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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8 20:50
여우비를 어떤 지역에서는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 하고 또 어떤 지역에서는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백호태웅 결혼식 날 비 내렸으면 좋겠다. 진짜 쨍쨍하니 먹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에 느닷없이 비가 죽죽 내려서 결혼 당사자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하는데 준호가 "하하, 여우가 시집 가는 날이라고 비가 오나보다." 하는 거. 이렇게 좋은 날에 비가 온다니 누가 바보들 결혼식 아니랄까봐 하늘도 바보가 됐다면서 일반 하객들 빼고 백호랑 태웅이 잘 아는 사람들은 죄다 눈물 빠지게 웃을 거 같음.

심지어 농구 코트있는 탁 트인 꽃밭에서 하는 야외 결혼식이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나 같이 임시 천막 아래 옹기종기 모여서 이 바보 같은 사태에 대해 떠드는데 모처럼 결혼식이 날씨때문에 망쳐져서 너무너무 속상한 백호.. 웃어재끼는 선배들한테 화도 못 낼 정도로 속상해가지고 에이씨 함서 축 처져있는데 태웅이가 뒷통수를 빡 때리는 거야. 멍청아. 원온원 하자.


"야, 무슨 원온원이야. 우리 결혼식 도중이거든?"
"비 오잖아."
"어. 근데 결혼식이라고."
"..비 오는데."
"아, 비와도! 결혼하고 있었다고! 여우, 너랑 내가! 누가 결혼식에서 원온원을 해!"
"너랑 나."
"아오! 애초에 이런 옷을 입고 어떻게 농구를 하냐?"
"..아 참, 넌 유니폼 입고도 나한테 졌지."
"새꺄, 덤벼라."


중단된 결혼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들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별안간 신랑 둘이서 뛰쳐나가더니 구두 벗어 던지고 수트 재킷 벗어 던지고 거의 장식용으로 덩그러니 놓여있던 농구 골대 아래에 자세를 잡는 거야. 농구공? 강백호 서태웅 결혼식에 농구공이 없겠냐고. 오히려 하객들이 죄다 농구면 환장하는 사람들이라 웨딩 케이크 장식마저도 농구공인데. 대만이랑 태섭이가 기겁을 하면서 야야야야 말려 말려 쟤네 미쳤냐!!! 이러고 있고 치수-특, 주례 맡음-이미 입 떡 벌어지고 영혼 털려서 지금 자기가 보고 있는 광경이 이게 맞나 싶어짐.

다들 황당해서 신랑들이 옷이고 나발이고 다 내팽겨치고 드리블하는 거 보고만 있는데, 백호군단이 자기들끼리 눈 마주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선 달려나가 버리는 거야. 나름 절친 둘이 결혼한다고 광내고 때 뺀 수트가 얕은 비에 축축 젖어가는데 신경도 안 쓰고 지난 3년간 그랬던 그대로 코트 옆에 앉아서 서태웅 이겨라! 강백호 이겨라! 아무나 이겨버려! 이러고 있는 거지. 태웅이는 끄덕이고 백호는 얌마, 너네는 날 응원해야지! 하면서 역정을 내고 그러다 태웅이 페이크에 보기 좋게 걸려들고. 진짜 바보들의 축제가 따로 없어.

어쩐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나까지 바보가 되는 거 같어. 근데 또 그게 퍽, 즐거워! 나쁘지 않아! 처음에는 저 놈들을 어떻게 하냐 싶었던 대만이, 햇빛도 쨍쨍하고 비도 얼마 안 오다 그치는 여우비고, 결혼식에 농구를 한다고? 뭐 어때. 결혼한다는 놈들 둘이서 저러고 있는데. 그럼 어울려 주는 게 선배된 도리 아니겠냐. 치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던 손이 점점 느려지고 대만이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가고. 옆에 있던 송태섭 다리도 근질근질 거리고. 한나가 눈치 채서 송태섭, 하지마. 하지말라고 했어. 하는데 태섭이 이미 빗 속에서 들리는 드리블 소리가 너무 경쾌해서 마음 뺏김.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어딨겠어, 한나야. 비 오는 결혼식 날 농구를 한다니. 저 녀석들도 무진장 재밌어 보이잖아.

야! 강백호! 넌 아직도 슛폼이 그 모양이냐!
태웅아, 패스 보낸다!
대만이랑 태섭이까지 참전한 2on2 농구에 어쩔농구인들 이젠 다 포기하고 농구 얘기나 해. 일을 수습하려는 의지가 있는 건 치수랑 약간의 준호려나. 백호가 덩크를 넣고 태웅이 일명 개똥슛을 넣으면서 동점이 된 상황에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해. 원래부터 파란 하늘에 들이닥친 비였으니 날이 개자 해는 더 쨍쨍하고 날은 더 따뜻해지는 거야. 오, 비 그쳤다. 준호가 치수 등을 살짝 밀어. 우리 후배 둘이 결혼하고 있었잖아, 치수야. 어디서든 결혼만 하면 돼. 사고뭉치 후배들 뒤치닥꺼리는 정말이지 십수년이 지나도 계속될 일이야. 서로서로 누가 더 잘했네, 내가 이겼네, 섭섭쓰 반칙이네, 어쩌구 저쩌구 다 잊어먹고 농구 얘기만 하는 바보들에게 치수가 터벅터벅 걸어가선 꿀밤을 맥인 뒤에 백호랑 태웅이를 딱 붙여놓는 거야.

"신랑 강백호!"
"고릴,"
"신랑 강백호는 여기 있는 서태웅 군을 배우자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면서 일생을 같이 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신랑 서태웅은 여기 있는 강백호 군을 배우자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면서 일생을 같이 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됐다! 이제 둘이서 농구를 하든, 싸움을 하든 부부끼리 알아서들 해! 그 한마디를 끝으로 저 뒤에서 슬슬 구경하면서 나오던 온갖 덩치 큰 농구 선수들이 와아아아아!!!! 하면서 박수치고, 환호하면서 달려와. 신랑들 꼬라지가 영 결혼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드디어 맺어졌다고.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미소가 백호 얼굴 위에 드리워지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멍청아."
"눗!"

태웅이가 백호한테 키스했다.
여우한테 홀려서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 호랑이 꼬셔서 여우가 시집가는 날, 구름 한 점 없는, 뜨거운 태양이 버젓히 떠 있는 맑은 날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 하는데 누구는 여우가 시집 가기 싫어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지만 준호의 생각은 좀 달랐어.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잖아. 여우도 호랑이도.

"..구름이 질투라도 한 거려나."



그리고 이 결혼식은 두 사람의 지인들 사이에서 오래오래 두고 두고 화자되는 개꿀잼 결혼식이 됐다는 후일담이 있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