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자마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송태섭을 살리는 거면, 그리고 정말로 그 기회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면 좋겠다.


익숙하지만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동네를 걷다가 졸업식날의 태섭이를 마주치고서야 과거로 돌아온 걸 깨달은 대만이.
태섭이 보자마자 뛰어가서 아는 척을 하고 싶은데, 자기는 지금 10년 후의 모습이라서 잠깐 망설이겠지. 하지만 이 날이 태섭이가 사고당했던 날이라는 걸 기억하자마자 설명이고 뭐고 그걸 막아야겠단 생각밖에 안들었을 거임.

"송태섭!"
"...대만 선배?"

눈썹 한쪽을 올리고 이쪽을 쳐다 본 태섭이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을 거임.
왜냐면 대만이한테 고백한 뒤로 지금 이게 처음보는 거라서. 

'너 그냥 내가 너무 편안해져서 착각하는 거야' 라고, 멋적어하며 태섭이 고백을 거절한 대만이는, 잠깐 머리 좀 식히라며 한동안 연락을 끊었었거든.

근데, 대만이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긴 하겠지. 10년이나 지났으니까. 얼굴도 조금 변한 거 같고, 키도 약간 더 큰 느낌에 분위기가 일단 너무 달라서, 태섭이는 자기 고백이 그렇게까지 기분 나빴나? 하고 생각하는 거. 

"그래도 졸업은 축하해줄건가 보네요."
"너 오늘, 집으로 바로 가서 나오지 말아라."
"에?"
"부탁이니까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그렇게 해주면 안되냐?"

그리고 뜬금없이, 인사도 없이, 어떻게 지냈냐는 말도 없이, 그저 집에 어서 가서 나오지 말라고 부탁만 계속 하는 대만이가 이해가 도통 안갔겠지. 자길 더 보고 싶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어딘가 너무 어른스러워진 모습이며, 옷차림도 그렇고, 부탁하는 내용도 이상하잖아.

근데 그래도, 정대만이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사정할 사람은 아니니까 뭐, 바다라도 보러 가려고 했는데 관둘까 싶어서 알겠다고 하는 태섭이겠지.

"그래도, 보러 와줘서 고마워요."

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한 마디 남기고 들어가는 거.
송태섭 그 뒷모습 보면서 대만이는 눈시울 붉어졌을 거야. 왜냐면 태섭이를 그렇게 보내고 난 뒤에 정말 많이 후회했거든. 남자끼리라는 게 태섭이한테 민폐가 될 지도 모르는데다가, 자기도 자기 마음을 잘 모르는 상태로 거절했던 건데.. 그렇게 그 뒤로 다시 못볼 줄 알았으면 그때 그러지 말 걸.. 만일 그때 사귀자고 했으면 뭐라도 바뀌었을까. 그랬으면 마음 한 편에 늘 안타까운 감정으로 남은 꽤 특별했던 후배를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인생 어느 한켠에라도 함께 하고 있었을까. 하고 궁금해하기도 했었지.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린 대만이.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와서 자기 집 안인데 여전히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식탁 위를 보는데, 액자에 태섭이랑 같이 웃고 있는 사진이 있어서 멍 때리는 얼굴로 바라보는데 현관문 열렸으면.

"얼굴이 왜 그래요?"

하고 들어오는, 좀 더 다부지고 나이든 얼굴의 송태섭이 자기 앞에 있는 거.

그리고 시선이 마주친 순간에, 대만이가 한 번쯤 궁금해하기도 상상하기도 했었을 순간들이 차곡차곡 기억이 되어 흘러들어왔음 좋겠다. 그 날 태섭이의 과거를 바꾸고, 다시 마음을 깨닫고, 사귀기로 한 것. 미국행이 결정되어서 떠나보내고 엄청난 전화비에 놀랐던 것. 가끔 귀국할 때마다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들과도 친해져서 정식으로 허락받기 전부터 이미 사이를 들통나 있었던 것. 그리고 반 년 전쯤부터 아예 국내 팀으로 뛰게 되어서, 둘이 다른 팀에서 때로 시합에서 붙을 때도 있지만 집은 하나로 합쳐서 살자고 이야기해서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

대만이 눈 껌뻑이며 갑자기 눈물 뚝 흘리고 태섭이 끌어안는데, 송태섭은 당황해서 이 형이 왜 이러나. 싶어서 토닥이는데... 그 온기가 진짜라서 정대만 그냥 한참을 끌어안고 안겨서 그러고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소원에 대가가 없는 건 아니라서, 10년의 시간 만큼 대만이 수명이 줄어들었지만, 그게.. 정말 아주 먼 훗날에 둘이 거의 같은 날 노년의 시기를 동시에 마무리하는 정도의 타이밍으로 맞아떨어져서, 대가를 지불했는지조차 몰랐으면 좋겠다..


태섭대만 료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