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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6 13:18
대만이가 호열이 몰래 좋아하다가 졸업식 날, 이제 더이상 안보면 정리되겠지 하고 포기하려고 맘 먹었겠지.

그런데 3학년들 졸업식 본다고 찾아온 백호의 한걸음 뒤에 서있는 호열이를 봤더니 오늘 이후로 못본다 생각하면 못견디겠는거.

다른 애들한텐 뭐라고 핑계댔는지도 모르겠고 정신차려보니 빈교실에 데려간 호열이한테 좋아한다고, 내가 싫은게 아니면 몇번만 만나달라고 애걸하다시피 고백하고 있는 대만이었음.

호열이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보고만 있다가 손에 든 꽃다발을 대만이 손에 쥐여주면서 그래요. 라고만 함.

그 한마디만으로도 대만인 좋았을거야. 마음 한켠에 호열이가 왜 자길 좋아하지 않는데 오케이한건지 불안함도 한조각 담겨있었긴 해도, 어쩌면 호열이도 내가 좋아질지도 모른다 생각했겠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그날 저녁 전화를 걸때 몇번이나 망설이고 꺼낼 말을 정리하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왔던지.
조금 퉁명스런 목소리지만, 먼저 말을 꺼내진 않지만 그래도 전화를 끊자고는 하지 않는 호열이가 고맙고 또 간절해서 한참 아무렇게나 떠들다가 데이트하자고 조르기도 하고.

호열이는 제법 그런 대만이를 잘받아줬어.

하지만 초봄이라 춥다는 핑계로 살짝 잡아보려던 손을 슬쩍 피해버린 순간, 속으로 상처받았다가도 장난스레 손을 쥐어서 흔들고 놓는 대만이었음.

아 넌 손이 따뜻하네. 다행이다.

웃는 자신을 올려다보다가 식당예약시간 얼마 안남았다면서요. 가요.라고 하며 걸어가는 호열이가 조금 멀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신입생이라 이런저런 활동에 끌려다니면서도 너무 보고 싶어서 집앞에 찾아가면 조금 찌푸려지는 미간을 보면서, 바쁘다면서요. 내일 일정이 많다면서요. 어서 들어가서 쉬어요 하고 제 등을 살짝 밀어내는 손이 걔를 좋아하는 마음도 밀어내버리는거 같아서.

벚꽃이 핀 대학교 풍경에 아, 호열이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 불러낸 대만이가 큰 맘 먹고 다시 쥐어본 호열이의 손은 잠깐 움찔했지만 가만히 있어주는게 갑자기 그게 서럽고 슬퍼졌어.

영영 호열이가 먼저 잡아줄 리는 없을 손이라는게, 먼저 제게 찾아와줄 일은 없을거라는게.
그저 어설픈 다정함으로 받아만 줄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파왔지.

손에 힘을 빼자 툭하고 쉽게도 풀려버린 손으로 한걸음 먼저 걸어나갔던 호열이 돌아보는데, 대만인 웃었어.
잔뜩 일그러져서 우는 것 같은 얼굴로.

그동안 받아줘서 고마웠어 호열아. 이제 충분한거 같으니 그만하자.
내가 불러내놓고 미안한데 바래다주진 못하겠다.
조심히 돌아가.

하고 돌아서서 이젠 엉망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벚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의 언덕길을 걸어내려가는거.



졸업식날 대만이 보고 싶어서 찾아왔던 호열이 대만이 가쿠란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단추를 보고 아쉬워했다던가, 갑작스런 대만이의 고백을 받고 너무 놀라고 떨려서 겨우 한마디를 했다거나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대만이 목소리나 그 날의 일이 너무 좋아서 웃으면서 응, 네, 그래요만 반복하여 다시 걸려올 전화를 기다렸다거나

너무 좋고 너무 소중해서 먼저 건드리지도 못하고 걱정이 되어도 퉁명스러운 말밖에 하지 못한 서툰 호열이의 마음 같은건 전혀 모르고서

울면서 자신을 떠나가는 대만이를 붙잡으면 더 아플까봐 잡지도 못하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호열이 얼굴을 만약 대만이 돌아봤다면 알 수도 있었을 감정을 모른 채로 그렇게 끝나면 좋겠다.