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이 아무래도 그런 과거가 있었으니 은연 중에도 정작 중요한 말은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잘 안 할 것 같음.

반면에 대만이? 있는 집 외동아들로 사랑만 받고 자라서 자기 기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할 거 같음.

둘이 썸 타다가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아직 자보진 못했는데 아무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됨.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음. 사귀자는 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둘이 농구부에서 지지고 볶고 매일 얼굴 볼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 대만이가 그래도 좀 떨어진 곳으로 대학 가게 돼서 태섭이가 졸업식 때 울진.. 않고 눈 좀 빨개진 채로 힘들게

꼭 연락해요..

하니까 대만이가 뭐 그렇게 대단한 말이라고 힘들게 하냐면서 머리 옴팡지게 한번 복복복복 휩쓸어(?)주고 그날 저녁에 바로 집에 가서 연락 하겠지.

오늘 나 졸업한다고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칼질했닼ㅋㅌ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대학 가면 힘들까? 거기서도 공부해야 겠지?ㅋㅋㅋ 근데 대학교 가면 다들 공부 안 한댘ㅋㅋ 태섭이는 막상 몸이 멀어지니까 너무 불안해서 말도 잘 안 나오는데 대만이가 전화 붙들고 거의 혼자 몇시간 떠들 거임.

그러다 전화 오래 붙들고 있는 태섭이한테 씅나서 엄마한테 이른다고 발 구르기 시작해서 억지로 끊음ㅋㅋㅋ


그렇게 거의 매일 전화하고 거의 매주말마다 득달같이 집에 오는 대만이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는데... 웬걸. 태섭이가 미국에 가게 됨. 당연히 축하할 일이고 잘 된 일이기도 해서 대만이도 처음엔 축하해 주는데...

문득 카페에서 얘기하다가 태섭이를 보는데 어딜 봐도 정대만 꺼라는 증표가 없어서 덜컥 불안해진 대만이. 이대로 이 끝내주게 귀여운 초코푸들을 미국에 가져다 놓으면? 미국에는 사람도 더 많다는데... 이 초코푸들한테 우리집에 가자고 꼬드기는 놈이 막 생기면 어떡해? 하는 불안감이 불시에 밀려옴.

그래서 그길로 벌떡 일어나서 반지를 사야하나. 아님 이름표를 붙여야 하나. 아님 목걸이를 걸러줘야 하나. 하고 영문도 모르는 태섭이 질질 끌고 다니다가 그 주변에 있는 거라곤 게임 센터 뿐이라...

양키 시절 학교 땡땡이 치고 인형 좀 뽑던 실력으로 두 개 다 똑같은 강아지 인형 키링 뽑아서는 이거 달고 다니라고. 꼭 어딜가든 달고 다니라고 신신당부 하겠지. 묘하게 화난 정대만 닮은 못생긴 강아지 키링 들고 한참을 보던 송태섭이...

진짜 커플 같네...

하고 중얼거리는 거 듣고 정대만 멀쩡하게 걷다가 휘청거려야 함. 대만이는 당연히 진짜 커플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도 대만이 넘어진다고 득달같이 달려와서 몸으로 받아주는 태섭이.

왜 잘 걷다가 넘어지고 그래요. 어디 아픈 거 아니죠?

하고 묻는 표정이 너무 다정해서 화도 안 나는 대만이. 생각해 보니 사귀자고 한 적도 없잖아.. 하고 갑자기 눈물부터 나려는 대만이. 태섭이는 그런 대만이 마음도 모르고 그냥 오늘따라 갑자기 자길 여기저기 끌고다니더니 갑자기 게임센터에서 인형뽑기에 열을 올리질 않나, 아무것도 없는 길에서 넘어지려고를 하질 않나, 울기까지 하질 않나...

걱정되기도 하고 근데 또 그것도 마냥 제 눈엔 예쁘고 귀여워서 자기 미국가면 다른 사람하고도 이러고 있겠지 싶어서 가슴 찢어지는 중임.


대만이 또 연상이라고 눈물 흘리기 직전에 어떻게 울음 꾹 참아내고는 울망울망한 눈으로 송태섭 어깨 붙잡고는

야. 송태섭. 너 미국 간다고 나랑 손 잡고 뽀뽀했던 거 없던 걸로 하면 안된다? 미국이 아무리 좋아도 나보다 괜찮은 놈 없을 거거든? 아니. 이게 아니라... 아무튼 내가 잘할 테니까... 평생 나랑만 손 잡고 뽀뽀해.

