처박힐 때마다 몸이 덜컹거렸다. 그렇게 박아넣는 걸로도 성이 안 찼는지 정우성이 짓쳐 들어올 때마다 이명헌의 허리를 들어 올려 아래로 처박았다. 성기가 거의 한계까지 들어왔다. 예민한 곳이 가차 없이 문질러져서, 자꾸만 비명이 터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안이 때려 박힐 때마다 죽을 것처럼 아픈 데도 이명헌은 앞을 적셨다.
 
"흐으읏!"
 
형편없이 젖어서 체모가 엉겨 붙은 성기 끝을 정우성이 문질렀다. 손을 떨어내려 발작처럼 뒤채자 손가락 끝에 더 힘을 줬다. 젖은 귀두를 누르듯 문지를 때마다 오싹한 쾌감이 어깨까지 싸하게 내달렸다. 이명헌의 다리가 벌벌 떨렸다. 성기 끝에서 줄줄 흐른 물 때문에 허벅지까지 전부 젖어서, 살갗이 부딪힐 때마다 자꾸만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파, 우성아.. 아파... 아파..."
"아파요?"
"아파..."
 
머릿속이 멍했다. 고통은 무뎌지는데 쾌감은 날카로워지기만 했다. 예민한 감각이 온몸을 들쑤셨다. 혈관이 전부 저릿저릿한 것 같았다.
 
"어디가?"
 
정우성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스몄다. 짐승처럼 성급하게 몰아붙이던 게 조금 느려졌다.
 
"배가.... 배가, 아파..."
 
배가 찢어질 것 같았다. 성기가 너무 깊이 들어와서 몸 어디 한 구석이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안 닿아요."
"아파... 아파..."
 
목을 울리면서 그가 웃었다. 잠깐 움직임을 멈춘 정우성이 늘어진 이명헌의 손을 쥐더니 배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느릿하게 위로 쳐올렸다.
 
"흐으!"
"봐. 안 닿아."
"아파..."
 
정우성이 뿌리 끝까지 느리게 밀고 들어오자 성기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몸은 그저 흥분에 떨리기만 했다.
 
"형. 명헌이형, 응?"
 
기분이 좋을 때 내는 목소리로 정우성이 재차 이명헌을 불렀다. 느릿하던 움직임이 자꾸만 거세졌다. 이미 한계까지 쳐박고도 자꾸만 허릿짓을 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이명헌은 우악스럽게 감겨 있는 팔뚝을 밀어냈지만 어림도 없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혈관이 불거진 단단한 팔을 떼어내려다, 

이명헌은 결국 마주 잡았다.
 
*

똑똑.

“네.”

패드를 내려놓던 최동오가 문 너머로 나타난 얼굴에 반색을 했다.

“뭐야.”
“바빠?”
“아니. 왜?”
“그냥. 나 여기서 잠깐 좀 쉬자.”

이명헌이 허락도 떨어지기 전에 최동오의 사무실 한 켠에 있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허.” 어이 없다는 듯이 웃은 최동오가 손가락으로 패드를 두드려 끄고는 이명헌에게 걸어왔다.

“니 사무실 두고 왜?”
“거기 시끄러워.”

이명헌이 한 팔을 들어 눈을 가리면서 대답했다. 최동오가 이명헌이 누운 소파 옆 바닥에 앉으면서 등을 기댔다. 잠깐 머리를 몇 번 뒤채더니 곧 편한 자세를 찾았는지 이명헌의 배에 뒤통수를 뉘였다.

“너 살 빠졌냐?”
“잘 모르겠는데.”
“빠졌어.”

물어놓고 제가 대답하면서 최동오가 뒤통수로 배를 꾹 눌렀다.

“무거워.”
“요샌 무게치러 안 가?”
“가야지. 바빠서 못 갔어.”

이명헌이 늘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피곤이 역력한 기색에 최동오가 고개를 돌려 힐끔 이명헌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 있냐.”
“없어.”

한동안 색색거리는 이명헌의 숨소리만 이어졌다. 가만하게 오르락 내리락거리는 배를 베고 있던 최동오가 입을 열었다.

“명헌아.”
“어.”
“나 아직 너 좋아해.”
“......알아.”
“알면 그냥 너 좋아하게 해주면 안 되나?”

최동오가 고개를 일으키면서 물었다. 턱 언저리에 고스란히 닿는 최동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명헌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너 좋아하고. 너는 정우성 좋아하고. 아무도 행복한 사람 없으니까 공평하잖아?”
“......싫어.”
“왜?”
“니가 아까워서.”

최동오가 피식 웃었다. “되게 고맙네.” 그가 부러 짓궂은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삐리릭. 삐리릭.

조용한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최동오가 가볍게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았다.

“네. 전략1팀 최동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정우성 본부장님 비서실입니다.>
“네.”
<기획3팀 이명헌 팀장님 함께 계십니까?>

최동오가 힐끔 소파에 누워있는 이명헌을 쳐다봤다.

“아뇨. 없는데요.”
<그렇습니까?>

비서실 여직원이 말을 끌었다. 이명헌이 이곳에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이미 최동오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 전에 전략1팀 사무실에 먼저 확인을 했을 터였다. 그 침묵이 주는 압박을 뻔히 알면서도 최동오는 가만히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본부장님이 찾으셔서요.>

비서실에서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곤란한 티를 내면서 말했다.

“만나면 전달하죠.”
<부탁드립니다.>
“네.”

최동오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딘데.”

어느새 바로 앉은 이명헌이 뒷머리를 정리하면서 물었다.

“그냥.”

최동오가 딴청을 피면서 대답했다. 이명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몸을 일으켰다.

“나 간다.”
“명헌아.”
“어.”
“가지마.”

이명헌이 최동오를 돌아봤다. 데스크에 반쯤 기대 앉은 최동오가 걱정스러운 낯을 하고 있었다. 이명헌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았어.” 

문을 열고 나가는 이명헌이 느슨하게 끌렀던 넥타이를 정리했다. 본부장실로 올라갈 채비를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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