하는데...


사실 태섭이는 의식적으로 대만이랑 언약을 나누고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는 거 무서웠으면 좋겠다.

사귀자고 말해버리면 언제든 헤어지지고도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거니까.

말은 정말 힘이 있는데. 정대만은 그걸 잘 모르는 거 같으니까. 그러니까 평생 같은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태섭이.


....꼭 평생이어야 해요?

그렇게 대답해 버려서 대만이 진짜로 상처 받고 미국 가는 날까지 태섭이 얼굴 안 봤으면 좋겠다. 간도 쓸개도 빼줄 것 처럼 다정하더니 자기 마음만 훔쳐간 나쁜 새끼라고 치수랑 준호 불러다가 욕도 뒤지게 하고.

그렇게 태섭이 미국 가고 연락도 잠깐 끊기게 되는데.

한 1년도 안 되어서 대만이가 바이크랑 가벼운 접촉 사고 나서 병원에 잠깐 입원했다가 곧 퇴원하는데 퇴원할 때 다 되어서야 말그대로 미국에서부터 버선발로 뛰어온 태섭이 마주쳤으면 좋겠다...

마침 같은 대학 동오랑 퇴원 수속 밟고 나오는 중이었는데 대만이가 장난으로 엄살 부리느라 동오한테 부축하라고 치대고 있었음.

태섭이는 동오가 누군지는 눈에도 안 들어오고 대만이가 다른 놈이랑 그러고 웃고 손잡고 있는 걸 직접 본 게 처음이라 눈이 돌아버림.

대만이는 그새 벌크업 된 태섭이 보고 긴가 민가 하고 있는데 눈 돌아간 근육푸들이 쿵쾅쿵쾅 다가와서 동오 밀치고는

당신 뭐야???

하고 병원 한 복판에서 소리질러서 왐마야.....! 되어버려라. 당연히 시선 집중 되고 간호사가 나타나서 정숙해 달라면서 달래도 태섭이가 동오한테 아르릉 거리는 거 겨우 떼어내서 밖으로 나오겠지.

알고보니 아라가 쓴 편지에 대만이가 사고 당했다는 소리가 있어서 그거 읽다말고 쫓아온 거였음. 정대만 답게 다친 이유도 뭐 길에서 본 소매치기 쫓다가 뭐 그런 거라 뉴스에서 얼굴 까고 인터뷰도 하고 제법 국내에선 시끄러운 일이어서 알았다고 치자.

태섭이는 바이크 사고를 자기가 당해봤으니 얼마나 중한 일인지도 잘 알았고... 얼마나 겁이 났겠어. 사귀자는 말도 못 해보고 마음에 영원히 묻을랬는데 나중에 멀리서라도 지켜보려고 했는데. 다신 농구도 못할만큼 엉망이 되었으면 어떡해. 진짜로 세상에서 없어지기라도 했으면 어떡해.

아무튼 보고 싶던 마음까지 한번에 폭발해서 못 참고 대책 없이 일시귀국해 버린 송태섭.

재회하자마자 병원에서 거하게 사고 치고... 창피 당하고... 멀쩡한 정대만 손에 이끌려서 병원 정원 구석에서 고개 숙이고 선생님한테 잔뜩 혼나는 학생꼴이나 되어버림.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게 무슨 짓이야?

하고 아직 마음의 상처 안 아문 대만이가 마음 굳게 먹고 차갑게 묻는데

안 되겠어요... 그냥 평생 할래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냥 평생 어디 가지말고 나랑 있어요. 나랑만 해요. 손 잡고 웃고 행복하고 뽀뽀하고 그런 거.

아주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태섭이. 뭐가 그렇게 힘든지는 대만이는 여전히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하면 지는 거라던데. 그냥 꼬옥 안아줘라. 그리고 급한대로 첫섹은 대만이 차안에서 해결해서... 대만이 차 타고 집에 갈 줄 알았던 동오는 갑자기 버스타고 혼자 집에 감.

그리고 두번 다시 대만의 차를 얻어 타지 않겠지...


그렇게 어찌저찌 돌고 돌아 결국 >>사귀는 사이<<꽝꽝 도장 찍고 롱디 이겨내는 태섭대만.




그리고 태섭이 말이는 진짜 힘이 있어서 대만이가 평생 태섭이 옆에서 행복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